백두대간 종주를 하다 보면 당일로 그냥 휙 지나치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적지 않다. 이렇게 바쁘게 걷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하룻밤쯤 텐트 치고 자면서 지는 노을과 떠오르는 아침 햇살도 받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간혹 들곤 한다. 백두대간 중에도 해발 1,300~1,400m대로 붕긋이 솟아오른 한편 주위 산릉의 중첩한 풍치가 아름다운 강원도 지역 내의 구간에서 그런 유혹이 유난히 짙다.
그러나 능선상에서의 편안한 숙영이나 비박이 가능한 곳은 실제로 그리 많지 않다. 경치가 뛰어난 곳 중 대부분은 취사·야영이 금지된 국립공원 구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점을 감안해 볼 때 댓재~백봉령 구간은 하루 느긋이 막영하며 노을부터 일출까지를 모두 즐길 최상급의 구간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댓재에서 두타~청옥산 능선을 지나 백복령까지의 구간은 동고서저를 이룬 한반도 지형의 전형을 실감할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이 구간에서 대간 능선의 동사면은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급경사이며, 때문에 동쪽으로 유난스레 시원한 조망을 종종 만나게 된다. 특히 두타~청옥 능선에서 층암절벽을 이루며 깊이 패인 절경지 무릉계곡을 내려다보는 멋은 달리 비교할 데가 없다. 이 구간은 능선 자체가 가진 멋 또한 다른 구간보다 월등하다. 이러한 뛰어난 풍치를 중간에서 하루 숙영하며 느긋이 즐기는 여유로운 대간 종주를 한 번 즐겨보자.
지리산 천왕봉~진부령 간 백두대간의 거리를 실측, 735.6km임을 밝힌 바 있는 포항 셀파산악회의 자료에 의하면 댓재~백복령 간은 29.1km로, 지리산 주능선(천왕봉~성삼재) 28.13km보다 더 길다. 이 구간에서 하룻밤을 보낼 최적의 장소는 샘터가 지척인 청옥산 정상이다.
▲ 1 고적대 내리막길에서 본 갈미봉 능선. 댓재~백복령 구간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다.
2 청옥산 정상에서 2분 거리의 샘. 거의 마르는 일이 없다. 3 청옥산 정상에서의 막영.
고적대 지난 뒤 동쪽 무릉계 하산
댓재 고갯마루 송림 속 산신각 옆 대간길을 잡아 목통령으로 오르는 동안에는 동쪽의 깊게 주름진 구룡골 풍광이 특히 볼만하다. 조금 내려가다가 길게 오르막길이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해발 800m의 댓재에서 해발 1,353m의 두타산 정상까지 쳐오르게 된다. 길은 유명 국립공원의 주등산로나 다름없이 뚜렷하다.
댓재에서부터 약 6km, 3시간 남짓 걸으면 널찍한 공터를 이룬 두타산정에 올라선다. 무덤과 정상표지석이 서 있다. 두타산 정상에서 청옥산 방향 대간길은 올라온 방향에서 거의 90도쯤 왼쪽으로 꺾이며 이어진다.
급한 내리막 능선길을 20여 분 간 뒤 완경사의 기복을 가진 능선을 따라 가노라면 평평한 잘록이가 나오는데, 박달령은 여기서 200m쯤 더 가야 한다. 박달령 갈림길목에서 길은 능선을 버리고 서쪽(왼쪽) 옆으로 길게 뻗는다. 얼마 후 왼쪽 번천리 계곡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나오며, 대간길은 남쪽으로 휘다가 곧 지능선 위로 이어진다. 대간 원줄기를 남으로 완전히 벗어났다가 다시 붙는 셈이다. 이렇게 바위지대를 우회하여 샘터 내려가는 길목 안내판이 선 곳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청옥산 정상이다.
청옥산 정상은 주위의 일부가 숲에 가려 조망이 썩 훌륭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매우 널찍하고 평평한 풀밭도 이루고 있어 여유로이 초가을밤을 보내기엔 무난하다. 이곳 청옥산 정상 샘은 거의 마르는 일이 없다는 여러 대간 종주꾼들의 말이다. 청옥산 정상에서 막영 후 동쪽의 절경 계곡 무릉계로 내려가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30여 분 거리인 연칠성령으로 내려서서 무릉계로 빠지면 된다.
그러나 절경은 연칠성령 이후 비로소 시작된다. 바윗길이니 걷기는 물론 힘들지만 주변 조망이 한결 나아진다. 길은 험한 바위지대를 피해 주능선 왼쪽으로 가로지르곤 한다.
고적대(高積臺) 정상을 지나 엄청난 급경사의 흙길 내리막을 10분쯤 가면 앞이 트이며 갈미봉 쪽 절경이 펼쳐진다. 여기서 갈미봉까지가 이 구간 최고의 풍광지다.
나무에 ‘갈미봉 1,278m’란 작은 팻말만 하나 매어져 있을 뿐인 갈미봉 정상을 지나 40분 남짓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면 길 왼쪽 옆에 샘이 나온다. 주위에 편평한 숲 그늘도 있는 이곳 샘도 청옥산 정상 샘처럼 말라 붙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좌표 북위 37도28분12.5초, 동경 128도59분18초).
샘터를 떠나 5분쯤 간 지점에서 왼쪽으로 90도 길이 꺾어진다. 무수한 종주꾼들이 직진하여 지능선 길로 잘못 들어서곤 한 곳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대간 길은 작은 송림지대를 지나 평지 같은 사면을 뱀처럼 구불거리며 짙은 참나무수림, 편평한 산죽밭을 지나 고압 송전탑이 선 이기령으로 이어진다. 이기령 바로 옆으로는 임도가 지난다.
이후 헬리포트가 있는 상월산 정상, 원방재 지나 백봉령에 다다르기까지 수없이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삼각점이 설치된 987m봉부터 비로소 순하게 누운 능선길이 이어지며 걸음을 빨리 할 수 있다.
백봉령은 고압선과 대형 철주, 그리고 저 앞의 자병산을 몽땅 잘라내듯 하는 채석공사로 살풍경이다. 그러므로 애써 이 구간을 완주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고적대 지나 갈미봉 가기 전 오른쪽 무릉계로 빠지기를 권한다. 고적대에서 1km 남짓 가면 무릉계곡 방향의 ‘사원터’ 안내팻말이 서 있다. 이기령에서도 동쪽으로 하산길이 있으나 무릉계를 지나지 않는 다소 지루한 길이다.
>> 교통
서울~동해·삼척 강남고속터미널(영동·동해선)에서 일반·우등·심야우등버스 30~40분 간격(06:30~23:30)으로 운행. 3시간30분~4시간 소요. 동서울터미널에서도 삼척행 고속버스가 하루 20회 운행.
삼척→댓재 삼척읍내 종합버스정류장(033-572-2085)에서 하루 3회 댓재 넘어 하장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07:30 13:30 16:30 출발).
무릉계~동해시 시내버스 수시 운행. 20~30분 소요.
백봉령에서 오후 6시30분에 동해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삼척콜택시 033-575-1144.
>> 숙박
댓재엔 댓재민박집(033-552-0096, 011-9797-7960)이 있다. 민박집 옆에는 누구든 쓸 수 있게 따로 급수대를 만들어 두었다. 10명까지 승차 가능한 자가용 승합차로 픽업해 주기도 한다(비용은 사전 협의).
백복령 고갯마루의 동쪽 옆 200m 지점엔 간이매점 겸 식당이 있다(033-562-2730). 댓재까지 5만 원(동해터미널까지 3만 원)에 태워다주기도 한다.
무릉계 입구 상가단지에 민박을 겸한 식당이 여러 곳 있다.
출처 : 월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