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5(진평왕17)년~673(문무왕13)년 때의 인물이다. 아버지 김서현(金舒玄)과 신라왕족 만명부인(萬明夫人;갈문왕의 손녀이고 肅歇宗의 딸)의 장남으로 태어나 609(眞平王31)년 15세에 화랑이 되고 따르는 무리인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리면서 화랑정신(花郞精神)으로 심신(心身)을 단련하였다. 629(진평왕51)년 중당(中幢)의 당주로서 낭비성(娘臂城) 전투에 출전하여 고구려군을 크게 물리치고 압량주(押梁州) 군주(軍主)가 되었으며 644(善德女王 1)년 반역을 꾀하는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을 제거하고 무산성(茂山城), 감물성(甘勿城)에 침입한 백제군(百濟軍)을 격퇴하였다. 648(眞德女王 2)년 백제의 대량주(大良州)를 쳐부수고 12성(城)을 함락시킨 공으로 이찬(伊湌)이 되고 상주행군대총관(尙州行軍大總管)에 올랐으며, 다음해인 649년에 다시 침입하는 백제군을 도살성에서 쳐부수었다. 654(진덕여왕 8)년 왕이 후사 없이 죽자 김춘추(金春秋)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660년(武烈王 7) 상대등(上大等)이 되어 당나라 소정방(蘇定方)과 연합하여 백제국을 멸망시키고 신라국이 삼국통일(三國統一)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
663(文武王 3)년 백제의 부흥군을 토벌하고 665(문무왕 5)년 당나라에서 봉상정경 평양군 개국공(奉常正卿平壤郡開國公)에 봉해졌다. 668(문무왕 8)년 대총관(김유신)이 고구려 정벌에 나설 때 문무왕께서는 “공은 나라의 보배인데 적진으로 갔다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이 나라의 장래를 누구와 의론 하겠소 공은 성내에 머물러 나라를 지키게 하시오 은연중 장성(長城)과 같아 근심이 없을 것이오.” 라고 말씀 하시므로 직접 출전하지 못하셨다.
고구려를 정벌하고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승차하고 삼국을 통일한 후 당나라 지원군을 돌려보내고 고구려를 완전히 평정하였다. 673(문무왕13)년에 죽으니 금산원(金山原)에 장사 지냈고 835(흥덕왕10)년에 흥무왕(興武王)으로 추봉(追封)되었으며 경주 서악서원(西岳書院)에 주백으로 모시고 춘추로 제향을 받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곳곳에 12개 사우를 세워 지방마다 유림에서 춘추제향을 받들고 있다.
김흠순(金欽純)흠춘(欽春)이라고도 전하며 김유신의 동생이다. 진평왕 때 화랑이 되었고 660(무열왕7)년에 백제를 정벌할 때 형인 김유신을 도와 전공을 세웠으며, 662(문무왕2)년에는 내사지성(內斯只城)에 있는 백제군을 격파하였다 또한 663년(문무왕3)에는 백제의 거열성(居烈城)과 거물성(居勿城) 및 사평성(沙平城)을 공락하여 항복을 받았고 668년에는 당나라 군사와 함께 고구려를 정벌할 때 대당총관(大幢總管)이 되어 크게 공을 세워 각간(角干)이 되었다. 문무왕이 장군을 재상으로 삼으니 나라가 편안하여 현상(賢相)으로 명성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