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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벌목꾼과 분이
김성열
통나무 기둥에 서까래를 듬성듬성 걸치고 억새를 엮어 덮은 지붕에 황토벽으로 된 오두막집은 이태 전에 장 서방이 직접 지은 집이다. 밤새도록 울어대는 문풍지소리에 잠을 설친 그는 서둘러 밖으로 나와 숫돌에 도끼를 갈아 지게에 꽂고 집을 나섰다.
산판일을 하기 위해 몇십리 밖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숯과 장작더미들이 쌓여 있는 야적장에는 육십리도 넘는 영천에서 달려온 우마차들로 새벽부터 야단법석들이다.
장 서방은 숯가마에 도착하자마자 숯가마를 한바퀴 돌았다. 그에게 숯가마는 생존의 수단이요, 삶의 터전이였다. 추운겨울인데도 숯가마에서는 열기가 화끈거렸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파르스름한 연기가 실타래 풀리듯 하늘로 올라간다. 오늘 저녁에는 가마아궁을 막아야 한다고 장서방은 마음을 먹었다. 그런 것을 보면 그도 어느덧 숯굽는 숯쟁이가 다된 것 같았다.
장서방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벌목을 하려면 여기서도 산비탈을 한참은 더 올라 가야 한다. 코가 끌릴 듯한 비탈길은 숨이 차고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옛날에는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었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 전쟁 물자를 위한 송진 채취와 관솔 공출로 지금은 거의 살아지고 얼마 남지를 않았다.
어쩌다 남아있는 소나무의 움푹 폐인 도끼자국 상처는 그 당시의 참담함을 그대로 말해주는 듯 했다. 장 서방은 지게를 벗어 놓고 도끼로 나무를 찍기 시작했다. 이제 도끼질 하는데도 제법 이력이 났다. 나무를 찍는 도끼 소리도 요란했지만, 나무가 쓰러지며 질러대는 소리들은 어찌 들으면 또 다른 생명들의 비명과도 같았다.
그 소리들은 산울림이 되어 산골짝을 쩌렁쩌렁 울려 댄다.
점심을 먹은 장서방은 나른한 몸을 쉴 사이도 없이 벤 나무들을 일정한 크기로 동강을 내어 숯가마가 있는데 까지 일 일이 지게로 져 내려야 한다. 갓 밴 생나무는 물기가 그대로 있어 통 나무를 한짐 잔뜩지고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오려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노역 중에도 가장 힘든 노역이였다. 눈이 오기 전에 벤 나무는 어떻게든 숯가마터로 모두 끌어내려야 한다.
구어진 숯을 다 꺼내고 다시 채우는 작업은 계속 반복되었다. 해가지고 밤이 깊어서야 장 서방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상했다.
아무도 없어야 할 집안에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장 서방의 인기척소리를 듣고 방문이 덜컹 열리면서 단발머리의 한 소녀가 맨발로 뛰어 나와 장 서방에게 매달린다.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아저씨! 아니, 선생님! 이번에는 저를 쫓지 마세요. 저, 아주 짐 싸가지고 이곳으로 내려 왔어요. 아저씨 랑 함께 살려고요. 이제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을 거에 요.”
그는 깜작 놀랬다. 어쩌면 지난여름보다도 그녀는 몰라보게도 성숙해지기도 했지만, 더욱더 대담하고 당돌 해진 것 같았다.
“벌써, 겨울 방학을 한 거야?”
장 서방이 놀란 얼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요. 학교고 뭐고 다 때려 쳤어요.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더 싫어 졌어요. 사람들마다 나만 보면 뒤돌아서서 쑥 덕 거리는 것 같고, 아이들이 빨갱이의 딸이 배워 뭐 하냐며 비웃고 놀려 대요.그래서 서울이 싫고, 학교가 싫어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더 이상 저를 강제로 밀어 내려 하지 마세요. 알았죠. 선생님!”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하는 그의 말은 너무나 진지하면서도 당당 했다.
분이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여름 이였다. 해가 지고 어둠이 짙어 올 무렵, 소나기가 한바탕 수선을 떨며 지나갔다. 대대로 이어 오면서 득음이 경지에 오른 부엉이와 소쩍새들의 명창으로 짧은 시골의 여름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있었다. 참외 밭 머리에 지어진 원두막에서 남포등불 아래서 책을 보고 있는데, 어데 선가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아 장서방은 책장을 덮고 원두막 주변을 살폈다. 원두막 바로 밑에 뜻밖에도 교복을 한 여학생이 비를 쪼르르 맞은 채로 울 먹이고 있는 것이 무엇엔 가 쫓기고 있는 것 같았다. 장 서방이 놀라면서 그에게 물었다.
‘너!, 누구냐? 여기는 원두막이야. 원두막! 누구를 찾아 이 밤에 여기를….’
그는, 대답은 하지 않고 계속 훌쩍거리고 있었다.
“……….”
‘말을 하라니깐. 어서 대답을 하라고…,’
장 서방이 원두막 아래로 내려오면서 다그쳐 물었다.
“아저씨! 저 좀 어떻게 도와주세요. 저는 오고 갈데가 없어서 그래요. 여기서 하루 밤만 쉬어 가면 안 될까요?”
비에 젖은 교복 밖으로 봉긋한 젖가슴이 금방이라도 옷깃을 찢고 튕겨져 나올 것 만 같았다. 장 서방은 우선 그 아이를 원두막 안으로 불러 올려, 마른 수건과 여벌로 두었던 자신의 작업복을 갈아입으라며 잠시 자리를 피해 주었다. 얼마 후 원두막으로 돌아온 그는 차근차근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방학이 되어 외갓집에 왔던 길인데, 날이 어두워 어디가 어딘지 분간 할 수조차 없고, 시골이라 띄엄띄엄 있는 집들마저 도 대문들을 걸어 잠그고 있어 하는 수 없이 불빛을 따라 무작정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동네이름이, 쇠 쟁이는 맞는 거야?’
장 서방이 물었다.
“네, 동네이름은 맞는 것 같아요.”
“쇠쟁이, 누구 네 레?”
“이름도 몰라요. 그냥, 쇠쟁이 대장간 집, 지 씨가 외삼촌이 된다는 것 외에 아는 것이라 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장서방은 대장간집 강 씨라는 말에 전신에 소름이 돋쳤다. 대장장이, 강가는 6,25전쟁 때, 인민군들의 병장기를 만들어 준일로 지서에 몇 번인가 불려 다니며 심한 고초를 받아오던 중, 자기를 밀고한 다리 건너 마씨네 일가를 도끼로 무참히 살해하고 그날로 야반도주를 한 인물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해방직후 행방불명되었다가 남파된 사촌형인 강만국에게 포섭이 되어 월북을 했을 거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라면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들 했다. 가는 곳마다 남북분단과 이념의 덮게 들로 인한 상처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저씨!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러면 저는 인제 어떻게 되는 거죠. 애당초 우리 집안에는 그런 집안 이였나 봐요. 아버지도 그게 뭔 지도 모르지만 빨갱이 였대나봐요. 여수, 순천 반란사건 때. 보급투쟁을 하려 마을에 내려왔다 토벌대에게 벌집이 되다시피한 시신을, 동네 노인들이 거적떼기로 둘둘말아 산 비탈에다 개 파묻듯 했대요. 엄마는 그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는 소리도 들리고, 한편으로는 동두천인가 어데서, 미군과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데요.
그렇게 되자 오고 갈 떼 없는 저는 미군의 원조를 받는 고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지금까지 있는 걸요.”
모든 속내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는 그가 너무나 순진 하면서도 가엾다는 생각이 장서방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어둠이 깊게 덮친 산속에서는 개똥벌레가 반짝 거리며 숲 속을 날고, 어디선가 찔레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었다. 분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불안해했던 마음이 차차 안정이 되었는지 장 서방이 보고 있던 책에서 눈 길이를 멈췄다.
“어마! 세계문학 전집이네요. 이거 유명한 책들인데, 아저씨가 보고 계시는 책 예요. 아저씨, 혹 글을 쓰고 계신 작가 선생님이 세요.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선생님!”
“작가는 무슨, 그저 꿈일 뿐이지.”
아무튼 내가 꼭 읽고 싶었던 책들인데, 아저씨! 제가 읽어도 되요?”
장서방은 책을 보고 그렇게도 반가와 하는 그의 천진난만 한 얼굴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책이 그렇게도 좋아?”
장서방이 그에게 물었다.
“그럼 요. 내가 얼마나 책을 좋아 한다고요. 나도 이담에 커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걸요. 시를 쓰던, 소설을 쓰던, 그것이 제 꿈인 걸요.”
조금도 꾸밈이 없는 해맑은 그의 얼굴이 귀엽기만 했다.
“그래. 그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랄 게. 너의 꿈은 꼭 이루어 질 거야.”
“아저씨, 이 귀중한 책들을 어디서 나셨어요. 더운 다나 이 깊은 산골에서요.”
“별 걸 다 궁금해 하는 군.”
“아저씨! 책도 궁금하지만, 나는 아저씨가 더 궁금한걸요. 제가 뵙기에는 이 깊은 산골에 계실 분이 아니신 것 같아서요. 그리고요. 또 한가지 있어요. 아저씨! 결혼 하셨어요. 안 하셨죠? 지금은 혼자 시죠. 그렇죠?”
그의 엉뚱한 질문에 장서방은 조금은 당황했다. 생각보다는 어린 나이의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조숙한 아이였다.
“그게, 그렇게도 궁금해?”
“네, 그래요. 알고 싶어요. 빨리 말해주세요.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거든요.”
분이의 성화에 못 이겨 그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고향이 함경북도 청진이라는 것과, 여자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윤리과목을 가르치다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오던 그 넓은 과수원 땅을 몰수당하고 지주로 내 몰려짐이라고는 달랑 책 몇 권 가지고 월남 한 것이 전부였다.
6,25 전쟁이 터지면서 고향을 다시 찾겠다는 가족들 과의 약속은 영영 수포로 돌아갔고, 사촌 동생이 인민군 장교라는 신분은 가는 곳 마다 꼬리표처럼 붙어 다녀, 할 수 없이 이곳까지 쫓겨 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빼놓지를 않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장서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분이가 말을 이었다.
“아저씨 사연을 듣고 보니 저와 비슷한 데가 있네요.
같은 시대에 태어난 피해자. 그리고 또 문학을 꿈을 꾸고 있는 것까지, 어쩌면 우리 둘은 같은 운명인지도 모르겠네요. 이것은 우연이 아닐 거예요. 신이 점지해주신 운명일지도 몰라요.”
분이는 엉뚱하면서도 당찬데가 있었다. 언제나 장서방보다 앞서가며 자기 할 말을 기꺼이 다 하고 있었다. 그러는 그가 밉지 않았다.
“아저씨! 저, 지금 이 시간 이후부터 선생님이라고 부를게요.”
‘선생은 얼어 죽을 무슨 놈의 선생, 그냥 산판에서 숯을 굽는 숯쟁이라 불러, 오히려 그게 나에게는 듣기가 편해.’
“아녜요. 선생님의 자격을 충분히 갖고 계신 걸요. 아니면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그 후부터 분이는 그를 장 선생님이라 불렀다.
“선생님! 내일, 날이 새더라도 저를 빨갱이의 딸이라고 밀고는 하지 않으실 거죠. 그리고 저. 서울로 올라가지 않을 내요. 아저씨! 아니 선생님이랑 여기서 같이 살내요.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요. 하다못해 선생님과 같이 들판에서 김을 맨다거나 집안청소 하고 빨래하고, 밥 짓고, 설거지하고, 생각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아요. 그리고 별빛 쏟아지는 밤에는 선생님과 같이 시도 읽고, 선생님, 어때요.”
분이는 사람의 정을 몹시 굶 줄인 것 같았다. 밤이 깊어서야 그는 피곤한지 그 자리에 쓰러진 체 잠이 들었다. 여름이지만 원두막의 밤바람은 서늘했다. 장서방은 얇은 이불자락으로 그를 덮어주었다. 잠을 자면서도 무엇에 쫓기는지 몸을 움 추리며 잠 고대를 하고 있었다.
장 서방은 원두막 기둥에 기댄 채 쪼그리고 누웠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모든 신경이 그 아이에게 쏠려 있기 때문 이다. 아무리 철없는 아이라 해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자신도 분간이 서지를 않는다. 그 아이는 이북에 두고 온 딸애 또래다. 아무리 안 된다고 다짐을 해보지만, 쉽사리 진정이 안 된다.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 드린다는 것은 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별빛을 덮고 자는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원두막에서 내려와 참외 밭을 한 바퀴 돌았다.
올해 참외농사는 그런대로 잘되었다. 달빛에 비춰진 탐스러운 참외만 보아도 그는 배가 절로 불러온다. 참외 익는 향기가 산골짝을 가득 채워 흐른다. 장서방은 참외 농사가 잘 되면 꼭 자기의 이름으로 된 논마지기라도 올해엔 꼭 사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밤이 가고 새날이 밝았는데도, 그는 서울로 올라갈 채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서울에서 한 남학생이 찾아왔다. 얼굴에는 여드름이 덕지덕지 돋아 있는 학생 이였다. 그가 분이에게 서울로 올라가자고 아무리 졸라 댔지만, 분이는 한마디로 딱 잡아떼고 있었다. 할 수 없다는 듯, 그 남학생은 장 서방 앞으로 다가왔다.
‘아저씨! 저는 요. 쟤를 무척 사랑 하거든요. 약속도 했어요. 이다음에 커서 결혼하기로요. 저 먼저 올라갈 테니, 아저씨가 잘 타일러 서울로 올려 보내 주세요. 그리고 부탁이 있어요. 쟤가 여기서 머무는 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을 휙 던지고는 그 남학생은 급히 되돌아갔다. 그 말을 들은 장 서방은 그 남학생의 말이 부탁이 아니라 어떤 경고처럼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에는 원두막, 장서방이 한 여학생과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들이 나돌고 있었다. 그 남학생이 다녀가고 며칠이 지났다.
6,25 전쟁 당시, 행방불명되었던 조씨 영감 댁 머슴 방가가, 무장 간첩이 되어 밤나무골에 나타났다고 온 동네가 총 비상이 걸렸다. 장 서방도 하는 수 없이 원두막을 분이에게 맡기고는 집결장소로 달려갔다. 다음날 새벽, 그 무장 간첩은 밤나무 골 고개에서 사살되고 비상이 해제되자 그는 원두막으로 달려왔으나 그는 깜짝 노랬다.
내일, 모레면, 첫 물을 따려고 했던 참외밭에 서리꾼들이 들어 밭 뙈기전체를 짓 디 겨 놓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눈앞이 깜깜했다. 그보다도 그가 더욱 놀란 것은 원두막 밑 풀섶에 그 아이가 옷이 벗겨진 채로 흐느끼고 있었다. 도끼자루를 들고 저항을 했지만 놈들은 떼로 달려들어 그 어린 분이를 만신창이가 되도록 짓밟아 놓고 말았다.
“선생님! 왜, 인제 오셨어요.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선생님!, 이제 저는 어떡하죠. 어떡하면 좋아요. 죽고 만 싶어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체로 그는 흐느끼고 있었다. 장 서방은 그때 어떻게 해서든지 남학생 따라 올려 보냈어야 하는건데, 후회를 했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그는 서둘러 피 범벅이 된 분이를 일으켜 안으며 옷자락을 거두어 가려 주었다. 장 서방은 너무나도 분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어금니를 부드득 갈았다. 그 놈들이 옆에라도 있다면 도끼로 어떻게 할 것만 같았다.
“그래. 이 모두 내 잘못이야.”
장 서방은 그 아이를 감싸 안으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밤, 장 서방 네 참외서리는 서울서 내려온 어느 학교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분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대로 덮어 두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아 갈 무렵, 이번에는 고아원에서 여자 선생님이 찾아왔다. 그 선생님은 장 서방과 분이와의 관계를 오해하는 눈치였다.
‘아저씨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어떻게든 저 아이를 서울로 올려 보내셨어야죠. 성품도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을…. 그리고 쟤는 너무나 어린애잖아요. 그런 애를 어떻게…?’
고아원 훈육 선생의 눈초리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매섭게 장서방을 몰아부쳤다.
“선생님! 이, 아저씨는 아무런 죄가 없어요. 아저씨는 올라가라고 했는데 제가 말을 안 들은 거예요.”
‘시끄러워. 너! 누구 한 테 꼬박꼬박 말대답이야.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쳤어?’
그 훈육 선생은 분이를 사정없이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몽매지송아지처럼 끌려가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보는 것이 어떻게 든 붙잡아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마지못해 끌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 보고 있으려니 장 서방은 마음이 무너지는 듯 아팠다. 아무 도움도 되어주지 못하는 자신을 사정없이 나무라면서도, 분이의 마음의 상처가 하루라도 빨리 아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원두막 사건은 생각할수록 끔찍했다. 너무나도 가엾은 소녀였다. 그런 그가 다시 내려온 것이다.
분이는 부엌으로 들어가 따듯하게 데운 물을 세수 대에 담아 내왔다.
“선생님! 힘드시고 시장도 하실 텐데, 빨리 씻고 안으로 들어가세요.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우거 지 된장국도 끓여 놓았어요.”
저녁상을 사이에 두고 그들은 마주 앉았다. 이북에 있을 때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분이는 영락없는 아내를 닮아가고 있었다.
저녁상을 물리자 장 서방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바집에서 김 목수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왜, 또, 어딜 가시려고요. 산중 외딴집이 무서워요. 나쁜 사람들이 또 쳐들어올지도 모르잖아요?”
장 서방은 무섭다는 분이 말에 생각조차 하기 싫은 지난여름 원두막 사건이 분노의 불길로 다시 타올랐다.
“금방 다녀올게, 잠깐이면 돼. 안에서 문 걸어 잠그고 일찍 자고 있어, 그래. 그렇게 해!”
장 서방은 문을 열고 나오면서도 분이가 마음에 걸렸다. 산판 일꾼들의 밥을 해서 파는 함 바 집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 곳에서는 술도 팔고, 투전판도 벌어져 걸핏하면 쌈박질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밥집에는 김 목수가 벌서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 큰 대목은 아니지만, 근동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여름 내내 뼈 빠지게 일을 하다가도 겨울에는 일감이 없어 장리쌀을 구해다 겨울을 나곤 하는 처지였다.
춥고 배고픈 김 목수였지만, 그래도 기술자라는 자존심은 살아있어 산판일 같은 막노동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장 서방과 김 목수는 막걸리 잔을 서로 주고받더니 김 목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장- 서방! 내 어려운 얘긴데, 하나 물어봐도 될까? 분이 말야. 아주 함께 살림을 차릴 거야. 뭐 차려도 되지, 장 서방은 말야.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니까. 여자복은 대단하다니까, 안 그래. 장 서방….”
김 목수는 장 서방의 마음을 떠보려는 심사인 것 같았다.
장 서방이 화를 버럭 내며 그를 향해 대꾸했다.
‘남의 말이라고 함부로 해도 되는 거요. 사람을 어떻게 보고, 남이 그래도 말려야 할 김 목수가 아니 오. 그렇지 않아도 소문마저 이상하게 떠도는데, 당신까지 날 매도 하다니.….’
장서방이 화난 표정으로 완강하게 쏘아붙였다.
“아, 알았어요. 이제, 장서방의 마음을 알았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래서 내 하는 말인데, 왜 먼저 번에 우리 집에 왔을 때, 내 딸 보았지. 장서 방은 어떻게 생각해. 혼자 산다는 게 남 보기도 그렇고 해서 말 야. 장 서방 하고 나하고 못 할 말이 뭐 있겠소!”
그렇게 말을 해놓고 좀 미안한지 김 목수는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장서방은 그의 딸을 본적이 있었다.
서른도 채 안되었는데 결혼한지 석 달 만에 파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으나, 더 늦기전에 김 목수가 서둘러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장서방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혼자 두고 온 분이가 걱정이 되어 뛰다시피 집으로 달려왔다. 집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장 서방이 성냥을 찾아 등잔에 불을 부쳤다. 차디찬 윗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분이는 훌쩍이고 있었다. 장서방이 깜짝 놀라 이불을 들쳤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어. 그랬던 거야?”
그러나 분이는 들은 척도 안하고 얼굴을 파묻은 체 흐느끼고 있었다. 장서방이 재차 물었다.
“뭐라고 대답 좀 하라니까. 어디가 아픈 거야?”
장 서방은 자신의 손으로 분이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그의 이마가 불덩어리처럼 뜨거웠고, 맥박은 요동을 쳤다.
‘그래요! 아프단 말예요. 가슴이 터질 듯 아파요.’
그러면서 분이는 재빠르게 두 손으로 장서방의 어깨를 휘감아 왔다.
“이러면 안 된다고 했지. 다른 것은 다되어도 그것 많은 안 된다고….분이와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안 된다고 한말 벌써 잊었어. 나는 남들처럼 너의 가슴에 별을 심어 줄 수가 없어. 앞으로 희망 이라고는 새털만큼도 없다는 것을 너도 뻔히 알고 있잖아. 나는, 너라는 꽃을 차마 꺾고 싶지가 않아. 꺾지 않고 그냥 곁에 두고 보고 있다는 것만도 가슴 벅차는 일이야.”
“선생님! 왜 그런데요. 도대체 이유가 뭐 에요. 제가 나이가 어려서요, 아니면 빨갱이 딸 이라서요. 그도 아니면 지난여름 원두막에서 생긴 일 때문에요?”
장서방은 원두막이라는 말에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다. 그는 대답대신 그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면 약속해줘요. 어떤 일이 있어도 다른 여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결혼을 하다니. 어디서 무슨 소리라도 들은 거야?’
장서방이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여름에 있었던 끔찍한 일이 떠올라 무서워 견딜 수가 없어, 곧바로 선생님을 뒤쫓아 밥집 안으로 들어가려 다가, 김 목수와의 나누는 이야기를 엿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결혼이야기만 들으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 미칠 것만 갔다고 했다.
“선생님! 그 여자와 결혼하면 어쩌면 저는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제, 심장 속에는 더러운 탐욕과 욕망의 굶주린 짐승들이 득시글거리며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 같아요. 네! 선생님.”
분이 보다 더하면 더했지 장서방도 그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 이였다. 분이가 그러면 그럴수록 이북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라 그를 방황으로 내몰았다. 언젠가는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는 항상 잊지 않았다.
다음날, 날이 밝기도 전에 장 서방은 숯을 꺼내기 위해 숯가마로 향했다. 숯이 잘 구어 졌어야 하는데, 그는 가슴을 졸이며 진흙으로 막아 놓은 숯가마 아궁을 헐었다. 이번에는 그의 소원대로 숯이 잘 구어 졌다. 누가 뭐라 해도 숯 중에서는 참나무 숯이 최고였다.
잘 구어 진 숯은 땡그랑 거리며 강한소리가 났다. 지난번에는 서툴러 실패를 하는 바람에 숯을 반 밖에는 건지지를 못했다. 숯 장이도 도자기를 굽는 도공과 같은 혼을 기울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꼭 염두에 두기도 했다. 추운 겨울인 데도 숯가마 않은 뜨거운 열기로 한증막 같았다. 그래도 오늘은 숯이 잘 구어져서 그는 힘드는지를 몰랐다.
부지런히 숯을 꺼내고 눈이 오기 전에 다시 가마를 생나무로 채우고 오늘 가마에 불을 지펴야만 한다. 숯가루가 땀과 범벅이 되어 활동사진에 나오는 아프리카 토인 같았다. 해가 오후로 설핏하게 기울 무렵, 분이가 새참을 차려 갖고 왔다. 시장도 하던 차에 그러는 그가 기특하기도 했지만, 장서방은 무뚝뚝한 어조로 그를 나무랐다.
“여자는 이런데 오면 안 돼. 다음부터는 오지 말아.”
“선생님! 선생님에게는 제가 여자가 아니잖아요. 그냥 나이 어린 계집애잖아요.”
분이는 옴폭 패인 보조개에 혀끝을 날름거리며 생글거리고 있었다. 그도 덩달아 웃었다. 그러는 그가 인형처럼 예쁘고 한없이 귀여웠다. 장 서방은 그가 대접에 딸아 주는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안주로 파란 김치 이파리를 찢어 장서방 입에 넣어주며 그는 마냥 행복해 했다.
“선생님! 우리 부부 같지 않아요.”
그러는 그녀가 장서방은 너무 나도 귀엽고 앙증맞게 느껴졌다. 장서방의 만류에도 그녀는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가마 안에서 땀을 흘리며 숯 꺼내는 일을 도왔다. 겨울인데도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장 서방이 지게를 걸머지고 산으로 올라간 사이에 그는, 개울물을 길어 다 열기가 화끈거리는 숯가마 안에서 발가벗은 채로 몸을 깨끗이 씻었다.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눈이 부실 정도로 그녀의 뽀얀 피부는 포동포동하고 탄력이 넘쳐났다. 서둘러 새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숯가마 앞 고목나무가 서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나무는 장 서방이 숯가마 일을 시작할 때부터, 신령으로 모신 나무였다.
숯가마의 불을 부칠 때와 숯을 꺼내는 날에는 마른 북어를 백지와 실타래로 둘둘 말아 나무에 매달아 놓고 술을 딸아 정성 드리는 것을 잊지를 않았다.
그는 두 손을 합장을 하며 산령님께 빌고 빌었다.
산판의 안녕과 장서방의 무탈하기를 빌면서도, 어쩌면 둘의 사랑도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날을 받아 영험이 있는 무당이라도 불러 제대로 한번 치성을 드릴 까도 그녀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마침 나무 짐을 지고 산에서 내려오던 장서방이 그 광경을 보면서, 더 이상 나이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가슴이 뭉클 해지며 심장까지 울리는 듯한 감동과 함께, 때가 되면 그를 끝까지 꼭 지켜주어 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떠올랐다.
“고마워.”
장서방이 그러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했다.
“아이참! 선생님, 당연 한 것 아닌 가요. 우리가 뭐, 남인 가요.”
그들 둘은 모처럼 산이 울릴 정도로 크게 한바탕 웃었다. 그토록 행복해 하는 분이를 보면서 장서방도 덩달아 흐뭇해했다. 밤이 깊도록 그들은 함께 숯가마 안에 통나무를 가득 채우고 아궁에 불을 지폈다. 전방지역이라 야간 훈련을 하는지 대포 소리와 함께 간간히 산 노루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눈이 시릴 듯 파란 겨울 밤 하늘은 한기가 느껴졌다.
분이는 손이 시리다며 장서방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었다. 주머니 속은 따듯했다. 자기보다 훨씬 큰 장 선생의 키에 맞춰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젓 치며 별똥별을 가르쳤다.
“저, 유성의 일생은 너무나 짧은 것 같아요. 짧지만 그래도 최후는 너무나 화려하게 장식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 끝없이 흐르는 은하수는 또, 얼마나 아름다워요. 저 별나라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 까요. 살고 있다면 어떤 사람들일 까요. 천사처럼 예쁘고 착한 사람들만 살고 있겠죠.”
밤이 깊어서야 그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는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장 서방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까 낮에 숯가마 앞에서 치성을 드리던 모습 하며, 아랫목에서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는 그녀 때문이다. 입술이 부르트고 온 몸에 열이 오르며 심장이 바작바작 타 들어가는 감정을 강제로 억누르고 있는데 분이가 말을 한다.
“선생님! 잠이 안 와요. 선생님도 그렇죠. 꼭 우리가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요. 남의 눈이 뭐 그리 중요해요. 그 잘난 도덕과 윤리관 때문에요.”
그는 한동안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제야 말씀 드리지만, 지난여름 원두막에서 선생님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 본적이 있어요. 왠지 궁금했거든요. 사모님이나, 따님 때문에 저를 멀리하고 계시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어요. 그 때부터 선생님을 누구에게 빼앗긴다는 생각이 나를 자꾸만 초조하게 만들어요. 하지만, 만약 부인께서 찾아오신다면 그때 저는 멀리 떠나겠어요. 그때까지라도 저를 사랑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가엽지도 않으세요. 가시 돛인 장미와 선인장도 꽃을 피우잖아요. 언젠가, 스님이 한 분 시주를 받으러 왔다 가신 적이 있어요. 풍수지리도 보시는지 우리 집을 한 바퀴 휘돌아보더니 집터가 아늑한 것이 작은 암자라도 지었으면 좋겠대요. 그러면서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한다는 말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글쎄 머리를 깎고 산에서 살 사람이래요. 나는 손 사례를 치며 아니라고 했죠.
나는 결혼할 사람이 있다면서, 그런 말이라면 두 번 다시 하지 말라고 쏘아 부쳤어요. 그랬더니 그 스님은 움찔해서 집터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다 가더라고요. 요채와도 같다는 스님을 말씀처럼, 태고의 신비가 그대로 살아 숨쉬고 짙은 황토 냄새, 신록의 향기, 새들의 합창, 별들이 수놓은 파란 하늘아래 조 잘 거리는 시냇물 소리, 모두가 평등하고 위계질서가 분명한 상생의 세계가 얼마나 좋아요. 생명의 존엄성이 절대적이면서도 삼라만상들이 공존하는 우주의 작은 공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증오와 시기, 전쟁이 없고 분열과 불신이 없는 이 산속이 얼마나 좋아요. 화려한 임금님의 궁궐보다야 못한, 비록 오두막이기는 하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벌여대는 암투와 중상모략들이 전혀 없는 이곳, 속세이면서도 안인 듯한 이 산중에서 선생님과 사랑하며 아이 낳고 살아간다면 그야 금상첨화 아니겠어요. 그러면 그 행복의 수치는 궁궐 사람들 부럽지 않을 거에요.”
그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선생님과 소박한 미래를 꿈을 꾸며 이 고즈넉한 산골에서 자연이 베푸는 천혜의 보시를 받으며 진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중생들이잖아요. 저에게 욕심이라면 선생님을 사랑한다는 것 밖에는…,”
그는 애걸을 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장 서방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사내에게는 피를 말릴 듯한 고뇌가 파도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눈은 며칠째 펑펑 계속 퍼붓고 있었다. 산이고 들판이고 온통 하얀 눈 세상이다. 산판일은 물론 벌목꾼들도, 숯을 실어 나르는 소달구지들도 발길이 끊긴지 오래다.
일거리가 떨어진 장서방은 가불이라도 해야 할 요량으로, 산판 총 책임자인 목상을 만나러 함바 집으로 향했다. 눈은 무릎까지 차올랐다. 그가 인기척을 하며 밥집 안으로 들어서자 옥천 댁이 달려와 껴안으며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 눈 덮인 겨울 산골에 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목상도, 일꾼들도 다 떠나고 주인마저도 없는 빈 궁궐 하나 달랑인 걸요.
또 모르죠. 불씨만 있으면 활활 타오를 바짝 마른 장작더미 일지도….어쨌든, 적적하고 무섭던 차에 정말 잘 오셨어요.”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빈 궁궐에, 바짝 마른 장작이라…,”
장 서방은 혼자 웅얼거리고 있었다.
“….”
“무섭긴, 어린 아이도 아닌데…!”
장 서방이 반문하듯 말을 했다.
“아이가 아니니까 그렇죠. 보름이면 달이 차듯, 여자도 한 달에 한번 꽃이 필 때가 있잖아요. 잘 아시면서 괜히 그러시는 거죠?”
혀를 날름거리는 그가 나이 어린 소녀 같았다. 그렇게도 떠들썩하던 함바집은 그의 말 대로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천정을 타고 다니는 쥐들이 떼를 지어 찍찍거리며 굿을 하듯 시끄러웠다. 살아갈 걱정이 태산 같다며 옥천 댁은 긴 한숨을 내쉰다.
언제인가 옥천 댁이 원두막에 찾아 온 적이 있었다. 그 때부터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때도 그러더니 오늘도 그녀는 남편의 대한 불만이 이만 저 만이 아니다. 겨울이 오기도 전에 강원도로 사냥을 갔는데, 아마도 내년 봄이나 돼야 돌아 올 거라며 푸념을 느려 놓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속치마 밖으로 내비치는 탐스러운 그녀의 뒷모습에서 유난히도 궁해 보이는 것 같아 장서방도 덩달아 허기와 시장기가 밀려와 입맛을 다셨다. 무채와 함께 아끼고 아껴 두었던 볶은 꿩 요리는 너무나도 일품 이였다.
옥천 댁은 마실 줄 모른다면서도, 장 서방이 따라주는 대로 술잔을 받아 마시면서 우리 둘은 뼈에 사무치도록 외로워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먼저 말을 했다. 결혼이라는 덫에 걸려 바람둥이 남편을 뒷바라지 하는 것도 이제는 넌덜머리가 난다고 까지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작자는 산돼지 사냥은커녕, 어느 잡년들 치마폭에서 뒹굴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피를 토할 것만 같다고도 했다.
이제는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 망부석이 아니고 야생의 짐승이 되어 그나마 더 시들기 전에 꽃을 한번 제대로 피워 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노골적으로 참을 수 없는 고독의 속내를 장서방에게 그대로 내 보이고 있었다. 느슨해진 옷깃 사이로 허여멀건 그녀의 속살이 장서방 가슴에 홍두께 질을 해댄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세찬 바람이, 호롱불 마저 꺼버렸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눈 덮인 산속의 야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술에 취한 줄로만 알았던 옥천 댁이, 아직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여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달라고 졸라 댄다.
그들 둘은 모두 굶주림에 허기져 있었다. 옥천 댁의 뜨거운 입술이 남자의 입술을 뒤덮었다.
아침 이슬처럼 감미로운 것이 너무나도 황홀했다. 가뭄으로 바짝 마른 궁궐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화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그 불길 속에서 그들은 하나로 뒤엉켜 있었다.
잠깐 다녀온다는 것이 밤이 제법 깊었다. 왠지 분이에게는 미안하다는 생각과 함께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분이는 잠을 자지 않고 희미한 등불 밑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백미 속에 섞여 있는 뉘를 가려내고 있는 중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곁에는 항상 날이 선 도끼와 낫자루가 놓여있었다. 지난여름 원두막 사건 이후부터는 그의 호신용무기가 되었다.
기나긴 겨울이 다 가고 봄이 돌아오자 대지는 온통 생명들이 요동을 치고, 파랗게 돋아나는 새싹 들에서는 향긋한 풀 냄새가 풍겨 댄다. 밭고랑 사이로 넘실대는 보리밭에서는 종달새 한, 두 쌍이 가득히 쏟아지는 봄볕을 쪼아 대고 있었다.
봄은 분이의 가슴에도 찾아 왔나 보다. 저녁상을 물린 분이는 물을 데워 목욕을 하고는 깊숙이 처박아 놓았던 화장품까지 꺼내어 거울 앞에서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그가 거울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장서방은 처음 보았다. 화장을 끝낸 그가 장서방 앞으로 다가앉으며, 그 동안 써오던 작품을 한번 보아 달라고 했다.
“선생님! 선생님을 만난 이후부터 이루어지는 우리 둘의 이야기 예요. 비록 흙 속에 파묻혀 농사일을 하고 있지만, 이북의 고향과 가족을 두고 월남한 국어 선생님과 이루어 질 수 없는 철부지 계집아이의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죠. 북에 두고 온 아내를 잊지 못하고 통일이 되기를 기다리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한 벌목꾼의 애환이 줄거리예요. 비록 잡목들도 불가마를 거치면서 숯이 되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분이는 장서 방 앞에서 정색을 하며 말을 계속했다.
‘왜, 저를 여자로 인정을 안 해주시는 거죠?’
“……아니야, 그것은 오해야. 그러는 너보다 내가 얼마나 더 괴로운 줄 알기나 해,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누구는 마음이 편한 줄 알아, 나는 너보다 더 힘이 든다고, 너의 대한 양심은 견딜 수 없는 고문이 되어 나는 몸살을 앓을 정도야, 차라리 타인으로부터 받는 고문이라면 저항이라도 해볼 텐데 그럴 수도 없고, 나도 말은 못하고 속으로는 끙끙 않는다고, 네가 몰라서 그렇지 아마도 내속은 새까만 숯검댕이가 되어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봐 기회가 오겠지.”
장서방은 그를 타일렀다. 그렇다고 그대로 수그러들 분이가 아니다.
“……,”
“그러니까 그 때가 언제냐고요 ? 그냥 눈 딱 감고 모르는 척 제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안 돼요. 난 몰라요 몰라. 세월은 자꾸만 덧없이 흘러가는 데, 그건 그렇고요 선생님! 요즘 들어 왜. 마음이 자꾸만 불안해지죠. 꼭 선생님과 헤어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부쩍 드는 것이 왠지, 선생님께 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선생님! 제 게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 그것이 아니라면 그 증표로 오늘 밤만이라도 저를 안아주세요. 저의 마지막 소원인지도 몰라요.”
분이는 언제 나처럼, 응석을 부리듯 생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는 것이 인형처럼 예쁜데다, 풀 냄새 같은 풋풋한 젊음의 향기가 사내의 심장을 뒤 흔들어 대고 있었다.
“짐이 되다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장 서방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저 보다는 선생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그게 현실인 걸 어떡해요. 그러니, 오늘밤, 저의 모든 것을 선생님께 바치고 싶어요. 네, 선생님 별빛 을 타고 내려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저에게는 피 눈물이 마를 날이 없겠죠. 그러다가 긴 여행에 지친 그믐달처럼, 사그라진 육체는 서산 너머로 살아질 거구요. 이제야 말씀 드리지만 실은 저의 순결을 선생님께 바치고 싶었었는데…….”
그는 봄바람에 나부끼는 풀잎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그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러는 그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다 가도 냉정하게 그를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도 장서방은 그의 애원을 모른 체 분이를 가슴 깊이 받아드리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났다. 그날은 닷새마다 선다는 동고리 장날이다. 장터는 이 십 리도 더 되는 먼 길 이였다. 장서방은 농번기가 본격적으로 닥쳐 올 것을 대비해, 당분간 숯 굽는 일을 중단하고, 농사에 필요한 연장을 벼리러 장터로 향했다. 장터로 가는 길 주변으로는 무장을 한 미군들의 장갑차들이 요란하게 지축을 흔들며 지나가고, 잠자리비행기들이 뜨고 내린다.
검은색 피부의 외국 군인들과 화장을 짙게 한 젊은 여인들이 서로 껴안고 시시덕대며 지나간다. 장마당은 짐 보따리들을 이고 지고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거두어 드린 잡곡으로 소금이나 고무신 같은 생활필수품들을 장만 하느라 분주 하면서도 장마당은 왠지 어 수선 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린다.
군사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제대로 사는 세상이 돌아왔다고 라디오방송은 반복하고 있었다. 4,19 학생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되찾았지만, 당파싸움으로 민생은 뒷전이라, 보다 못한 군인들이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제야 말로 백성들이 잘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들 했다.
대장간에는 연장을 벼리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삼대를 이어온다는 대장장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시뻘겋게 달궈진 연장들을 망치로 두들겨 날을 세워 찬물에다 담금 질을 여러 번 반복 한다.
볼품없는 쇳조각이라도 장인정신의 혼을 살려 불과 물의 단련을 시켜 생명이 살아있는 듯한 칼과 연장이 된다는 진리를 그는 새삼 깨 닿게 되었다.
언젠가 분이가 한말이 떠오른다. 사람들도 녹이 쓸면 연장처럼 대장간에서 베려 쓰면 좋겠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겪어서는 안 될 뼈저린 경험들을 그는 너무나도 많이 겪었기 때문 이다.
내색을 하지 않지만 육신은 물론 정신과 영혼까지 찢기고 찢긴 그를 떠올리며, 남자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했다. 그는 벼린 연장을 챙겨 장마당을 나오면서 그토록 애걸하는 분이를 이제는 받아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불연 듯 떠올랐다. 하루라도 빨리 냉수라도 떠놓고 분이의 머리를 올려주는 것이 도리일 듯 했다. 그 것 많이 그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라 생각했다.
더욱이 군사혁명으로 어수선한 세상이 내일이라도 당장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서두르게 만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자꾸만 걸렸다. 돌아오는 장날에는 분이와 함께, 간단한 예물이며 혼숫감도 준비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생선가게도 들려 소금이 허옇게 뿌려진 고등어 한 손을 신문지로 둘둘 말아 지게다리에 매 달았다. 분이는 간 고등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깡충깡충 뛰며 좋아할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부리나케 달려왔는데도, 어둠은 벌써 통치자의 군상들처럼 산장을 뒤덮고 있었다. 부산했던 낮과는 다르게 밤이면 유령의 마을과도 같이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인기척 소리만 듣고도 뛰어나올 분이가 웬 지 보이지 않고 방안은 불도 켜져 있지 않은 체로 깜깜했다.
이상 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급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자 문설주 틈에는 휜 봉투가 끼어 있었다. 장서방은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 방으로 들어가 등잔에 불을 부치고 편지봉투를 뜯었다. 깨알 같은 분이의 글씨였다.
“선생님!
그 동안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스치는 바람 같은 시간 이였지만, 하찮은 저 같은 계집애가 죽도록 사랑하고 싶었던 분이 계셨다는 게 이 얼마나 행복 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원두막 일은 저와 함께 이제는 접으세요. 선생님의 책임이라 하지만, 저의 운명이 거기 까지 인걸 어떻게 하겠어요. 하늘이 저에게 내려 주신 운명으로 받아 드릴 수밖에요. 찢어질 듯 가슴은 아파오지만, 이제 선생님 곁을 떠나야만 될 것 같아요. 선생님과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지만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요. 참! 선생님, 용서를 빌게 있어요. 며칠 전,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선 선생님을 찾아오셨어요.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람에게는 느낌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난, 단번에 누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사람 모른다고 딱 잡아뗐어요. 새빨간 거짓말을 한 거죠. 나, 정말 나쁜 계집애죠. 그 순간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괴로움으로 죽고도 싶었어요.
아마 다시 찾아 오 실실 지도 몰라요. 이 생명 다하도록 선생님 곁을 꼭 지켜드리고 싶었었는데, 가슴에 피가 맺힐 정도로 선생님을 사랑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아요. 나, 하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남의 가슴에 대 못질을 쳐 댈 수는 없잖아요? 분의 넘친 욕심과 어리석음을 내려놓으니 어떤 포박에서 풀려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아요. 불경에서 말하는 소신공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선생님의 곁을 떠날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곧 살기 좋은 세상이 돌아올지도 몰라요. 그때는 나라에서 선생님을 부를지도 몰라요. 그러면 이 산장에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이라도 되어주세요. 기도 할 게요. 그 동안 저도 행복했어요. 선생님! 부디 행복하세요.”
-분이 드림-
순간, 장 서방은 하늘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는 편지봉투를 손에 든 채 바깥으로 뛰어나와 허공으로 대고 그녀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불러 댔다. 그때 하얀 소복을 한 분이가 별빛가루들을 치마폭에 쓰러 담아 하늘로 올라가는 환영이 그의 눈가에 어린다.
목이 터져라 외쳐 대는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산골짝을 찢을 듯이 울려 댔고, 어둠의 점령당한 검은 산 봉오리들이, 신령을 앞세운 광대들의 무리처럼 밀려왔다 가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약력
경기 파주 출생 1984,86 현대그룹 창사기념 현상공모 최우수 작품 당선; 1997년 [포스트모던] 신인 상;국제 펜, 한국문협; 한국수필가; 한국 소설가협회; 파주문협회원; 서울 강서 문협회장역임; 지은 책 수필집 [아내의 향기] 외3권 단편집[그 여자의 마지막 겨울] 한국문학 창작기금 수혜; 한국 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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