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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풍경歸國風景
김 성 렬
중동과 동남아 건설현장에서 십 수 년 만에 귀국한 박성남은 주변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세월이 어찌 보면 길면서도 짧은 듯, 짧으면서도 길게 느껴진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준비로 가는 곳마다 활기가 넘쳐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를 부르짖는 소리가 전국을 들썩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성남은 모처럼 거리로 나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거리는 거리대로 몰라보게 변했지만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삼청교육대 이야기들이다. 명분은 좋았지만 일선 실무자들의 과잉충성으로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는 이야기들이다. 그뿐 많이 아니다. 국민들의 입과 귀를 강제로 틀어막으려 드는 게 무서웠다. 성남은 마치 시골 장마당에 팔려 나온 닭처럼 어리벙벙한 것이 꼭 이방인 같았다. 군사정권의 탄압에 맞서 학생들은 교정 밖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들의 최루탄가스로 눈을 뜰 수가 없다. 군대시절 화생방 교육장과도 같았다. 콧물눈물에 얼굴이 따갑고 눈이 쓰라리다. 그런 와중에도 학생들의 시위는 점점 격렬해져만 갔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갈 길이 바쁘다며 뒤돌아보지도 않고 오직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한쪽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부르짖고 한쪽에서는 조국 근대화를 외쳐 대고 있었다. 결국,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여 당시 여당 총재로부터 6,29 선언을 받아낸 것은 역사적인 우리 모두의 위대한 승리였다.
십여 년 만에 귀국한 박성남은 모든 것이 이국처럼 낯설었다. 그는 해외현장에서 주간지나 소문으로만 듣던 관광 문화를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전국을 구석구석 누비며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어느 일간지 하단 여행 광고란에 3박4일 설악산과 남해안의 절경이 가장 뛰어나다는 한려수도를 한 바퀴 돌아오는 여행 코스가 있었다. 성남은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 안내직원이 일러준 대로 광화문 육교부근에 있는 여행사 사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젊은 여직원이 티켓을 끊어주며 시간을 꼭 지켜 달라는 말을 서너 번은 더 당부를 했다.
여행을 떠나는 날 성남은 아침새벽부터 서둘렀다. 여직원의 신신당부도 있었지만 모처럼 만에 여행이라 마음이 약간은 들떠 있기도 했다. 성남은 그때 약속한 여행사 사무실을 찾아 갔다.
“아! 오셨군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손님께서는 별도의 요금을 추가로 더 내셔야 되거든요. 이를테면 특별 요금이라고 할까요?”
성남은 기다릴 틈도 없이 반문을 했다.
‘특별 요금이라뇨?’
성남의 음성이 약간 높아졌다. 여행사 직원이 더듬거리며 대답을 한다.
"그게!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모두가 여자 손님들 뿐인데 남자 손님은 손님 딱 한 분뿐이시라 그렇다고 남녀 혼숙은 할 수가 없고 어쩔 수 없이 독방을 써야 되거든요.”
성남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대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자가 소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대뜸 여직원을 나무라고 있었다.
“미스 고! 지금 손님 앞에서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회사 말아 먹으려고 작정을 한 거야. 빨리 손님 차로 안내해드려. 많은 손님들 기다리고 계시잖아. 시간 늦지 않게, 지금 당장 버스 출발 시키라고…….”
성남이 보기에는 현장 책임자 같았다. 조금 전까지도 성남에게 당당했던 여직원이 갑자기 빨개진 얼굴로 밖으로 휙 나가며 성남을 보고 따라 오라는 눈짓이다. 성남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자기 때문에 꾸지람을 너무나 심하게 받은 것 같아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여행사 사무실과 버스 주차장은 거리상으로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횡단보도도 건너고 골목길을 돌아가야 했다. 성남은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 할리가 없었다. 그는 이대로 여행을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앞에 가던 여직원이 돌아서서 기어코 한마디 한다.
“뭘, 망설이세요. 빨리 오시지 않고, 누구 밥줄 끊어지는 것 보려고 그러세요.”
여직원의 성깔은 보기와는 딴판이다. 사무실에서 받은 화풀이를 성남에게 퍼붓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도 밥줄 끊긴다는 말에 성남의 불같은 성질은 사그라지면서, 그가 안내 하는 대로 관광버스에 올랐다.
관광버스 안에서는 남자손님은 달랑 하나라는 소문이 퍼져 야단 난리들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중간 통로를 경계로 좌우 양쪽 좌석 배치대로 이열종대로 서서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성남을 열렬이 환영하고 있었다.
버스 문이 닫히자 운전기사는 인원을 재차 확인하더니 버스는 서서히 굴러 가기 시작했다. 성남은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이러기는 처음이다. 아무리 배짱이 있고 담력이 있다는 남자라도 무려 팔십 여개나 되는 뜨거운 여성들의 눈동자 앞에서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성남은 고개도 쳐들지 못하고 맨 뒤 좌석으로 걸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벌써부터 버스 안은 후끈후끈 닳아 오른다. 차 안의 여성들은 난리가 났다. 두세 명의 여인들이 달려와 성남의 팔을 잡고 앞좌석 쪽으로 끌고 간다.
“오늘은 백마를 탄 황제십니다. 그 귀하신 황제님을 앞으로 모셔야 우리들 마음이 편할 것 아닙니까요?”
나이들은 대부분 성남의 나이와 비슷비슷 했다.
어느새 그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설악산을 향해 서울 도심을 완전히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여인들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본격적으로 본심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성남이 보기에는 무슨 여성 단체에서 온 것 같았다.
여성들의 문화수준이 향상이 되면서 집안에 갇혀만 있던 여성들이 문밖으로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 같은 야외나들이는 일 년에 봄, 가을 두 번 딱 정해져 있다고 했다.
이렇게 여행을 즐기고 나면 그 동안 고갈 되다시피 한 에너지가 재충전되면서 만사의 행복과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그들의 일관된 목소리들이다. 하지만 성남이 보기에는 마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들 같았고, 고삐 풀린 망아지들 같았다. 그날만은 자유분방한 해방된 자유 부인들이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금수강산은 녹색으로 물들고 청보리가 밭고랑을 넘실거린다. 저편 언덕에 비탈진 밭을 갈고 있는 어미소를 젖먹이 송아지가 겅둥거리며 뒤를 쫓는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낙네들이 씨를 뿌리는 모습도 보인다. 성남이 정신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한 여인이 다가와 자기소개를 부탁을 했다. 아니 부탁이 아니라 반 강요였다. 성남은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십 년도 더 되는 동안 여자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중동에서 보냈다는 것이 어쩌면 한이 맺혔는지도 모른다.
“나이 43세. 신장. 1미터78. 체중75키로, 백 미터 달리기 14초, 이름은 박성남.”
순간, 야 하는 함성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며, 박성남! 박성남을 연호한다. 그뿐 많이 아니다. 갈수록 태산이다. 그들에게는 아무 거침이 없었다. 성남이 해외로 출국하기 전 그 때의 여인들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박성남은 내 것이니까. 그 누구도 함부로 탐내거나 그의 몸에 손을 대는 사람은 대열에서 추방을 시킬 테니 알아서들 하시오”
그러자 한쪽에서는 한 수 더 떠서 말을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너무 섭섭하지. 우리 이렇게 하면 어떨까? 아주 공평하게, 낮에는 아우님들 몫이고 밤에는 우리들이 소유하면 안 될까. 그치, 그 방법이 가장 합리적일 것 같은데. 안 그래요, 아우님들….”
정작 당사자인 성남에게는 아무런 동의도 없이 자기네들 멋대로 상품처럼 흥정을 하고 있는 것에 성남은 어이가 없었다. 떼꿩 앞에서는 독수리도 맥을 추지 못한다더니 지금 성남의 입장이 그와 똑 같았다. 여자들이 너무나 공격적으로 설쳐대자 성남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정신이 멍해지기도 했다. 그때 어디선가 다른 안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버스가 출발하면서부터 차안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다. 얼굴도 예쁘고 생김새도 나무랄 데 없는 여장부이다.
“자, 여러분! 주목하세요.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 하는데, 지금부터는 입을 즐겁게 하는 여흥 시간입니다. 사흘 전부터 정성을 기울려 만든 음식 솜씨를 놓고 품평회를 가지면서 무엇보다도 낮이나 밤이나 3박4일 동안 우리들을 즐겁게 해줄 황제님을 모시는데 조금도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알았죠!”
“예! 알았습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황제님의 옥체는 이 사람이 책임지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자기들이 술 당번은 먼저 하겠다고 줄을 서서 난리들이다. 그러더니 각종 음식과 술잔이 돌았다. 성남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숫자에서는 밀리지만 썩어도 준치가 아닌가, 그는 그렇게 장담을 하다가도 계산을 했다.
한잔씩만 받아 마셔도 에누리 없는 마흔 잔이다. 마흔 명이나 되는 여인들이 두 줄로 서서 한쪽에서는 술을 따르고, 한쪽에서는 안주를 집어 입에 넣어 주기도 한다. 어떤 여인은 남의 남자에게 따라 주는 술은 처음이라며 얼마나 감동스러운지 모른다고 까지 한다.
성남도 이토록 남의 여인들에게 환대를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다. 이쯤 되면 중국의 진시황인들 부러울 게 없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덥다며 겉옷을 벗은 여인들의 유두 봉들이 ‘나 여기 있지롱’ 하며 성남을 홀리려 들었다. 금방이라도 속옷을 찢고 나올 듯 했다. 성남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여자가 없는 나라에서 십 여 년 동안 견뎌 낸 것의 대한 신神의 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성남은 했다.
문뜩 집에 혼자 두고 온 아내의 얼굴을 떠오른다. 아마도 아내는 시대적 세태의 변화를 알고 일부러 함께 오기를 꺼려했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버스 안은 광란에 도가니로 변했다.
맥주와 술잔이 뻔 질 오고 가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안 통로를 가득히 채웠다. 이력이 난 관광버스기사는 신바람 나는 음악을 맞추어 틀어 주다 가도 일부러 짓궂은 장난을 쳐 댄다. 아니 여인들은 운전기사가 그래 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여인들은 취기로 버스 밑바닥이 주저앉을 정도로 겅중거리며 온몸을 흔들어 댄다. 그럴 때 여인들의 풍만한 젖가슴들이 성남의 가슴을 후려쳐 댄다. 그런데다 운전기사는 간간히 정지 페달을 밟았다 떼었다를 반복을 한다. 그러면 버스 안 사람들은 짐짝처럼 이리몰리고 저리 몰린다. 관광버스도 덩달아 술에 취한 듯 흔들거린다.
여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버스 통로 중앙 한 가운데로 성남을 기둥처럼 세워놓고는, 앞에서는 밀리지 않게 힘을 대해 버티고 있고, 뒤에서는 온 힘을 다해 밀어붙여 댄다. 성남은 앞뒤 양쪽 힘의 중앙에서 꼼짝 못하고 그들 압력에 중심에 서있다. 여인들의 호흡이 가팔라진다. 그 방면에 그들은 도가 텄다.
신록이 무르익는 계절이라 저들 에게도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이 오르는 모양이다. 어느덧 오월의 태양도 오후로 설핏하게 기울고 관광버스는 설악산 어는 관광호텔 앞에 무사히 도착하자 손님들을 풀어 놓는다.
여인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짐을 챙겨 안내를 받으며 호텔 안으로 들어들 간다. 말이 관광호텔이지, 숙소는 이십 명, 삼십 명이 함께 합숙을 하도록 큰방으로 되어 있었다.
“아무 걱정 마이 소! 마, 버스 안에서도 말했지만 한다면 하는 성격입니다. 비록 치마를 둘렀지만 시시한 사내들처럼 한입 가지고 두말은 안 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우리가 모든 걸 책임지겠습니다.”
한동안 왁자지껄하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방안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조용했다. 성남은 혼자 남아 그들을 따라 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호텔 종업원이 찾아왔다.
‘손님! 오늘 운수 대통하신 날입니다. 이 비싼 호텔방을 혼자 쓰시게 되는 행운을 잡으셨어요. 그리고 손님! 이 설악이라는 명산에까지 오셔서 모닥불은 한번 뜨겁게 피우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말씀만 하세요. 쩐만 많이 주시면 젊고 싱싱한 물고기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는 손가락으로 동그란 그림을 그리며 돈표시를 한다. 성남은 그제서야 아침에 회사 사무실 여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우선 종업원이 건네 준 방 키를 들고 5층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조그마한 냉장고도 있고 컬러 티 비도 있었다. 둘이 누울 수 있는 넓은 침대도 놓여있어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남은 서둘러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계곡이 깊어 그런지 해가지기가 무섭게 어둠이 밀려왔다. 그는 창을 열었다. 상큼한 설악산의 향기가 방안 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하늘에서는 불타고 있는 저녁노을이 장관을 이루고 있고, 그 노을 저편으로는 소녀들의 눈동자 같은 파란 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계곡을 적시며 흐르는 물소리도 들리고 밤새들이 지저귐도 들린다. 새들도 짝을 찾아 저리도 속삭이는데, 하물며 사나이 박성남이 일세기 만에 올까말까한 이 기회를 그대로 보낼 수는 없지를 않는가. 그런 판에 조금 전 했던 그 종업원의 말이 떠오른다.
"말씀만 하십시오. 젊고 싱싱한 아주 멋진….”
성남은 자리에 누웠다. 침대는 푹신했다. 그 종업원의 말처럼 이런 분위기에서 혼자 보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몹시 궁한 사람처럼 입맛을 당기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런 기회는 평생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종업원을 부르려 벨을 누르려는 순간, 갑자기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남은 아마도 그 종업원이 재차 확인을 받으러 온 줄로만 알았다.
문은 열려 있는데…., 요!”
성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들이 닥친 이들은 다름 아닌 성남을 스물 네 시간 책임지겠다던 낮에 그 여인들이었다. 막상 그들이 들이닥치자 농담 인줄로만 알았던 성남은 당황했다.
“…….”
그들은 저 돌처럼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놀라셨죠? 그리고 설마 하셨죠? 그러나 우리는 아까 전에도 말을 했지만 한다면 기어코 하고야마는, 이를테면 행동파들이죠, 그런데 벌써부터 주무시여고요, 이곳까지 와서 잠이나 주무시려면 무엇 하러 여기까지 오셨대요. 그냥 집에서 주무시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자! 잠은 서울 가서 실컷 주무시고요, 빨리 이리 오세요!”
그들은 먹을 것을 한 보따리 준비해왔다. 양주도 한 병 있었고 안주는 대부분 오징어와 육포에 볶은 땅콩 같은 마른안주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성남에게 들어보라고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저희들끼리 한마디씩을 한다.
“바보 문둥이들이 주책도 없이 들이닥칠지도 모른 데이, 하메, 문단속 단데이 해야 안 카노.”
그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달려가 방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다. 필경 오늘 저녁 무슨 일을 내려고 작심을 한 듯 했다.
“자! 빨리 이리 오이소. 마, 나는 황금 같은 시간이 너무나 아까웅기라예,”
심한 경상도 억양이다. 그러자 다른 여인이 맞장구를 친다.
“아따 헹님! 그것은 이 몸도 다를 게 없응께, 몸도 어찌 찌뿌둥하고 거시기 그러니까 그 뭣이더라 한 달에 한번 피는 장미꽃이 피었다가징께 사날 됬꾸문이라. 헹님 이런 기회가 자주 오겄소, 평생 한번 올까 말까 한디, 그러니께 목이 말라 타능게 당연 지사 아니겄소. 안 그렇소. 헹님. 더욱이 오늘은 먹이 감이 있는디 어찌 그냥 내버려 둔다요, 헹님도 알겠지만 이런 기회가 언제 또다시 온다요. 하늘이 우리를 착하게 본거이 아니겄소, 그저 신의 선물이려니, 어디 평생 그런 다우. 젊어서 한때뿐이라 그라지 헹님!”
심한 전라도 사투리지만 경상도 사투리와 죽이 척척 맞는다. 그들은 양주를 석 잔을 연신 따랐다. 그 중 한 여인은 그런대로 술은 약간은 한다고 했지만, 다른 이는 밀밭에도 가지 못하는데, 오늘은 오기로 딱 한잔만 마시고 싶다고 했다.
“지까짓께 독해야 봐야 양주지, 설마 양잿물이라도 되겠소, 행님.”
그 독한 양주가 한 두 잔 씩 들어가자 그들이 버텨봐야 얼마나 버티겠는가. 그러는 사이에 밤이 깊었는지 밖이 소란스럽다. 지하실 나이트클럽에 갔던 일행들이 숙소로 돌아오는 모양이다. 술들이 많이 취했는지 주사들이 심했다. 울고, 불고, 고성방가에 박성남의 이름을 아이 이름 부르듯 한다.
눈치도 빠르게 양주를 마시던 여인들이 일어나 소등을 한다. 방안 이 갑자기 깜깜해졌다. 밖에서는 여전히 박성남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러 댄다.
“야! 요것들 봐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벌써 채 갔네. 벌써 채갔어. 박성남은 들어라. 낮에 내와 그렇게도 다짐을 했는데도 감히 네가 나를 무시한다 이거지. 아니 그보다도 나를 배신했다 이거야. 하기야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딸리는데, 부르는 게 값이 아잉가, 내가 너희들을 탓할 수만은 없지, 안 그러냐. 전부다 발정 난 암컷 조개들이고 우유막대기는 단 한개 뿐인데, 설령 금테를 두르지 않았다 해도, 뭐시냐, 오뉴월 개똥채미도 먼저 따먹는 게 임자지. 앙 그러냐. 그래 오늘은 내가 양보하지만 내일 밤엔 어림서푼도 없다는 것 미리 알아두거라, 그런데 이건 너무 하는 거 아냐. 원래 오늘밤 박성남은 내것 이었는데, 중간에서 날치기를 당하다니, 나는 그게 분하다는 거야 따지고 보면….”
그 여자는 술이 취했는지 한동안 혼자 웅얼거리며 성남의 방문 손잡이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다가 지쳤는지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 같았다. 세상이 온통 여인들의 천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두컴컴한 호텔 방안에는 박성남과 벌거벗은 여인들, 둘 뿐이다. 그들은 술잔을 서로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미련 따위는 없다는 말들을 성남 면전에서 대놓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부러 그러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술이 많이 취했는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는 새에 설악산 깊은 계곡에도 달이 뜬 모양이다. 캄캄했던 방안이 달빛으로 환했다. 그새에 달빛이 시샘이라도 하듯, 여인들의 전신을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토록 시끄럽던 설악산의 밤도 잠에 취했는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들이 움직거릴 때마다 풍만한 젖가슴들이 파도처럼 출렁거리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뜨겁게 달궈진 알몸으로 성남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발정이 난 야생마野生馬로변했다. 성남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내맡겼다.
그때였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불자동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화재가 발생 했으니 모두들 대피하라는 방송을 한다. 바로 옆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 한 것이다.
호텔 종업원들이 핸드 마이크를 들고 방마다 찾아다니며 확인을 한다. 벌써부터 무엇인가 타는 연기가 바람을 타고 방안으로 새어 들어온다. 열린 문으로 연기가 가득하게 쏘아져 들어온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소방차들이 물을 뿜어 대고 있었다. 성남은 얼떨결에 옷 입을 틈도 없이 침대 시트를 찢어 벌거벗은 여인들의 몸을 대충 감싸고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을 업고 끌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정전이 되어 온 세상이 깜깜 바다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 할 수가 없고, 누가 누군지 알아 볼 수가 없다. 투숙객들은 급한 나머지 그대로 뛰어내리다 허리와 다리를 다친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아비규환이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성남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설악을 탈출하면서, 잠시만이라도 마음속으로 가졌던 불량한 양심의 대한 반성을 했다.
십년이면, 자그마치 삼천 육백 여일이나 되는 긴 세월을 하루같이 돌부처처럼 자신을 기다리고 가정을 지켜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더 이상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용납이 안 되고 그 여인들 가정의 평화를 깨 버린다는 양심을 저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남은 그 사건이 있고 얼마쯤 지난 어느 날,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를 들자 저쪽에서 먼저 말을 했다.
“여보세요! 성남씨 맞죠. 박성남씨…….”
“예! 그런데요. 내가 박성남인 데요,”
“너! 오래간만이다. 중동에 나갔다더니 귀국 했구나. 나! 학수다. 장학수!”
“학수? 장 학 수….”
성남은 장학수란 말에 기억이 날들 날듯 하면서도 얼른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러자 저쪽에서 재차 말을 해왔다.
“야! 세월이 아무리 흘러갔다 해도 그렇지, 어떻게 동창 이름도 잊어 버렸냐?”
그제야 성남은 장학수를 떠올렸다. 장학수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공부도 잘해 반장과, 일등과 이등을 다툴 정도로 성적이 좋은데다 남이 꺼리는 궂은일에도 항상 그가 앞장을 섰다.
“거두절미하고 너! 지금 뉴스 봤냐? 긴급 뉴스로 나오더라. 기만설이 알지. 기~ 만~ 설~……?”
만~ 설? 기만설이 누구더라?”
성남이 얼버무리자, 학수는 대뜸 핀잔하듯 성남을 나무란다.
“야! 왜? 걔 아버지는 겨울이면 사냥총을 메고 다니는 포수고, 걔 누나는 학교에서는 제일 예쁘기로 소문났던 우리 동창 기만숙. 걔 동생은 우리보다는 3년 후배이고, 기지배처럼 곱상했지. 그래도 모르겠냐?”
동창, 장학수가 너무나도 자세하게 설명하는 바람에 성남은 그제서야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걔 매부 네 공장에서 일한다는 소리를 누구한테 듣기는 들었는데….”
“걔가 나 하고는 외종간이거든, 글쎄, 그 착하고 착한 애가 오늘 아침에 유서를 남기고 신촌에 있는 무슨 대학이라나. 그 대학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을 했다지 뭐냐, 나이 서른도 안 된 애가 너무 불쌍하지 뭐. 어떻게 보면 계집애처럼 착하고 순한 애가 그 하기 어려운 그런 대단한 일을 다하고….”
"왜 그랬대.….”
성남이 물었다.
“왜 그러긴 왜 그랬겠어. 뻔하지 뭐,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 운동이지…. 유서에는 군사정권 타도라고 하더라. 그런다고 이 암울한 세상이 꿈쩍이나 하겠어. 죽은 놈만 불쌍하지 뭐. 아무튼 동창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함께 가볼까해서, 유해는 신촌에 있는 무슨 대학 병원 영안실이래.…….”
장학수의 전화는 거기 까지었다. 학수의 전화가 끊어지자. 성남은 창가로 다가가 남산을 바라다보았다. 남산의 숲은 오월을 더욱 녹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성남은 푸르디푸른 남산을 바라보며 그렇게 죽어간 동창의 동생이 너무나도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준 고귀한 생명, 무엇과도 바 꿀 수 없는 생명인데, 그는 어떻게 죽음까지 택했을까? 신문이나 방송 들은 기만설의 자살 소식을 앞 다투어 내 보내고 있었다.
성남이 퇴근길에 분향소엘 들렸다. 그곳에는 장학수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가친척들은 거의 없고 노동단체에서 보내온 조화들과 낯모르는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조객을 맞는 사람은 그의 부친과 출가한 누나들만이 그의 영정 앞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요. 그럴 만한 재목이 아닌데, 죽은 녀석은 말이 없고…!”
고인의 부친도, 누이들도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의문투성이라고 했다. 고인과는 가장 정이 많이 들었다는 둘째 누나 기 만숙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장례식은 삼 일 장으로 거행되었다. 영안실을 떠난 유해는 하늘을 뒤덮은 듯 만장기에 에워싸여 그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그 대학 노천극장에서 거행되었다.
장례식 명칭은 [민주열사 고 기만설 동지 사회장] 으로 되어 있었다. 순서의 따라 사회자는 조사와 임을 향한 노래가, 그리고 고인의 양력보고에 이어. 아들을 비운의 길로 보내는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말이 있었다.
‘젊으나 젊은 아들을 이렇게 먼저 보내야만 되는 이 사람의 심정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생떼 같은 아들놈을 이토록 만들어 놓은 군사정권은 지금 즉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고, 이와 같은 시대적 역사의 비극은 앞으로는 다시 발생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그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연단에서 내려왔다. 아들을 보내는 그의 조사내용에 일가친척 되는 이들은 깜짝 놀랐다. 어제 저녁, 친척들이 모인 앞에서는 그가 말한 내용과는 정반대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자식 하나 건사하지 못해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만들어 국민들께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런 내용이 전부였는데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의 연설 내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계탑이 있는 신촌 로터리에서는 무녀들까지 동원되어 살풀이와 로제를 마친 영구차는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 장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성남은 어느 날 국회의원 후보 합동유세장엘 간적이 있었다. 후보들은 하나같이 여의도로 가려면 자신 많이 제격이라며 하늘에다 무지개로 다리를 놓고, 바다 위에 도시라도 만들 것처럼 떠들어댄다. 그중 한 후보가 마음에 들어, 연설문을 지적해 주었더니, 며칠이 지나자 지구당 에서 연락이 왔다.
성남은 별생각 없이 지구당 사무실을 찾아 갔다. 지구당 위원장은 현역 국회의원인데 두 번째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것이다. 그는 박성남을 반갑게 맞이했다.
“박 동지! 도와주셔야 합니다.”
성남은 동지라는 말이 무척이나 생소했다. 정치마당에서는 통상적인 호칭이라며 그렇게 부르면 친근감이 더해진다고 했다. 성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 동지! 지금 바로 입당원서를 쓰고 오늘부터 지구당 사무국에서 일을 해 주셔야 합니다. 원래 있던 사무국장이 이민여권이 나와 긴박한 상황이니 뿌리치지는 마십시오,’
그의 표정이 너무나 간절했다.
그 선거에서 현역의원은 정치혁신을 주장하는 새파란 나이의 진보진영, 인사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야 말았다. 그리고 곧바로 새로운 당이 창당이 되면서 대부분 모두가 그리로 휩쓸렸다. 그 당시 국민당은 새로 창당을 했는데도 한국 정당 정치사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입당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박성남은 지구당의 꽃이요. 막중한 임무가 주어지는 사무국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 위로는 위원장을 모시고, 그 밑으로는 총무담당, 여성담당, 조직담당, 청년담당, 복지담당 모두 합치면 그 규모가 대단했다. 박성남은 새로운 당, 당수가 창업한 건설회사에서 근무 한 경력이 인정이 되어 서울에 있는 한 지구당 조직의 총책임자인 지구당 사무국장을 맡게 된 것이다.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왕회장은 여당후보와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야당 탄압, 야당탄압 하기에 설마 그렀게까지야 하겠냐 했지만, 박성남은 오래가지 않아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 첫 번째로 야당 후보들의 유세장 빌리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웠고, 크나 작으나 야당 행사정보는 귀신처럼 입수하여 나타나 사진 찍고 증거물 입수에 눈에 불을 켜고 나타났다. 그러나 여당후보의 선거법 위반사항을 신고를 하면 담당자기 출장 중이라 시간이 좀 늦을 것이라 미루기 아니면, 미리 정보를 제공하여 사전에 방지하는 여당을 알게 모르게 비호를 하고 나섰다.
정치자금은 주로 밤이면 중앙당에서 내려 보냈는데 대부분 라면상자에 담아 비밀리에 내려왔다. 한 번에 보통 5천만 원 아니면 1억이라는 거액이었는데 대부분 지구당 위원장들은 다른 곳으로 빼돌리고 그 일부를 가지고 지구당 사업비를 충당했다. 그래도 박성남이 근무하는 지구당은 가장 모범적이었다. 지구당 사업비는 지구당 당원들의 머리수를 따져 얼마씩을 계산해서 지구당으로 내려 보냈다. 때문에 양심이 불량한 일부 지구당에서는 서류를 이중삼중 허위로 작성, 당원 수 부풀리기에 혈안이 되기도 했다.
규정상에는 직원들은 반듯이 공개채용을 하기로 되었는데. 위원장부인 아들, 딸, 며느리까지 직원으로 만들어 정치자금 횡령에 눈들이 벌갰다. 그 당시 왕회장의 돈은 눈먼 돈이라며 먼저 먹는 자가 임자라 했다. 그러다 보니 왕회장의 지지표가 가을바람에 낙엽 지듯 우수수 떨어졌다.
박성남도 마음만 먹으면 그 눈먼 돈을 얼마든지 빼 돌릴 수도 있었지만 중앙당 상무위원도 겸직을 하고 있어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어쩌다 중앙당 상무회의가 열릴 때 들어가 보면, 그 당시, 회사에서는 난다 긴다 하는 별이라는 별은 다 모인자리에 말단 중견 사원이었던 성남을 보자 그들 모두는 벌레 씹은 얼굴 표정들이다.
그 당시 박성남이 사용하고 있는 책상 양쪽 서랍에는 신권 만 원 짜리가 가득했다. 양복 주머니의 백만 원, 이백 만원 현찰을 박성남은 비상금으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가 하루에 임의대로 집행할 수 있는 금액 한도는 현금 오백만 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새벽, 각 지구당 사무국장 교육이 있다며 광화문에 있는 중앙당사로 급히 들어오라는 중앙당 정책국장의 호출이다. 서울시내 사무국장들이 한자리에 다 모였다. 그 자리에서 정책국장은 추운데 일선에서 고생이 많다며 외투나 사 입으라고 두툼한 금일봉을 주었다. 선거일이 점점 다가오자 각 정당에서는 최후에 수단을 총동원했다.
박성남이 사무국장으로 있는 지구당에서도 매일 같이 대형 관광버스로 당원들을 실어 날랐다. 목적지는 울산에 있는 자동차공장과 조선소를 일박이일 둘러보는 코스였다. 처음 보는 이들은 모두가 혀를 내휘둘렀다. 한쪽에서 쇳조각을 올려놓으면 저편 끝에서는 자동차가 되어 굴러간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조선소와 시내일주를 돌아보았다. 울산은 특별한 그 회사 이름의 공화국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곳은 서산만 간척지다.
무려 5백여 만평이나 되는 바다를 가로 막아 조성한 천수만 간척지다. 어찌나 넓은 지 비행기로 씨를 뿌리고 모든 농사를 기계화했다. 이쪽에서 저쪽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다.
서해바다는 간만의 차가 심해 물살이 어찌나 센지 둑을 막을 때 폐선을 이용했다는 왕 회장의 공법은 세계 해상토목 역사에도 기록이 되어있다고 했다. 그 곳에서도 당원들 연수교재에는, 왕 회장 후보가 당선이 되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가는 곳마다 당원들은 목이 터져라 후보 왕 회장의 이름을 연호했다. 당원들은 남자들이야 직장관계로 거의 없고 대부분 사오십 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관광버스만 타면 마시고 흔들고 춤을 춰 댔다. 많은 여성들이 박성남에게 매달리며 함께 놀아달라고 보채댄다. 그러나 박성남은 당원교육 인솔책임자라는 직책 때문에 그들과 술 마시고 함께 놀 수가 없어 버스 맨 뒷좌석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극성스러운 여성회원들이 다가와 뛰어 봤자 벼룩이라며 잡아끈다.
성남이 응하지를 않자 이번에는 네다섯 명이 달려들어 물리적으로 성남의 허리끈을 풀고 옷을 벗기려 든다. 그대로 놔두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어떻게 세상이 이토록 변했을까. 2~ 3년 전 설악산 때보다 더 노골적이면서도 공격적으로 진화를 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나무랐다 가는 표에도 지장이 있을 같아 참다못한 성남은 차를 세우고 대형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 소주 까마귀 병 두 개와 냉면 대접을 주문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가지고 가는 줄 만 알고 비닐봉지에 담으려 하는 것을 성남은 소주병 뚜껑을 따고 대접에 가득 따라 그대로 마시려 하자. 옆에 있던 종업원들이 달려들어 말렸다.
“손님!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웬만하면 참으시죠! 이 좋은 세상을 버리시려하다니….”
그들은 성남이 극단적으로 자살하려는 줄로만 알았다.
한 되나 되는 소주를 벌컥벌컥 냉수 마시듯 단숨에 들이키고는 김치쪽 하나 달랑 어적어적 씹으며 버스 안으로 오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들 모두가 입을 딱 벌리고 이구동성들이다.
“아니!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도 아니고 어떻게 쇠주 한 되를 냉수 마시듯 한데!”
성남이 차에 오르자 여성 당원들이 환호하며 얼싸안고 매달리고 난리를 쳐 댔다. 성남은 그러는 그들을 뿌리치고 국민당 후보가 꼭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을 해도 그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불공에는 정신이 없고 젯밥에만 정신을 둔다더니 바로 그 짝이다. 여성부장이 의자에서 앉아서 졸거나 잠자는 사람들은 숙박비를 내라며 버스 안 중앙 통로로 끌어냈다. 아침에 차에 오를 때부터 치근대는 여자가 성남 앞을 가로 막았다.
마주서서 같이 흔들고 있는데 운전기사의 장난기가 또 발동을 한다. 달리던 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자 사람들이 짐짝처럼 몰리면 한 덩어리가 되었다. 얼떨결에 그 여자와 맛 부닥치자 여성 당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성남에게 필요 이상으로 밀착해왔다. 그 여인은 얼마나 대담한지 성남은 기절할 뻔했다. 속옷도 입지 않은 그 여성당원은 청바지 지퍼까지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는 여당 후보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선거 뒤끝은 조용하지가 않았다. 비굴하게도 승리자가 패한 후보의 당원을 고발한 사건이다. 성남은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불려 다니기 시작했다. 국민 화합을 소리 높여 외쳐대던 승자는 패자의 대한 보복정치에 가까웠다.
본인은 아니라고 발뺌을 하지만 국민들 보기에는 그 큰 대기업을 해체를 하려 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밴댕이 속과도 같다고도 했다.
지구당 위원장과 박성남은 사무국장이라는 직책으로 검찰에 불려 다녀야만 했다.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써진다고 했던가. 성남이 법정에 서보기는 처음이다. 당명과 후보의 이름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돌린 것이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그러기는 여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도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새겨진 시계를 수없이 돌렸다. 그 시계를 기념품이라며 박성남도 어렵게 두어 개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똑 같은 죄를 지었는데 승자에게는 묻지 않고 패자에게만 묻는다는 것이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법은 어느 나라 법인인가. 결국 성남은 일심 공판에서 징역 일년에다 집행유예 일 년을 선고 받고 고등법원에 항소를 했다. 고등 법원에서는 육개월 동안 질질 끌다가 무죄판결을 내렸다. 정당을 위하여 한 일을 그 정당 소속개인에게는 법을 물을 수가 없다는 판결문이다.
선거를 치르고 그 다음해, 신년하례식은 당 차원에서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이화여대 정문 맞은편에 위치한 김0길 당 총재 댁에서 떡국과 함께 건배 잔을 높이 들어 하례식을 가지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많은 현역 국회의원도 자리를 같이했다.
선거는 끝이 났지만 당선자의 탄압으로 낙선한 야당후보는 정치마당을 떠나게 되었고 국회의원들에게 지원을 받던 지구당 운영비가 중단이 되고 말았다. 결국 돈 앞에서 충성하던 많은 의원들이 하나 둘씩 당을 옮겨는 철새들이 되었다. 정치를 좀 해보겠다고 달려들던 박성남도 회의를 느끼며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한동안 흐른 어느 날, 성남의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초등하교 동창 장학수다. 그때 기만설 장례식 때 만나고 이번이 처음이다.
“야! 성남아, 아 나 학수다. 장학수, 이번에는 장학수가 누구냐고 되묻지는 않겠지.”
“그래! 아무튼 반갑다.”
“거두절미하고 지금 통화 괜찮지. 내일 모레가 기만설이 죽은지 벌써 삼주기란다. 우리 동창, 기만숙 신랑이 포천서 직물공장을 하고 있거든, 걔 신랑과는 업종이 같다보니 자주 만날 기회가 있어. 기만설이 이야기도 있고 해서 너를 한번 만났으면 하더라. 웬만하면 바빠도 함께 가 줄 수 있겠냐? 동창 좋다는 게 뭐냐. 세월이 흘렀지만 동창 위로도 해줄 겸해서….어떠냐. 뿌리치지는 않겠지….”
사날 후에 그들 일행은 포천 변두리에 있는 조용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학교 다닐 때 그리도 예뻤던 기만숙도 세월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죽은 동생으로 마음고생이 많아 그런지 많이 힘들고 지쳐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넉살 좋은 장학수가 모든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그들은 다 함께 한정식으로 주문을 했다. 자연산 더덕구이에 도라지 무침도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산에서 직접 채취했다는 참두릅 그 향기는 산해진미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데다, 이 지방에 명주인 포천 잣으로 빚은 막걸리를 반주로 걸치니 옛날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만숙도 한두 잔은 한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그리 되자 마음을 달랠 수가 없어 한 두 잔 씩 시작한 것이 지금은 술 맛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며, 그 당시 일을 하나하나 기억을 살려 되새기고 있었다.
“동생은 동두천에 있는 조그마한, 화학 공장에서 일을 했거든. 그런데 그 공장에서 뿜어 대는 가스가 공기와 충돌하면서 화학작용을 일으켜 인체의 해로운 공해로 변해 공장 종업원들 건강에 많은 해를 끼쳤어,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되는 가하면, 호흡기가 문드러지고, 시력이 약해지는 데다, 암환자가 발생을 하고, 그래서 노동자들이 수도 없이 시정을 요구했지만, 화시에서는 소귀에 경 읽기식이 지 뭐, 그래서 결국 작업거부로 파업이 자주 벌어지곤 했지, 그 노조에 내동 생이 가담을 한 거야. 동생이 죽고 하관식을 할 때까지 아버지는 감시를 당했어요. 잠자리는 물론이며 심지어는 화장실까지 따라 다니더라고, 처음에 우리들은 그들이 안기부요원이나, 당국의 수사기관원인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글쎄, 어느 시민단체에의 일원 이었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야 알게 된 거지. 그게 뭘 의미하는 거겠어. 아버지가 외부인과 만나는 것을 일찌감치 차단을 시킨 거지…. 왜 그랬겠어. 음모와 조작이 세상에 알려지면 사회는 또다시 요동을 칠게 뻔할 테니까. 다시 말하지만 내 동생은 그런 일을 할 만한 재목감이 안됐어요.
오죽하면 지 매부가 사람 제대로 만들어보려고 타이르고 별짓을 아무리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드라고. 매일같이 술이 취해서 밤늦게 들어오는 것은 보통이고, 누구한테 두들겨 맞고 들어오는 날이 허다했어요. 그뿐 많이 아니고 무엇인가의 쫓기는지 불안에 떨고 그랬거든. 그러던 어느 날인가 밤늦게 들어와서는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거야. 한마디로 자기가 나가는 조직이 두렵고 무섭다는 거지. 어떻게든 살고 싶다며 무척 괴로워하곤 했어. 그러더니 어느 날은 여자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는 앞으로 결혼할 상대라며 임신까지 했다 하드라고. 그 말을 고지들은 우리 식구들은 무척 반가와 할 수밖에, 친 엄마가 세상을 뜬지 제법 되었거든. 그래 그런지 마음을 잡지 못하는 동생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우리 식구들은 정말 고마웠지.
인제는 마음을 잡았나 했는데, 난데없이 하루는 자기 조직에서 누군가는 민주화 사업을 위하여 투신자살을 해야 하는데 막상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상황이 그렇게 되자 할 수 없이 제비뽑기로 정하는데, 아무래도 다음에는 자기 차례가 될 거라며 살고 싶다고 애원을 하드라고….”
그 말을 들은 학수도, 박 성남도, 전신에 소름이 돋쳤다.
“아니! 그 말을 우리 보고 고지 들으라고….”
“끝까지 들어봐요. 우리는 당사자로부터 직접 들었으니까. 그 땐 우리 식구들이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일이 가당치나 하냐며 일방적으로 동생의 말을 무시해 버린 거지. 신촌에 있는 그 대학 옥상에서 떨어져 죽기 사날 전부터 누군지는 모르는 청년이 목소리를 변조해서 아버지한테도, 누나들 한태도 전화를 걸어 왔는데 한마디 말은 없고 그저 흐느끼다가 번번이 전화를 끊는 것 있지, 지금 생각하면 내 동생인 걸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거지. 우리들이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걔를 살릴 수도 있었는데, 못난 누나들이 죄인이지. 살인을 방조한 죄인! 남동생이라고는 단 하나 뿐인데, 참 의혹은 그 뿐이 아니야. 어느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야. 너만 알고 있으라며 귓속말로 속삭이는 것 있지, 글쎄 자살자가 정해지면 마지막 가는 동지를 위하여 여자조직원이 성을 바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그 말을 들은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사실이 아니고 허구이기를 바랐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의 말이 진실이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통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 젊으나 젊은 청년을 제물로 삼았을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 장본인들은 검은 장막 속에 숨어 얼마나 마음이 불안 했을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그들 가슴속에 박혔을 옹이를 평생 동안을 뽑지 못하고 살고 있겠지.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되었을까. 한 청년의 가면을 쓴 그 죽음을 누가 감히 진정한 죽음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가 있을 까.
그래 그런지는 몰라도 기만설이 남겼다는 유서도 본인이 직접 쓴 자필이다. 아니다. 이것은 누군가가 대신 쓴 대필이다. 한때 법정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잖아. 아무튼 동창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 시대 국민과 역사를 농락하고 사회를 우롱한 한 청년의 죽음을, 누군가는 책임지고 역사의 기록을 사실대로 바로 잡아줘야 한다고 성남도, 학수도, 모두가 이구동성이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죽은 자만이 알 일이다. 어쩌면 법정판결 보다는 핏줄의 이야기가 더 진정 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잘못된 역사가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에, 그들 모두의 심장 속으로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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