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영회장의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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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大中 정권이 新東亞 그룹을 해체, 나눠 먹었다는 최순영 회장의 주장을 조사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法治국가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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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해체된 신동아 그룹의 전 회장 崔淳永씨는 月刊朝鮮 3월호와 인터뷰한 자리에서 정치자금에 대하여 놀라운 증언을 하였다. 재벌급의 대기업 회장이 이렇게 솔직한 폭로를 한 것은 처음이다. 정권과 대기업의 유착에 대한 좋은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 崔 회장은 全斗煥, 盧泰愚 정권 때보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 오히려 더 많은 정치자금을 거두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는 큰 돈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전두환 정권 때 63빌딩을 지엇는데, 군 고위 관계자와 저녁 한 끼 먹은 게 로비의 전부입니다. 식사 값 말고는 돈 한 푼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지요." 그는 김대중 정권이 가장 부패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신동아 그룹 해체는 1997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후보에게 선거자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데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한생명은 부실기업이 아니었는데 정권 실세들에 의하여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어 국유화되었고, 국유화 이후 흑자를 보는 데도 3조5000억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살을 찌운 다음 계열회사들을 호남 기업 등에게 헐값에 팔았다는 것이다(신동아 건설은 1억7700만원에 팔렸다). 그는 대한생명을 한화그룹이 인수한 배경에도 김대중 정권이 간여하였다고 믿는다. 그는 수사 검사가 "참여연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을 취하하라"고 집요하게 압박하였고, 어떤 검사는 "기소유예처분을 해줄터이니 조선일보 비리 정보를 달라"고 회유했다고 한다. 그는 검찰이 자신을 구속한 것도 감옥에 가두어놓고 신동아 그룹을 해체하기 위한 음모였다고 주장하였다. 옥중에서 정권측으로부터 기업을 포기하라는 압박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재벌회장을 구속시키니 회사 자금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고 한다. "제가 구속되니 회사는 완전희 마비되었어요. (감옥에서) 8개월만에 나오니까 정권이 사실상 대한생명을 다 가져간 상태였어요. 눈 뜨고 빼앗긴 셈이죠. 신동아건설, 공영사, 동아제분, 프린스호텔, 삼풍도 다 팔아먹었어요. 제 승인도 없이. 별 볼 일 없는 것만 남아 있더군요." 그는 김대중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안 냈던 기업은 신동아 이외에 대한항공, 대신증권, 금호그룹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대신과 금호는 총수가 호남 인물이라 살아남았고,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구속되었으나 회사가 잘 버티어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신동아 해체 공작을 주도하였다는 김대중 정권 실세들의 이름까지도 實名으로 밝혔다. 이런 폭로에 대하여 검찰과 감사원이 수사나 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法治국가가 아니다. 사실이라면 김대중 정권의 실세들을 조사하여야 하고 사실이 아니라면 실세들과 검사들이 최순영씨를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할 것이다. ********************************************************** 신동아 그룹 해체와 김대중 정권의 역할
崔淳永 회장 증언: "1997년 大選 때 金大中 후보의 핵심인사가 와서 ‘최소 1992년 김영삼 후보에게 준 돈 이상을 주셔야겠다’며 선거자금 요구. (월간조선3월호) [10년 만의 격정 토로] 崔淳永 前 신동아그룹 회장 “그들(DJ정권 실세)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20조원짜리 회사를 뜯어먹었다” 지난 10년간 가슴 속에 묻어뒀던 신동아그룹 해체 진상을 털어놓다! 2001년 8월 박某 부장검사, 최 회장에게 ‘기소유예 처분해 줄 수 있으니 조선일보와 관련된 비리자료를 달라’고 요구
“대한생명은 1999년 2월 현재 자산 규모 14조6800억원이었다. 매월 3조5000억원 이상의 유동자금이 있었고, 매월 5000억원 이상의 수입보험료를 걷어들였다. 3조5500억원의 公的자금을 투입한 것은 국민혈세 낭비였고, 그 과정에서 金大中 정권 사람들이 각종 이득을 챙겼다.”
⊙ 1992년 大選 때 金泳三 후보 측에 선거자금 100억원 전해 ⊙ 1997년 大選 때 金大中 후보의 핵심인사가 와서 ‘최소 1992년 김영삼 후보에게 준 돈 이상을 주셔야겠다’며 선거자금 요구. ⊙ 김대중 정권 실세 9人으로 구성된 秘線조직에서 신동아그룹 손 보기로 논의… 이수동 아태재단 상임이사가 주도 ⊙ 장관들과 식사하며 용돈으로 1억원씩 줬다 ⊙ 金宇中 대우그룹 회장에게 속아 4000억원 떼이기도 ⊙ 정·관계 비자금으로 1800억원 사용… ‘최순영 리스트’ 있다 ⊙ 구속되기 6개월 전 옷로비 사건 터져. 실체적 진실은 옷로비 사건이 아니라 옷값 대납요구 거절 사건 ⊙ 대한생명 국영화는 법적 절차 위반, 매각은 특혜매각. 8개월 만에 20여 개 계열사 사실상 다 팔아 치워 최순영 회장 인터뷰 동영상을 月刊朝鮮 홈페이지(monthly.chosun.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ksdhan@chosun.com〉 白承俱 月刊朝鮮 기자〈eaglebsk@chosun.com〉 “잠깐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1999년 2월 10일 오전 7시, 서울시 한남동 崔淳永(최순영·70) 신동아그룹 회장 자택에 검찰 수사관 3명이 들이닥쳤다. 최 회장과 신동아그룹에 狂風(광풍)이 불어닥친 순간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오. 영장을 보여주시오.” “가보시면 압니다.” 최 회장은 영문도 모른 채 검찰로 연행됐다. 이튿날 그는 외화밀반출, 계열사 불법대출 등의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그는 검찰조사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자산규모 20조원의 신동아그룹이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구속은 ‘그룹 해체’라는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는 신호탄이었다. 두 차례의 구속. 평생 일군 회사와 사회적 지위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치욕뿐이었다. 그는 그룹 총수치고는 꽤나 긴 2년6개월간 구치소 신세를 졌다. 구속 8개월 만인 1999년 10월 보석으로 석방됐다가 2005년 1월 다시 법정구속됐다. 해를 넘겨 2006년 9월 건강악화로 구치소에서 쓰러지자 병원으로 실려갔다. 몸은 밖에 있었지만 지루한 법정공방은 계속됐다. “신앙의 힘으로 참고 견뎌”
신동아그룹이 공중분해된 지 10년 만에 입을 연 최순영 前 회장. 李明博(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8월, 그는 광복절 特赦(특사)로 자유의 몸이 됐다. 그러나 세상까지 그를 자유인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은 부도덕한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세상은 그의 사면을 ‘특혜’로 봤다. 그래서 그는 큰 마음을 먹었다.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10년간 묻어뒀던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아야 할 때가 됐다고 용기를 낸 것이다. 취재진은 서울시 양재동에 있는 횃불선교재단을 찾았다. 최순영 회장은 선교재단 이사장실 옆 작은 방을 얻어 쓰고 있었다. 10년 만에 언론과 만나는 탓인지 그의 얼굴은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신앙의 힘으로 참고 버텨왔다”고 했다. 10년 만에 터진 말문은 질문할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할 때는 격정적으로,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본 임직원들에게는 용서를 바라는 죄인의 심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10년이라는 세월 때문인지, 올해 일흔이 된 나이 때문인지, 그는 세상사를 초월한 사람처럼 보였다. “10년 동안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재판하느라, 구치소 들락날락하느라 하는 동안 정권이 두 번 바뀌었네요. 정치적으로 엮인 사건은 사회적 여건이나 개인의 희망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더군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정치가 경제를 앞질러 가고 있어요.” 그는 잠시 숨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딱 10년 전이네요. 1999년 2월 10일 아침 7시쯤이었어요. 회사에 출근하려고 하는데 건장한 수사관들이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영장도 없이 강제로 연행당했죠. 요즘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죠. 그룹 회장에서 순식간에 범죄자가 됐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3월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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