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그림이 그려지는 이야기
실비가 내리는 일요일 아침, 아버지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전자 밥통을 꺼냈다.
오래 쓴 구형이라 뚜껑이 잘 닫히지 않아 살펴보니 들떠있고 연결고리가 톡 떨어졌다.
“어허 이거 어쩌지....”
그때 마침 세계가 일어나며 물었다.
“아빠 뭐가 또 고장 났어요?”
집안에 물건들은 주어온 재사용이 많아 세계가 가끔 묻는 말이었다.
“응 밥통 안에 고리가 끊어져서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철사를 걸어야 할 것 같아.”
“알았어요, 맥가이버님 수리 쎈타를 열어주세요~ 이 히히히.”
세계는 골방으로 들어가 사물함을 가져오고 아버지는 집게 펜치와 커텐 걸고리
철사와 송곳을 꺼냈다. 3구 가스렌지 중에 제일 많이 사용하던 오른쪽은
오래전에 고장 나서 작동이 되지 않아 제일 작은 곳에 송곳을 얹어놓고 달구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밥통을 열고 달궈진 송곳으로 가로로 구멍을 뚫었다. 철사를 걸고 뚜껑을 닫아 보았다.
“딸깍”
“성공이다~이제 우리 마트 갈까? 국을 끓이려면 봄나물을 사야하는데 신상이 나왔을까?”
부자는 우산을 나누어 쓰고 88번지 달동네 vip 전용마트에 갔다.
집 앞 뒤로 벌써 냉이와 쑥이 세수한 얼굴로 쑥쑥 나와 있었다.
아버지는 동요를 불렀다. 세계도 익숙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달래 냉이 씀바귀 모두 캐보자 종다리도 봄이라 노래하잖다~”
“세계야 봄이 오면 마당에 병아리를 사다가 키워 가지고 알을 낳으면
너 좋아하는 계란 프라이를 해줄까?”
“예? 그래도 돼요? 노랑 병아리 참 예쁘겠다.”
“그럼~ 나 어릴 때 뛰어가면 병아리들이 졸졸 엄만 줄 알고.”
아버지는 말을 멈추었다. 아이에게 없는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 좋지는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세계도 벌써 눈치를 알고 묻지 않았다.
“세계야 오늘도 그림을 그리려면 빨리 밥을 해야지?”
“예 아빠.”
“나는 군대를 가서 집에서보다 밥도 잘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더니 키도 조금 컸다.”
“예, 나도 키 크고 싶어요. 빨리 가서 밥해요 아빠.”
김치와 계란 프라이 냉이 된장국이 차려지고 열린 문으로 밖을 보며
달동네 상류층 스카이라운지 식사를 하며 실비의 붓질을 감상하는 식사를 마쳤다.
아버지는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아들은 듣는 그림을 담았다.
“아빠가 제대를 하고나서 처음 시작한 일이 페인트 공이었다.”
“페인트 공?”
“응 페인트를 칠하는 사람, 전에는 막노동을 했지만 그건 너무 힘들었고 마침
근처에 버스 종점이생기고 삼남여객버스 회사가 이사를 와서 새로운 직업을 찾은 거지.”
“아~”
“버스회사 ‘도장 관리부’에서 버스에 색칠을 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내 꿈은 관리부장님처럼 페인트 가게도 내고 건물에 페인트칠을 해서
돈을 벌려고 생각했지. 그런데 일을 마치고나면 손, 발, 얼굴에 묻은 페인트가
너무 더러운 거야.”
“아빠 어제 물감처럼 잘 안 지워졌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냐~ 그걸 지우려면 휘발유가 필요한데 관리부장님은
그것도 주지 않는 구두쇠로 늘 이렇게 말했다.
“야야, 씻고 싶으면 저그 저 차에 가서 옆 귀탱이에 가득 찬 거 쪼까 빼서 써라~이?”
“아빠, 진짜 구두쇠다 자기 집에서 한통 가져와도 되는데.”
“그러게 내말이.”
“추운 겨울, 나는 버스에서 기름을 빼려고 호스를 버스에 꽂아 넣고 훅 둘러 마시면
먼저 기름 냄새가 공격해왔다. 기름이 없을 때는 계속 호스를 깊이 넣어 훅~둘러 마시면
기름 냄새만 잔뜩 먹었다. 어느 땐 쑥~기름이 빨려 들어와 입속에 가득차기도 했다.
그걸 빈 페인트 통에 받아서 씻고 비누로 마무리를 하면 어느 정도 깨끗했지만
차가운 물로 씻으니 손 밑에서는 늘 때가 끼고 손끝이 갈라져 피가 나서 반창고를 감았지.”
“아~ 피나면 아프겠다.”
“그렇지~ 그런데 나는 반창고 감은 손을 ‘엄마의 선물’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불쑥 튀어나온 엄마라는 말에 급 후회를 하였다.
하지만 이제 주어 담을 수도 없어 ‘거시기’로 대처를 하기로 했다.
“왜요?”
“응, 그건 우리 거시기가 겨울엔 반창고를 감았으니까 거시기가 물려준 선물이지.”
“아빠 그럼 나도 아빠의 선물을 물려줄 거야?”
“헐~ 난 안줄 거다 이렇게 예쁜 손에 내가 어떻게 빨간 줄을 그어요~ 사랑하는 아드님~”
“이 히히히..선물도 나쁜 선물이 있구나, 아빠 그걸 유전이라고 하는 거야 이 히히히....”
“헐~유전도 알아?”
“헐~제가 뭘 모를 줄 알아요? 라디오도 하루 종일 틀고 살았는데요?”
“아하 그렇지.”
“나는 그때 돈이 없어 작업을 할 때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운동화를 신으면 간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운동화는 출퇴근용이라
늘 고무신을 신고 일을 했다.”
“고무신도 있어요?”
“그럼~ 검정 고무신도 있고 하얀 고무신도 있는데 타이야표가 제일 좋았어.”
“아하 그렇구나.”
“그런데 휘발유로 발을 씻으니까 검정 고무신은 일주일만 지나면 신발 문수가
자꾸자꾸 늘어나서 나중에는 고무신을 질질 끌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불도 없어 어두운 수돗가를 가다가 신발이 미끄러지면서
발이 버스 바퀴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비명을 질렀지. 으악.”
세계는 갑자기 아빠가 쓰던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 나왔다.
“오메 으짜 쓰까이~”
“그날 발가락이 부러지고 인대와 발목뼈도 부러져 급히 병원을 찾았지만 아빠는
형편이 되지 않아 의사의 요구대로 수술을 하지 못했다. 일주일 입원 후에 임시 처방을 받고
퇴원을 해서 통근 치료를 받다가 돈이 없어 방치했다가 결국 다리를 절고 말았다.”
“아~ 그때 다치셨구나~ 원래는 씩씩한 아빠였는데 그쵸 아빠?”
“그 럼 그럼.”
세계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왠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작은 손으로 아버지 다리를 만져보니
발목이 불룩 튀어 나와 있었다.
“아빠 여기요? 내가 튀어 나온 거 들어가라고 주물러 드릴게요.”
“그래? 어 시원하다 우리아들 참 효자네 하하하....”
“예, 그건 아니고 그림 값이에요 이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