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청조(1084~1155)
호는 익안거사. 제남사람.
여황제 무측천
무측천은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담이 컸다. 일찍이 무측천의 아버지는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역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무측천은 13~14세 때 이미 많은 서적을 박람하여 견식을 넓히고 시사(詩詞)의 기초를 닦았을 뿐만 아니라 서예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636년, 당 태종 정관(貞觀) 10년,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황후 장손씨(長孫氏)가 병사한 후, 그 이듬해에 무측천의 용모가 출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황궁으로 불러 재인(才人: 가무로써 황제를 섬기는 아주 낮은 등급의 후궁)으로 삼았다. 이때 무측천은 불과 14세의 어린 소녀였는데 태종은 그녀에게 무미(武媚)라는 칭호를 내렸다.
무측천은 황궁에 들어간지 12년이 지나도록 태종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태종을 위해서 단 한 명의 자식도 생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재인의 직위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도 못하였다. 이러한 무측천이었지만 오히려 태종의 아들 이치(李治:고종)는 일찍이 태자 시절에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반해 버렸다. 아버지 태종의 총애를 받지 못하였던 그녀는 태자 고종과 은밀한 사랑을 불태운 도덕적으로는 패륜을 즐긴 여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여인이면서 아들과 놀아난 여인이었으니......
태종의 기일(忌日)에 황제가 된 고종 이치는 분향차 감업사에 들렀다가 홀로 쓸쓸히 지내는 무측천의 모습을 보고 옛정에 사로잡혔다. 이에 고종은 예교의 속박을 벗어던지고 그녀를 다시 궁궐로 데리고 들어갔다. 무측천이 다시 황궁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28세였다. 보통 그 나이의 여자라면 열 몇 살의 젊고 싱싱한 다른 후궁들에 비해 신선미가 다소 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무측천은 고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고종의 12명의 자녀 중 뒤의 6명(4남 2녀)이 모두 무측천의 소생인 것을 보면 당시 무측천에 대한 고종의 총애가 어느 정도였던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상관완아(664~710)
섬주섬현사람.당고종때 재상 상관의의 손녀.
측천무후의 폐위를 도모하려다 살해된 상관의(上官儀)의 손녀.
시적 재능이 풍부하여 측천무후가 종종 시제를 내어 신하들에게 시를 짓게 하고
그 우열을 정하게 하였는데 여기서 심사를 담당한 이가 상관 완아였다고 한다.
시적 재능과 함께 정치적 재능도 뛰어났던 그녀는
측천무후의 조카인 무삼사와 애인 관계였다고 하며 둘은 함께
측천무후의 좌우를 맡아 당대의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된다.
상관 완아가 14세 때 무측천은 그녀를 불러 할아버지, 아버지를 죽인 자신을 미워하느냐고 묻자
"원망하면 불충(不忠)이요, 그러하지 아니하면 불효(不孝)가 됩니다"라고 답했다 한다.
이때 무측천은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고 길러준 은혜를 모른다하여 문신의 형을 내렸다고 한다.
청사와 주사를 이용하여 볼에 매화형상을 문신으로 새겨 넣었는데
상관완아는 이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끄러워 하는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던 모양인지 이것이 일종의 미를 꾸미는 장식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분분히 분을 뭍혀 모방하고,연지(?脂)를 이용하여 붉은 점을 찍었는데
지금까지도 시집을 갈 때 연지를 찍어 홍점을 그리는 것이 이러한 연유라는 설이 있다.
동소완
이름은 백, 자는 청련 혹은 완군이라고 불렸다.
동소완은 명천계4년(1624년)생. 그의 남편 冒襄은 명말 청초 저명한 문학이다. 冒襄은 명문가족 출신이고 <<명말4공자>>라고 불리우고 당시 이름있는 인물이다.
동소완은 남곡(호북성 장양 부근)의 기생집에서 태여나고 모친 진씨는 남곡의 기생이고 부친董旻은 기생집의 잘골이였다.
동소완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는데 8살때 기생집에 놀러온 문인들과 시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다뤘다.
13~14살때 탈줄모르는 악기가 없었고 시조와 문학에 대하여 모르는것이 없었다.
더우기 이쁘게 생기고 인물이 출중해서 15살때 명성이 높았다. 순치 7년(1650년)에 병사.
장홍불
풍진삼협중의 장홍불인데 리정의 애처로서 본명은 장출진이다.
하희
원적은 정국. 정목공의 친딸이고 정령공의 여동생이다.
손상춘
삼국미녀의 하나. 손견의 딸로서 손책, 손권의 동부이모의 녀동생이다.
류현덕의 아내이다. 부인도 잃고 병사도 잃었다는 고사의 주인공이다.
한장제황후
두씨. 두황후는 동한의 정치를 간섭한 황후. 아름답게 생겼으며 수단이 있었다.
한화제황후(등수 81~121)
등수는 동한 호강교위 등훈의 딸이다. 화제가 죽은후 20여년간 집정한바 있고 자기 오빠를 요직에 등용하고 대권을 휘둘렀다.
리향군
기재에 의하면 리향군은 진회하상의 명기로서 노래와 춤을 팔았으나 몸은 팔지 않았다고 한다.
동소완, 류여 등과 함께 명말청초에 이름을 빛낸 미인이다.
홍승(洪昇)의 《장생전(長生殿)》과 함께 청대 희곡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진다. 1690년(康熙 29)부터 1699년까지 세 차례의 개작 끝에 완성된 작품으로 명말(明末)의 공자(公子)인 후방역(侯方域)과 기생 이향군(李香君)의 사랑의 파란을 줄거리로 하고, 여기에 명말(明末)의 부패한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다.
후방역은 이향군을 기루(妓樓)에서 건져내고 부채에 시(詩)를 써 준다. 그 후 후방역은 완대월(阮大鉞)의 중상모략으로 체포령이 내려져 난징[南京]을 떠난다.
완대월과 고향이 같은 전앙(田仰)이란 자가 이향군을 첩으로 맞아들이고자 하나 향군은 정조를 지키며 필사적으로 반항한다.
혼절하여 머리를 땅에 부딪혀 이마에 상처가 나고 부채는 피로 물든다.
며칠 후, 향군이 낮잠 든 사이에 양문총은 부채에 묻은 피를 복사꽃으로 여기고 가지와 잎을 곁들여 그려서 도화선을 만든다.
후방역이 난징에서 돌아왔으나 향군은 이미 대궐에 불려 들어간 후여서 만나지 못하고 체포된다.
그 후 청(淸)나라 병사에 의해서 난징은 함락되고 후방역은 옥에서 탈출하여 산으로 피신하는데, 여기서 도교(道敎)에 귀의한 향군과 재회하게 된다.
두 사람은 부채를 바라보며 서로 그립던 얘기를 주고받는데, 이것을 본 장도사(張道士)가 부채를 찢어 팽개치며 나라가 위태로운 이 시기에 아직도 정근욕종(情根慾種)을 그리워하느냐고 꾸짖자, 이에 크게 깨닫고 이들은 도교에 입신한다.
작품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인물들을 근거로 하고 있다. 젊은이의 연애이야기가 줄거리를 이루면서도 명말 부패한 정치 현상과 나라를 그르치는 간신들의 행동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 가운데 인생의 부귀는 뜬구름 같은 것이라는 애수가 숨겨져 있다.
화목란
부친을 대신하여 종군한 화목란은 고대의 하남성 로성 영곽사람이다.
여반남장을 하고 부친을 대신하여 종군한 그녀는 수차례 전공을 세운다.
개선해 돌아오자 황제가 관직을 내리자 목란은 받지 않았고 입궁시키려하자 그녀는 죽음으로 거절한다.
당조초기 효렬장군으로 추봉하고 화목란사를 져 그녀를 기념했다.
달기(상고시대)
상나라 마지막 왕 주왕의 비. 자신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충신 비간의 심장을 먹어야 한다고 주왕에게 교사해 비간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음란하고 잔인한 독부의 상징으로 '주지육림'이란 성어도 달기와 주왕의 방탕한 유흥에서 유래되었다.
포사(상고시대)
웃지 않는 미녀. 서주 마지막 왕 유왕의 비. 유왕은 포사의 웃음을 보기위해 외적의 침입도 없는데 위급을 알리는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모으고 이로써 포사를 웃겼다 한다.
우미인(진)
초패왕 항우의 애첩. 항우가 ‘사면초가’의 막다른 상황에 다다르자, 최후의 주연을 베풀고 자진했다.
위자부(서한)
기녀 신분으로 한 무제의 부름을 받아 입궁, 아들을 낳아 평민 출신의 황후가 되었다.
이부인(서한)
'북방에 미인이 있는데 세상에 둘도 없는 절세 미인이라. 한 번 눈길에 성이 기울고, 두 번 눈길에 나라가 기우네.
성과 나라가 기움을 어찌 모르겠냐마는 미인은 다시 얻기 어려워라.
' 영화 <연인>에서 장쯔이가 부르는 한대의 유명한 시가 가인곡의 주인공이 바로 한 무제의 총희 이부인이다
소교(삼국시대)
강동이교(江東二橋)로 불린 미인 중 한 명으로 주유의 아내. 조조도 '강동이교를 얻기 위해 강동에 왔으니, 오를 정벌하고 천하를 통일한 후 동작대에서 이교와 즐기리라'는 시구를 남긴 바 있다.
태평공주(당)
무측천의 막내딸로 미모와 총명함이 모두 무측천을 빼닮은 재인이다.
정치적으로도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무주 말기 전횡을 부리던 장역지 형제를 죽이고 당 왕조를 부활시키는 데 기여했다.
무혜비(당)
죽기 전까지 당 현종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던 비.
반금련(북송)
중국 4대기서 <금병매> 속의 인물. 남편을 독살하고 서문경의 첩이 되는 반금련은 수 백년 동안 음탕하고 독한 여인의 표상이 되어왔다.
이사사(북송)
미모와 예술적 재능을 겸비한 송대의 명기. 고관대작은 물론 송 휘종까지 사로잡은 미모의 소유자라고 전해진다.
기황후(원)
고려의 궁녀 출신으로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제국의 황후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
순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제2황후로 책봉되고, 아들을 황태자로 앉히는 등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첫댓글 인물이 각양각색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