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순복음 신학 1. 순복음 신학의 역사 2. 순복음 신학의 개요 3. 순복음 신학의 정체성 4. 순복음 신학의 방법론
Ⅲ. 순복음 신학의 성령론 1. 성령에 관한 신학적 고찰 2. 오순절 성령강림과 그 영속성 3. 성령이해에 있어서 오순절적 관점 4.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
Ⅳ.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 1. 성령이해의 배경 2. 성령론의 역사적 배경 3. 성령론
Ⅴ. 순복음 신학과 조용기목사의 성령론 비교
Ⅵ. 결론 1. 논의 2. 제언
참고문헌 Ⅰ. 서론
1. 연구목적
21세기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중 한 사람이 영산 조용기 목사이다. 그래서 조용기 목사에 대해서 여러 가지 차원에서 연구의 대상이었다. 그가 담임하는 세계 최대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인하여 조용기 목사는 교회성장의 관점에서 연구되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 그렇게 큰 교회를 만들었는가에 관심을 가져왔고, 그로 인하여 한국교회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서 대형교회(Mega-Church)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목사의 사역에는 성령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성령론의 영향으로 한국 교회에 오순절적 성령운동이 파급되었고, 은사주의적 교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뿐 만 아니라 기도운동의 확산으로 성도들의 영성을 회복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종말 신앙의 강조로 성도들을 열심 있는 복음 전도자로 변화되게 하였다. 조목사의 성령론은 ‘사도행전적 교회의 재현만이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도들을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한다.’는 것을 한국 교회에 일깨워 주었다. 특별히 조목사의 놀라운 공헌은 오랫동안 이론에 갇혀있던 성령님을 해방시켜 모든 성도들의 신앙 속에서 체험케 하여 성령이해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본 논문은 이렇게 한국과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조목사의 성령론을 재 조명하므로서 성장과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교회에 성령운동을 다시 일으켜보고 한다.
2.연구방법과 범위
성령은 우리의 관심을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하며 또한 우리로 영적인 눈을 뜨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역은 물론 인류역사에 참여케 한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써 어느 누구의 신학적 정의나 관점에 따라 속성이 바뀌어 지거나 달리 해석할 수 없는 하나님은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영산의 성령론에 대한 여러 신학적 입장을 창조적으로 수용하지만 성령의 이해에 있어서 오순절적 관점에서 이해하는데 있다. 오순절적 관점이란 먼저 과거 초대교회에 임했던 오순절 성령임재의 사건을 어떻게 분석하고 어떻게 현재적 상황에 적용해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성령론 인식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오순절주의가 형성되기까지의 배경을 전반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얻어지는 신학적 자기주장이기도 하다. 본 연구에서는 성령론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창조적으로 수용하지만, 그 큰 줄거리는 영산의 신학의 입장에서 전제할 것이다. 할 수 있는대로 주장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여러 문헌과 기록된 자료들을 사용하였다. 제1장 서론에서는 본 연구의 취지와 연구방법과 범위 및 용어설명을 살펴볼 것이다. 제2장은 순복음 신학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정체성 그리고 순복음 신학의 내재적 특징을 살피고자 한다. 제3장은 순복음 신학의 성령론 이해와 성령충만과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와 성령의 임재함과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깊이 다루고자 한다. 제4장에서 영산의 성령론에 있어서 성령의 이해의 배경과 성령론의 역사적 배경과 영산의 성령론을 기초고정관념화 되어있는 개념들로부터 새로이 개선되거나 확대되어있는 신학적 이론들을 앞세우면서 어떻하면 오순절적 신학의 체계를 세워 나갈 것이다. 제5장에서는 영산의 성령론 비교에 대해 다루면서 영산의 성령론이 신학적으로 오순절적인 신학의 체계자로 바르게 세워져 있다는 것을 고찰하고자 한다. 제6장 결론에서는 본 연구에 대한 논의와 제언을 찾아보고자 할 것이다.
3. 용어설명
지금까지 성령에 대한 연구는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어, 에밀 브루너는 신론이나 기독론은 많이 다루어졌으면서도 성령론은 마치 ‘신학의 의붓자식’처럼 취급되었고 신학자들에게는 ‘성령’이라는 말이 마치 도깨비같이 들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딜슈나이더(O. A. Dilschneider)에 의하면 “기독교 신학은 영의 망각증에 빠졌다. 수세기동안 우리는 사도신경의 제2조항의 기독론 중심적인 신학에 몰두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은 제3조항(성령)을 오순절 이후 구원사적인 계속성에서 취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영의 망각으로 우리는 사도신경의 첫째와 둘째 조항의 신학적인 방향이 성령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성령이 이처럼 경시되어 온 이유에 대해서 김균진 교수는 다음의 두가지의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성령론은 신론과 그리스도론에 비하여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음에 있다. 둘째, 성령론이 광신주의와 열광주의로 발전함으로써 기독교사상을 변질시킴에 있다. 교회사적으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위격과 전통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 성령에 대해서는 무관심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단지 성령론은 삼위일체의 틀 속에서는 논의되었다. 중세교회는 성령의 출원문제에 있어서 동서교회가 분리될 만큼 심각했지만 전체적인 특징을 볼 때에 의식, 제도, 전통에 얽매인 정적 특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성령론은 약화되었다. 종교개혁시대는 그 당시에 나타난 열광주의운동 때문에 성령온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였으며, 열광주의운동의 맹목적이고 주관적인 태도를 견제하려고 성령과 말씀의 결합을 강조하였다. 어떤 신앙적, 신학적 견해는 성령에 근거하였다 하여 타당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하여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신교 정통주의시대는 복음적 신학을 교의화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시애로서 불규칙적이고, 비정상적이고, 비자연적 사역자로서의 성령의 활동과 개입과 간섭을 원치 않으므로 성령이 활동할 장소가 없어졌다. 이에 반하여 경건주의는 성령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소명, 칭의, 성화를 강조하였으나 성령론을 체계있게 발전시키지 못했다. 현대에 들어와 19세기에 신정통주의 신학은 성령론을 망각하지는 않았지만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므로 성령의 위치는 약화되었다. 이에 반하여 종말론의 신학에서 성령론은 종말론의 틀 안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이런 교회사적인 배경과 교회의 신앙현실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우리는 성령을 좀더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이제 신학자들의 관심이 기독론에서 성령론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현대신학의 조류는 신 중심적 신학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으로 발전되어 왔는데, 앞으로는 성령 중심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20세기 신학의 큰 흐름은 초월성과 내재성의 문제로 씨름하였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시대에 제시된 주요한 신학적 주장들은 이 초월성과 내재성의 관계에 균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기는 불안정이 무엇인지를 표현해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관점에서 현요한 교수는 ‘내재’란 용어대신 ‘임재’란 말을 쓰고 있다. 그래서 그는 초월과 내재의 관계를 상호모순이 아닌 함께 사용해야 될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령임재의 직접성과 매개성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에 있어서의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최근의 화란 개혁신학자이 베르꼬프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에서 성령의 활동의 장을 세계사적인 지평으로 넓힌 것으로 해석한 경우도 있다. 성령을 독립적인 신학의 주제로 전개시키고, 성령의 활동의 장을 세계의 창조와 재창조, 온 우주와 전 피조물의 영역에까지 확대하여 기술한 베르꼬프의 관점을 동조하는 논문도 많아지고 있다. 전통적 교의학은 성령을 “구원의 왕” 그리고 “성화의 영”으로서 인식하였다. 성령의 사역 중 가장 중심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루는데 있다고 생각되어 성령론은 대부분 구원론이나 교회론의 틀 안에서 논의되었다. 많은 경우에 있어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의 영혼 구원에 제한되었으며, 성령의 활동은 개인의 영혼 구원과 성화 그리고 교회의 삶의 영역으로 제한되었다. 루터의 신학은 말씀과 신앙의 사건 속에서 일어나는 죄된 인간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만남을 주요 관심사로 삼았다. 김균진 교수는 루터의 신학이 하나님과 영혼을 중심 문제로 하는 서구 신학의 내용을 새롭게 했지 그것 자체의 틀을 바꾸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러한 신학적 틀 속에서는 바울이 강조한 성령의 전인 인간의 육체에 대한 관심과 이사야 66:1과 사도행전 7:48 이하에 의하면 하나님이 이미 자기 성전으로 만드신 자연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루터도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현존한다’고 말하였지만 그러나 그는 신앙하는 인간을 의롭게 하는 말씀에 근거시키면서 모든 사물들을 제외시켜 버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학은 전통적인 성령론을 많이 확장시켰다. 영혼만에 대한 관심에서 인간의 육체와 세상적인 삶에의 관심,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 대한 신학적 관심과 새로운 신학의 틀이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성령의 창조족, 세계사적, 우주적 지평이 논의되었으며, 성령의 활동을 개인의 중생과 성화 그리고 교회의 삶과만 관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정의와 평화의 수립, 자유와 해방, 신체의 건강과 생태계의 보존 그리고 자연 과학적 지식의 영역까지 확장시켰다. 전통적인 성령론의 틀이 주로 신약성경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는데 반해 새로운 신학적 틀은 주로 구약에 근거하고 있다. 성령의 사역에 대한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관심이 폭넓게 대두되면서 구약적 사고, 즉 히브리적 사고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성령의 사역의 우주적, 세계사적, 창조적 지평이 많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신학자들이 히브리적 사고 구조 아래서 볼 때 성령에 대한 총체적 관점이 올바르게 드러난다고 보았다. 실제로 최근 국내의 성령 연구논문에서 성령의 사역을 갈래지으면서 창조세계의 유지와 구원을 위한 성령의 사역(새창조의 사역), 정의와 평화를 위한 성령의 활동,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령의 활동,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위한 성령의 사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확장과 성령의 사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확장과 성령의 사역, 성령과 자연 과학적 지식 등에 대한 고찰들을 하기도 한다. 사실 국내의 성령에 관한 학위논문을 보면 새롭거나, 크게 주목할만한 연구나 자료를 구할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성령의 활동의 장을 지나치게 넓히다 보면 교회공동체의 고유성과 독립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성령의 활동을 공동체의 맥락에서 전개하고자 한다.
Ⅱ. 순복음 신학
1. 순복음 신학의 역사
‘학’(學, lohy)이란 본래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가설과 실험 그리고 반복된 체험을 통하여 만인이 보편타당하게 인정하는 객관적 진리를 말한다. 아울러서 신학도 신에 대한 학문으로서 갑자기 혹은 우연히 생겨날 수 없다. 신학은 문학, 역사, 과학과 달라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 하신 것을 기록한 말씀을 토대로하여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해석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신관에서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을 위시하여 창조주 하나님,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할 것이며,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해석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자에 대하여 그리고 사람을 위시한 전 자연의 마지막 구원과 회복 등을 다루게 될 것이다.
신학이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토대한다고 할지라도 신앙과 신앙생활이 앞서야 할 것이며 실험과 실습 그리고 체험이 선행되어야 함은 다른 학문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초대교회도 신앙과 신앙 생활이 먼저 진행되었고 그 후에 교부신학이 성립되었으며 그 이후는 카톨릭 신학이 수립되었다. 마루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이 먼저 있었고 이어서 쯔윙글리(Zwingli)에 의한 루터교 신학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칼빈에 의한 기독교 강요(Christian Institution)와 같은 칼빈의 장로교 신학이 그리고 웨슬레(John Wesley)에 의하여 알미니안 입장의 감리교 신학이 나타나게 되었다.
① 오순절의 유래
A. 구약시대
오순절은 ‘50일’이라는 숫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구약의 칠칠절에 해당하며 헬라어 “펜테코스테”에서 온 말이다. 이 절기는 유대인의 3대 명절인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 중의 하나이며, 유대인의 종교력 니산월(3, 4월) 16일에 단을 흔드는 추수성례(秋收聖禮)를 지낸 7주 후 즉 50일째 되는 날인 시완월(5, 6월) 6일에 지켜졌다.
칠칠절이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로 묘사되었다(출 23:10, 16, 34:22; 레 23:10; 민 28:26). 그러나 그것은 실제적으로 보리 수확으로 시작해서 밀추수로 끝나는 곡물추수의 전 기간을 가리키는 약 7주간의 기간이었다. 희랍의 유대인들은 이 절기를 오순절(Pentecost)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B. 신약시대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추종자들은 이 절기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 그러나 그들이 모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부활체로 이 세상에 아직 계실 때 하신 말씀 곧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는 말씀대로 약속의 성령을 받기 위하여 모였던 것이다. 이 날이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 째인 오순절 날이었다.
이 날 성령이 임한 현장을 사도행전 2장 1-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우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하였다.
이 사건 후에도 계속해서 성령 감림의 역사가 계속되었다. 즉 사마리아 교회(행 8:14~25), 사도 바울에게(행 9:17~20), 고넬료 가정에(행 10:44~48) 그리고 에베소 교회에(행 19:1~7) 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끊이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순절 날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이 지상에 탄생하였으며 이 주님의 몸된 교회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이유의 제일 원인은 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의 오순절 절기가 육신의 양식을 추수하는 축제라면 신약에서는 영혼의 추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마리아 우물가의 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가 넉달이 자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2~35).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만족해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요, 이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영혼구원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누가복음 10장 1-2절에 보면 “이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구약에서 추수 감사절로 지켜왔던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자 교회가 탄생되었고 그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② 미국 오순절 운동
A. 미국 오순절 운동의 태동
1. 이 운동은 19세기 말 영국과 북미에서 일어난 성결운동과 경건생활(Higher Life) 운동에 힘 입은 바가 있다.
오순절 파는 감리교의 성결전통 속에 들어 있던 웨슬레의 성화(聖化) 개념을 받아 들였다. 요한 웨슬레는 회심(回心) 즉 신생(born again)은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되는 평생에 걸친 과정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신생 후에 부패한 죄성(罪性)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내재적 죄”는 두 번째 은총, 즉 두 번째 축복인 성령세례를 받아야 뿌리가 뽑힌다고 하였다. 그리고 케스윅(Keswick, 1890) 운동은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실제적으로 영적인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걸어가는 것이 자녀된 의무요, 특권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과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2. 복음 전도나 피니(Charles G. Finney)와 무디(Dwight L. Moody)의 영적 각성운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분들은 회심 후 중생을 중요시 여겼지만 성령세례는 죄성을 근절시키는 제 2의 은총의 순간이 아닌 복음 증거와 봉사를 위해 필요한 능력 부여로서 강조하였다.
3.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前千年說)과 신유(Healing)에 대한 새로운 운동이다.
전천년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地上)재림 전에 성도들의 휴거(Rapture)가 있고 이어서 7년 대환란 중에 지상재림 및 천년왕국이 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의 가르침에서 유래하여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박사 같은 사람들이 주장하였다.
신유에 관한 새로운 신앙운동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이 영혼을 치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체도 치료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기독교 선교 연맹의 창시자인 심슨(A. B. Simpson)과 도위(John Alexander Dowie)와 워드워드-에터(Mania B. Wood-Worth Etter)에 의해 대중화 되었다.
4. 근본주의(Fundamentalism) 1865년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 당시 영국과 독일의 신학사조는 신앙의 근본으로 여겼던 제 교리인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구속, 부활, 기적, 재림 등을 부정하였다. 그런데 미국의 젊은 개신교 신학자들이 구라파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이와 같은 자유주의 사상을 미국에 전파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자연히 신앙의 열정이 식어지고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었다.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보다 사회개혁을 위한 교육을 강조하여 영적으로 침체하게 되었다. 이 때 신학적으로 보수주의 입장에 있는 교회들이 초교파적으로 단합하여 성서의 완전축자영감설(完全逐字靈感說) 강조하며 신앙과 실천에 대한 성서의 완전한 권위를 주장하였다. 즉 성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구속, 부활, 기적, 재림을 그대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근본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종의 기원」(1859)과 「인간의 혈통」(1870)을 쓴 다윈(Chales Darwin)의 진화론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러한 보수, 근본주의에 동조한 초교파적인 성령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이 오순절 운동의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다.
5.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회복주의(Restorationism)
이들은 사도행전에 묘사된 기사와 표적(Wonder Work and Signs) 즉 ‘이른비’를 기대했으며 그것은 곧 마지막 때에 성려의 능력을 쏟아 붓는 “늦은비”에 의하여 보충되리라고 믿었다. 이와 같이 오순절 운동은 19세기 구라파에서 일어난 복음주의와 사도신경을 믿는 기독교 정통주의와 성경을 축자영감, 완전영감으로 믿은 근본주의를 믿거름으로 하여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것이다.
B. 미국 오순절 운동의 조직
1. 초기 오순절 운동 현대 미국 오순절 운동은 성령세례의 외적 표적으로서 방언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 운동은 1900년 켄사스주 토페카(Topeka)에 있는 파함(Charles Fox Parham)이 세운 벧엘 성서 신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900년 10월 켄사스주 토페카에, 파함은 벧엘 성서 신학교를 세워 40여 명의 학생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시며 신유의 주님인 것을 가르쳤다. 그해 마지막 강의 시간에 파함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세례의 증거가 무엇인가’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그 결과 학생들은 성령세례의 증거가 “방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하여 파함을 위시하여 학생들은 삼일동안 밤낮 열심히 기도하던 중 1901년 1월 1일 새벽 오즈만(Agnes Ozman)양이 먼저 방언을 하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파함을 포함한 모든 신학생들이 방언을 하였다. 1905년 파함은 휴스톤으로 옮겨가서 ‘저녁 빛 성도’ 성결교파의 흑인 전도자였던 시무어(William J. Seymour)에게 영향을 끼쳤다. 시무어는 L.A에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의 js도는 다음해 봄, 즉 1906년 지금은 전설로 남아 있는 아주사(Azusa) 거리의 부흥운동에 불을 붙였다. 1906년에서 1911년까지 소규모였지만 한창 부흥하였던 동남부의 몇몇 웨슬레 분파가 아주사 거리의 사역현장을 방문하였던 사람들의 영향으로 오순절 파에 흡수되었다. 이 가운데서 흑인들로 구성된 그리스도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in Christ)와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와 오순절 성결교회(Pentecostal Holiness Church)가 포함되어 있다. 수년에 걸쳐 이와 같은 웨슬레 계통의 단체들은 동남부에서 유력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후 오순절의 메시지는 중부의 여러 주에서 개혁파(비 웨슬레파) 기독교인들 가운데 불을 붙였다. 1914년 중서부 지방에 어떤 교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수천 명의 신자들이 기독교 선교연맹의 개종자들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를 비로소 조직하게 되었다. 2년후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은 유니테리언파나 ‘오직 예수’(Jesus only)파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참된 물세례도 전통적인 삼위일체 이름으로 받은 것보다는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받아야 하므로 누구나 재세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오직 예수’파 가운데 가장 큰 교회로는 연합 오순절 교회(United Pentecostal Church)가 있다. 또한 유명한 여성 부흥사인 에이미 셈플 맥퍼슨(Aimee Semple Mcpherson)은 하나님의 성화를 이탈하여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4중 복음교회(Church of the Foursquare Gospel)로 병합하였다.
2.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
이 운동은 다른 말로 신 오순절주의(Neo-Pentocostalism)라고도 한다. 1951년 데모스 캬카리안(Demos Shakarian)이 이끄는 “순복음 실업인 연합회”(Full Gospel Business Men's Fellowship)와 오랄 로버츠(Oral Roberts)의 T.V 교회를 통한 신유 및 오순절 메시지가 기성 교단에 속한 신자들에게 별다른 저항없이 전해지게 되었다. 샤카리안에 의해 창설된 이 연합회는 초교파적으로 월회모임을 갖게 되었다. 평신도와 목회자의 교파에 좌우되지 않고 기도와 간증을 할 수 이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특성은 오순절의 체험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속한 교회에 충성을 원하는 신자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였다. 1980년도까지 이 연합회는 27개국에 2,300개의 지부를 형성하였으며 기존의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 교인들이 이 회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1960년 4월 3일 캘리포니아의 반 뉴이즈(Van Nuys)에 있는 세인트 마크(Saint Mark) 성공회 교회의 사제인 데니스 본네트(Dennis Bonnett)의 고백으로 교회의 공식 반대에 부딪쳐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되었다. 그는 1959년 오순절 체험을 하였다. 이로부터 은사주의 운동은 로마 카톨릭교회를 포함한 다른 교파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이 운동은 카톨릭, 성공회, 루터교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남침례교나 나사렛교에서는 별 성과가 없었다. 1960년대 중반에 은사주의자들의 기도 다락방은 전국 대학가에도 산재해 있었다. 이 운동은 동북부의 일류대학과 신학교에, 그리고 듀퀘즌(Duquesne), 포담(Fordham) 그리고 노트르담(Notre Dame)과 같은 카톨릭 대학에서 뿌리를 내렸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교단을 떠나지 않고 초교파적인 양상을 갖게 되었다. 또한 성령세례의 증거에 있어서도 오순절 교파처럼 방언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어떤 은사든지 나타나면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하여 오순절교파와 일치된 견해를 갖지 아니하였다.
3. 제 삼의 물결(Third Wave Movement)
이는 풀러 신학교의 교회성장학 교수인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박사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1980년대에는 주로 복음주의 계통의 신자들이 성령의 초자연적인 체험을 한 후 오순절 교파나 은사주의파에 속하지 않은채 기존교단에서 은사를 행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 사람으로는 미국 L.A에서 사역하는 능력 치유의 저자 죤 윔버(John Wimber)와 지금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 있는 빈야드(Vineyard) 운동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찬양사역과 말씀 그리고 신유, 방언, 방언통역, 예언, 입신 등 은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경우 1970년대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장로교를 위시하여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중 각 교단에 속한 교인들이 성령세례를 체험했으나 그 교단을 떠나지 않고 그들이 소속한 교회에서 활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열심히 전도하므로 큰 도전과 자극을 목사와 성도들에게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교단 부흥사들은 성령세례를 체험한 사람들로서 그 교단을 떠나지 아니하고 초교파적으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다.
③ 성령운동과 한국교회
1906년 시무어(William J. Seymour)에 의하여 L.A 아주사 부흥을 일으킨 이후 캘리포니아, 시카고, 뉴욕, 뉴저지, 플로리다, 캐나다 등지에 성령의 불길이 타 올랐다. 아울러서 이 무렵 성령의 역사는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한국 등지에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1907년도의 평양 대 부흥운동을 들 수 있다. 한국 하나님의 성회는 직접적으로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 바탕이 된 토양으로는 한국적 성령운동의 영향을 배재할 수 없다. 한국 하나님의 성회는 세계적 오순절 운동과 한국 자체 내의 성령운동을 모태로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A. 태동기
이 시기는 구한말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온 후 1907년 대 부흥운동을 일으킨 때까지 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부흥은 1903년 하디(Robert A. Hardie, 1865-1949) 선교사에 의해서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을 출발점으로 한다. 그는 몇 해 동안 한 사람의 전도 열매도 맺지 못한 것을 분석하여 보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자기가 배운 지식만을 전달한 결과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1903년 함남 원산에서 모인 선교사 집회에 설교 준비를 하는 중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는 성경 구절을 읽다가 성령충만을 받았다. 이후 1905년부터 1906년까지 미북 장로교 선교사 이길함(Graham Lee, 1861-1916)목사는 한국인 제직들을 위하여 특별집회를 인도하였다. 이 때의 상황을 블레어(William Newton Blair)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8월에 모였던 모임에서 전에 없이 큰 능력이 하나님의 영의 세계로부터 우리들에게 가장 알맞게 쏟아졌다....... 우리는 온 교회가 거룩하게 됨을 느꼈다.” 또한 전라남도 목포에서는 1906년 초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교회마다 성도가 차고 넘쳤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감리교와 장로교의 선교사들이 모여 낮에는 사경회로 성경공부를 하고 밤에는 부흥전도회를 가졌다. 이길함 선교사는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교회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엇인가 오고 있음을 느꼈다. 간단히 설교한 후 우리는 모든 회중과 함께 통성기도를 했다. 통성기도는 이 모임의 특징 중의 하나였다. 기도 후에 몇 명의 간증이 있었고 인도자가 일어나 찬송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전에 보지 못한 모임이 시작되었다. 기도 후에 참회하는 회중에게 하나님의 영이 즉시 임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며 목놓아 울었고 마루바닥에 뒹굴며 혹은 마루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하면 강한 바람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다고 한다.
이듬해 봄에는 길선주 목사가 서울에서 사경회를 열어 성령의 도를 가르쳤는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서울 지방의 교회가 대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1907년 목사가 된 후 별세하기 까지 28년간 전도사업에 헌신하였다. 그의 초기 부흥회에는 기사와 이적이 나타났고 그가 설교할 때 강단 아래서는 회개하는 순사(巡査)외 통곡하는 선교사가 있었고 병 낫는 사람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길선주 목사의 성령운동의 특색은 첫째, 새벽기도를 창시하여 회개운동을 전개했고 둘째, 요한계시록 10,000독을 하였으며 셋째로, 한국 교회에 부흥 사경회를 확립하였고 말세론을 통하여 신음하는 동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는 것이다.
B. 수난기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으로부터 1945년 해방을 맞이한 때라고 할 수 있다.
1. 김익두 목사(1874~1950)
김익두 목사는 1874년 황해도 안악군 대원면 형촌리에 태어나서, 1906년부터 1910년까지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목사안수를 받은 후 길선주 목사의 뒤를 이어 대중 부흥 집회를 인도하였다. 그는 1950년 6월 25일 동란이 발발한 후 10월 14일 신천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다가 공산당에 의하여 순교 당할 때까지, 만 50년간을 전도와 목회에 헌신하였다. 그의 성령운동의 특징은 첫째로, 영력(靈力)을 위하여 금식기도를 강조했고 둘째로, 전도를 위하여 외적인 기적과 이사를 행했는데 특히 신유의 은사를 강조했으며 셋째로,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백만 인의 영을 그리스도께로”라는 집단 성령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것이다.
2. 이용도 목사(1901~1933)
이용도 목사가 인도하는 예배는 항상 성령충만하여 통성기도 시간이 되면 여러 곳에서 방언과 예언이 터져 나왔다. 그는 주님의 얼굴을 보기 원했고 주님의 지시와 음성에 따라 살기를 힘썼다. 그는 수천 명의 성도가 모인 곳에서 기도를 시작한 후 기도만 4-5시간 하고서 폐회를 선언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성경만 몇장 읽는데 만인이 통곡하자 간단한 기도를 하고 폐회하고, 어떤 때는 설교를 10분 정도에 끝냈으며, 또 어떤 때는 4-5시간 혹은 6-7시간을 계속하는 등 성령의 인도 대로 설교하였다. 특히 십자가의 사랑을 설명할 때는 천 명이 넘는 군중이 눈물과 흐느낌의 물결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3. 최봉석 목사(1869~1944)
최봉석 목사는 1913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노방전도와 개인전도자로 크게 쓰임을 받았는데 전도 방법으로는 대화를 통한 회유 설득 방법이 아닌 다만 “예수 천당”만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소리를 외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다. 그는 신사참배를 반대했고 일본천황을 무시하였으며 미국인 선교사와 비밀 공작을 하였다는 죄목으로 1939년부터 1944년까지 옥중생활을 하면서, 1944년 3월 1일부터 옥중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였다. 이 40일 금식기도가 끝난 1944년 4월 10일 최 목사는 풀려나게 되었으나 집으로 돌아온지 3일 후에 75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그의 생전의 성령운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많은 기도를 통해 영력을 확보했고 둘째, 그 힘을 가지고 노방전도와 개인전도를 했다. 셋째, 전도 목사로서 목회자가 없는 교회를 다니며 교회의 부흥을 이룩하였다. 넷째, 개인적 성령운동으로 소단위 교회를 많이 세웠다.
C. 재건기(1945~1950)
1. 이성봉 목사(1900~1965)
이성봉 목사는 1925년 동양선교회 성서학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첫 개척지인 수원에서 목회할 때 병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들린 자들이 놓임을 받는 등 이사와 기적이 많이 일어나 구원 받는 자가 많았다. 그는 성결교회의 4중 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토대로 성령을 의지하여 체험적 신앙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신유의 체험운동을 전개하였고 재림의 복음을 외친 것이다.
2. 나운몽 장로(1914~ )
나운몽 장로는 1950년 6.25 동란 때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죽을 뻔 하였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그 후로 하나님께 온 몸을 맡겼으며 수도생활을 통하여 입신(入神), 방언(方言), 예언, 진동(震動), 신유(神癒)등의 온갖 신비체험을 다 맛보게 되었다. 나 장로의 기도와 능력 있는 설교는 많은 병자를 고쳤고, 그의 집회 때 여러 사람들에게 입신과 방언의 은사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원래 불교도 였던 그는 정식 신학교육을 받은 바 없었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후 해방이 되면서, 서울에 올라와 수표감리교회로 교적을 옮겨 1946년 장로가 되었다. 그의 신학에는 많은 오류가 있었다. 첫째, 공자, 석가가 동방의 성자이며 유?불교가 기독교 복음 안에 조화되는 것이 천국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단군을 아브라함의 친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셋째, 예수를 정도령(鄭道令)으로 입증하려는 경향이다. 넷째, 용문산을 성지로 보려는 동양적 풍수신앙의 잔영이 있었다. 이리하여 1956년에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41회 총회에서, 그해 4월에는 성결교에서, 1962년에는 감리교에서 이단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어서 그의 신학의 잘못을 시인하고 있다.
D. 확장기(1950~ )
1950년 6?25 동란은 민족분열 뿐 아니라 교회의 분열과 교회의 수난을 가져왔다. 1930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교회 분열의 조짐은 6?25 전쟁 이후 무섭게 번져갔다. 이러한 와중에서 무수한 신흥종파와 이단들이 한국 교회를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 교회는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신학 정립에 눈뜨기 시작하였으며 교회 분열에 대한 신학의 일치를 열망하게 되었다. 이 한국교회의 확장기의 여명에, 뚜렷한 한 줄기의 오순절 성령운동의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1. 한국 오순절 교회의 성립과 발전
1928년 3월 럼시(Mary C. Rumsey)선교사는 1906년 4월 L.A 부흥집회 때 성령세례를 받고 “한국으로 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준비하던 중, 미국 하나님의 성회 파송 선교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한국에 건너왔다. 그녀는 그 다시 구세군 조선 본영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허홍이라는 청년을 만났다. 허홍 청년에게 오순절 신앙에 대하여 설명하고 선교사업에 동참할 것을 건의한 바 쾌히 동의하였다. 그들이 전한 메시지는 “오순절 신앙이란 방언하는 것이다. 오순절 신앙이란 기도로서 병 고침 받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메시지를 가진 럼시 선교사와 허홍 목사가 5년 동안 전도한 결과 한국 최초의 오순절 교회가 서울 서빙고에 세워졌다. 1933년 봄에 일본 성서 신학교를 졸업한 박성산 목사를 서빙고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였다. 박성산 목사는 “성령세례의 표적은 방언이며 바람직한 기독교 신앙은 사회참여”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오순절 신앙이란 사도행전에 입각한 근본주의 신앙을 말하는 것으로 방언, 신유, 권능의 세 가지 성령세례를 받아야 이루어진다고 역설했다.
박성산 목사가 일본에서 귀국한 같은 해인 1933년 박성산 목사와 같은 일본 성서 신학교를 졸업한 배부근 목사가 고국의 복음화를 위하여 귀국하였다. 배부근 목사는 해방 후 더욱 전도에 힘썼으며 가평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6?25 동란이 일어나자 그는 가족과 함께 전북 이리로 내려 가게 되었다. 전세가 회복된 후에는 김두년 전도사와 함께 대구시 남산동에 오순절 교회를 세웠다. 이 당시 허홍, 박성산 목사는 서울을 토대로 오순절 신앙을 전파 하였다. 전라도에는 박귀님 전도사가 순천과 광주에서, 김성환 목사는 목포와 무안군 일대에서, 윤성덕 목사는 광주시 근교 광산에서, 곽봉조 목사는 대전에서 그리고 김길윤 목사는 거제도에서 오순절 운동을 전개하였다. 한국 오순절 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한국 오순절 운동이 전개된지 20여 년이 된 1950년 9월 말경 순천 오순절 교회를 시무하시던 박헌근 전도사의 공산군에 의한 순교이다. 6?25 동란이 일어나 공산군이 순천시를 장악하자 교회는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박헌근 전도사는 성도의 집을 비밀히 심방하며 신앙을 북돋아 주다가 마침내 공산군에 붙들려 순천 경찰서에 감금되었다. 거기서도 박 전도사는 오순절 신앙을 전하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마침내 순교하였던 것이다. 이 때가 1950년 4월 9일 전남 순천ㅇ서 제1회 기독교 오순절 대회가 열린지 5개월 후였다. 2.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조직과 발전
기독교 오순절 교회는 1933년에 교회가 세워진 후로 20여 년이 지나도록 10개 교회 500여 명의 교인 뿐 이었다. 물론 그 기간이 일제 압박의 통치 기간과 6.25의 동란 등의 시련의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선교 방법에 있어서 개교회의 차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허홍, 박성산 목사 등이 동지를 규합하여 1953년에 이르러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가 발족됨으로 비로서 조직화된 오순절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1953년 4월 8일 미 하나님의 성회에서 파송한 체스넛(Arthur B. Chesnut) 선교사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허홍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서울 남부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갖게 되었다. 이 회의 참석한 사람은 체스넛, 허홍, 박성산, 곽봉조, 배부근, 윤성덕, 박귀님 등 교역자 7인과 방청인 4인을 합하여 모두 11명 이었다. 이 때에 결정된 하나님의 성회의 신조는 다음과 같은데 그것은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신조를 요약하는 것이다.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순복음)의 신조
①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으며 절대 무오한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② 우리는 삼위(성부, 성자, 성령)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 ③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 동정녀 탄생, 무죄한 생애, 이적들, 승리적인 대속의 죽음, 육체의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심과 천 년 동안 온 세상을 통치하려 권능과 영광으로 이 지상에 재림하심을 믿는다. ④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공중 재림하실 때 교회는 휴거한다는 소망을 갖는다. ⑤ 우리는 죄의 정결함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회개하는 것임을 믿는다. ⑥ 우리는 성령으로 이룬 중생은 개인의 구원에 절대요소가 되는 것을 믿는다. ⑦ 우리는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믿는 자들의 기도를 응답하여 우리 육신의 병을 치료하여 주심을 믿는다. ⑧ 우리는 사도행전 2장 4절에 입각한 성령세례가 이를 구하는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⑨ 우리는 믿는 자에게 내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⑩ 우리는 구원 받은 자나 받지 못한 자나 다 부활하되 전자는 영생을 얻고 후자는 영벌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의 성회가 조직된 첫 해인 1953년에 각 교회 또는 지방회를 순회하면서 부흥회를 개최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 중에 1953년 10월에 박귀님 전도사가 개척한 광주교회를 중심한 천막성회는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았고 각 가지 은사가 나타나 초대교회를 연상케 하였다. 마지막 날에는 무등산 광주천에서 300여 명이 물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1960년대에는 한국 하나님의 성회의 도약의 시기였다면 1970년대는 국제적 도약의 시기요, 발전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하나님의 성회가 국제적으로 굳은 기반을 갖게 된 것은 교단 전체의 성숙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조용기 목사가 담임한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발전과 세계선교의 강화에 기인하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1981년 9월 일부 총회임원과 간부들은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당회장인 조용기 목사를 타 교단의 악의에 찬 조작 날조된 사이비 비난을 이용 제명 처분키로 결정하였다. 이와 같은 교단 분열로 맒암아 1982년 6월 29일 독자적으로 국내외 선교를 목적으로 재단 법인 순복음 선교회를 따로 설립하였다. 그러나 1984년 4월 미국 하나님의 성회 초회장 짐머만(T. F. Zimmerman) 목사가 내한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 하나님의 성회 교단에 복귀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국제적인 형제 교단으로서 대동한 동반자라는 조건으로 세계 하나님의 성회에 복귀하기로 하고 ‘예수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라는 새 교단을 창설하게 되었다.
순복음은 이렇게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와 예수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로 분열되어 각각 국내외 선교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는 분열의 제공자요, 원인자가 자기가 아닌 것을 실감하면서도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신앙의 양심에 주님의 음성이 들렸던 것이다. “너희 한 교단도 통합하지 못하면서 남북의 통일을 기원할 수 있는가?”. 더 이상 주님의 세미하면서도 명확한 음성을 반작할 수 없어서 1991년 새해 아침부터 통합을 추진 중 드디어 1992년 2월 14일 행정통합이 교단이 분열된지 만 10년 만에 이루었다. 그러나 양교단의 일부 교역자와 성도가 아직 하나되지 못하고 기도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뜻일진대 결국 빠른 시일 내에 완전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현재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교세는 교역자 3,000명, 교회 1,200개, 성도 1,200,000명으로서 한국의 3대 교단인 감리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오늘은 한국을 내일은 세계를” 복음하는 주역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2. 순복음 신학의 개요
오순절주의는 교회사상 일찍이 유래가 없는 성장을 거듭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기독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그 밖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제3의 세력(the Third Force)이란 호칭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순절계통의 교단을 체험을 위주로한 광신적 집단이나 정통에서 벗어난 신앙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이러한 경향은 몇 몇 학자들의 저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홀렌베거(W. J. Hollenweger)는 오순절주의를 반지성적이며, 반에큐메니칼(anti ecumenical)인 동시 복음주의적 좌파세력이라고 한다. 또한 니콜(J. T. Nichol)은 그의 저서의 서문에서 오순절주의자의 특징을 일곱가지 들고 있는데 어리석을 정도로 감정적이며 반지성적이고 극단적으로 열광적인 복음주의자라고 평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멘지(W. W. Menzies)도 오순절신학이란 것이 있느냐? 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어느 면에서 그 대답은 “아니오!”라는 것이다. 클라크(M. S. Clack)는 보다 노골적이고 심한 말을 하고 있는데 “20세기에 들어서 80년이나 지났지만 종교개혁 후 발전된 서구식 신학적 틀 안에는 표준적인 오순절신학이 없다”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오순절주의자들은 점차 학술적 훈련에 관심을 보이고 신오순절주의가 싹튼 후 학술적 문헌을 양산하고 있으나 가용한 문헌과 출처, 신학적 및 문학적인 배경이 빈약하여 표준적인 신학이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시키고 있다라고 한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오순절 신학을 위주로한 신학논총이 정기적으로 발간되어 우리의 믿음의 정체(identity)를 밝히고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Ⅱ. 오순절주의의 뿌리
오순절주의의 신학적 뿌리를 더듬어 보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그 이유는 오순절신학이 다양한 신학적 요소로 구성된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멘지(W. W. Menzies)는 그 뿌리를 프린스톤신학과 미국의 부흥주의신학에 세대주의의 흐름이 가미된 신학사상을 이어받은 근본주의를 하편으로 하고 웨슬레와 비웨슬레의 신학사상위에 오버린(Overlin)신학이 가미된 성결운동을 다른 편으로 하는 두 흐름이 합쳐진 것으로 본다. 이에 비해서 사이난(V. Synan)은 그 뿌리를 19세기의 복음주의적, 감리교적 및 완전주의 운동(perfectionist movements)에 두고 있으며 20세기 초에 시작된 미국의 오순절주의는 영국의 부흥주의 운동과 케직집회(Keswick Conference)를 중심으로한 “보다 높은 삶”(Higher Life)을 지향하는 운동과 전천년휴거설을 강조하는 예언운동의 결과로 보고 있다. 오순절 운동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브룬너(F. D. Brunner)는 오순절 운동의 계보를 초대교회까지 소급하여 기술하고 있다. 즉 열광적인 고린도 교인들(고전 12:-14:)로부터 시작하여 영지주의자들, 몬타누스주의자들을 거쳐 아래와 같이 19세기 후반의 “보다 높은 삶”을 표방하는 성결운동이 20세기에 들어서 오순절 운동이 된 것으로 이해한다.
고린도 교인들 → 영지주의자 및 몬타누스주의자 → 신령주의자들(중세 및 종교개혁 이전) → 급진 좌파 또는 재세례파 및 신비주의자들(종교개혁시대) → 퀘이커교도 (종교개혁후) → 경건주의자, 웨슬레주의자 및 부흥주의자 운동(17세기-18세기의 독일, 영국 및 미국) →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 미국의 찰스 피니(19세기 전반) → “보다 높은 삶”과 성결운동(19세기 후반) → 오순절 운동(20세기)
이에 비하여 앤더슨(R. M. Anderson)은 오순절 운동의 뿌리를 가까운 19세기의 성결운동과 근본주의에서 찾는다. 이상의 여러 견해를 종합해 볼 때 오순절주의의 뿌리가 근본주의와 성결운동의 흐름에서 나왔다는 것을 연역할 수 있다.
Ⅲ. 오순절주의의 유형
오순절주의의 유형 역시 학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잇다. 사이난은 정통오순절주의자들(Classical Pentecostals), 개신교은사주의자들(Protestant Charismatics), 가톨릭은사주의자들(Catholic Charismatics), 독립집단(Independent Groups), 및 제3세계토착집단(Third World Indigenous Group)으로 구분하는데 비하여 바렛트(Barrett)는 선구자적 오순절주의자들(Pre-Pentecostals), 정통오순절주의자들, 토착화된 비백인준오순절주의자들(Non-White Indigenous Quasi-Pentecostals), 개신교은사주의자들, 제3의 물결주의자들(Third Wavers), 및 숨은 은사주의자들(Crypto-Charismatics) 등으로 구분한다. 이 지면에서는 정통오순절주의자들, 개신교 은사주의자들, 가톨릭은사주의자들, 및 제3의 물결주의자들에 대해서 쓰리고 한다.
1. 정통오순절주의자들(The Classical Pentecostals)
이 유형의 오순절주의자들은 1901년 토페카(Topeka)에서 일어난 파-함(Charles Fox Parham)의 가르침과 190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된 씨무어(William J. Seymour)의 사역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특히 성령세례의 첫 물리적 표적으로 방언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성결운동의 영향을 받은 파-함은 순간적인 구원의 위기체험을 제2의 은혜의 사역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앤더슨은 이 운동을 웨슬레-성결운동에서 나왔다고 본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웨슬레 성결운동과 개혁복음주의적 부흥주의(Reformed evangelical revivalism)가 산파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앤더슨은 사이난이 웨슬레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지만 웨슬레적인 오순절주의자들은 세대주의, 전천년설, 및 성령세례에 대한 케직의 교리를 받아드림으로써 이루어졌다고 보며 웨슬레 전통에서 발전하였다고 주장한다.
2. 개신교 은사주의자들(Protestant Charismatics)
1960년에 시작된 개신교 은사주의자들이며 일명 신오순절주의자들(Neo Pentecostals)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주로 칼빈주의적 전통을 가진 개혁교회로붙어 파생된 오순절주의자들로서 기존교회로부터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추방된 집단과 교회내에 잔류하면서 은사운동을 전개하는 집단으로 세분할 수 있다. 전자는 루터 및 화란교회(1947)의 브레데슨(Harold Bredeson), 메노나이트인 더-스타인(Gerald Derstine, 1954), 감리교회의 타이슨(Tommy Tyson, 1954) 등이 속하며 후자에는 감독교회의 윈클러(Richard Winkler, 1960) 및 벤넷트(Dennis Bennet)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성령세례의 최초의 증거로써 방언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이 집단에 속하는 신자들은 대체로 사회?경제적 신분이 높으며 고등교육과 신학교육을 받고 있다. 예배에 있어서도 지나친 감정적 표현을 자제하며 비교적 예전과 성례를 중시하고 있다.
3. 가톨릭 은사주의자들(Catholic Charismatics)
1967년 피츠버그에 있는 Duquesne 대학에서 은사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정통오순절주의자들처럼 성령의 체험과 이에 수반된 방언을 주장하지만 은총의 제2사역과 같은 사고방식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의 이 운동은 개신교 오순절신학이나 문화적인 영향을 거이 받지 않고 독자적인 형식과 구조를 가지고 발전하였다.
4. 제3의 물결주의자들(Third Wavers)
사이난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으나 이상의 유형외에 제3의 물결을 오순절 운동의 유형으로 추가할 수 있다. 와그너(C. P. Wagner)는 1982년에 제3의 물결이란 용어를 만들어 냈다. 이 운동은 1980년에 나타난 운동으로 정통오순절 운동(제1의 물결)이나 은사운동(제2의 물결)과 유사하면서도 상이하다. 주로 복음주의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병고침, 축귀 및 예언의 은사 등 능력 체험을 강조한다. 방언은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성령세례의 첫 표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유형에 속한 사람들은 약 2천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Ⅳ. 오순절신학과 쟁점
오순절신학의 주요 쟁점은 복잡한 그 뿌리로부터 이미 추측이 가능하다. 오순절주의에 영향을 미친 2대 주류인 근본주의와 성결운동만 보더라도 쟁점의 근본적인 원인은 각 종파가 성장한 신학적 배경과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및 문화적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클라크는 오순절신학과 비오순절신학간의 신학적 파라미터는 상호 배타적이 아니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잘 해야 그 결과는 혼성물이 될 뿐이며 그 내용은 합리적인 학문적 형식이나 또는 교리적 개념으로 다른 신학과 교류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오순절신학을 형성하고 있는 한 주류인 근본주의는 프린스톤신학과 세대주의의 연합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들의 근본 교리는 오순절 신학의 교리와 크게 다를게 없다. 성경의 무오설과 동정녀 탄생을 믿으며, 대리적인 속죄, 예수의 신체적 부활, 및 문자적, 물리적 재림을 믿는다. 1948년 근본주의자들은 복음주의 전국연합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를 조직하였으며 오순절주의자들도 이에 포함시켰다. 앤더슨은 근본주의나 오순절주의는 공히 성서적 문자주의(biblical literalism)을 주장하기 때문에 오순절주의를 근본주의 일부로 간주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1. 성화
성화(sanctification)와 성결(holiness)은 그 의미가 유사한 것 같으면서도 신학적 의미는 다르다. 뿐만 아니라 종파에 따라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오순절주의에 있어서도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즉 개혁신학에 동조적인 오순절주의자들은 성화를 은혜의 두 사역(two works of grace)으로 보는 반면 웨슬레주의에 동조적인 오순절주의자들은 세역사로 보고 있다. 전자에 속한 사람들은 피니(C. G. Finny), 무디(D. L. Moody), 토레이(R. A. Torrey), 심슨(A. B. Simpson) 및 더함(W. H. Durham) 등이며 후자의 경우는 톰린손(A. J. Tomlinson), 마손(C. H. Mason), 캐쉬웰(G. B. Cashwell), 크로우포드(F. Crawford), 파아함(C. F. Parham) 및 씨무어(W. J. Seymour) 등이다.
1) 3단계의 은혜의 역사
19세기의 성결운동은 영국의 케직운동과 미국의 기독인선교연합(CMA :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웨슬레가 주장한 성화를 믿었다. 즉 회심의 체험과는 다른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또는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란 순간적인 체험이었다. 이 개념은 19세기 말엽이 되면서부터 발전되어 사람들은 온전한 성화를 성령세례와 같은 것으로 보되 이 체험의 첫 표적이 방언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웨슬레에 동조적이었던 파함과 씨무어는 이를 방언을 수반한 성령세례로 수정하였고 제3의 은혜의 역사가 아니라 성결된 삶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능력의 은사(gift of power)로 보았다. 반면 초기의 오순절 지도자들은 온전한 성화와 성령세례를 두 개의 분리된 체험으로 믿었고 성령세례에는 반드시 방언의 은사가 수반된다고 믿었다. 즉 중생/회심, 온전한 성화 및 성령세례의 3단계로 된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감리교도나 웨슬레주의의 배경을 가진 성결운동자들이며 사도적 신앙집단(Apostolic Faith Group),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Cleveland, Tenn.), 오순절성결교회(PHC) 등이 이에 속한다.
2) 2단계의 은혜의 역사
1910년 더함은 웨슬레주의자들의 온전한 성화개념을 비판하고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완결된 역사(finished work)를 주장하였다. 즉 2단계의 은혜의 역사를 주장하는 그는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가 이룩한 역사는 신자가 칭의를 받는 순간부터 전생애를 통하여 계속되는 성화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후속적인 은혜의 역사가 필요치 않다고 이해하였다. 개혁신학에 동조적인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웨슬레가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한 일생동안의 성장과정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완전 상태는 구원받은 순간부터 시작되겠지만 오직 영원에서 완성된다고 본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은 점진적으로 계속되고 있으나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불순함과 불완전함을 면하기 어렵다. 칼빈은 이 세상에서 죄없는 삶은 불가능하다고 보며, 완전 또는 온전한 성화는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만 달성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2단계로 보는 집단은 넷이다. 즉 청교도들(Puritans) 또는 개혁파의 인친 자(Reformed Sealer), 웨슬레주의자 및 웨슬레 성결운동 및 전통오순절주의자들이다.
3) 양분된 오순절주의 진영
3위 1체적 오순절주의자들을 웨슬레-성결주의와 침례교적 오순절주의로 양분시킨 원인이 바로 “완결된 역사” 논쟁이다. 더함의 논리는 “다 이루었다”(요 19:30)는 예수의 말씀에 근거하여 신자를 위한 구원과 성화가 다 완수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 안에서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점진적이다. 앤더슨은 이러한 분열 현상을 사회?경제학적인 면에서 부연하여 말하고 있다. 즉 그에 의하면 완결된 역사를 주장하는 오순절주의자들은 제2의 역사를 주장하는 오순절주의자들 보다 도시적(都市的)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부 및 흑인 오순절주의자들은 성화의 제2의 역사를 보다 강력하게 집착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교단의 배경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교리적 측면에서 볼 때 이들 양측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옳다고 볼 수 있으나 신자가 그 생애에서 체험하게 될 성화의 과정은 순간적이며 즉각적인 성화와 점진적인 성화의 양면이 있다고 본다. 즉 중새/회심시에 체험하는 위치적 또는 신분적 성화(Positional Sanctification)와 그 후에 계속되는 점진적 성화(progressive santification)이다. 이 세가지의 개념이 중복되거나 또는 학자에 따라 한 개념에 다른 개념을 포함시킬 수 있으나 세 개의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 성령세례
오늘날 성령세례는 루터시대의 이신칭의 만큼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가 성령세례에 대해서 특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에 대해서 다양한 신학적인 해석이 주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도가 비록 긍정적이더라도 왜곡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화에서 언급된 것처럼 그 단계에 따라 큰 쟁점이 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복음주의적 견해는 중생/회심과 성령세례를 같은 구조로 생각한다. 성례적 견해에서는 이에 비해서 세례나 견신례를 입문(initiation)의 성례로 본다. 이 두 견해는 성령세례를 중새/회심 또는 세례/견신례와 동일하게 생각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갖게 되는 단계를 한 단계로 생각한다. 2단계의 구조는 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즉 일단계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갖고(중생/회심) 2단계로 정통 웨슬레주의가 말하는 소위 “제2의 축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성령세례를 제3의 축복으로 간주하는 경우 3단계 구조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단계론자로서는 던(J. D. Dunn)과 칼 바르트를 들 수 있다. 던은 성령세례를 회심-입문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보고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호칭될 수 있다고 말한다. 칼 바르트는 성령세례를 하나님이 개인을 위해 전 그리스도인의 삶을 준비하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본항목에서는 성령세례가 과연 중생/회심과 구별되며 분리된 체험인가하는 문제와 성령세례가 주어지는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논하기로 한다.
1) 분리성(separability), 구별성(distinctiveness) 및 후속성(dubsequence)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세례를 중생/회심과 분리된 체험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는 네 가지가 있다. 즉 성령세례가 회심의 일부분이며 방언과 같은 물리적 증거가 없다는 주장(Dunn 및 Bruner 등), 회심의 일부분이며 방언이 수반된다는 주장(Oneness Pentecostal Group), 성령세례는 통상 중생 후에 일어나며 방언이 수반되지 않는다는 주장(웨슬레 성결 집단), 및 성령세례는 통상 중생 후에 일어나며 방언의 표적이 수반된다는 주장(미하나님의 성회의 정통 오순절주의자들) 등이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분리성과 구별성이며 후속성은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 분리성(separability)이란 본질(nature)과 정체성(identity)에서 특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질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회심의 본질과 성령세례의 본질은 분리되어 있으며 특이성이 있다는 것이다. 구별성(distinctiveness)은 특성(character)과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비하여 후속성은 분리성과 구별성 개념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회심과 성령세례는 동시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논리적으로 볼 때 회심은 성령세례에 선행하여야 한다.
위에 기술된 네 가지의 예에서 방언의 수반 여부를 제한다면 문제는 성령세례가 회심의 일부라는 견해와 후속하는 즉 분리된 사건이라는 견해로 양분할 수 있는데 던이 주장하고 있는 회심-입문(conversion-initiation)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출발점부터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한다는 개념에 성령세례를 포함시킨 반면 오순절주의자는 이를 불신자가 회개하고 믿음을 가짐으로 즉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한 후에 일어나는 체험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던이 주장하는 conversion-initiation은 일련의 과정(process)이지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순절주의자들은 분리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도행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그 성경구절은 오순절날의 성령강림(행 2:1-13), 사마리아의 부흥(행 8:4-19), 바울의 체험(행 9:1-19), 고넬료 및 이방인의 체험(행 10:44-48, 11:15-17) 및 에베소 신자의 경우(행 19장)이다. 성령세례를 회심과 별도의 체험으로 보는 어-빈(H. W. Ervin)이나 호-톤은 자연히 긍정적으로 이를 풀어나가고 있다. 즉 120문도의 겨우 이들은 이미 성령이 강림하기 이전에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신자였으며 사마리아인들의 경우에도 빌립이 오기 전에 예수를 영접하고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여 새사람이 된 상태이며 고넬료의 경우는 특수한 사례로써 중생과 성령세례가 동시에 발생한 경우로 본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회심과 성령세례의 체험ㅇ든 달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에베소 신자의 경우는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구원을 받았거나 최소한 성령강림전에 중생하였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순절주의자들은 사도행전의 사례 중 세 사례(오순절날 사건, 사마리아 사건 및 바울의 회심)는 후속적인 성령세례의 체험을 말해주고 있으며 나머지 두 사례는 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던은 이에 대하여 이견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120문도는 믿음에 대한 그들의 반응과 헌신이 미숙하였기 때문에 신약성경적인 정서로 볼 때 오순절날 이전까지는 그리스도인으로 볼 수 없으며 고넬료의 체험은 단일 사건이며 회개, 구원, 성령세례 같은 용어는 모두가 고넬료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말과 동의어라는 것이다. 3일간에 바울이 체험한 사건도 단일 사건으로써 바울이 아나니야에 의해서 눈을 뜨게 될 때까지 바울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에베소 신자의 경우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한 것이 아니라 신앙을 고백한 제자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냐고 질문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고 다시 세례를 주기전까지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던의 회심-입문의 논리에 의하면 누가 기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회심과 분리된 성령세례의 사례를 하나도 기술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브룬너의 입장도 던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의 세례는 곧 성령세례를 뜻 한다. 그러나 던과는 달리 브룬너는 오순절날의 사건과 사마리아인의 경우를 역사적인 정황을 고려하여 예외적인 사례로 본다. 즉 예수의 승천과 성령의 은사를 교회에 주기까지의 기간을 120문도들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다른 한 경우는 사마리아인의 경우이다. 브룬너는 이 사례를 교회가 유대권을 넘어 그 밖으로 첫발을 디딘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락한 잠정적인 조치로 본다. 그러나 그 이외의 경우, 성령세례는 그리스도교적 물세례와 분리할 수 없으며 동일한 것이라고 한다. 결국 이 논쟁을 보다 정확히 가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 것 같으며 이 문제는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2) 성령세례의 목적
성령세례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령세례에 관한 궁극적인 문제는 바로 성령세례의 목적과 관련된다. 브룬너는 성령의 첫 번째이며 가장 중요한 능력은 우리를 그리스도에 연결시켜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념은 Hoekema 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성령세례를 구원을 위하여 부여되는 성령의 부여이며 이 부여가 있기 전에는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신자가 아니라고 한다. 던 역시 성령세례는 기본적으로 입문적(initiatory)이라는데 의미가 있으며 능력부여는 부차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순절주의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현재까지 역동적이며 충만한 성령의 능력부여는 오직 성령세례의 체험을 통해서만 온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윌리엄즈(J. R. Williams)는 성령세례의 필요성을 구원보다 신자들에게 봉사를 위한 능력부여로 보며 펄만(M. Pearlman)이나 멘지(R. P. Menzies)도 같은 의견이다.
스트론스타드(R. Stronstad)는 만일 선물로 주신 성령이 예수님과 초대교회에 능력적이었거나 직업적인 것(vocational) 이었다면 오늘날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체험하는 것도 같은 차원일 것이라고 말한다. 미하나님의 성회의 교리서인 성서의 교리(Bible Docrines)에서도 성령세례는 본래 개인에 있어서의 성결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를 위한 능력부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볼 때 성령세례의 목적 역시 던의 회심-입문이라는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오순절주의의 뿌리와 유형을 개관하고 지면의 제한으로 중요 교리 중 성화와 성령세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오순절주의가 개혁파의 특색을 지니면서도 어쩔수 없이 평행선을 그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성령세례를 그리스도인의 입문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개념은 뛰어 넘을 수 없는 간격을 두게 할 뿐만 아니라 구원의 순서(ordo salutis)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리에 있어서 정통오순절주의적 영향을 받고 있는 순복음신앙은 개혁주의와 해석이 다른 몇 가지 중요한 교리적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성령세례에 있어서 최초의 표적인 방언 문제를 비롯하여 종말론에 있어서 전천년설 및 세대주의적인 해석, 병고침을 비롯한 일부 영적은사의 중단론 및 축귀의 문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문제는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공격하기 전에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 순복음 신학의 정체성
4. 순복음 신학의 방법론
Ⅳ.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
지난 30년간 한국 교회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지켜보았으며, 필자의 마음은 완전히 사로잡히었다. 한국전쟁은 나라를 황폐시키었고, 산업과 교통과 통신의 기본적 시설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집과 산업이 붕괴되었으며, 가족은 이산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한국처럼 고통을 당한 나라가 20세기에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참혹학 고난을 당했다. 종전과 함께 찾아온 참담한 비극 직후의 영적 공백 역시 참으로 심각했다. 환멸과 속수무책의 상태가 만연되었다. 휴전이 협정된 지 20년이 안된 1970년대 초에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었던때를 기억한다. 매섭게 추운 결울임에도 불구하고 난방이 갖추어진 공공건물은 없었고, 도시는 거무죽죽하고 지저분하였으며, 가난한 흔적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나라 전체가 우울과 슬픔에 처하였었던 시기였었다. 그리고, 한국의 첫날 밤을 결코 잊을 수 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서울의 한 신학교 캠퍼스에 거하였으며, 친절한 선교사들의 돌봄을 받고 있었다. 한 추운 날이었지만 나의 방에는 온기가 없었다. 동트기 훨씬 이전의 시간에 창밖에 있는 눈 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신실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새벽 기도회를 위하여 학교 채플에 모이고 있었다. 당시만 하여도 한국의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한국 신자들의 열심과 헌신은 현대교회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30년 동안 일어난 변화는 얼마나 놀라운가! 한국은 잿더미에서 오늘날 가장 능력 있는 경제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산업과 경제의 발전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효율적인 교통과 통신 시설이 갖추어진 현란한 도시들은 바로 수 년 전 상황에 비하여 얼마나 대조적인가! 나라의 외형적 변신보다 더 놀라운 현상적인 변화는 기독교 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영향이다. 한국전쟁의 종전 당시에는 지극히 소수의 공동체에 불과하였었던 한국 기독교가 인구의 모든 부분에 놀랍도록 접근하여 급성장하였으며, 전 인구의 삼분의 일 이상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이토록 주목할 부흥의 중심에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중요한 한 인물은 아마 조용기 목사님일 것이다. 조 목사님은 그로 하여금 세계에서 최대 대형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이루게 한 능력의 원천을 자신의 성령님 체험으로 돌리고 있다. 조 목사님은 오순절 전통 내에서는 물론 국내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삶과 교육 내용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 소재한 하나님의 성회의 대형 교회들의 목회자 대부분은 조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세계 하나님의 성회 총재(the Chairman of the Assemblies of God Fellowship)으로서의 조 목사님은 전 세계의 오순절 동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지도자라는 것을 그들이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의 오순절 교회들을 명시하는 가치관들에 대하여 보다 분명한 이해를 하기 위하여서는 조 목사님의 가르침을 반드시 포함시키어야 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조 목사님의 성령론을 오순절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다. 성령님에 대한 조 목사님의 이해와 그의 성령 체험이 자신의 사역의 동기가 되며 힘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저서들을 읽었고, 그의 설교들을 들었기 때문에 그는 글자 그대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었다. 때문에, 그의 가르침이 표준적인 오순절 동역자들에게 그러하다. 조 목사님이 매우 중시하면서 사용하는 술어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오순절 교회들내에서 항상 분명하게 이해되고 있지는 않다. 조 목사님의 신학을 한국 사회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해하여 그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를 피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그의 설교들과 저술들을 읽을 때 반드시 마음에 담을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진리는 어느 한 상황 속에서 손쉽게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독특한 역사와 조 목사님의 사역 초기의 특별한 주변 상화 때문에, 하나님은 매우 중요한 시점에 조 목사님을 사용하시어 낙심 가운데 있는 백성들이 들어야할 몇 가지 핵심적인 주제들을 듣도록 하시었다: 희망, 구원, 권능, 높은 기대등의 주제들. 그러한 주제들이 하나님이 계시한 모든 것들은 확실히 아니지만, 참으로 낙심 가운데 있었던 백성들을 위한 긍정적인 가능성의 메시지,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희망의 메시지를 그 백성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조 목사님을 선택하여 사용하시었다. 조 목사님은 특별한 메시지가 필요한 특별한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으로 여겨지어야할 것이다. 성령님에 대한 조 목사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이곳에서 다룰 때 상황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1. 성령이해의 배경
멘지즈는 서론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사역 초기의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 체험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한다.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을 한국 사회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해하여 그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를 피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조용기 목사님의 사역, 특별히 그의 사역 초기의 시대적이고 전기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그의 신학을 바르게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멘지즈의 이러한 이는 그의 신학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멘지즈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한다.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은 신학대학원의 강의실이나 도서관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은 기도원이나 부흥회를 통하여 출발한 것도 아니다. 그의 신학은 첫 목회 현장에서 잉태되었고 확대되었다. 그러나, 멘지즈가 조용기 목사님의 시대적 상황과 전기적 경험을 강하고 자주 강조함으로써 그의 신학이 한 시대의 상황과 한 개인의 경험의 산물로 여겨지는 듯한 인상을 줄 수가 있다. 상황과 신학이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은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은 개인적이고 시대적이며 동시에 공간과 시간을 넘어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경험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삶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있지만, 보편적이기에 우리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듯이,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과 사역이 그러하기에 그가 한국의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의 한국과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멘지즈가 조용기 목사님의 시대적이고 전기적 “상황”을 강조한 나머지 다른 한 중요한 요소가 간과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즉, 조용기 목사님은 상황의 문제로 인하여 “감동”되었고, “성경”의 해답으로 인하여 “감동”되었으며, “성령님”의 능력의 임재로 “감동”되었고, 신자의 문제가 해결됨으로 인하여 “감동”되었으며, 그들을 “감동”시켜 타인을 돕는 증인과 봉사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는 오중적 감동의 신학이다. 그의 신학은 상황적일 뿐만 아니라, 성서적이고, 체험적이며, 치유적이고, 실천적인 오중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시대와 개인의 상황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그의 내면의 영적 감동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의 신학은 상황과 동시에 오중적 “감동”에 대한 선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떼의 고난에 대한 감동, 말씀과 복음이 주는 해답으로 인한 감동. 성령님의 체험으로 인한 감동, 양떼의 고난이 해결되는 감동, 그리고, 그들이 모든 족속을 돕는 것을 보는 감동! 양떼로 인한 감동, 말씀으로 인한 감동, 성령님 체험으로 인한 감동, 문제 해결로 인한 감동, 그리고 돕는 것을 보는 감동. 이러한 측면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은 오중적 감동의 신학이다. 성서의 원저자가 감동되었듯이, 독자들이 감동될 때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칼빈이 이중적 감동설을 가르치었다면, 조용기 목사님의 신한에 대한 이해는 그가 오중적으로 감동되었듯이, 그의 신한적 독자가 오중적으로 감동될 때 그의 신학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멘지즈가 조용기 목사님의 주변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바른 지적이지만, 조용기 목사님의 오중적 감동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부가되어야 할 것이다.
조용기 목사는 그의 삶에서 자신의 성령이해의 바탕이 된 두 번의 결정적인 신앙 경험이 있었다. 그 하나는 성령세례의 체험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격을 지니신 성령에 대한 계시의 경험이었다. 이런 실제적 경험들이 조 목사의 성령론의 뼈대를 형성했다. 특히 후자가 그의 성령이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 조용기 목사의 첫 번째 성령세례 체험
조용기 목사는 “성령세례란 무엇인가?”라는 설교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경험한 성령세례를 받은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모든 죄를 회개하고 속이 시원했습니다. 그러자 불같은 성령이 임하시기 시작했는데, 나의 혀가 꼬부라지고 입술이 떨리더니, 방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고함을 치고 기도해도 방언만 유창하게 나오는데, 생수가 뱃 속에서 강같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조 목사는 자신의 이런 성령세례의 경험을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강림의 사건들을 다룬 후에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세례를 “위로부터 능력을 입는 것”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담대한 “복음 전파를 위한 능력”을 받는 것으로 이해한다. 조 목사의 첫 성령체험은 이런 맥락에서 언급되고 있기에, 그는 성령을 복음 증거를 위한 “능력의 영”으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계시를 통한 성령이해
조용기 목사는 그가 목회하는 교회의 성도가 약 4,000명에 도달하였을 때, 갑자기 교회의 성장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열심히 설교하고, 기도해도 교회는 더 부흥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하루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모든 성도들이 성전을 떠난 후, 그는 성전의 한 구석에서 계속적인 교회 성장을 위하여 홀로 기도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비몽사몽에 빠졌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와의 대화가 있었다. “ 내 아들아, 지금보다 더 큰 교회를 갖고 싶은가?” 나는 대답했다. ‘아버지, 물론이지요. 저는 제 교회가 4,000명을 넘어 성장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나의 거룩한 바람인 성령과 확실한 교제를 가져라.’ 이 말을 듣고 나는 혼자 속으로 웃었다. ‘아버지, 저는 성령에 대해 모든 것을 압니다. 저는 거듭났습니다. 성령은 제 안에 이미 내주해 계십니다. 저는 성령세례를 체험했습니다. 저는 방언도 말합니다. 제가 성령에 관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합니까?’... ‘내 아들아, 그것이 너의 문제다. 성령은 체험해야 할 사물이 아니다. 성령은 장엄한 인격적 존재다. 너는 그를 예배하고, 경외하고, 감사하고, 그 분과 교제를 가져야 한다.’“
위와 같은 성령에 대한 심오한 계시는 조용기 목사의 성령이해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런 깨달음이 있기 전까지는 성령을 하나의 체험의 대상으로 취급하였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이런 극적인 깨달음 이후, 그는 성경을 자세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도행전을 읽던 중, 초대교회(제자들)가 성령을 분명히 인격을 지니신 분으로 대우한 것을 깨달았다.(행 13:2-4, 15:28 등). 하나님의 계시를 성서에서 확증한 순간이었다. 그 후, 그의 성령이해는 “체험의 대상”에서 “인격적 교제의 대상”으로 철저히 전환되었다. 그는 성령을 무엇보다도 “인격을 지니신 분”으로 철저히 인식하고, 인격적 성령과의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늘날 그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라”는 표현은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성령과의 진지한 교제를 갖기 시작했을 때, 자신의 삶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가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놀라운 성령의 감동과 능력을 그의 마음에서 뿐 아니라 설교에서도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즉시로 교회는 다시 성장되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을 통하여, 그는 교회 성장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역사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았다.
본 연구자는 상기의 두 성령 경험이 조용기 목사의 성령이해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의 성령이해는 “능력”에서 출발하여 “인격”으로 그 중심개념이 이동되었다. 나아가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에 있어 성령이 단지 인격적 존재일 뿐 아니라, “신적 인격”으로 이해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에 있어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3위이시다.
구약에 나타난 성령
1)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영
구약에서 하나님의 루아흐는 우선 창조와 관련하여 나타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ruah 'elohim)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조용기 목사는 창조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루아흐를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신 창조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해한다. 그는 창조의 사역에 있어 하나님의 영과 말씀과의 긴밀한 연관을 본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그 말씀의 본을 따라 창조의 역사를 하셨다. 이처럼 그는 하나님의 영과 말씀은 “창조의 동역자”라고 말한다. 조 목사에 의하면 생명의 공급자로서의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창조에도 관여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생명의 숨(neshmat hayym)을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nepesh hayah)이 되었다(창 2:7). 구약의 다른 곳에서 ‘숨’은 ‘영’의 동의어로서 사용되고 있다. 욥기 33장 4절에서 하나님의 ‘영’(ruah)은 전능자의 ‘숨’(neshmat)과 일치한다. 따라서 인간 창조에 있어 하나의 영은 자연과 인간의 창조에만 관여하실 뿐 아니라 피조물의 보존에도 관여하신다고 말한다. (시 104:29-30)
2) 은사의 원천과 능력으로서의 하나님의 영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의 영을 생명의 원천일 뿐아니라 각종 은사의 원천으로 바르게 이해한다. 요셉의 바로의 꿈을 해석한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창 41:38-39). 하나님의 영은 요셉에게 바로의 꿈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주셨다. 또한 브사렐이 성막과 성막의 여러 기구들을 공교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충만히 임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주셨기 때문이다(출 31;3; 35:31).
하나님의 영은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모세가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짊어질 수 없다고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임한 영을 모세가 데려온 70인의 장로들에게도 임하게 하셨다(민 11:17, 25). 여기서 모세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의 전이는 지도력의 부분적 전이를 의미한다. 모세는 임종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후계자로 세운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을 때 그는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여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었다(신 34:9). 또한 하나님의 영은 왕을 세우는 일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삼상 10:6,9 10; 16:13). 조용기 목사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이 “지혜”와 “지도력” 같은 은사를 부여할 뿐 아니라 “능력의 영”으로도 나타난다고 옳게 말한다. 이것은 특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사사들을 통해 잘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에게 그의 영을 보내셔서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게 하셨다(삿 3:8-10; 6:34; 11:29).
3) 하나님의 영과 종말
조용기 목사는 구약의 영을 말세에 부어질 종말론적 영으로도 이해한다. 이 종말론적 영은 우선 메시야와 관련되어 있다. 이사야는 미래에 완전한 평화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 나라는 주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메시야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사 11.1ff). 이런 주의 영의 종말론적인 강림에 관한 예언은 만민에게 부어질 것을 바라보는 요엘에게서 정정에 이른다(욜 2.28-32).
요약하면,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함께 하셨고 피조물의 보존에도 관여하셨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선택된 일군들에게 각종 은사(지혜, 명철, 지식 등)을 부여하시는 원천으로 이해된다. 또한 하나님의 영은 70인의 장로, 여호수아 그리고 왕들 위에 부어져서 그들이 지도력을 발휘하여 그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그리고 사사들을 통하여는 능력의 영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하나님의 영은 장차 평화의 나라를 세울 메시야와 만민에게 부어질 “종말론적인 영”으로 이해된다. 조용기 목사는 구약의 성령론을 개관한 후, 구약시대에도 “성령님과의 동역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그의 성령론이 다분히 “실천적”이요 “사역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그는 구약시대의 성령의 역사의 특징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원하실 때, 소수의 지도자들을 선택하셔서 그의 영을 부으시고 맡은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예수와 성령
1) 예수의 탄생
예수의 탄생이야기는 사복음서 중, 마태와 누가가 전해준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장차 그녀를 통해 메시야가 탄생될 것을 예고한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으리라”(눅 1:35). 가브리엘 천사의 말은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이 성령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으로 말미암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예수의 지상 생애의 처음부터 함께하시며 역사하셨다. 조용기 목사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 성령을 “능력의 영”으로 옳게 이해한다.
2) 예수의 성령체험
예수는 요단강에서 물세례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셨다(마 3:13-27; 막 1:9; 눅 3:21-22). 누가에 의하면 예수는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에게 강림하였다고 보도한다(눅 3.21-22). 요단강에서의 예수의 성령체험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조용기 목사는 예수의 성령체험이 그의 메시야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었다고 바르게 말한다.
3) 예수의 시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예수는 성령에 의해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마 4:1-11; 막 1:12-13; 눅 4:1-13).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임했던 바로 그 성령은 이제는 예수의 시험을 위해 그를 광야로 인도했다. 조용기 목사는 “성령께서 예수를 광야로 ‘인도’하셨을 뿐 아니라, 광야에 머무는 도안에도 그와 ‘함께’ 하셔서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도우셨다‘고 말한다. 이처럼, 성령은 시험받는 예수와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고 도우셨다.
4) 예수의 나사렛 선언과 사역
예수의 나사렛 회당에서의 선언은 그의 전 사역을 위한 프로그램적인 성격을 갖는다(눅 4:18-19). 조용기 목사는 이 선언에서 예수의 사역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그는 이 선언에서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오직 성령에 의한 사역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적절히 주장한다. 조 목사는 이런 그의 주장을 사도행전의 본문을 들어 지지하고 있다. 그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와 그 가족에게 행한 베드로의 설교를 예로 든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을 부으셔서 그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선포하였다(행 10:38). 이는 성령께서 예수의 공적 사역에 함께 하셨음을 말해 주는 중요한 본문이다. 조 목사는 성령이 예수의 공적 사역에 지속적으로 함께 하셨다고 이해하는 것 같다.
5) 예수의 고난과 부활
조용기 목사는 예수의 고난과 부활에도 성령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도우셨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의 십자가 상의 죽으심과 성령을 명백히 연관시키고 있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 (히 9:14) 이 구절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왜냐면 성령께서 예수의 전 사역에 함께 하시며 도우셨을 뿐 아니라, 예수의 지상 삶의 마지막인 십자가의 죽음에도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는 영원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흠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나아가 조 목사는 성령께서 예수의 부활에도 함께 하셨다고 생각한다. 로마서 8장 11절의 해석에서 그는 성령을 예수의 부활의 행위자요 생명의 수역자로서 이해한다. 조 목사는 예수의 삶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을 다룬 후,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예수의 지상 삶에 왜 성령이 그와 함께 하시며 인도할 수 있었는가? 그는 예수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에 시종일관 성령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성령을 의식하고, 의지하였기에 성령께서는 예수를 도우며 인도하실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조용기 목사는 예수의 잉태에서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 전 과정에 성령이 함께 하셔서, 인도하시며 도우셨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이런 성령의 도우심은 바로 예수께서 성령을 끊임없이 의지하였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오순절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을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서 간주한다.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고, 그 날로부터 복음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온 세계로 확산되었다.
1) 예수의 약속
조용기 목사는 예수께서 자신이 승천한 후, “제자들이 선교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도 성령의 능력을 받으신 후에 그의 메시야적 사역에 들어 가셨듯, 제자들도 예수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배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행 1:4-5)
여기서 조 목사는 성령세례의 약속이 이미 “제자된 자들”에게 주어졌다는점을 지적한다. 그에 있어 성령세례(성령충만)의 약속은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지 구원을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다. 조용기 목사는 제자들이 복음전파에 앞서서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그가 옳게 지적하고 있듯이, 이것은 누가의 성령론의 대 전제이다. 증거에 참여해야 성령의 능력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증거는 오직 성령의 능력을 받은 이후에야 가능하다.
2) 성령강림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을 예수의 약속의 성취로 이해한다(눅 24:49; 행 1:4-5). 오순절 날에 약 120명의 제자들은 보고 들을 수 있는 표적들과 함께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역사를 체험했다(행 2:1-4). 조 목사는 그 날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임이 활화산처럼 폭발해서 온 천하만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날의 성령 강림 사건에 있어 “기도”의 중요성을 바르게 지적한다. 그리고 성령충만의 확실한 “외적인 증거”를 갖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순절 날 120문도는 성령충만을 받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였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방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부어 주셨다고 선포하였다(행 2:33). 또한, 오순절 기적에 나타난 성령의 성격을 “복음 증거를 위한 능력”으로 이해한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였을 때 제자들은 능력을 받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였다. 나아가,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사건에서 성령이 인격적 존재이심을 본다. 그는 “왜 성령께서 다른 방언으로 임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해답을 성령의 인격성에서 찾는다. 성령은 120명의 제자들의 말을 인도했으며, 언어는 인격을 지닌 자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3) 오순절 사건의 의의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예수의 약속적 성취” 뿐 아니라 구약 예언자들, 특히 “요엘의 예언적 성취”로서 이해한다(욜 2:28-29). 이것은 베드로가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 사건을 직접적으로 요엘 예언의 성취로 해석하는 점으로 볼 때 분명하다(행 2:16ff). 또한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을 종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욜 2:28; 행2.17). 조 목사는 요엘서의 “그 후에”라는 말이 베드로의 설교에서 “말세에”라는 표현으로 바뀐 것에서, 오순절 날의 성령이 바로 “종말론적인 선물”임을 옳게 본다. 그는 이 종말론적인 선물이 구약과는 달리 모든 사람에게 부어질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나아가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전 세계적인 구원의 사건으로 변화시킨 위대한 기적적인 사건이었다고 강조한다.
요약하면, 조 목사는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 사건을 예수(그리고 요엘, 세례요한)의 약속의 성취로서 이해한다. 그에 있어 성령세례(성령충만)는 구원이후에 주어지는 종말론적인 선물이다. 그리고 이 성령세례(성령충만)는 “복음증거를 위한 능력”으로 부어지는 것이다. 그는 성령 받음에 있어 “기도”의 중요성과 객관적인 “표적”이 따름을 강조한다. 나아가 성령께서 제자들의 말을 인도해 다른 방언으로 KF한 사실에서 성령이 “인격적 존재”이심을 본다. 끝으로,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전 세계적인 구원의 사건으로 변화시켰다고 지적한다.
오순절 이후
본 연구는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 이후 사도행전의 남은 부분에서 성령과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이 확산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여기에서 조용기 목사의 성령이해가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1) 사마리아 사람들
스데반의 순교는 예루살레 교회에 큰 박해를 가져왔고, 이 핍박은 오히려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의 말씀이 성취된다(행 1:8).
조용기 목사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이 빌립의 복음을 믿었지만 “아직” 성령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는 점을 바르게 지적한다. 성령은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와서 기도하고 안수하였을 때 비로소 임했다. 여기서 조 목사는성령 받음이 구원 이후에 주어지는 은혜의 체험임을 분명히 한다. 누가는 사마리아 사건에서 성령강림의 표적을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으나, 조 목사는 성령강림의 외적 표적이 나타났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어떤 표적도 나타지 않았다면 마술사 시몬이 돈을 주면서 그런 능력을 사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틀림없이 마술사 시몬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조용기 목사는 복음전파에 있어서의 성령의 “주권적” 위치를 본다. 성령께서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주도적으로 빌립을 인도하셨다(행 8:29). 그리고 빌립이 내시에게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 때 다시 성령께서는 빌립을 다른 지역으로 이끌어 가셨다. 성령께서 그를 새로운 일터로 옮기신 것이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빌립을 통하여 복음전파에 있어 주권을 갖는 분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조 목사는 복음 사역에 있어 성령께서 그 사역의 “실질적인 주체”라고 말한다.
2) 바울
조용기 목사는 바울의 회심과 성령충만의 체험 역시 구분된 사건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 결정적으로 예수를 만났다. 사울은 시력을 잃은 가운데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금식하였다(행 9:8-9). 사울의 금식은 그가 내적으로 변화되었음을 나타내준다. 또한 그가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회심의 진실성을 말해준다. 조용기 목사는 사울이 금식하고 기도한 사실로 미루어 그가 예수를 통하여 회심하였다고 이해한다.
조용기 목사는 회심한 사울이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하여 성령의 충만함과 치유를 받았다고 올바로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바울의 이야기에서 회심과 성령충만이 분명히 구분되는 신앙체험이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조용기 목사는 바울이 성령을 체험한 이후 다메섹에서 뿐 아니라, 로마에까지 이르러 예수를 증거한 사실을 언급하며 여기에 나타난 성령의 성격을 “증거를 위한 능력”으로 이해한다.
3) 고넬료
고넬료와 그 가족에게 임한 성령의 강림은 큰 의미를 갖는다. 왜냐면 성령의 선물이 유대인의 벽을 넘어 이방인에게도 부어졌고, 이방인에 대한 선교의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예수에 관한 복음을 증거하자, 성령이 말씀을 들었던 고넬료와 그 가족에게 임하였다. 성령이 임하자 그들은 방언을 하며 하나님을 높였다. 조용기 목사는 고넬료의 집에 모인 이방인들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가 동일하다고 말한다. 그는 성령강림의 결과로서 동일한 현상들(방언, 하나님 높임)이 나타났음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 같다(행 2;4, 11; 10:46).
조용기 목사는 성령께서 빌립을 주권적으로 이끌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것처럼, 베드로를 주권적으로 이끌어 고넬료와 그 가정에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본다. 그는 고넬료 이야기에서도 복음 전파에 있어 성령의 “주권적”위치를 본다.
4) 안디옥으로부터의 복음의 확장 안디옥 교회는 사도행전에서 또 다른 중요한 시작을 나타내준다. 이 교회로부터 이방 선교가 광대하게 펼쳐진다.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주를 섬기며 금식하고 있었다. 이때 성령으로부터 말씀이 있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행 13:2)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여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의미에 있어 안디옥 교회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보냄을 받았다(행 13:4). 조용기 목사는 안디옥 교회의 이야기에서 복음전도에 있어서 성령의 “의지”와 “자유”에 주목한다. 성령은 자신의 의지를 따라 자유롭게 복음을 확장시켜 나가신다. 그는 복음전파에 있어서의 이런 성령의 의지와 자유성이 초대교회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적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사도행전에 있어 또 하나의 전환점이다.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할례가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여 교회에 문제를 일으켰다. 누가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의사항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기한 것들 외에 아무 집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행15:28)
조 목사는 이 결의문에서 “성령과 우리”라는 문구에 주목한다. 그는 “성령”이 “우리”에 앞서 언급된 것은 당시 교회가 그들 가운데 인격적으로 임재해 계신 성령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의지하였다는 사실을 반영해 준다고 주장한다. 조목사는 성령을 복음 사역의 “선배 동업자”(the senior partner)요 우리는 “후배 동업자”(the junior partners)라고 말한다.
2. 성령론의 역사적 배경
3. 성령론
Ⅴ. 순복음 신학과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 비교
Ⅵ. 결론
1. 논의
1) 사변적 성령 이해에서 체험적 성령이해로
조 목사는 전통적인 오순절 교단의 성령론을 그대로 다 수용하고 있다. 조 목사는 오순절 교단의 성령론에 입각해서 한국교회에서 이론적이고, 사변적 이해에 그친 성령을 목회 현장에 이끌어 내어 모든 자에게 임한 성령, 누구나 체험험 할 수 있고, 교제할 수 있는 성령이 되게 하였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예정 그리고 중생가 성령세례를 동일시하는 장로교 신학의 영향과 함께 박태선, 문선명 등의 사이비 성령운동의 여파로 성령사역이 위축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령세례의 체험을 갈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용기목사가 주도한 오순절 성령운동이 놀라운 교회 부흥을 가져옴과 동시에 전 세계의 교회가 한국교회 성령운동을 주목하기 시작하자 한국교회는 성령의 역사에 차차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한 성령충만 사역은 교파를 초월하여 각 교회에 파급되어져 나갔고 성령운동을 활발히 전개한 교회마다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처음에는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많은 기성 교단과 교회들이 성령의 사역에 문을 열고 성령운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은사주의적 성향을 띈 교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성령세례와 방언의 체험은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능력 받아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함으로 교회 부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2) 성령의 인격성 강조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강조는 잘못 흘러가 수 있는 성령운동의 방향에 대해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교회역사를 보면 성령을 하나님의 힘, 신비한 능력으로만 이해했던 무리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성령의 인격성을 무시하고, 성령의 은사와 능력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성령의 인격성은 무시하고 신비한 능력만 강조함으로 이단이 된 한국의 대표적인 이단이 바로 박태선의 전도관이다.
조용기목사가 인격적 존재로서의 성령을 강조한 표현중 가장 유명한 것이 “성령님을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들입니다.”이다. 조 목사는 그의 저서 성령론에서 성령께서 인격을 지닌 존재임을 알고, 늘 성령과 교제하며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또한 무의식 가운데 성령을 인격적 존재가아닌 어떤 힘이나 에너지, 능력 정도로 생각하고 하나의 수단과 방편으로 이용하려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이 같은 성령 이해는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사고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성도의 삶과 교회의 성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3) 구령사업의 주체로서의 성령
영혼구원은 주님의 지상명령이며, 모든 성도들이 힘써야 할 과제이다.(마28:19-20) 조목사는 “성령님의 가장 큰 관심은 영혼구원에 있다.” 고 강조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성령님은 “영혼구령의 원동력”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복음증거의 열정에 불타게 하여, 택하고 보내신다. 또한 성령님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요15:26) 예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시는 사역(요16:14)을 행하심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신다.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여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다. ‘구령사업의 주체는 성령님’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조용기 목사는 성령충만의 은혜를 먼저 체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성령충만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은 열정적인 복음의 증인이 되어 성령과 동행하며, 수많은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해 오고 있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지구역장은 타교회의 전임사역자 이상으로 헌신하고 열정적으로 전도한다는 소문까지 나게 되었다.
4) 교회성장의 주체로서의 성령
성령충만의 신앙을 토대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온 세계 교회 주목할만한 경이적인 교회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서대문 시절 순복음중앙교회의 성도 수는 5년만에 3천명에서 1만8천명으로 늘어났고(1961-1973), 1973년 여의도로 교회를 이전한 후 폭발적으로 부흥하여 1990년도에 이르러 재적 70만 성도의 초대형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 조용기 목사는 이러한 성령의 비결이 조용기 목사는 ‘성령님을 선배 동역자’로 모시고, 성령님의 이끄심을 딸라 순종하며 동역하는데 있었음을 강조한다. 조목사는 자신의 목회 사역이 ‘성령님과 교통하며, 교제하기 시작하면서 교회성장을’ 이루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은 교회의 l도자로서 성령충만한 지도자들을 통하여 날마다 교회가 부흥하게 하셨다. 성령님은 전 인류를 위하여 보편적으로 역사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인간이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때 동역자로 사역 하셔서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이시다. 누구든지 성령님을 영접하고, 환영하고, 의지하면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성령충만한 빌립집사는 사마리아 성에 복음을 전하여 큰 부흥을 가져 왔으며, 성령의 지시를 다라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전도함으로 아프리카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였다.(행8:5-8,29) 나아가 성령님은 교회와 동역하시고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 이처럼 조용기목사는 성령을 목회 사역의 선배 동역자로 모시고 성령의 도우심 아래 사역을 감당해 나가고 있다.
5) 말씀운동과 기도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의 성령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은 철저히 말씀운동과 기도운동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아간다. 성령운동이 말씀중심의 운동이 되지 않을 때 극단적 신비주의나 이단이 되기 쉽다. 실제로 1900년 초 한국교회에 일어난 부흥운동은 철저한 사경회 중심의 건전한 성령운동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중요시하는 이 전통은 기도와 함게 한국교회의 신앙형태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말씀중심의 성령운동은 교회를 질적으로 양적으로 부흥시킨다. 1970년대 세계 최대교회로 급부상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역시 부흥 이면에는 말씀운동이 전제되어 있었다. 조용기 목사는 먼저 말씀을 ‘기록된 말씀’과 ‘선포된 말씀’으로 역사하게 된다고 한다. 즉 성경이 성령을 통해서 말씀중심의 성령운동이 되기 위하여 평신도를 대상으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신자의 생활 뿐만 아니라, 교회성장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영적 역동성을 가진다. 교회의 성장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기도를 생활화하는 기도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조용기목사 자신이기도의 사람으로 성도들에게 매일 한 시간 이상 기도할 것을 권면하였고, 기도의 실천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 먼저 기도해야 한다. 내가 기도하지 않고는 기도하는 교회가 될 수 없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부흥 성장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철야기도, 새벽기도, 금식기도 등을 통해서 기도 중심의 성령운동을 활발하게 행하고 있다. 이 같은 조용기 목사의 기도에 대한 강조는 특별히 영적 침체에 빠져있던 서구 교회에게 크게 영향을 미쳐 기도운동을 통한 영적 각성과 교회부흥에 크게 기여했다.
6) 성령시대의 시작과 종말론적 신앙의 강조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강림을 구약 요엘2:28,29의 문자적 재 성취로 보았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첫 번째 오순절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탄생시켰고, 두 번째 오순절은 마지막 때 교회의 큰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비하기 위해 20세기 초 일어나게 하셨다고 믿는다. 그들은 초대교회의 오순절 성령운동이 첫 열매를 거두는 ‘이른 비’ 라면 자신들의 시대는 마지막 추수를 위한 ‘늦은 비 시대’라고 보았다. 따라서 오순절 운동은 종말에 대한 서곡이었다. 성서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전천년주의의 대한 믿음은 종말론적 긴막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더군다나 오순절 신아에 있어서 종말은 일차적으로 역사와 시간의 연장선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순절주의자들에 있어서 종말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현재적으로 체험되었다. 따라서 오순절 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세에 자신들을 택하사 성령운동에 사용하신다는 신적 사명감에 사로 잡혔고, 오순절의 메시지를 마지막 시대를 위한 메시지로 여기고 복음전도에 열과 성을 다했다. 조용기 목사도 같은 입장에서 재림의 때가 가까워왔기 때문에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며 준비하는 종말론적인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 더불어 성도들이 세상에서 전도와 구제 등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된 역할을 담당하며 살도록 권면하고 있다.
7) 축복신앙과 샤머니즘(무속적 기복신앙)과의 관계정립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의 또 하나의 공헌은 샤머니즘의 극복이다. 조용기 목사는 축복신앙과 샤머니즘은 물질적인 풍요를 축원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나, 다음과 같은 면에서 전혀다르다고 주장한다. 첫째, 샤머니즘은 구원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복이 찰나적이고, 허무한것인 반면에 축복신앙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제하며, 영적 축복의 열매로 환경 속에 축복과 육신의 건강이 주어지게 됨을 말한다. 둘째, 샤며니즘은 사람의 현세적 이기적인 복만(무병장수, 부귀영화)을 구하는 반면에 축복신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가지고 소외된 이웃에게 나누며, 윤리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것을 추구하며 내세의 부활과 영생의 복락을 더 귀하게 여기며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샤머니즘은 윤리성이 결여되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요행이나, 주술을 통해 복을 받으려 시도하시만 축복신앙은 하나님의 계약과약속에 그 근거를 두고, 개인이 그를 순종하고, 믿음을 가지고 성실과 근면으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 이처럼 종요기 목사가 주장하는 축복이란 축복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으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기위한 하나의 과정적인 개념이다. 또한 이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속에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생겨난 것이므로 통합적이며, 존재론적으로 근원적인 것이다. 결국 일상적인 고난이나 축복은 다 과정적이며 모든 것은 종국적으로 합력하여 존재론적으로 근원적인 선을 이룬다.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은 사변적 이해에 머무르던 성령을 교회 사역의 현장과 성도의 삶에 체험적으로 역사하는 성령으로 이끌어 냄으로 성령이해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 같은 조용기 목사의 성령이해는 20세기 후반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령운동에서 갑자기 출발한 것이 아니라 밖으로는 세계 오순절운동의 성령운동이 한국교회에 접목되어 진 것이고, 안으로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이래로 한국교회에 도도히 흘러운 성령운동을 집대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체험적 성령이해는 신비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으나, 조용기 목사는 인격적 성령이해와 함께 말씀운동을 강조함으로서 균형 있는 성령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조 목사는 성령론의 영향으로 한국교회 모든 교회에 오순절적 성령운동이 파급되어 은사주의적 교회가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교회의 급성장과 함께 대형교회(Mega-Church)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도운동의 확산으로 성도들의 영성을 회복시키는 데 크게 기여 하였고, 종말 신앙의 강조로 성도들을 열심있는 복음 전도자로 변화되게 하였다.
조 목사의 성령론은 ‘사도행전적 교회의 재현만이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도들을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한다.’는 것을 한국교회에 일깨워 주었다. 성령이 역사하는 한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Ⅱ. 순복음 신학 1. 순복음 신학의 역사 2. 순복음 신학의 개요 3. 순복음 신학의 정체성 4. 순복음 신학의 방법론
Ⅲ. 순복음 신학의 성령론 1. 성령에 관한 신학적 고찰 2. 오순절 성령강림과 그 영속성 3. 성령이해에 있어서 오순절적 관점 4.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
Ⅳ.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 1. 성령이해의 배경 2. 성령론의 역사적 배경 3. 성령론
Ⅴ. 순복음 신학과 조용기목사의 성령론 비교
Ⅵ. 결론 1. 논의 2. 제언
참고문헌 Ⅰ. 서론
1. 연구목적
21세기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중 한 사람이 영산 조용기 목사이다. 그래서 조용기 목사에 대해서 여러 가지 차원에서 연구의 대상이었다. 그가 담임하는 세계 최대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인하여 조용기 목사는 교회성장의 관점에서 연구되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 그렇게 큰 교회를 만들었는가에 관심을 가져왔고, 그로 인하여 한국교회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서 대형교회(Mega-Church)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목사의 사역에는 성령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성령론의 영향으로 한국 교회에 오순절적 성령운동이 파급되었고, 은사주의적 교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뿐 만 아니라 기도운동의 확산으로 성도들의 영성을 회복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종말 신앙의 강조로 성도들을 열심 있는 복음 전도자로 변화되게 하였다. 조목사의 성령론은 ‘사도행전적 교회의 재현만이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도들을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한다.’는 것을 한국 교회에 일깨워 주었다. 특별히 조목사의 놀라운 공헌은 오랫동안 이론에 갇혀있던 성령님을 해방시켜 모든 성도들의 신앙 속에서 체험케 하여 성령이해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본 논문은 이렇게 한국과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조목사의 성령론을 재 조명하므로서 성장과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교회에 성령운동을 다시 일으켜보고 한다.
2.연구방법과 범위
성령은 우리의 관심을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하며 또한 우리로 영적인 눈을 뜨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역은 물론 인류역사에 참여케 한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써 어느 누구의 신학적 정의나 관점에 따라 속성이 바뀌어 지거나 달리 해석할 수 없는 하나님은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영산의 성령론에 대한 여러 신학적 입장을 창조적으로 수용하지만 성령의 이해에 있어서 오순절적 관점에서 이해하는데 있다. 오순절적 관점이란 먼저 과거 초대교회에 임했던 오순절 성령임재의 사건을 어떻게 분석하고 어떻게 현재적 상황에 적용해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성령론 인식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오순절주의가 형성되기까지의 배경을 전반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얻어지는 신학적 자기주장이기도 하다. 본 연구에서는 성령론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창조적으로 수용하지만, 그 큰 줄거리는 영산의 신학의 입장에서 전제할 것이다. 할 수 있는대로 주장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여러 문헌과 기록된 자료들을 사용하였다. 제1장 서론에서는 본 연구의 취지와 연구방법과 범위 및 용어설명을 살펴볼 것이다. 제2장은 순복음 신학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정체성 그리고 순복음 신학의 내재적 특징을 살피고자 한다. 제3장은 순복음 신학의 성령론 이해와 성령충만과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와 성령의 임재함과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깊이 다루고자 한다. 제4장에서 영산의 성령론에 있어서 성령의 이해의 배경과 성령론의 역사적 배경과 영산의 성령론을 기초고정관념화 되어있는 개념들로부터 새로이 개선되거나 확대되어있는 신학적 이론들을 앞세우면서 어떻하면 오순절적 신학의 체계를 세워 나갈 것이다. 제5장에서는 영산의 성령론 비교에 대해 다루면서 영산의 성령론이 신학적으로 오순절적인 신학의 체계자로 바르게 세워져 있다는 것을 고찰하고자 한다. 제6장 결론에서는 본 연구에 대한 논의와 제언을 찾아보고자 할 것이다.
3. 용어설명
지금까지 성령에 대한 연구는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어, 에밀 브루너는 신론이나 기독론은 많이 다루어졌으면서도 성령론은 마치 ‘신학의 의붓자식’처럼 취급되었고 신학자들에게는 ‘성령’이라는 말이 마치 도깨비같이 들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딜슈나이더(O. A. Dilschneider)에 의하면 “기독교 신학은 영의 망각증에 빠졌다. 수세기동안 우리는 사도신경의 제2조항의 기독론 중심적인 신학에 몰두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은 제3조항(성령)을 오순절 이후 구원사적인 계속성에서 취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영의 망각으로 우리는 사도신경의 첫째와 둘째 조항의 신학적인 방향이 성령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성령이 이처럼 경시되어 온 이유에 대해서 김균진 교수는 다음의 두가지의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성령론은 신론과 그리스도론에 비하여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음에 있다. 둘째, 성령론이 광신주의와 열광주의로 발전함으로써 기독교사상을 변질시킴에 있다. 교회사적으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위격과 전통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 성령에 대해서는 무관심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단지 성령론은 삼위일체의 틀 속에서는 논의되었다. 중세교회는 성령의 출원문제에 있어서 동서교회가 분리될 만큼 심각했지만 전체적인 특징을 볼 때에 의식, 제도, 전통에 얽매인 정적 특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성령론은 약화되었다. 종교개혁시대는 그 당시에 나타난 열광주의운동 때문에 성령온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였으며, 열광주의운동의 맹목적이고 주관적인 태도를 견제하려고 성령과 말씀의 결합을 강조하였다. 어떤 신앙적, 신학적 견해는 성령에 근거하였다 하여 타당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하여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신교 정통주의시대는 복음적 신학을 교의화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시애로서 불규칙적이고, 비정상적이고, 비자연적 사역자로서의 성령의 활동과 개입과 간섭을 원치 않으므로 성령이 활동할 장소가 없어졌다. 이에 반하여 경건주의는 성령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소명, 칭의, 성화를 강조하였으나 성령론을 체계있게 발전시키지 못했다. 현대에 들어와 19세기에 신정통주의 신학은 성령론을 망각하지는 않았지만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므로 성령의 위치는 약화되었다. 이에 반하여 종말론의 신학에서 성령론은 종말론의 틀 안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이런 교회사적인 배경과 교회의 신앙현실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우리는 성령을 좀더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이제 신학자들의 관심이 기독론에서 성령론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현대신학의 조류는 신 중심적 신학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으로 발전되어 왔는데, 앞으로는 성령 중심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20세기 신학의 큰 흐름은 초월성과 내재성의 문제로 씨름하였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시대에 제시된 주요한 신학적 주장들은 이 초월성과 내재성의 관계에 균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기는 불안정이 무엇인지를 표현해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관점에서 현요한 교수는 ‘내재’란 용어대신 ‘임재’란 말을 쓰고 있다. 그래서 그는 초월과 내재의 관계를 상호모순이 아닌 함께 사용해야 될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령임재의 직접성과 매개성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에 있어서의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최근의 화란 개혁신학자이 베르꼬프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에서 성령의 활동의 장을 세계사적인 지평으로 넓힌 것으로 해석한 경우도 있다. 성령을 독립적인 신학의 주제로 전개시키고, 성령의 활동의 장을 세계의 창조와 재창조, 온 우주와 전 피조물의 영역에까지 확대하여 기술한 베르꼬프의 관점을 동조하는 논문도 많아지고 있다. 전통적 교의학은 성령을 “구원의 왕” 그리고 “성화의 영”으로서 인식하였다. 성령의 사역 중 가장 중심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루는데 있다고 생각되어 성령론은 대부분 구원론이나 교회론의 틀 안에서 논의되었다. 많은 경우에 있어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의 영혼 구원에 제한되었으며, 성령의 활동은 개인의 영혼 구원과 성화 그리고 교회의 삶의 영역으로 제한되었다. 루터의 신학은 말씀과 신앙의 사건 속에서 일어나는 죄된 인간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만남을 주요 관심사로 삼았다. 김균진 교수는 루터의 신학이 하나님과 영혼을 중심 문제로 하는 서구 신학의 내용을 새롭게 했지 그것 자체의 틀을 바꾸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러한 신학적 틀 속에서는 바울이 강조한 성령의 전인 인간의 육체에 대한 관심과 이사야 66:1과 사도행전 7:48 이하에 의하면 하나님이 이미 자기 성전으로 만드신 자연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루터도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현존한다’고 말하였지만 그러나 그는 신앙하는 인간을 의롭게 하는 말씀에 근거시키면서 모든 사물들을 제외시켜 버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학은 전통적인 성령론을 많이 확장시켰다. 영혼만에 대한 관심에서 인간의 육체와 세상적인 삶에의 관심,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 대한 신학적 관심과 새로운 신학의 틀이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성령의 창조족, 세계사적, 우주적 지평이 논의되었으며, 성령의 활동을 개인의 중생과 성화 그리고 교회의 삶과만 관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정의와 평화의 수립, 자유와 해방, 신체의 건강과 생태계의 보존 그리고 자연 과학적 지식의 영역까지 확장시켰다. 전통적인 성령론의 틀이 주로 신약성경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는데 반해 새로운 신학적 틀은 주로 구약에 근거하고 있다. 성령의 사역에 대한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관심이 폭넓게 대두되면서 구약적 사고, 즉 히브리적 사고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성령의 사역의 우주적, 세계사적, 창조적 지평이 많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신학자들이 히브리적 사고 구조 아래서 볼 때 성령에 대한 총체적 관점이 올바르게 드러난다고 보았다. 실제로 최근 국내의 성령 연구논문에서 성령의 사역을 갈래지으면서 창조세계의 유지와 구원을 위한 성령의 사역(새창조의 사역), 정의와 평화를 위한 성령의 활동,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령의 활동,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위한 성령의 사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확장과 성령의 사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확장과 성령의 사역, 성령과 자연 과학적 지식 등에 대한 고찰들을 하기도 한다. 사실 국내의 성령에 관한 학위논문을 보면 새롭거나, 크게 주목할만한 연구나 자료를 구할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성령의 활동의 장을 지나치게 넓히다 보면 교회공동체의 고유성과 독립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성령의 활동을 공동체의 맥락에서 전개하고자 한다.
Ⅱ. 순복음 신학
1. 순복음 신학의 역사
‘학’(學, lohy)이란 본래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가설과 실험 그리고 반복된 체험을 통하여 만인이 보편타당하게 인정하는 객관적 진리를 말한다. 아울러서 신학도 신에 대한 학문으로서 갑자기 혹은 우연히 생겨날 수 없다. 신학은 문학, 역사, 과학과 달라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 하신 것을 기록한 말씀을 토대로하여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해석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신관에서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을 위시하여 창조주 하나님,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할 것이며,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해석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자에 대하여 그리고 사람을 위시한 전 자연의 마지막 구원과 회복 등을 다루게 될 것이다.
신학이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토대한다고 할지라도 신앙과 신앙생활이 앞서야 할 것이며 실험과 실습 그리고 체험이 선행되어야 함은 다른 학문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초대교회도 신앙과 신앙 생활이 먼저 진행되었고 그 후에 교부신학이 성립되었으며 그 이후는 카톨릭 신학이 수립되었다. 마루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이 먼저 있었고 이어서 쯔윙글리(Zwingli)에 의한 루터교 신학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칼빈에 의한 기독교 강요(Christian Institution)와 같은 칼빈의 장로교 신학이 그리고 웨슬레(John Wesley)에 의하여 알미니안 입장의 감리교 신학이 나타나게 되었다.
① 오순절의 유래
A. 구약시대
오순절은 ‘50일’이라는 숫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구약의 칠칠절에 해당하며 헬라어 “펜테코스테”에서 온 말이다. 이 절기는 유대인의 3대 명절인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 중의 하나이며, 유대인의 종교력 니산월(3, 4월) 16일에 단을 흔드는 추수성례(秋收聖禮)를 지낸 7주 후 즉 50일째 되는 날인 시완월(5, 6월) 6일에 지켜졌다.
칠칠절이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로 묘사되었다(출 23:10, 16, 34:22; 레 23:10; 민 28:26). 그러나 그것은 실제적으로 보리 수확으로 시작해서 밀추수로 끝나는 곡물추수의 전 기간을 가리키는 약 7주간의 기간이었다. 희랍의 유대인들은 이 절기를 오순절(Pentecost)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B. 신약시대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추종자들은 이 절기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 그러나 그들이 모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부활체로 이 세상에 아직 계실 때 하신 말씀 곧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는 말씀대로 약속의 성령을 받기 위하여 모였던 것이다. 이 날이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 째인 오순절 날이었다.
이 날 성령이 임한 현장을 사도행전 2장 1-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우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하였다.
이 사건 후에도 계속해서 성령 감림의 역사가 계속되었다. 즉 사마리아 교회(행 8:14~25), 사도 바울에게(행 9:17~20), 고넬료 가정에(행 10:44~48) 그리고 에베소 교회에(행 19:1~7) 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끊이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순절 날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이 지상에 탄생하였으며 이 주님의 몸된 교회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이유의 제일 원인은 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의 오순절 절기가 육신의 양식을 추수하는 축제라면 신약에서는 영혼의 추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마리아 우물가의 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가 넉달이 자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2~35).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만족해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요, 이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영혼구원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누가복음 10장 1-2절에 보면 “이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구약에서 추수 감사절로 지켜왔던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자 교회가 탄생되었고 그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② 미국 오순절 운동
A. 미국 오순절 운동의 태동
1. 이 운동은 19세기 말 영국과 북미에서 일어난 성결운동과 경건생활(Higher Life) 운동에 힘 입은 바가 있다.
오순절 파는 감리교의 성결전통 속에 들어 있던 웨슬레의 성화(聖化) 개념을 받아 들였다. 요한 웨슬레는 회심(回心) 즉 신생(born again)은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되는 평생에 걸친 과정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신생 후에 부패한 죄성(罪性)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내재적 죄”는 두 번째 은총, 즉 두 번째 축복인 성령세례를 받아야 뿌리가 뽑힌다고 하였다. 그리고 케스윅(Keswick, 1890) 운동은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실제적으로 영적인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걸어가는 것이 자녀된 의무요, 특권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과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2. 복음 전도나 피니(Charles G. Finney)와 무디(Dwight L. Moody)의 영적 각성운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분들은 회심 후 중생을 중요시 여겼지만 성령세례는 죄성을 근절시키는 제 2의 은총의 순간이 아닌 복음 증거와 봉사를 위해 필요한 능력 부여로서 강조하였다.
3.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前千年說)과 신유(Healing)에 대한 새로운 운동이다.
전천년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地上)재림 전에 성도들의 휴거(Rapture)가 있고 이어서 7년 대환란 중에 지상재림 및 천년왕국이 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의 가르침에서 유래하여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박사 같은 사람들이 주장하였다.
신유에 관한 새로운 신앙운동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이 영혼을 치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체도 치료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기독교 선교 연맹의 창시자인 심슨(A. B. Simpson)과 도위(John Alexander Dowie)와 워드워드-에터(Mania B. Wood-Worth Etter)에 의해 대중화 되었다.
4. 근본주의(Fundamentalism) 1865년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 당시 영국과 독일의 신학사조는 신앙의 근본으로 여겼던 제 교리인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구속, 부활, 기적, 재림 등을 부정하였다. 그런데 미국의 젊은 개신교 신학자들이 구라파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이와 같은 자유주의 사상을 미국에 전파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자연히 신앙의 열정이 식어지고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었다.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보다 사회개혁을 위한 교육을 강조하여 영적으로 침체하게 되었다. 이 때 신학적으로 보수주의 입장에 있는 교회들이 초교파적으로 단합하여 성서의 완전축자영감설(完全逐字靈感說) 강조하며 신앙과 실천에 대한 성서의 완전한 권위를 주장하였다. 즉 성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구속, 부활, 기적, 재림을 그대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근본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종의 기원」(1859)과 「인간의 혈통」(1870)을 쓴 다윈(Chales Darwin)의 진화론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러한 보수, 근본주의에 동조한 초교파적인 성령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이 오순절 운동의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다.
5.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회복주의(Restorationism)
이들은 사도행전에 묘사된 기사와 표적(Wonder Work and Signs) 즉 ‘이른비’를 기대했으며 그것은 곧 마지막 때에 성려의 능력을 쏟아 붓는 “늦은비”에 의하여 보충되리라고 믿었다. 이와 같이 오순절 운동은 19세기 구라파에서 일어난 복음주의와 사도신경을 믿는 기독교 정통주의와 성경을 축자영감, 완전영감으로 믿은 근본주의를 믿거름으로 하여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것이다.
B. 미국 오순절 운동의 조직
1. 초기 오순절 운동 현대 미국 오순절 운동은 성령세례의 외적 표적으로서 방언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 운동은 1900년 켄사스주 토페카(Topeka)에 있는 파함(Charles Fox Parham)이 세운 벧엘 성서 신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900년 10월 켄사스주 토페카에, 파함은 벧엘 성서 신학교를 세워 40여 명의 학생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시며 신유의 주님인 것을 가르쳤다. 그해 마지막 강의 시간에 파함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세례의 증거가 무엇인가’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그 결과 학생들은 성령세례의 증거가 “방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하여 파함을 위시하여 학생들은 삼일동안 밤낮 열심히 기도하던 중 1901년 1월 1일 새벽 오즈만(Agnes Ozman)양이 먼저 방언을 하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파함을 포함한 모든 신학생들이 방언을 하였다. 1905년 파함은 휴스톤으로 옮겨가서 ‘저녁 빛 성도’ 성결교파의 흑인 전도자였던 시무어(William J. Seymour)에게 영향을 끼쳤다. 시무어는 L.A에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의 js도는 다음해 봄, 즉 1906년 지금은 전설로 남아 있는 아주사(Azusa) 거리의 부흥운동에 불을 붙였다. 1906년에서 1911년까지 소규모였지만 한창 부흥하였던 동남부의 몇몇 웨슬레 분파가 아주사 거리의 사역현장을 방문하였던 사람들의 영향으로 오순절 파에 흡수되었다. 이 가운데서 흑인들로 구성된 그리스도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in Christ)와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와 오순절 성결교회(Pentecostal Holiness Church)가 포함되어 있다. 수년에 걸쳐 이와 같은 웨슬레 계통의 단체들은 동남부에서 유력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후 오순절의 메시지는 중부의 여러 주에서 개혁파(비 웨슬레파) 기독교인들 가운데 불을 붙였다. 1914년 중서부 지방에 어떤 교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수천 명의 신자들이 기독교 선교연맹의 개종자들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를 비로소 조직하게 되었다. 2년후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은 유니테리언파나 ‘오직 예수’(Jesus only)파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참된 물세례도 전통적인 삼위일체 이름으로 받은 것보다는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받아야 하므로 누구나 재세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오직 예수’파 가운데 가장 큰 교회로는 연합 오순절 교회(United Pentecostal Church)가 있다. 또한 유명한 여성 부흥사인 에이미 셈플 맥퍼슨(Aimee Semple Mcpherson)은 하나님의 성화를 이탈하여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4중 복음교회(Church of the Foursquare Gospel)로 병합하였다.
2.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
이 운동은 다른 말로 신 오순절주의(Neo-Pentocostalism)라고도 한다. 1951년 데모스 캬카리안(Demos Shakarian)이 이끄는 “순복음 실업인 연합회”(Full Gospel Business Men's Fellowship)와 오랄 로버츠(Oral Roberts)의 T.V 교회를 통한 신유 및 오순절 메시지가 기성 교단에 속한 신자들에게 별다른 저항없이 전해지게 되었다. 샤카리안에 의해 창설된 이 연합회는 초교파적으로 월회모임을 갖게 되었다. 평신도와 목회자의 교파에 좌우되지 않고 기도와 간증을 할 수 이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특성은 오순절의 체험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속한 교회에 충성을 원하는 신자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였다. 1980년도까지 이 연합회는 27개국에 2,300개의 지부를 형성하였으며 기존의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 교인들이 이 회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1960년 4월 3일 캘리포니아의 반 뉴이즈(Van Nuys)에 있는 세인트 마크(Saint Mark) 성공회 교회의 사제인 데니스 본네트(Dennis Bonnett)의 고백으로 교회의 공식 반대에 부딪쳐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되었다. 그는 1959년 오순절 체험을 하였다. 이로부터 은사주의 운동은 로마 카톨릭교회를 포함한 다른 교파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이 운동은 카톨릭, 성공회, 루터교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남침례교나 나사렛교에서는 별 성과가 없었다. 1960년대 중반에 은사주의자들의 기도 다락방은 전국 대학가에도 산재해 있었다. 이 운동은 동북부의 일류대학과 신학교에, 그리고 듀퀘즌(Duquesne), 포담(Fordham) 그리고 노트르담(Notre Dame)과 같은 카톨릭 대학에서 뿌리를 내렸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교단을 떠나지 않고 초교파적인 양상을 갖게 되었다. 또한 성령세례의 증거에 있어서도 오순절 교파처럼 방언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어떤 은사든지 나타나면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하여 오순절교파와 일치된 견해를 갖지 아니하였다.
3. 제 삼의 물결(Third Wave Movement)
이는 풀러 신학교의 교회성장학 교수인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박사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1980년대에는 주로 복음주의 계통의 신자들이 성령의 초자연적인 체험을 한 후 오순절 교파나 은사주의파에 속하지 않은채 기존교단에서 은사를 행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 사람으로는 미국 L.A에서 사역하는 능력 치유의 저자 죤 윔버(John Wimber)와 지금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 있는 빈야드(Vineyard) 운동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찬양사역과 말씀 그리고 신유, 방언, 방언통역, 예언, 입신 등 은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경우 1970년대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장로교를 위시하여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중 각 교단에 속한 교인들이 성령세례를 체험했으나 그 교단을 떠나지 않고 그들이 소속한 교회에서 활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열심히 전도하므로 큰 도전과 자극을 목사와 성도들에게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교단 부흥사들은 성령세례를 체험한 사람들로서 그 교단을 떠나지 아니하고 초교파적으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다.
③ 성령운동과 한국교회
1906년 시무어(William J. Seymour)에 의하여 L.A 아주사 부흥을 일으킨 이후 캘리포니아, 시카고, 뉴욕, 뉴저지, 플로리다, 캐나다 등지에 성령의 불길이 타 올랐다. 아울러서 이 무렵 성령의 역사는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한국 등지에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1907년도의 평양 대 부흥운동을 들 수 있다. 한국 하나님의 성회는 직접적으로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 바탕이 된 토양으로는 한국적 성령운동의 영향을 배재할 수 없다. 한국 하나님의 성회는 세계적 오순절 운동과 한국 자체 내의 성령운동을 모태로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A. 태동기
이 시기는 구한말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온 후 1907년 대 부흥운동을 일으킨 때까지 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부흥은 1903년 하디(Robert A. Hardie, 1865-1949) 선교사에 의해서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을 출발점으로 한다. 그는 몇 해 동안 한 사람의 전도 열매도 맺지 못한 것을 분석하여 보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자기가 배운 지식만을 전달한 결과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1903년 함남 원산에서 모인 선교사 집회에 설교 준비를 하는 중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는 성경 구절을 읽다가 성령충만을 받았다. 이후 1905년부터 1906년까지 미북 장로교 선교사 이길함(Graham Lee, 1861-1916)목사는 한국인 제직들을 위하여 특별집회를 인도하였다. 이 때의 상황을 블레어(William Newton Blair)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8월에 모였던 모임에서 전에 없이 큰 능력이 하나님의 영의 세계로부터 우리들에게 가장 알맞게 쏟아졌다....... 우리는 온 교회가 거룩하게 됨을 느꼈다.” 또한 전라남도 목포에서는 1906년 초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교회마다 성도가 차고 넘쳤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감리교와 장로교의 선교사들이 모여 낮에는 사경회로 성경공부를 하고 밤에는 부흥전도회를 가졌다. 이길함 선교사는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교회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엇인가 오고 있음을 느꼈다. 간단히 설교한 후 우리는 모든 회중과 함께 통성기도를 했다. 통성기도는 이 모임의 특징 중의 하나였다. 기도 후에 몇 명의 간증이 있었고 인도자가 일어나 찬송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전에 보지 못한 모임이 시작되었다. 기도 후에 참회하는 회중에게 하나님의 영이 즉시 임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며 목놓아 울었고 마루바닥에 뒹굴며 혹은 마루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하면 강한 바람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다고 한다.
이듬해 봄에는 길선주 목사가 서울에서 사경회를 열어 성령의 도를 가르쳤는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서울 지방의 교회가 대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1907년 목사가 된 후 별세하기 까지 28년간 전도사업에 헌신하였다. 그의 초기 부흥회에는 기사와 이적이 나타났고 그가 설교할 때 강단 아래서는 회개하는 순사(巡査)외 통곡하는 선교사가 있었고 병 낫는 사람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길선주 목사의 성령운동의 특색은 첫째, 새벽기도를 창시하여 회개운동을 전개했고 둘째, 요한계시록 10,000독을 하였으며 셋째로, 한국 교회에 부흥 사경회를 확립하였고 말세론을 통하여 신음하는 동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는 것이다.
B. 수난기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으로부터 1945년 해방을 맞이한 때라고 할 수 있다.
1. 김익두 목사(1874~1950)
김익두 목사는 1874년 황해도 안악군 대원면 형촌리에 태어나서, 1906년부터 1910년까지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목사안수를 받은 후 길선주 목사의 뒤를 이어 대중 부흥 집회를 인도하였다. 그는 1950년 6월 25일 동란이 발발한 후 10월 14일 신천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다가 공산당에 의하여 순교 당할 때까지, 만 50년간을 전도와 목회에 헌신하였다. 그의 성령운동의 특징은 첫째로, 영력(靈力)을 위하여 금식기도를 강조했고 둘째로, 전도를 위하여 외적인 기적과 이사를 행했는데 특히 신유의 은사를 강조했으며 셋째로,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백만 인의 영을 그리스도께로”라는 집단 성령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것이다.
2. 이용도 목사(1901~1933)
이용도 목사가 인도하는 예배는 항상 성령충만하여 통성기도 시간이 되면 여러 곳에서 방언과 예언이 터져 나왔다. 그는 주님의 얼굴을 보기 원했고 주님의 지시와 음성에 따라 살기를 힘썼다. 그는 수천 명의 성도가 모인 곳에서 기도를 시작한 후 기도만 4-5시간 하고서 폐회를 선언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성경만 몇장 읽는데 만인이 통곡하자 간단한 기도를 하고 폐회하고, 어떤 때는 설교를 10분 정도에 끝냈으며, 또 어떤 때는 4-5시간 혹은 6-7시간을 계속하는 등 성령의 인도 대로 설교하였다. 특히 십자가의 사랑을 설명할 때는 천 명이 넘는 군중이 눈물과 흐느낌의 물결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3. 최봉석 목사(1869~1944)
최봉석 목사는 1913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노방전도와 개인전도자로 크게 쓰임을 받았는데 전도 방법으로는 대화를 통한 회유 설득 방법이 아닌 다만 “예수 천당”만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소리를 외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다. 그는 신사참배를 반대했고 일본천황을 무시하였으며 미국인 선교사와 비밀 공작을 하였다는 죄목으로 1939년부터 1944년까지 옥중생활을 하면서, 1944년 3월 1일부터 옥중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였다. 이 40일 금식기도가 끝난 1944년 4월 10일 최 목사는 풀려나게 되었으나 집으로 돌아온지 3일 후에 75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그의 생전의 성령운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많은 기도를 통해 영력을 확보했고 둘째, 그 힘을 가지고 노방전도와 개인전도를 했다. 셋째, 전도 목사로서 목회자가 없는 교회를 다니며 교회의 부흥을 이룩하였다. 넷째, 개인적 성령운동으로 소단위 교회를 많이 세웠다.
C. 재건기(1945~1950)
1. 이성봉 목사(1900~1965)
이성봉 목사는 1925년 동양선교회 성서학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첫 개척지인 수원에서 목회할 때 병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들린 자들이 놓임을 받는 등 이사와 기적이 많이 일어나 구원 받는 자가 많았다. 그는 성결교회의 4중 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토대로 성령을 의지하여 체험적 신앙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신유의 체험운동을 전개하였고 재림의 복음을 외친 것이다.
2. 나운몽 장로(1914~ )
나운몽 장로는 1950년 6.25 동란 때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죽을 뻔 하였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그 후로 하나님께 온 몸을 맡겼으며 수도생활을 통하여 입신(入神), 방언(方言), 예언, 진동(震動), 신유(神癒)등의 온갖 신비체험을 다 맛보게 되었다. 나 장로의 기도와 능력 있는 설교는 많은 병자를 고쳤고, 그의 집회 때 여러 사람들에게 입신과 방언의 은사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원래 불교도 였던 그는 정식 신학교육을 받은 바 없었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후 해방이 되면서, 서울에 올라와 수표감리교회로 교적을 옮겨 1946년 장로가 되었다. 그의 신학에는 많은 오류가 있었다. 첫째, 공자, 석가가 동방의 성자이며 유?불교가 기독교 복음 안에 조화되는 것이 천국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단군을 아브라함의 친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셋째, 예수를 정도령(鄭道令)으로 입증하려는 경향이다. 넷째, 용문산을 성지로 보려는 동양적 풍수신앙의 잔영이 있었다. 이리하여 1956년에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41회 총회에서, 그해 4월에는 성결교에서, 1962년에는 감리교에서 이단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어서 그의 신학의 잘못을 시인하고 있다.
D. 확장기(1950~ )
1950년 6?25 동란은 민족분열 뿐 아니라 교회의 분열과 교회의 수난을 가져왔다. 1930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교회 분열의 조짐은 6?25 전쟁 이후 무섭게 번져갔다. 이러한 와중에서 무수한 신흥종파와 이단들이 한국 교회를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 교회는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신학 정립에 눈뜨기 시작하였으며 교회 분열에 대한 신학의 일치를 열망하게 되었다. 이 한국교회의 확장기의 여명에, 뚜렷한 한 줄기의 오순절 성령운동의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1. 한국 오순절 교회의 성립과 발전
1928년 3월 럼시(Mary C. Rumsey)선교사는 1906년 4월 L.A 부흥집회 때 성령세례를 받고 “한국으로 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준비하던 중, 미국 하나님의 성회 파송 선교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한국에 건너왔다. 그녀는 그 다시 구세군 조선 본영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허홍이라는 청년을 만났다. 허홍 청년에게 오순절 신앙에 대하여 설명하고 선교사업에 동참할 것을 건의한 바 쾌히 동의하였다. 그들이 전한 메시지는 “오순절 신앙이란 방언하는 것이다. 오순절 신앙이란 기도로서 병 고침 받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메시지를 가진 럼시 선교사와 허홍 목사가 5년 동안 전도한 결과 한국 최초의 오순절 교회가 서울 서빙고에 세워졌다. 1933년 봄에 일본 성서 신학교를 졸업한 박성산 목사를 서빙고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였다. 박성산 목사는 “성령세례의 표적은 방언이며 바람직한 기독교 신앙은 사회참여”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오순절 신앙이란 사도행전에 입각한 근본주의 신앙을 말하는 것으로 방언, 신유, 권능의 세 가지 성령세례를 받아야 이루어진다고 역설했다.
박성산 목사가 일본에서 귀국한 같은 해인 1933년 박성산 목사와 같은 일본 성서 신학교를 졸업한 배부근 목사가 고국의 복음화를 위하여 귀국하였다. 배부근 목사는 해방 후 더욱 전도에 힘썼으며 가평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6?25 동란이 일어나자 그는 가족과 함께 전북 이리로 내려 가게 되었다. 전세가 회복된 후에는 김두년 전도사와 함께 대구시 남산동에 오순절 교회를 세웠다. 이 당시 허홍, 박성산 목사는 서울을 토대로 오순절 신앙을 전파 하였다. 전라도에는 박귀님 전도사가 순천과 광주에서, 김성환 목사는 목포와 무안군 일대에서, 윤성덕 목사는 광주시 근교 광산에서, 곽봉조 목사는 대전에서 그리고 김길윤 목사는 거제도에서 오순절 운동을 전개하였다. 한국 오순절 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한국 오순절 운동이 전개된지 20여 년이 된 1950년 9월 말경 순천 오순절 교회를 시무하시던 박헌근 전도사의 공산군에 의한 순교이다. 6?25 동란이 일어나 공산군이 순천시를 장악하자 교회는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박헌근 전도사는 성도의 집을 비밀히 심방하며 신앙을 북돋아 주다가 마침내 공산군에 붙들려 순천 경찰서에 감금되었다. 거기서도 박 전도사는 오순절 신앙을 전하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마침내 순교하였던 것이다. 이 때가 1950년 4월 9일 전남 순천ㅇ서 제1회 기독교 오순절 대회가 열린지 5개월 후였다. 2.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조직과 발전
기독교 오순절 교회는 1933년에 교회가 세워진 후로 20여 년이 지나도록 10개 교회 500여 명의 교인 뿐 이었다. 물론 그 기간이 일제 압박의 통치 기간과 6.25의 동란 등의 시련의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선교 방법에 있어서 개교회의 차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허홍, 박성산 목사 등이 동지를 규합하여 1953년에 이르러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가 발족됨으로 비로서 조직화된 오순절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1953년 4월 8일 미 하나님의 성회에서 파송한 체스넛(Arthur B. Chesnut) 선교사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허홍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서울 남부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갖게 되었다. 이 회의 참석한 사람은 체스넛, 허홍, 박성산, 곽봉조, 배부근, 윤성덕, 박귀님 등 교역자 7인과 방청인 4인을 합하여 모두 11명 이었다. 이 때에 결정된 하나님의 성회의 신조는 다음과 같은데 그것은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신조를 요약하는 것이다.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순복음)의 신조
①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으며 절대 무오한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② 우리는 삼위(성부, 성자, 성령)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 ③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 동정녀 탄생, 무죄한 생애, 이적들, 승리적인 대속의 죽음, 육체의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심과 천 년 동안 온 세상을 통치하려 권능과 영광으로 이 지상에 재림하심을 믿는다. ④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공중 재림하실 때 교회는 휴거한다는 소망을 갖는다. ⑤ 우리는 죄의 정결함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회개하는 것임을 믿는다. ⑥ 우리는 성령으로 이룬 중생은 개인의 구원에 절대요소가 되는 것을 믿는다. ⑦ 우리는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믿는 자들의 기도를 응답하여 우리 육신의 병을 치료하여 주심을 믿는다. ⑧ 우리는 사도행전 2장 4절에 입각한 성령세례가 이를 구하는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⑨ 우리는 믿는 자에게 내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⑩ 우리는 구원 받은 자나 받지 못한 자나 다 부활하되 전자는 영생을 얻고 후자는 영벌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의 성회가 조직된 첫 해인 1953년에 각 교회 또는 지방회를 순회하면서 부흥회를 개최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 중에 1953년 10월에 박귀님 전도사가 개척한 광주교회를 중심한 천막성회는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았고 각 가지 은사가 나타나 초대교회를 연상케 하였다. 마지막 날에는 무등산 광주천에서 300여 명이 물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1960년대에는 한국 하나님의 성회의 도약의 시기였다면 1970년대는 국제적 도약의 시기요, 발전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하나님의 성회가 국제적으로 굳은 기반을 갖게 된 것은 교단 전체의 성숙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조용기 목사가 담임한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발전과 세계선교의 강화에 기인하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1981년 9월 일부 총회임원과 간부들은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당회장인 조용기 목사를 타 교단의 악의에 찬 조작 날조된 사이비 비난을 이용 제명 처분키로 결정하였다. 이와 같은 교단 분열로 맒암아 1982년 6월 29일 독자적으로 국내외 선교를 목적으로 재단 법인 순복음 선교회를 따로 설립하였다. 그러나 1984년 4월 미국 하나님의 성회 초회장 짐머만(T. F. Zimmerman) 목사가 내한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 하나님의 성회 교단에 복귀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국제적인 형제 교단으로서 대동한 동반자라는 조건으로 세계 하나님의 성회에 복귀하기로 하고 ‘예수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라는 새 교단을 창설하게 되었다.
순복음은 이렇게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와 예수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로 분열되어 각각 국내외 선교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는 분열의 제공자요, 원인자가 자기가 아닌 것을 실감하면서도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신앙의 양심에 주님의 음성이 들렸던 것이다. “너희 한 교단도 통합하지 못하면서 남북의 통일을 기원할 수 있는가?”. 더 이상 주님의 세미하면서도 명확한 음성을 반작할 수 없어서 1991년 새해 아침부터 통합을 추진 중 드디어 1992년 2월 14일 행정통합이 교단이 분열된지 만 10년 만에 이루었다. 그러나 양교단의 일부 교역자와 성도가 아직 하나되지 못하고 기도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뜻일진대 결국 빠른 시일 내에 완전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현재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교세는 교역자 3,000명, 교회 1,200개, 성도 1,200,000명으로서 한국의 3대 교단인 감리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오늘은 한국을 내일은 세계를” 복음하는 주역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2. 순복음 신학의 개요
오순절주의는 교회사상 일찍이 유래가 없는 성장을 거듭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기독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그 밖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제3의 세력(the Third Force)이란 호칭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순절계통의 교단을 체험을 위주로한 광신적 집단이나 정통에서 벗어난 신앙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이러한 경향은 몇 몇 학자들의 저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홀렌베거(W. J. Hollenweger)는 오순절주의를 반지성적이며, 반에큐메니칼(anti ecumenical)인 동시 복음주의적 좌파세력이라고 한다. 또한 니콜(J. T. Nichol)은 그의 저서의 서문에서 오순절주의자의 특징을 일곱가지 들고 있는데 어리석을 정도로 감정적이며 반지성적이고 극단적으로 열광적인 복음주의자라고 평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멘지(W. W. Menzies)도 오순절신학이란 것이 있느냐? 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어느 면에서 그 대답은 “아니오!”라는 것이다. 클라크(M. S. Clack)는 보다 노골적이고 심한 말을 하고 있는데 “20세기에 들어서 80년이나 지났지만 종교개혁 후 발전된 서구식 신학적 틀 안에는 표준적인 오순절신학이 없다”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오순절주의자들은 점차 학술적 훈련에 관심을 보이고 신오순절주의가 싹튼 후 학술적 문헌을 양산하고 있으나 가용한 문헌과 출처, 신학적 및 문학적인 배경이 빈약하여 표준적인 신학이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시키고 있다라고 한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오순절 신학을 위주로한 신학논총이 정기적으로 발간되어 우리의 믿음의 정체(identity)를 밝히고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Ⅱ. 오순절주의의 뿌리
오순절주의의 신학적 뿌리를 더듬어 보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그 이유는 오순절신학이 다양한 신학적 요소로 구성된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멘지(W. W. Menzies)는 그 뿌리를 프린스톤신학과 미국의 부흥주의신학에 세대주의의 흐름이 가미된 신학사상을 이어받은 근본주의를 하편으로 하고 웨슬레와 비웨슬레의 신학사상위에 오버린(Overlin)신학이 가미된 성결운동을 다른 편으로 하는 두 흐름이 합쳐진 것으로 본다. 이에 비해서 사이난(V. Synan)은 그 뿌리를 19세기의 복음주의적, 감리교적 및 완전주의 운동(perfectionist movements)에 두고 있으며 20세기 초에 시작된 미국의 오순절주의는 영국의 부흥주의 운동과 케직집회(Keswick Conference)를 중심으로한 “보다 높은 삶”(Higher Life)을 지향하는 운동과 전천년휴거설을 강조하는 예언운동의 결과로 보고 있다. 오순절 운동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브룬너(F. D. Brunner)는 오순절 운동의 계보를 초대교회까지 소급하여 기술하고 있다. 즉 열광적인 고린도 교인들(고전 12:-14:)로부터 시작하여 영지주의자들, 몬타누스주의자들을 거쳐 아래와 같이 19세기 후반의 “보다 높은 삶”을 표방하는 성결운동이 20세기에 들어서 오순절 운동이 된 것으로 이해한다.
고린도 교인들 → 영지주의자 및 몬타누스주의자 → 신령주의자들(중세 및 종교개혁 이전) → 급진 좌파 또는 재세례파 및 신비주의자들(종교개혁시대) → 퀘이커교도 (종교개혁후) → 경건주의자, 웨슬레주의자 및 부흥주의자 운동(17세기-18세기의 독일, 영국 및 미국) →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 미국의 찰스 피니(19세기 전반) → “보다 높은 삶”과 성결운동(19세기 후반) → 오순절 운동(20세기)
이에 비하여 앤더슨(R. M. Anderson)은 오순절 운동의 뿌리를 가까운 19세기의 성결운동과 근본주의에서 찾는다. 이상의 여러 견해를 종합해 볼 때 오순절주의의 뿌리가 근본주의와 성결운동의 흐름에서 나왔다는 것을 연역할 수 있다.
Ⅲ. 오순절주의의 유형
오순절주의의 유형 역시 학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잇다. 사이난은 정통오순절주의자들(Classical Pentecostals), 개신교은사주의자들(Protestant Charismatics), 가톨릭은사주의자들(Catholic Charismatics), 독립집단(Independent Groups), 및 제3세계토착집단(Third World Indigenous Group)으로 구분하는데 비하여 바렛트(Barrett)는 선구자적 오순절주의자들(Pre-Pentecostals), 정통오순절주의자들, 토착화된 비백인준오순절주의자들(Non-White Indigenous Quasi-Pentecostals), 개신교은사주의자들, 제3의 물결주의자들(Third Wavers), 및 숨은 은사주의자들(Crypto-Charismatics) 등으로 구분한다. 이 지면에서는 정통오순절주의자들, 개신교 은사주의자들, 가톨릭은사주의자들, 및 제3의 물결주의자들에 대해서 쓰리고 한다.
1. 정통오순절주의자들(The Classical Pentecostals)
이 유형의 오순절주의자들은 1901년 토페카(Topeka)에서 일어난 파-함(Charles Fox Parham)의 가르침과 190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된 씨무어(William J. Seymour)의 사역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특히 성령세례의 첫 물리적 표적으로 방언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성결운동의 영향을 받은 파-함은 순간적인 구원의 위기체험을 제2의 은혜의 사역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앤더슨은 이 운동을 웨슬레-성결운동에서 나왔다고 본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웨슬레 성결운동과 개혁복음주의적 부흥주의(Reformed evangelical revivalism)가 산파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앤더슨은 사이난이 웨슬레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지만 웨슬레적인 오순절주의자들은 세대주의, 전천년설, 및 성령세례에 대한 케직의 교리를 받아드림으로써 이루어졌다고 보며 웨슬레 전통에서 발전하였다고 주장한다.
2. 개신교 은사주의자들(Protestant Charismatics)
1960년에 시작된 개신교 은사주의자들이며 일명 신오순절주의자들(Neo Pentecostals)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주로 칼빈주의적 전통을 가진 개혁교회로붙어 파생된 오순절주의자들로서 기존교회로부터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추방된 집단과 교회내에 잔류하면서 은사운동을 전개하는 집단으로 세분할 수 있다. 전자는 루터 및 화란교회(1947)의 브레데슨(Harold Bredeson), 메노나이트인 더-스타인(Gerald Derstine, 1954), 감리교회의 타이슨(Tommy Tyson, 1954) 등이 속하며 후자에는 감독교회의 윈클러(Richard Winkler, 1960) 및 벤넷트(Dennis Bennet)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성령세례의 최초의 증거로써 방언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이 집단에 속하는 신자들은 대체로 사회?경제적 신분이 높으며 고등교육과 신학교육을 받고 있다. 예배에 있어서도 지나친 감정적 표현을 자제하며 비교적 예전과 성례를 중시하고 있다.
3. 가톨릭 은사주의자들(Catholic Charismatics)
1967년 피츠버그에 있는 Duquesne 대학에서 은사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정통오순절주의자들처럼 성령의 체험과 이에 수반된 방언을 주장하지만 은총의 제2사역과 같은 사고방식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의 이 운동은 개신교 오순절신학이나 문화적인 영향을 거이 받지 않고 독자적인 형식과 구조를 가지고 발전하였다.
4. 제3의 물결주의자들(Third Wavers)
사이난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으나 이상의 유형외에 제3의 물결을 오순절 운동의 유형으로 추가할 수 있다. 와그너(C. P. Wagner)는 1982년에 제3의 물결이란 용어를 만들어 냈다. 이 운동은 1980년에 나타난 운동으로 정통오순절 운동(제1의 물결)이나 은사운동(제2의 물결)과 유사하면서도 상이하다. 주로 복음주의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병고침, 축귀 및 예언의 은사 등 능력 체험을 강조한다. 방언은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성령세례의 첫 표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유형에 속한 사람들은 약 2천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Ⅳ. 오순절신학과 쟁점
오순절신학의 주요 쟁점은 복잡한 그 뿌리로부터 이미 추측이 가능하다. 오순절주의에 영향을 미친 2대 주류인 근본주의와 성결운동만 보더라도 쟁점의 근본적인 원인은 각 종파가 성장한 신학적 배경과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및 문화적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클라크는 오순절신학과 비오순절신학간의 신학적 파라미터는 상호 배타적이 아니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잘 해야 그 결과는 혼성물이 될 뿐이며 그 내용은 합리적인 학문적 형식이나 또는 교리적 개념으로 다른 신학과 교류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오순절신학을 형성하고 있는 한 주류인 근본주의는 프린스톤신학과 세대주의의 연합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들의 근본 교리는 오순절 신학의 교리와 크게 다를게 없다. 성경의 무오설과 동정녀 탄생을 믿으며, 대리적인 속죄, 예수의 신체적 부활, 및 문자적, 물리적 재림을 믿는다. 1948년 근본주의자들은 복음주의 전국연합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를 조직하였으며 오순절주의자들도 이에 포함시켰다. 앤더슨은 근본주의나 오순절주의는 공히 성서적 문자주의(biblical literalism)을 주장하기 때문에 오순절주의를 근본주의 일부로 간주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1. 성화
성화(sanctification)와 성결(holiness)은 그 의미가 유사한 것 같으면서도 신학적 의미는 다르다. 뿐만 아니라 종파에 따라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오순절주의에 있어서도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즉 개혁신학에 동조적인 오순절주의자들은 성화를 은혜의 두 사역(two works of grace)으로 보는 반면 웨슬레주의에 동조적인 오순절주의자들은 세역사로 보고 있다. 전자에 속한 사람들은 피니(C. G. Finny), 무디(D. L. Moody), 토레이(R. A. Torrey), 심슨(A. B. Simpson) 및 더함(W. H. Durham) 등이며 후자의 경우는 톰린손(A. J. Tomlinson), 마손(C. H. Mason), 캐쉬웰(G. B. Cashwell), 크로우포드(F. Crawford), 파아함(C. F. Parham) 및 씨무어(W. J. Seymour) 등이다.
1) 3단계의 은혜의 역사
19세기의 성결운동은 영국의 케직운동과 미국의 기독인선교연합(CMA :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웨슬레가 주장한 성화를 믿었다. 즉 회심의 체험과는 다른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또는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란 순간적인 체험이었다. 이 개념은 19세기 말엽이 되면서부터 발전되어 사람들은 온전한 성화를 성령세례와 같은 것으로 보되 이 체험의 첫 표적이 방언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웨슬레에 동조적이었던 파함과 씨무어는 이를 방언을 수반한 성령세례로 수정하였고 제3의 은혜의 역사가 아니라 성결된 삶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능력의 은사(gift of power)로 보았다. 반면 초기의 오순절 지도자들은 온전한 성화와 성령세례를 두 개의 분리된 체험으로 믿었고 성령세례에는 반드시 방언의 은사가 수반된다고 믿었다. 즉 중생/회심, 온전한 성화 및 성령세례의 3단계로 된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감리교도나 웨슬레주의의 배경을 가진 성결운동자들이며 사도적 신앙집단(Apostolic Faith Group),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Cleveland, Tenn.), 오순절성결교회(PHC) 등이 이에 속한다.
2) 2단계의 은혜의 역사
1910년 더함은 웨슬레주의자들의 온전한 성화개념을 비판하고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완결된 역사(finished work)를 주장하였다. 즉 2단계의 은혜의 역사를 주장하는 그는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가 이룩한 역사는 신자가 칭의를 받는 순간부터 전생애를 통하여 계속되는 성화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후속적인 은혜의 역사가 필요치 않다고 이해하였다. 개혁신학에 동조적인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웨슬레가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한 일생동안의 성장과정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완전 상태는 구원받은 순간부터 시작되겠지만 오직 영원에서 완성된다고 본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은 점진적으로 계속되고 있으나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불순함과 불완전함을 면하기 어렵다. 칼빈은 이 세상에서 죄없는 삶은 불가능하다고 보며, 완전 또는 온전한 성화는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만 달성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2단계로 보는 집단은 넷이다. 즉 청교도들(Puritans) 또는 개혁파의 인친 자(Reformed Sealer), 웨슬레주의자 및 웨슬레 성결운동 및 전통오순절주의자들이다.
3) 양분된 오순절주의 진영
3위 1체적 오순절주의자들을 웨슬레-성결주의와 침례교적 오순절주의로 양분시킨 원인이 바로 “완결된 역사” 논쟁이다. 더함의 논리는 “다 이루었다”(요 19:30)는 예수의 말씀에 근거하여 신자를 위한 구원과 성화가 다 완수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 안에서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점진적이다. 앤더슨은 이러한 분열 현상을 사회?경제학적인 면에서 부연하여 말하고 있다. 즉 그에 의하면 완결된 역사를 주장하는 오순절주의자들은 제2의 역사를 주장하는 오순절주의자들 보다 도시적(都市的)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부 및 흑인 오순절주의자들은 성화의 제2의 역사를 보다 강력하게 집착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교단의 배경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교리적 측면에서 볼 때 이들 양측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옳다고 볼 수 있으나 신자가 그 생애에서 체험하게 될 성화의 과정은 순간적이며 즉각적인 성화와 점진적인 성화의 양면이 있다고 본다. 즉 중새/회심시에 체험하는 위치적 또는 신분적 성화(Positional Sanctification)와 그 후에 계속되는 점진적 성화(progressive santification)이다. 이 세가지의 개념이 중복되거나 또는 학자에 따라 한 개념에 다른 개념을 포함시킬 수 있으나 세 개의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 성령세례
오늘날 성령세례는 루터시대의 이신칭의 만큼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가 성령세례에 대해서 특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에 대해서 다양한 신학적인 해석이 주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도가 비록 긍정적이더라도 왜곡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화에서 언급된 것처럼 그 단계에 따라 큰 쟁점이 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복음주의적 견해는 중생/회심과 성령세례를 같은 구조로 생각한다. 성례적 견해에서는 이에 비해서 세례나 견신례를 입문(initiation)의 성례로 본다. 이 두 견해는 성령세례를 중새/회심 또는 세례/견신례와 동일하게 생각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갖게 되는 단계를 한 단계로 생각한다. 2단계의 구조는 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즉 일단계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갖고(중생/회심) 2단계로 정통 웨슬레주의가 말하는 소위 “제2의 축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성령세례를 제3의 축복으로 간주하는 경우 3단계 구조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단계론자로서는 던(J. D. Dunn)과 칼 바르트를 들 수 있다. 던은 성령세례를 회심-입문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보고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호칭될 수 있다고 말한다. 칼 바르트는 성령세례를 하나님이 개인을 위해 전 그리스도인의 삶을 준비하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본항목에서는 성령세례가 과연 중생/회심과 구별되며 분리된 체험인가하는 문제와 성령세례가 주어지는 목적을 중심으로 하여 논하기로 한다.
1) 분리성(separability), 구별성(distinctiveness) 및 후속성(dubsequence)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세례를 중생/회심과 분리된 체험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는 네 가지가 있다. 즉 성령세례가 회심의 일부분이며 방언과 같은 물리적 증거가 없다는 주장(Dunn 및 Bruner 등), 회심의 일부분이며 방언이 수반된다는 주장(Oneness Pentecostal Group), 성령세례는 통상 중생 후에 일어나며 방언이 수반되지 않는다는 주장(웨슬레 성결 집단), 및 성령세례는 통상 중생 후에 일어나며 방언의 표적이 수반된다는 주장(미하나님의 성회의 정통 오순절주의자들) 등이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분리성과 구별성이며 후속성은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 분리성(separability)이란 본질(nature)과 정체성(identity)에서 특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질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회심의 본질과 성령세례의 본질은 분리되어 있으며 특이성이 있다는 것이다. 구별성(distinctiveness)은 특성(character)과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비하여 후속성은 분리성과 구별성 개념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회심과 성령세례는 동시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논리적으로 볼 때 회심은 성령세례에 선행하여야 한다.
위에 기술된 네 가지의 예에서 방언의 수반 여부를 제한다면 문제는 성령세례가 회심의 일부라는 견해와 후속하는 즉 분리된 사건이라는 견해로 양분할 수 있는데 던이 주장하고 있는 회심-입문(conversion-initiation)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출발점부터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한다는 개념에 성령세례를 포함시킨 반면 오순절주의자는 이를 불신자가 회개하고 믿음을 가짐으로 즉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한 후에 일어나는 체험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던이 주장하는 conversion-initiation은 일련의 과정(process)이지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순절주의자들은 분리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도행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그 성경구절은 오순절날의 성령강림(행 2:1-13), 사마리아의 부흥(행 8:4-19), 바울의 체험(행 9:1-19), 고넬료 및 이방인의 체험(행 10:44-48, 11:15-17) 및 에베소 신자의 경우(행 19장)이다. 성령세례를 회심과 별도의 체험으로 보는 어-빈(H. W. Ervin)이나 호-톤은 자연히 긍정적으로 이를 풀어나가고 있다. 즉 120문도의 겨우 이들은 이미 성령이 강림하기 이전에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신자였으며 사마리아인들의 경우에도 빌립이 오기 전에 예수를 영접하고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여 새사람이 된 상태이며 고넬료의 경우는 특수한 사례로써 중생과 성령세례가 동시에 발생한 경우로 본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회심과 성령세례의 체험ㅇ든 달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에베소 신자의 경우는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구원을 받았거나 최소한 성령강림전에 중생하였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순절주의자들은 사도행전의 사례 중 세 사례(오순절날 사건, 사마리아 사건 및 바울의 회심)는 후속적인 성령세례의 체험을 말해주고 있으며 나머지 두 사례는 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던은 이에 대하여 이견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120문도는 믿음에 대한 그들의 반응과 헌신이 미숙하였기 때문에 신약성경적인 정서로 볼 때 오순절날 이전까지는 그리스도인으로 볼 수 없으며 고넬료의 체험은 단일 사건이며 회개, 구원, 성령세례 같은 용어는 모두가 고넬료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말과 동의어라는 것이다. 3일간에 바울이 체험한 사건도 단일 사건으로써 바울이 아나니야에 의해서 눈을 뜨게 될 때까지 바울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에베소 신자의 경우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한 것이 아니라 신앙을 고백한 제자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냐고 질문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고 다시 세례를 주기전까지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던의 회심-입문의 논리에 의하면 누가 기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회심과 분리된 성령세례의 사례를 하나도 기술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브룬너의 입장도 던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의 세례는 곧 성령세례를 뜻 한다. 그러나 던과는 달리 브룬너는 오순절날의 사건과 사마리아인의 경우를 역사적인 정황을 고려하여 예외적인 사례로 본다. 즉 예수의 승천과 성령의 은사를 교회에 주기까지의 기간을 120문도들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다른 한 경우는 사마리아인의 경우이다. 브룬너는 이 사례를 교회가 유대권을 넘어 그 밖으로 첫발을 디딘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락한 잠정적인 조치로 본다. 그러나 그 이외의 경우, 성령세례는 그리스도교적 물세례와 분리할 수 없으며 동일한 것이라고 한다. 결국 이 논쟁을 보다 정확히 가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 것 같으며 이 문제는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2) 성령세례의 목적
성령세례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령세례에 관한 궁극적인 문제는 바로 성령세례의 목적과 관련된다. 브룬너는 성령의 첫 번째이며 가장 중요한 능력은 우리를 그리스도에 연결시켜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념은 Hoekema 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성령세례를 구원을 위하여 부여되는 성령의 부여이며 이 부여가 있기 전에는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신자가 아니라고 한다. 던 역시 성령세례는 기본적으로 입문적(initiatory)이라는데 의미가 있으며 능력부여는 부차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순절주의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현재까지 역동적이며 충만한 성령의 능력부여는 오직 성령세례의 체험을 통해서만 온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윌리엄즈(J. R. Williams)는 성령세례의 필요성을 구원보다 신자들에게 봉사를 위한 능력부여로 보며 펄만(M. Pearlman)이나 멘지(R. P. Menzies)도 같은 의견이다.
스트론스타드(R. Stronstad)는 만일 선물로 주신 성령이 예수님과 초대교회에 능력적이었거나 직업적인 것(vocational) 이었다면 오늘날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체험하는 것도 같은 차원일 것이라고 말한다. 미하나님의 성회의 교리서인 성서의 교리(Bible Docrines)에서도 성령세례는 본래 개인에 있어서의 성결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를 위한 능력부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볼 때 성령세례의 목적 역시 던의 회심-입문이라는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오순절주의의 뿌리와 유형을 개관하고 지면의 제한으로 중요 교리 중 성화와 성령세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오순절주의가 개혁파의 특색을 지니면서도 어쩔수 없이 평행선을 그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성령세례를 그리스도인의 입문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개념은 뛰어 넘을 수 없는 간격을 두게 할 뿐만 아니라 구원의 순서(ordo salutis)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리에 있어서 정통오순절주의적 영향을 받고 있는 순복음신앙은 개혁주의와 해석이 다른 몇 가지 중요한 교리적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성령세례에 있어서 최초의 표적인 방언 문제를 비롯하여 종말론에 있어서 전천년설 및 세대주의적인 해석, 병고침을 비롯한 일부 영적은사의 중단론 및 축귀의 문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문제는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공격하기 전에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 순복음 신학의 정체성
4. 순복음 신학의 방법론
Ⅳ.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
지난 30년간 한국 교회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지켜보았으며, 필자의 마음은 완전히 사로잡히었다. 한국전쟁은 나라를 황폐시키었고, 산업과 교통과 통신의 기본적 시설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집과 산업이 붕괴되었으며, 가족은 이산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한국처럼 고통을 당한 나라가 20세기에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참혹학 고난을 당했다. 종전과 함께 찾아온 참담한 비극 직후의 영적 공백 역시 참으로 심각했다. 환멸과 속수무책의 상태가 만연되었다. 휴전이 협정된 지 20년이 안된 1970년대 초에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었던때를 기억한다. 매섭게 추운 결울임에도 불구하고 난방이 갖추어진 공공건물은 없었고, 도시는 거무죽죽하고 지저분하였으며, 가난한 흔적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나라 전체가 우울과 슬픔에 처하였었던 시기였었다. 그리고, 한국의 첫날 밤을 결코 잊을 수 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서울의 한 신학교 캠퍼스에 거하였으며, 친절한 선교사들의 돌봄을 받고 있었다. 한 추운 날이었지만 나의 방에는 온기가 없었다. 동트기 훨씬 이전의 시간에 창밖에 있는 눈 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신실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새벽 기도회를 위하여 학교 채플에 모이고 있었다. 당시만 하여도 한국의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한국 신자들의 열심과 헌신은 현대교회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30년 동안 일어난 변화는 얼마나 놀라운가! 한국은 잿더미에서 오늘날 가장 능력 있는 경제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산업과 경제의 발전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효율적인 교통과 통신 시설이 갖추어진 현란한 도시들은 바로 수 년 전 상황에 비하여 얼마나 대조적인가! 나라의 외형적 변신보다 더 놀라운 현상적인 변화는 기독교 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영향이다. 한국전쟁의 종전 당시에는 지극히 소수의 공동체에 불과하였었던 한국 기독교가 인구의 모든 부분에 놀랍도록 접근하여 급성장하였으며, 전 인구의 삼분의 일 이상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이토록 주목할 부흥의 중심에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중요한 한 인물은 아마 조용기 목사님일 것이다. 조 목사님은 그로 하여금 세계에서 최대 대형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이루게 한 능력의 원천을 자신의 성령님 체험으로 돌리고 있다. 조 목사님은 오순절 전통 내에서는 물론 국내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삶과 교육 내용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 소재한 하나님의 성회의 대형 교회들의 목회자 대부분은 조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세계 하나님의 성회 총재(the Chairman of the Assemblies of God Fellowship)으로서의 조 목사님은 전 세계의 오순절 동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지도자라는 것을 그들이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의 오순절 교회들을 명시하는 가치관들에 대하여 보다 분명한 이해를 하기 위하여서는 조 목사님의 가르침을 반드시 포함시키어야 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조 목사님의 성령론을 오순절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다. 성령님에 대한 조 목사님의 이해와 그의 성령 체험이 자신의 사역의 동기가 되며 힘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저서들을 읽었고, 그의 설교들을 들었기 때문에 그는 글자 그대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었다. 때문에, 그의 가르침이 표준적인 오순절 동역자들에게 그러하다. 조 목사님이 매우 중시하면서 사용하는 술어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오순절 교회들내에서 항상 분명하게 이해되고 있지는 않다. 조 목사님의 신학을 한국 사회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해하여 그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를 피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그의 설교들과 저술들을 읽을 때 반드시 마음에 담을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진리는 어느 한 상황 속에서 손쉽게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독특한 역사와 조 목사님의 사역 초기의 특별한 주변 상화 때문에, 하나님은 매우 중요한 시점에 조 목사님을 사용하시어 낙심 가운데 있는 백성들이 들어야할 몇 가지 핵심적인 주제들을 듣도록 하시었다: 희망, 구원, 권능, 높은 기대등의 주제들. 그러한 주제들이 하나님이 계시한 모든 것들은 확실히 아니지만, 참으로 낙심 가운데 있었던 백성들을 위한 긍정적인 가능성의 메시지,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희망의 메시지를 그 백성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조 목사님을 선택하여 사용하시었다. 조 목사님은 특별한 메시지가 필요한 특별한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으로 여겨지어야할 것이다. 성령님에 대한 조 목사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이곳에서 다룰 때 상황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1. 성령이해의 배경
멘지즈는 서론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사역 초기의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 체험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한다.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을 한국 사회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해하여 그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를 피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조용기 목사님의 사역, 특별히 그의 사역 초기의 시대적이고 전기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그의 신학을 바르게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멘지즈의 이러한 이는 그의 신학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멘지즈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한다.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은 신학대학원의 강의실이나 도서관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은 기도원이나 부흥회를 통하여 출발한 것도 아니다. 그의 신학은 첫 목회 현장에서 잉태되었고 확대되었다. 그러나, 멘지즈가 조용기 목사님의 시대적 상황과 전기적 경험을 강하고 자주 강조함으로써 그의 신학이 한 시대의 상황과 한 개인의 경험의 산물로 여겨지는 듯한 인상을 줄 수가 있다. 상황과 신학이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은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은 개인적이고 시대적이며 동시에 공간과 시간을 넘어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경험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삶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있지만, 보편적이기에 우리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듯이,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과 사역이 그러하기에 그가 한국의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의 한국과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멘지즈가 조용기 목사님의 시대적이고 전기적 “상황”을 강조한 나머지 다른 한 중요한 요소가 간과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즉, 조용기 목사님은 상황의 문제로 인하여 “감동”되었고, “성경”의 해답으로 인하여 “감동”되었으며, “성령님”의 능력의 임재로 “감동”되었고, 신자의 문제가 해결됨으로 인하여 “감동”되었으며, 그들을 “감동”시켜 타인을 돕는 증인과 봉사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는 오중적 감동의 신학이다. 그의 신학은 상황적일 뿐만 아니라, 성서적이고, 체험적이며, 치유적이고, 실천적인 오중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시대와 개인의 상황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그의 내면의 영적 감동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의 신학은 상황과 동시에 오중적 “감동”에 대한 선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떼의 고난에 대한 감동, 말씀과 복음이 주는 해답으로 인한 감동. 성령님의 체험으로 인한 감동, 양떼의 고난이 해결되는 감동, 그리고, 그들이 모든 족속을 돕는 것을 보는 감동! 양떼로 인한 감동, 말씀으로 인한 감동, 성령님 체험으로 인한 감동, 문제 해결로 인한 감동, 그리고 돕는 것을 보는 감동. 이러한 측면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은 오중적 감동의 신학이다. 성서의 원저자가 감동되었듯이, 독자들이 감동될 때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칼빈이 이중적 감동설을 가르치었다면, 조용기 목사님의 신한에 대한 이해는 그가 오중적으로 감동되었듯이, 그의 신한적 독자가 오중적으로 감동될 때 그의 신학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멘지즈가 조용기 목사님의 주변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바른 지적이지만, 조용기 목사님의 오중적 감동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부가되어야 할 것이다.
조용기 목사는 그의 삶에서 자신의 성령이해의 바탕이 된 두 번의 결정적인 신앙 경험이 있었다. 그 하나는 성령세례의 체험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격을 지니신 성령에 대한 계시의 경험이었다. 이런 실제적 경험들이 조 목사의 성령론의 뼈대를 형성했다. 특히 후자가 그의 성령이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 조용기 목사의 첫 번째 성령세례 체험
조용기 목사는 “성령세례란 무엇인가?”라는 설교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경험한 성령세례를 받은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모든 죄를 회개하고 속이 시원했습니다. 그러자 불같은 성령이 임하시기 시작했는데, 나의 혀가 꼬부라지고 입술이 떨리더니, 방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고함을 치고 기도해도 방언만 유창하게 나오는데, 생수가 뱃 속에서 강같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조 목사는 자신의 이런 성령세례의 경험을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강림의 사건들을 다룬 후에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세례를 “위로부터 능력을 입는 것”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담대한 “복음 전파를 위한 능력”을 받는 것으로 이해한다. 조 목사의 첫 성령체험은 이런 맥락에서 언급되고 있기에, 그는 성령을 복음 증거를 위한 “능력의 영”으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계시를 통한 성령이해
조용기 목사는 그가 목회하는 교회의 성도가 약 4,000명에 도달하였을 때, 갑자기 교회의 성장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열심히 설교하고, 기도해도 교회는 더 부흥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하루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모든 성도들이 성전을 떠난 후, 그는 성전의 한 구석에서 계속적인 교회 성장을 위하여 홀로 기도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비몽사몽에 빠졌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와의 대화가 있었다. “ 내 아들아, 지금보다 더 큰 교회를 갖고 싶은가?” 나는 대답했다. ‘아버지, 물론이지요. 저는 제 교회가 4,000명을 넘어 성장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나의 거룩한 바람인 성령과 확실한 교제를 가져라.’ 이 말을 듣고 나는 혼자 속으로 웃었다. ‘아버지, 저는 성령에 대해 모든 것을 압니다. 저는 거듭났습니다. 성령은 제 안에 이미 내주해 계십니다. 저는 성령세례를 체험했습니다. 저는 방언도 말합니다. 제가 성령에 관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합니까?’... ‘내 아들아, 그것이 너의 문제다. 성령은 체험해야 할 사물이 아니다. 성령은 장엄한 인격적 존재다. 너는 그를 예배하고, 경외하고, 감사하고, 그 분과 교제를 가져야 한다.’“
위와 같은 성령에 대한 심오한 계시는 조용기 목사의 성령이해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런 깨달음이 있기 전까지는 성령을 하나의 체험의 대상으로 취급하였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이런 극적인 깨달음 이후, 그는 성경을 자세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도행전을 읽던 중, 초대교회(제자들)가 성령을 분명히 인격을 지니신 분으로 대우한 것을 깨달았다.(행 13:2-4, 15:28 등). 하나님의 계시를 성서에서 확증한 순간이었다. 그 후, 그의 성령이해는 “체험의 대상”에서 “인격적 교제의 대상”으로 철저히 전환되었다. 그는 성령을 무엇보다도 “인격을 지니신 분”으로 철저히 인식하고, 인격적 성령과의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늘날 그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라”는 표현은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성령과의 진지한 교제를 갖기 시작했을 때, 자신의 삶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가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놀라운 성령의 감동과 능력을 그의 마음에서 뿐 아니라 설교에서도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즉시로 교회는 다시 성장되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을 통하여, 그는 교회 성장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역사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았다.
본 연구자는 상기의 두 성령 경험이 조용기 목사의 성령이해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의 성령이해는 “능력”에서 출발하여 “인격”으로 그 중심개념이 이동되었다. 나아가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에 있어 성령이 단지 인격적 존재일 뿐 아니라, “신적 인격”으로 이해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에 있어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3위이시다.
구약에 나타난 성령
1)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영
구약에서 하나님의 루아흐는 우선 창조와 관련하여 나타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ruah 'elohim)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조용기 목사는 창조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루아흐를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신 창조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해한다. 그는 창조의 사역에 있어 하나님의 영과 말씀과의 긴밀한 연관을 본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그 말씀의 본을 따라 창조의 역사를 하셨다. 이처럼 그는 하나님의 영과 말씀은 “창조의 동역자”라고 말한다. 조 목사에 의하면 생명의 공급자로서의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창조에도 관여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생명의 숨(neshmat hayym)을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nepesh hayah)이 되었다(창 2:7). 구약의 다른 곳에서 ‘숨’은 ‘영’의 동의어로서 사용되고 있다. 욥기 33장 4절에서 하나님의 ‘영’(ruah)은 전능자의 ‘숨’(neshmat)과 일치한다. 따라서 인간 창조에 있어 하나의 영은 자연과 인간의 창조에만 관여하실 뿐 아니라 피조물의 보존에도 관여하신다고 말한다. (시 104:29-30)
2) 은사의 원천과 능력으로서의 하나님의 영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의 영을 생명의 원천일 뿐아니라 각종 은사의 원천으로 바르게 이해한다. 요셉의 바로의 꿈을 해석한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창 41:38-39). 하나님의 영은 요셉에게 바로의 꿈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주셨다. 또한 브사렐이 성막과 성막의 여러 기구들을 공교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충만히 임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주셨기 때문이다(출 31;3; 35:31).
하나님의 영은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모세가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짊어질 수 없다고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임한 영을 모세가 데려온 70인의 장로들에게도 임하게 하셨다(민 11:17, 25). 여기서 모세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의 전이는 지도력의 부분적 전이를 의미한다. 모세는 임종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후계자로 세운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을 때 그는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여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었다(신 34:9). 또한 하나님의 영은 왕을 세우는 일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삼상 10:6,9 10; 16:13). 조용기 목사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이 “지혜”와 “지도력” 같은 은사를 부여할 뿐 아니라 “능력의 영”으로도 나타난다고 옳게 말한다. 이것은 특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사사들을 통해 잘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에게 그의 영을 보내셔서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게 하셨다(삿 3:8-10; 6:34; 11:29).
3) 하나님의 영과 종말
조용기 목사는 구약의 영을 말세에 부어질 종말론적 영으로도 이해한다. 이 종말론적 영은 우선 메시야와 관련되어 있다. 이사야는 미래에 완전한 평화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 나라는 주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메시야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사 11.1ff). 이런 주의 영의 종말론적인 강림에 관한 예언은 만민에게 부어질 것을 바라보는 요엘에게서 정정에 이른다(욜 2.28-32).
요약하면,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함께 하셨고 피조물의 보존에도 관여하셨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선택된 일군들에게 각종 은사(지혜, 명철, 지식 등)을 부여하시는 원천으로 이해된다. 또한 하나님의 영은 70인의 장로, 여호수아 그리고 왕들 위에 부어져서 그들이 지도력을 발휘하여 그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그리고 사사들을 통하여는 능력의 영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하나님의 영은 장차 평화의 나라를 세울 메시야와 만민에게 부어질 “종말론적인 영”으로 이해된다. 조용기 목사는 구약의 성령론을 개관한 후, 구약시대에도 “성령님과의 동역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그의 성령론이 다분히 “실천적”이요 “사역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그는 구약시대의 성령의 역사의 특징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원하실 때, 소수의 지도자들을 선택하셔서 그의 영을 부으시고 맡은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예수와 성령
1) 예수의 탄생
예수의 탄생이야기는 사복음서 중, 마태와 누가가 전해준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장차 그녀를 통해 메시야가 탄생될 것을 예고한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으리라”(눅 1:35). 가브리엘 천사의 말은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이 성령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으로 말미암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예수의 지상 생애의 처음부터 함께하시며 역사하셨다. 조용기 목사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 성령을 “능력의 영”으로 옳게 이해한다.
2) 예수의 성령체험
예수는 요단강에서 물세례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셨다(마 3:13-27; 막 1:9; 눅 3:21-22). 누가에 의하면 예수는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에게 강림하였다고 보도한다(눅 3.21-22). 요단강에서의 예수의 성령체험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조용기 목사는 예수의 성령체험이 그의 메시야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었다고 바르게 말한다.
3) 예수의 시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예수는 성령에 의해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마 4:1-11; 막 1:12-13; 눅 4:1-13).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임했던 바로 그 성령은 이제는 예수의 시험을 위해 그를 광야로 인도했다. 조용기 목사는 “성령께서 예수를 광야로 ‘인도’하셨을 뿐 아니라, 광야에 머무는 도안에도 그와 ‘함께’ 하셔서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도우셨다‘고 말한다. 이처럼, 성령은 시험받는 예수와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고 도우셨다.
4) 예수의 나사렛 선언과 사역
예수의 나사렛 회당에서의 선언은 그의 전 사역을 위한 프로그램적인 성격을 갖는다(눅 4:18-19). 조용기 목사는 이 선언에서 예수의 사역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그는 이 선언에서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오직 성령에 의한 사역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적절히 주장한다. 조 목사는 이런 그의 주장을 사도행전의 본문을 들어 지지하고 있다. 그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와 그 가족에게 행한 베드로의 설교를 예로 든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을 부으셔서 그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선포하였다(행 10:38). 이는 성령께서 예수의 공적 사역에 함께 하셨음을 말해 주는 중요한 본문이다. 조 목사는 성령이 예수의 공적 사역에 지속적으로 함께 하셨다고 이해하는 것 같다.
5) 예수의 고난과 부활
조용기 목사는 예수의 고난과 부활에도 성령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도우셨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의 십자가 상의 죽으심과 성령을 명백히 연관시키고 있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 (히 9:14) 이 구절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왜냐면 성령께서 예수의 전 사역에 함께 하시며 도우셨을 뿐 아니라, 예수의 지상 삶의 마지막인 십자가의 죽음에도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는 영원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흠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나아가 조 목사는 성령께서 예수의 부활에도 함께 하셨다고 생각한다. 로마서 8장 11절의 해석에서 그는 성령을 예수의 부활의 행위자요 생명의 수역자로서 이해한다. 조 목사는 예수의 삶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을 다룬 후,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예수의 지상 삶에 왜 성령이 그와 함께 하시며 인도할 수 있었는가? 그는 예수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에 시종일관 성령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성령을 의식하고, 의지하였기에 성령께서는 예수를 도우며 인도하실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조용기 목사는 예수의 잉태에서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 전 과정에 성령이 함께 하셔서, 인도하시며 도우셨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이런 성령의 도우심은 바로 예수께서 성령을 끊임없이 의지하였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오순절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을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서 간주한다.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고, 그 날로부터 복음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온 세계로 확산되었다.
1) 예수의 약속
조용기 목사는 예수께서 자신이 승천한 후, “제자들이 선교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도 성령의 능력을 받으신 후에 그의 메시야적 사역에 들어 가셨듯, 제자들도 예수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배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행 1:4-5)
여기서 조 목사는 성령세례의 약속이 이미 “제자된 자들”에게 주어졌다는점을 지적한다. 그에 있어 성령세례(성령충만)의 약속은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지 구원을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다. 조용기 목사는 제자들이 복음전파에 앞서서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그가 옳게 지적하고 있듯이, 이것은 누가의 성령론의 대 전제이다. 증거에 참여해야 성령의 능력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증거는 오직 성령의 능력을 받은 이후에야 가능하다.
2) 성령강림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을 예수의 약속의 성취로 이해한다(눅 24:49; 행 1:4-5). 오순절 날에 약 120명의 제자들은 보고 들을 수 있는 표적들과 함께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역사를 체험했다(행 2:1-4). 조 목사는 그 날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임이 활화산처럼 폭발해서 온 천하만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날의 성령 강림 사건에 있어 “기도”의 중요성을 바르게 지적한다. 그리고 성령충만의 확실한 “외적인 증거”를 갖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순절 날 120문도는 성령충만을 받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였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방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부어 주셨다고 선포하였다(행 2:33). 또한, 오순절 기적에 나타난 성령의 성격을 “복음 증거를 위한 능력”으로 이해한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였을 때 제자들은 능력을 받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였다. 나아가,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사건에서 성령이 인격적 존재이심을 본다. 그는 “왜 성령께서 다른 방언으로 임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해답을 성령의 인격성에서 찾는다. 성령은 120명의 제자들의 말을 인도했으며, 언어는 인격을 지닌 자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3) 오순절 사건의 의의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예수의 약속적 성취” 뿐 아니라 구약 예언자들, 특히 “요엘의 예언적 성취”로서 이해한다(욜 2:28-29). 이것은 베드로가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 사건을 직접적으로 요엘 예언의 성취로 해석하는 점으로 볼 때 분명하다(행 2:16ff). 또한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을 종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욜 2:28; 행2.17). 조 목사는 요엘서의 “그 후에”라는 말이 베드로의 설교에서 “말세에”라는 표현으로 바뀐 것에서, 오순절 날의 성령이 바로 “종말론적인 선물”임을 옳게 본다. 그는 이 종말론적인 선물이 구약과는 달리 모든 사람에게 부어질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나아가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전 세계적인 구원의 사건으로 변화시킨 위대한 기적적인 사건이었다고 강조한다.
요약하면, 조 목사는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 사건을 예수(그리고 요엘, 세례요한)의 약속의 성취로서 이해한다. 그에 있어 성령세례(성령충만)는 구원이후에 주어지는 종말론적인 선물이다. 그리고 이 성령세례(성령충만)는 “복음증거를 위한 능력”으로 부어지는 것이다. 그는 성령 받음에 있어 “기도”의 중요성과 객관적인 “표적”이 따름을 강조한다. 나아가 성령께서 제자들의 말을 인도해 다른 방언으로 KF한 사실에서 성령이 “인격적 존재”이심을 본다. 끝으로,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전 세계적인 구원의 사건으로 변화시켰다고 지적한다.
오순절 이후
본 연구는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 이후 사도행전의 남은 부분에서 성령과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이 확산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여기에서 조용기 목사의 성령이해가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1) 사마리아 사람들
스데반의 순교는 예루살레 교회에 큰 박해를 가져왔고, 이 핍박은 오히려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의 말씀이 성취된다(행 1:8).
조용기 목사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이 빌립의 복음을 믿었지만 “아직” 성령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는 점을 바르게 지적한다. 성령은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와서 기도하고 안수하였을 때 비로소 임했다. 여기서 조 목사는성령 받음이 구원 이후에 주어지는 은혜의 체험임을 분명히 한다. 누가는 사마리아 사건에서 성령강림의 표적을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으나, 조 목사는 성령강림의 외적 표적이 나타났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어떤 표적도 나타지 않았다면 마술사 시몬이 돈을 주면서 그런 능력을 사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틀림없이 마술사 시몬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조용기 목사는 복음전파에 있어서의 성령의 “주권적” 위치를 본다. 성령께서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주도적으로 빌립을 인도하셨다(행 8:29). 그리고 빌립이 내시에게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 때 다시 성령께서는 빌립을 다른 지역으로 이끌어 가셨다. 성령께서 그를 새로운 일터로 옮기신 것이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빌립을 통하여 복음전파에 있어 주권을 갖는 분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조 목사는 복음 사역에 있어 성령께서 그 사역의 “실질적인 주체”라고 말한다.
2) 바울
조용기 목사는 바울의 회심과 성령충만의 체험 역시 구분된 사건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 결정적으로 예수를 만났다. 사울은 시력을 잃은 가운데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금식하였다(행 9:8-9). 사울의 금식은 그가 내적으로 변화되었음을 나타내준다. 또한 그가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회심의 진실성을 말해준다. 조용기 목사는 사울이 금식하고 기도한 사실로 미루어 그가 예수를 통하여 회심하였다고 이해한다.
조용기 목사는 회심한 사울이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하여 성령의 충만함과 치유를 받았다고 올바로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바울의 이야기에서 회심과 성령충만이 분명히 구분되는 신앙체험이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조용기 목사는 바울이 성령을 체험한 이후 다메섹에서 뿐 아니라, 로마에까지 이르러 예수를 증거한 사실을 언급하며 여기에 나타난 성령의 성격을 “증거를 위한 능력”으로 이해한다.
3) 고넬료
고넬료와 그 가족에게 임한 성령의 강림은 큰 의미를 갖는다. 왜냐면 성령의 선물이 유대인의 벽을 넘어 이방인에게도 부어졌고, 이방인에 대한 선교의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예수에 관한 복음을 증거하자, 성령이 말씀을 들었던 고넬료와 그 가족에게 임하였다. 성령이 임하자 그들은 방언을 하며 하나님을 높였다. 조용기 목사는 고넬료의 집에 모인 이방인들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가 동일하다고 말한다. 그는 성령강림의 결과로서 동일한 현상들(방언, 하나님 높임)이 나타났음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 같다(행 2;4, 11; 10:46).
조용기 목사는 성령께서 빌립을 주권적으로 이끌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것처럼, 베드로를 주권적으로 이끌어 고넬료와 그 가정에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본다. 그는 고넬료 이야기에서도 복음 전파에 있어 성령의 “주권적”위치를 본다.
4) 안디옥으로부터의 복음의 확장 안디옥 교회는 사도행전에서 또 다른 중요한 시작을 나타내준다. 이 교회로부터 이방 선교가 광대하게 펼쳐진다.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주를 섬기며 금식하고 있었다. 이때 성령으로부터 말씀이 있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행 13:2)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여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의미에 있어 안디옥 교회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보냄을 받았다(행 13:4). 조용기 목사는 안디옥 교회의 이야기에서 복음전도에 있어서 성령의 “의지”와 “자유”에 주목한다. 성령은 자신의 의지를 따라 자유롭게 복음을 확장시켜 나가신다. 그는 복음전파에 있어서의 이런 성령의 의지와 자유성이 초대교회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적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사도행전에 있어 또 하나의 전환점이다.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할례가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여 교회에 문제를 일으켰다. 누가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의사항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기한 것들 외에 아무 집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행15:28)
조 목사는 이 결의문에서 “성령과 우리”라는 문구에 주목한다. 그는 “성령”이 “우리”에 앞서 언급된 것은 당시 교회가 그들 가운데 인격적으로 임재해 계신 성령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의지하였다는 사실을 반영해 준다고 주장한다. 조목사는 성령을 복음 사역의 “선배 동업자”(the senior partner)요 우리는 “후배 동업자”(the junior partners)라고 말한다.
2. 성령론의 역사적 배경
3. 성령론
Ⅴ. 순복음 신학과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 비교
Ⅵ. 결론
1. 논의
1) 사변적 성령 이해에서 체험적 성령이해로
조 목사는 전통적인 오순절 교단의 성령론을 그대로 다 수용하고 있다. 조 목사는 오순절 교단의 성령론에 입각해서 한국교회에서 이론적이고, 사변적 이해에 그친 성령을 목회 현장에 이끌어 내어 모든 자에게 임한 성령, 누구나 체험험 할 수 있고, 교제할 수 있는 성령이 되게 하였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예정 그리고 중생가 성령세례를 동일시하는 장로교 신학의 영향과 함께 박태선, 문선명 등의 사이비 성령운동의 여파로 성령사역이 위축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령세례의 체험을 갈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용기목사가 주도한 오순절 성령운동이 놀라운 교회 부흥을 가져옴과 동시에 전 세계의 교회가 한국교회 성령운동을 주목하기 시작하자 한국교회는 성령의 역사에 차차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한 성령충만 사역은 교파를 초월하여 각 교회에 파급되어져 나갔고 성령운동을 활발히 전개한 교회마다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처음에는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많은 기성 교단과 교회들이 성령의 사역에 문을 열고 성령운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은사주의적 성향을 띈 교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성령세례와 방언의 체험은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능력 받아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함으로 교회 부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2) 성령의 인격성 강조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강조는 잘못 흘러가 수 있는 성령운동의 방향에 대해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교회역사를 보면 성령을 하나님의 힘, 신비한 능력으로만 이해했던 무리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성령의 인격성을 무시하고, 성령의 은사와 능력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성령의 인격성은 무시하고 신비한 능력만 강조함으로 이단이 된 한국의 대표적인 이단이 바로 박태선의 전도관이다.
조용기목사가 인격적 존재로서의 성령을 강조한 표현중 가장 유명한 것이 “성령님을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들입니다.”이다. 조 목사는 그의 저서 성령론에서 성령께서 인격을 지닌 존재임을 알고, 늘 성령과 교제하며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또한 무의식 가운데 성령을 인격적 존재가아닌 어떤 힘이나 에너지, 능력 정도로 생각하고 하나의 수단과 방편으로 이용하려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이 같은 성령 이해는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사고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성도의 삶과 교회의 성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3) 구령사업의 주체로서의 성령
영혼구원은 주님의 지상명령이며, 모든 성도들이 힘써야 할 과제이다.(마28:19-20) 조목사는 “성령님의 가장 큰 관심은 영혼구원에 있다.” 고 강조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성령님은 “영혼구령의 원동력”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복음증거의 열정에 불타게 하여, 택하고 보내신다. 또한 성령님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요15:26) 예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시는 사역(요16:14)을 행하심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신다.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여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다. ‘구령사업의 주체는 성령님’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조용기 목사는 성령충만의 은혜를 먼저 체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성령충만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은 열정적인 복음의 증인이 되어 성령과 동행하며, 수많은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해 오고 있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지구역장은 타교회의 전임사역자 이상으로 헌신하고 열정적으로 전도한다는 소문까지 나게 되었다.
4) 교회성장의 주체로서의 성령
성령충만의 신앙을 토대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온 세계 교회 주목할만한 경이적인 교회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서대문 시절 순복음중앙교회의 성도 수는 5년만에 3천명에서 1만8천명으로 늘어났고(1961-1973), 1973년 여의도로 교회를 이전한 후 폭발적으로 부흥하여 1990년도에 이르러 재적 70만 성도의 초대형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 조용기 목사는 이러한 성령의 비결이 조용기 목사는 ‘성령님을 선배 동역자’로 모시고, 성령님의 이끄심을 딸라 순종하며 동역하는데 있었음을 강조한다. 조목사는 자신의 목회 사역이 ‘성령님과 교통하며, 교제하기 시작하면서 교회성장을’ 이루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은 교회의 l도자로서 성령충만한 지도자들을 통하여 날마다 교회가 부흥하게 하셨다. 성령님은 전 인류를 위하여 보편적으로 역사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인간이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때 동역자로 사역 하셔서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이시다. 누구든지 성령님을 영접하고, 환영하고, 의지하면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성령충만한 빌립집사는 사마리아 성에 복음을 전하여 큰 부흥을 가져 왔으며, 성령의 지시를 다라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전도함으로 아프리카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였다.(행8:5-8,29) 나아가 성령님은 교회와 동역하시고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 이처럼 조용기목사는 성령을 목회 사역의 선배 동역자로 모시고 성령의 도우심 아래 사역을 감당해 나가고 있다.
5) 말씀운동과 기도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의 성령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은 철저히 말씀운동과 기도운동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아간다. 성령운동이 말씀중심의 운동이 되지 않을 때 극단적 신비주의나 이단이 되기 쉽다. 실제로 1900년 초 한국교회에 일어난 부흥운동은 철저한 사경회 중심의 건전한 성령운동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중요시하는 이 전통은 기도와 함게 한국교회의 신앙형태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말씀중심의 성령운동은 교회를 질적으로 양적으로 부흥시킨다. 1970년대 세계 최대교회로 급부상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역시 부흥 이면에는 말씀운동이 전제되어 있었다. 조용기 목사는 먼저 말씀을 ‘기록된 말씀’과 ‘선포된 말씀’으로 역사하게 된다고 한다. 즉 성경이 성령을 통해서 말씀중심의 성령운동이 되기 위하여 평신도를 대상으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신자의 생활 뿐만 아니라, 교회성장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영적 역동성을 가진다. 교회의 성장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기도를 생활화하는 기도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조용기목사 자신이기도의 사람으로 성도들에게 매일 한 시간 이상 기도할 것을 권면하였고, 기도의 실천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 먼저 기도해야 한다. 내가 기도하지 않고는 기도하는 교회가 될 수 없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부흥 성장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철야기도, 새벽기도, 금식기도 등을 통해서 기도 중심의 성령운동을 활발하게 행하고 있다. 이 같은 조용기 목사의 기도에 대한 강조는 특별히 영적 침체에 빠져있던 서구 교회에게 크게 영향을 미쳐 기도운동을 통한 영적 각성과 교회부흥에 크게 기여했다.
6) 성령시대의 시작과 종말론적 신앙의 강조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강림을 구약 요엘2:28,29의 문자적 재 성취로 보았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첫 번째 오순절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탄생시켰고, 두 번째 오순절은 마지막 때 교회의 큰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비하기 위해 20세기 초 일어나게 하셨다고 믿는다. 그들은 초대교회의 오순절 성령운동이 첫 열매를 거두는 ‘이른 비’ 라면 자신들의 시대는 마지막 추수를 위한 ‘늦은 비 시대’라고 보았다. 따라서 오순절 운동은 종말에 대한 서곡이었다. 성서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전천년주의의 대한 믿음은 종말론적 긴막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더군다나 오순절 신아에 있어서 종말은 일차적으로 역사와 시간의 연장선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순절주의자들에 있어서 종말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현재적으로 체험되었다. 따라서 오순절 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세에 자신들을 택하사 성령운동에 사용하신다는 신적 사명감에 사로 잡혔고, 오순절의 메시지를 마지막 시대를 위한 메시지로 여기고 복음전도에 열과 성을 다했다. 조용기 목사도 같은 입장에서 재림의 때가 가까워왔기 때문에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며 준비하는 종말론적인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 더불어 성도들이 세상에서 전도와 구제 등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된 역할을 담당하며 살도록 권면하고 있다.
7) 축복신앙과 샤머니즘(무속적 기복신앙)과의 관계정립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의 또 하나의 공헌은 샤머니즘의 극복이다. 조용기 목사는 축복신앙과 샤머니즘은 물질적인 풍요를 축원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나, 다음과 같은 면에서 전혀다르다고 주장한다. 첫째, 샤머니즘은 구원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복이 찰나적이고, 허무한것인 반면에 축복신앙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제하며, 영적 축복의 열매로 환경 속에 축복과 육신의 건강이 주어지게 됨을 말한다. 둘째, 샤며니즘은 사람의 현세적 이기적인 복만(무병장수, 부귀영화)을 구하는 반면에 축복신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가지고 소외된 이웃에게 나누며, 윤리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것을 추구하며 내세의 부활과 영생의 복락을 더 귀하게 여기며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샤머니즘은 윤리성이 결여되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요행이나, 주술을 통해 복을 받으려 시도하시만 축복신앙은 하나님의 계약과약속에 그 근거를 두고, 개인이 그를 순종하고, 믿음을 가지고 성실과 근면으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 이처럼 종요기 목사가 주장하는 축복이란 축복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으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기위한 하나의 과정적인 개념이다. 또한 이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속에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생겨난 것이므로 통합적이며, 존재론적으로 근원적인 것이다. 결국 일상적인 고난이나 축복은 다 과정적이며 모든 것은 종국적으로 합력하여 존재론적으로 근원적인 선을 이룬다.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은 사변적 이해에 머무르던 성령을 교회 사역의 현장과 성도의 삶에 체험적으로 역사하는 성령으로 이끌어 냄으로 성령이해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 같은 조용기 목사의 성령이해는 20세기 후반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령운동에서 갑자기 출발한 것이 아니라 밖으로는 세계 오순절운동의 성령운동이 한국교회에 접목되어 진 것이고, 안으로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이래로 한국교회에 도도히 흘러운 성령운동을 집대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체험적 성령이해는 신비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으나, 조용기 목사는 인격적 성령이해와 함께 말씀운동을 강조함으로서 균형 있는 성령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조 목사는 성령론의 영향으로 한국교회 모든 교회에 오순절적 성령운동이 파급되어 은사주의적 교회가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교회의 급성장과 함께 대형교회(Mega-Church)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도운동의 확산으로 성도들의 영성을 회복시키는 데 크게 기여 하였고, 종말 신앙의 강조로 성도들을 열심있는 복음 전도자로 변화되게 하였다.
조 목사의 성령론은 ‘사도행전적 교회의 재현만이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도들을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한다.’는 것을 한국교회에 일깨워 주었다. 성령이 역사하는 한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