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방석 앉았던 그들… 요즘은 가시방석

[이석호]

억만금 날린 억만장자들
세계 300대 부자들 1년새 1兆달러 날려

세계 경제침체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신흥시장의 갑부와 주요국 CEO들도 추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세계 억만장자(재산 10억달러 이상) 1125명 중 주식·부동산 등 자산 디플레이션으로 지난해 10억달러 이상을 잃은 갑부가 300명에 달했다. 그들의 금고에서 줄잡아 1조달러가 증발했다.

특히 지난 수년간 기관차처럼 질주, '고고(go-go) 이코노미'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던 중국·인도·러시아 등 신흥국가 갑부들의 손실이 두드러졌다. 신흥국가 갑부들의 탄생은 과거 글로벌 호황의 '결과'였다. 하지만 버블붕괴 과정에서 그들의 추락 속도도 아주 빠르다.

2800억달러(약 380조원). 이 천문학적인 돈은 최근 9개월(작년 3~12월) 동안 중국 40대(大) 부자와 인도 40대 부자들이 입은 손실액을 합한 것이다(포브스). 친디아 거부(巨富) 80명의 9개월 손실 재산이 이스라엘(1619억달러), 이라크(561억달러), 아이슬란드(200억달러) 등 3개국 GDP 합계보다 많다.

미국의 CEO들도 위기를 맞고 있다. 경기 호황 시절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경제의 마술사'로 칭송받던 이들이 잇따라 퇴출 통보를 받고 있다.

지난해 미국 기업의 CEO 1484명이 자리를 떠났다(컨설팅업체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 영업일 기준으로 하루 6명꼴로 CEO들이 쫓겨난 셈이다. 최근 8일(6~13일) 동안에만 컴퓨터 저장장치 업체인 시게이트의 윌리엄 왓킨스를 비롯, 미국 상장기업 CEO 6명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CEO 수난 시대는 미국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호주 등에 기반을 둔 다국적 광산개발업체인 리오틴토의 딕 에반스 사장이 오는 4월에 물러나고, 노르웨이의 전력업체인 노르스크하이드 역시 3월 사장 교체를 발표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더크 젠터 교수는 "1993~2001년 사이에 바뀐 1627명의 CEO를 분석한 결과 경기 침체기에는 호황기보다 2배 이상 교체가 많았다"고 말했다. 델라웨어 경영대학원의 찰스 엘슨 교수는 "어려움이 가중될수록 투자자들은 리더가 책임지기를 원한다"고 했다.

인도의 통신·금융 재벌인 ADAG의 아닐 암바니(Ambani) 회장. 1년 전쯤인 2007년 말 그는 글로벌 재계의 신성(新星) 중 신성이었다. '달리는 코끼리' 인도 경제의 호황 덕분에 2007년에만 240억달러를 벌어 그해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이 번 부자가 된 것이다. 재산 규모에서도 인도 출신의 세계 철강왕 락시미 미탈(Mittal)을 눌렀다.

그런 아닐 암바니 회장이 지난 연말에도 화두(話頭)가 됐다. 하지만 이번엔 정반대 이유였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는, 그가 지난해 3월 이후 9개월 만에 325억달러(약 44조원·450억달러→125억달러)의 재산을 잃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재산 손실을 본 부자로 기록했다. 그가 갖고 있던 주식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의 직격탄은 억만장자들을 비켜가지 않았다. 특히 최근 수년간 지칠줄 모르고 내달렸던 중국·인도·러시아 등 신흥국가 갑부들의 추락이 주목받고 있다.

■중국 용(龍)들의 몰락

'일년천하'(一年天下). 해마다 새 얼굴의 부호들이 혜성처럼 등장해 부자 명단이 1년 단위로 바뀐다는 중국 재계의 유행어다. 그만큼 중국에서 부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국 부호들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지난해 중국 400대 부호의 재산은 반 토막(2조1577억위안·443조원→1조1744억위안·231조원) 났다. 10대 부자 명단에서 일년 만에 7명이 사라졌다.

손실이 가장 큰 부호는 광둥(廣東)성의 땅부자(4500만㎡) 양후이옌(楊惠姸·여·27).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 창업자의 둘째 딸이자 최대 주주인 그는 일년 새 재산이 80% 넘게 줄었다. 2007년 회사가 상장되면서 무려 1060억위안(약 20조8000억원)을 벌어 단숨에 중국 1위 부자에 올랐지만 지난해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재산이 151억위안(약 2조9800억원)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회계학을 공부했고, 지난해 네 살 많은 유학파와 결혼했다는 것 외에 신상이 베일에 싸여 있다. 개인 정보를 샅샅이 뒤져내 공개하기로 유명한 중국 네티즌들도 엉뚱한 사람 사진을 양후이옌이라며 인터넷에 유통시켰을 정도다.

손실 규모를 떠나 가장 극적인 몰락을 보인 사람은 중국 가전 유통업체인 궈메이(國美) 그룹의 황광위(黃光裕·39) 회장. 17세에 광둥성 산터우(汕頭)에서 빈손으로 베이징에 올라온 그는 이후 의류노점상부터 시작해 지난해 초 183억위안(약 3조6000억원)까지 재산을 불렸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한파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주가조작과 뇌물 사건으로 부인과 함께 수사를 받으면서 궈메이 이사회에서 쫓겨났다. 금연구역인 베이징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서도 담배를 피울 정도로 금력(金力)을 자랑했던 황광위는 이제 궈메이가 홍콩 증시에서 퇴출되면서 재산이 얼마나 줄어들지조차 가늠하기 힘들게 됐다.

폐품 수집상에서 출발해 중국 재계의 여장부 반열에 오른 세계 최대 포장지 생산기업 주룽(玖龍)제지의 장인(張茵·여·52) 회장도 90% 이상 잃어 전 재산이 18억위안(약 3500억원)으로 줄었다.

베이징 일대 알짜배기 부동산을 소유한 루즈창(盧志强) 역시 39억달러였던 재산이 15억달러로 줄어들었고, 부부(夫婦) 갑부로 유명한 판스거(潘石屹)와 장신(張欣) 부부는 홍콩 증시에 상장한 부동산개발업체 소호의 주가 폭락으로, 38억달러까지 치솟았던 재산이 12억달러까지 줄어들었다. 기부를 많이 하기로 유명한 센트리 골든 리소시스 그룹(世紀金源投資集團)의 황루룬(黃如論) 회장의 재산도 절반 이하(20억달러→9억6000만달러)로 떨어졌다.

반면 위기 속에서 빛을 본 부자도 있다. 지난해 중국 부자 1위에 오른 인물은 사료업체인 둥팡시왕(東方希望)의 류융싱(劉永行·61) 회장. 2007년 중국 갑부 순위 20위였던 그는 사료값 상승과 정부 지원 덕분에 1년간 재산을 23억위안이나 불렸다.



■인도, 달리던 코끼리의 수모

재산이 줄어든 것으로 따지면 아닐 암바니의 친형인 무케시 암바니도 뒤지지 않는다. 뭄바이에 60층 높이의 저택을 짓고 있는 그가 지난해 잃은 재산은 자그마치 283억달러. 릴라이언스 그룹 창업자의 아들인 이들은 경영방식의 극명한 의견 차이로 인도판 왕자의 난을 겪었다. 형은 에너지·섬유, 동생은 통신·금융 사업을 주로 맡고 있다. 기업을 분리해 각각 독립했지만 이젠 위기 극복을 위해 다시 손을 잡을 수도 있는 상황에 몰려 있다.

인도 출신으로 최고 부자로 불린 세계 철강왕 락시미 미탈은 전 재산의 절반 수준인 305억달러를 날렸다. 영국 런던 켄싱턴에 있는 1억2800만달러짜리 저택에 살면서, 딸 결혼식 피로연에만 5500만달러를 쏟아부었던 그가 이제 근검절약 생활로 모드를 바꿀지 궁금하다.

풍력발전 회사인 수즐론 에너지의 툴시 탄티 회장은 판매하던 터빈에 불량이 발견돼 주가가 폭락하면서 강풍을 맞았다. 그의 회사 주가는 작년 3월 이후 80%나 떨어졌다.

인도 육사 출신의 이름 없는 부동산 업자였다가 1990년 이후 인도 개혁·개방 정책 덕분에 뉴델리 인근 땅값이 치솟아 단번에 인도 최대 부동산 재벌이 된 DLF(Delhi Land & Finance) 그룹의 쿠샬 팔 싱(Singh) 회장도 일년 만에 재산이 4분의 1 수준(300억달러→75억달러)으로 줄었다. 뭄바이에 호텔 4개를 갖고 있는 찬드루 라헤자(30억달러→15억달러), 부동산 개발업체 유니텍의 회장인 라메시 찬드라(96억달러→10억달러) 등도 큰 손실을 입었다.



■러시아 부호들도 곤두박질

지난 연말 영국 런던. 글로벌 금융위기로 117억달러를 날린 러시아 부호이자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아스날의 최대 주주(지분율 24%)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Usmanov·54)는 기자회견 중 귀에 익은 팝송을 개사해 불렀다. "When a man loves a woman, he can't conceivably sell that love. I'm in love with Arsenal(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상상컨대 그는 그 사랑을 팔 수 없습니다. 나는 아스널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자금난으로 아스날 지분을 매각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는 이어 "내친김에 지분 1%를 더 획득해 25%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 기자회견은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로 재산이 반 토막 났지만, 자기 취미는 좀처럼 포기하지 않으려는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부자)의 독특한 속내를 드러냈다.

지난 연말 우스마노프를 포함한 러시아 갑부 25명의 재산이 지난해 초에 비해 총 2300억달러 감소한 것으로 포브스는 집계했다.

러시아 갑부들은 1991년 소련 붕괴 후 싼값에 나온 금속·에너지 업종의 러시아 국영회사 지분을 사들인 뒤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승승장구해 왔다. 그러나 이번 세계 경제의 침체로 국제 유가(油價)와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러시아 증시가 고점 대비 70% 이상 하락하면서 풍선 바람이 빠지듯 재산이 급감한 것이다.

세계 최대 니켈회사인 '노릴스크 니켈'의 지분 25%를 보유한 러시아 1위 부자인 올레그 데리파스카(Deripaska)는 작년에 286억달러에 달했던 재산이 100억달러 안팎까지 줄었다.

245억달러의 자산을 보유하며 작년 세계 14위, 러시아 2위 부자로 뛰어올랐던 알렉세이 모르다쇼프(Mordashov·43) 세베르스탈 회장도 회사 주가 하락 때문에 53억달러가 증발한 것으로 블룸버그는 집계했다. 하지만 모르다쇼프 회장은 지난 연말에도 수억달러를 들여 오페라·발레공연의 명소(名所)인 모스크바 볼쇼이극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 후원 사업을 계속했다.

축구 사랑으로 유명한 러시아 갑부 로만 아브라모비치(Abramovich·42). 자산 243억달러로 세계 15위 갑부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그도 203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기가 구단주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구단을 아직 시장에 내놓지 않았다.

[이석호]

Chosun Weekly Biz 2009년 1월 17일자 기사입니다.

[돈사랑]

그래두 부자 망해도 3대는 간다던데...;;;;;

[달이짱]

1년만이라도 좋으니 돈방석 위에서 함 살아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