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국내 최고의 레프트윙으로 활약하며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자랑했습니다.1966년 6월 27일 전북 완주 출생으로 성남 일화 천마의 코치를 지냈으며 선수시절 일화 천마 소속이었는데 마스코트가 천마인 점과 스피드가 빠르고 저돌적인 모습을 보고 적토마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특유의 파워를 이용한 돌파력, 몸싸움을 잘 해 코뿔소란 별명도 있습니다. 1989년 일화천마에서 프로데뷔를 하여 데뷔한 첫 해 K-리그 신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2001년 K리그 올스타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습니다.
2.갈색폭격기 차범근
1971년 청소년 대표로 발탁된 이후 1년 후인 1972년에 당시 최연소의 나이로
국가 대표팀에 발탁되어 5월 7일 이라크와의 AFC아시안컵 경기에서 데뷔하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도 참가하였다.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후 대통령배 국제 축구 대회말레이시아 전에서 1-4로 뒤지고 있을 때 7분 동안 해트트릭을 기록해 동점을 만든 것은 유명하며 특히 일본과의 정기전을 치를 때마다 눈부시게 활약하였다. 1986년 6월 10일,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A매치가 되었다.
80년대 말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삼손’의 갈기머리를 휘날렸던 김주성은20세기 아시아 베스트 30인 가운데 한국인으로는 차범근 감독과 함께 순위에 올랐다.
4.키다리 김재한
73년 11월 9일 서울운동장(지금의 동대문운동장)에서는 한국과 호주의 월드컵 예선 최종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드니 원정경기에서 0 대0으로 비긴 한국의 이날 홈 경기는 54년 이후 20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느냐를 가리는 승부였다.
경기 시작후 얼마되지 않아 190cm의 장신 공격수 김재한 선수가 상대 수비의 공을 가로채 첫 골을 터뜨리며 기선을 제압했다. 곧이어 한국의 추가골이 터지며 54년 이후 20년만에 월드컵의 문이 활짝 열리는 듯 했다. 그러나 크게 열리는 듯 하던 문은 후반 45분 동안에 다시 닫혀지고 말았다
5.테리우스 안정환
프로축구에 뛰어 든 98년 `베스트11'에 선정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프로축구선수로서 최고영예인 MVP가 됐다.
2000년 7월에는 부산 아이콘스에서 이탈리아 1부리그(세리에A) '페루자 FC'로 임대돼 빅리그로 진출하게 되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미국전에서 동점골을 뽑아내고,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골든골을 뽑아냄으로써 스타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
6.케이리그의 전설 김도훈
2005년8월 28일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K-리그 원정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K-리그와 K-리그 컵대회 합산 통산 110골로 개인 통산 최다 득점 타이를 기록하였고,[7]8월 31일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홈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K-리그와 K-리그 컵대회 합산 통산 113골로 개인 통산 최다 득점 신기록을 세웠으며,[8]10월 19일대전 시티즌과의 K-리그 홈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K-리그와 K-리그 컵대회 합산 개인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114골로 늘렸지만,10월 24일전남 드래곤즈와의 K-리그 원정 경기에서 부상을 입어 시즌을 마쳤고, 시즌이 끝난 뒤 공식 은퇴를 선언하였다
7.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수비수로 활동하던 대학 4학년, 1990년은 처음 태극마크를 달던 해였다. 그 해 2월4일 노르웨이 친선경기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한일월드컵 축구가 열렸던 2002년 말까지 13년간 그가 뛴 국가대표팀 간 경기(A매치)는 135차례로 아직도 역대 최다기록이다. 이 기록의 수치는 그의 성실성, 축구에 대한 능력, 선수들과 어울리는 소통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상대 공격의 루트를 미리 내다보고 차단하는 능력,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지능적인 플레이와 탄탄한 기본기, 그라운드 전체를 굽어보는 시야를 바탕으로 한 송곳 전진패스, 그리고 무엇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통솔력으로 수비라인과 팀 전체의 경기력을 조율하는 것까지. 답답한 공격으로 팀이 곤경에 처하기라도 하면 지체 없이 나서 공격의 활로를 뚫는가 하면,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 뒤엔 재빠른 역습으로 경기 분위기를 바꾸면서 그에겐 어느새 잊을 수 없는 호칭이 붙었다. ‘영원한 리베로.’ 홍 감독은 뭔가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이 별명이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