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좌초 위기에 봉착한 4조 원 규모의 서울 가양동 CJ공장 부지 개발 사업으로 인한 불똥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PF 브리지론 1조 3550억 원 중 4300억 원의 만기가 올해 상반기에 도래하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갑작스러운 제동으로 시행사뿐만 아니라 대주단과 보증을 선 현대건설의 재무 리스크도 덩달아 고조되고 있다. 지자체가 추가 기부채납을 요구하며 인허가를 돌연 취소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부동산 개발 경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제2의 레고랜드 사태’ 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개발 업계에 따르면 CJ 가양동 부지 개발 시행사인 인창개발이 이 사업과 관련해 일으킨 PF브리지론 중 4300억 원의 만기가 올해 상반기 도래한다. 현재 CJ 가양동 부지 개발 사업에는 6개 증권사가 11개 SPC를 통해 총 1조 3550억 원의 브리지론을 조달한 상태다. 캐피털사와 지역 새마을금고, 은행 등 대주단만 40여 곳에 이른다. 평균 금리는 약 6%로 시행사는 매월 67억 원가량의 이자를 납부하고 있다. 인허가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일부 대주단이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개발 업계에서는 ‘지자체 리스크’로 절차에 따라 진행돼오던 사업이 중단 위기 봉착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강서구청은 지난해 9월 내줬던 건축협정 인가를 올해 2월 돌연 취소했다. 건축협정은 2개 이상의 필지를 하나의 대지로 묶어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건축 허가를 받기 직전 단계다. 인창개발은 지난해 CJ공장 부지 3개 블록 중 2개 블록에 지하 연결 통로를 만들고 주차장을 공유하는 내용의 건축협정 인가를 신청해 받았다. 그리고 인허가 다음 단계인 건축 허가 심의를 같은 달 접수했으나 5개월간 지연되다 건축협정 취소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강서구청이 당시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소방 관련 기관 협의 이후 재신청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서구청이 결국 25일 밝힌 이유는 추가 기부채납이었다. 강서구청은 “대규모 민간 개발에 따른 안전 문제를 비롯해 그간 CJ공장 가동으로 주민 피해가 많았던 지역”이라며 “강서구민에게 돌아가는 실질적 혜택이 어떤 것이 있는지, 공공 기여가 적정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개발 업계에서는 이번 인허가 취소가 도시계획 절차를 무시한 불합리한 행정이라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실무선이 아닌 강서구청 고위층의 결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개발 업계 관계자는 “인허가를 내준 실무자는 징계를 받고 인허가 결정을 뒤집으며 몽니를 부리는 것은 결국 고위층의 결정”이라고 전했다. 건축협정을 내줬던 실무 담당자는 징계를 받은 상태다.
인창개발은 현재 기부채납율 규정에 따라 인허가를 받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준공업 지역 종합 발전 계획에 따라 시행사는 기반 시설을 위해 부지 면적의 10% 이상을 기부채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인창개발은 13.2%를 순 부담해 서울시와 강서구의 유관 부서의 심의를 지난해 9월 최종 통과했다.
지자체의 인허가 번복으로 사업의 발목이 잡히면서 시행사와 대주단, 보증을 선 시공사의 재무 부담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현대건설은 토지매입 등에 투입된 브리지론(1조 3550억 원)에 연대보증과 자금 보충을 확약했다. 가양동 사업말고도 △이마트 가양점 부지개발사업(1500억 원) △한남3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600억 원) △둔촌주공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2455억 원) 등 약 2조 원가량의 브리지론에도 보증을 서고 있다.
신용평가사도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현금 보유액이 약 2조 7000억 원에 달해 당장 유동성 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은 낮지만 규모가 큰 사업장인 만큼 우발 채무 가능성을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인허가 문제가 빠른 시일 내 마무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해결이 늦어지고 사업이 지연될 경우 이슈 평가를 통해 현대건설의 리스크를 재평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