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9일, 미 군사당국이 주한 미군의 오산 기지에 실수로 살아 있는 탄저균을 보내버린 ‘배달 사고’를 알리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미군 사령부는 28일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응급격리시설에서 탄저균 표본을 전량 폐기 처분했고, 외부로 유출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생화학 무기로 쓰이는 탄저균은 인체에 노출될 경우 치사율이 95퍼센트에 달한다는 치명적인 물질이기 때문에 보통 비활성 상태, 즉 죽은 상태로 실험에 사용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실험을 진행하고 나서야 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균의 반입에서 실험, 폐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그들만 아는 가운데 진행되었고, 우리는 아무 것도 보거나 듣지 못한 채 그들의 자체 발표에 의해서만 상황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균 반입 후 4주가 지나고서야 미군의 신고를 받고 사태를 파악하게 된 우리 보건 당국은 질병관리본부를 보내 실험실의 안정성 여부를 점검했다. 이튿날,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결과가 보도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탄저균의 국내 전파 가능성은 없으며 훈련 인원 중 감염 증상자도 없다. 액체 상태의 탄저균은 분말보다 감염력이 현저히 낮으며 공기 노출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고위험 병원체 이송시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절차를 미군이 어긴 것은 불활성화된 탄저균을 이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또 이런 입장을 발표했다. “현재 우리 군은 탄저균 감염시 치료가 가능한 항생제 ‘시프로폴록사신’과 ‘독시사이클린’을 보유하고 있으며 탄저균 관련 예방 백신은 질병관리본부 주관으로 2016년 개발을 목표로 연구개발 중으로, 탄저균 대비태세가 확립되어 있다.”
뭔가 이상하다. 우리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 당국과 안전을 보장하는 군 당국의 언어에서, 하마터면 전 국민적 재앙이 될 수도 있었을 이 일에 대한 문제점 인식이나 반성, 무엇보다 미군 측을 향한 비판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말이 너무나도 모호하여 이름을 가리고 본다면 자신들의 잘못없음을 강변하는 미 육군 참모총장의 성명 내용과도 구분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실험이 끝나고 폐기까지 마무리된 현장의 청소 상태를 간신히 둘러보고 '감염자가 없으니 됐다'라고 말하는 우리 보건 당국의 브리핑에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정진해야 한다면, 어느 소설가가 세월호 1주기 특별기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다만 재수가 좋아서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여기라는 것인지. 그렇다면 무더위의 초입에 국민이 메르스균 하나만을 근심해도 되는 이 나라의 평안은 땀흘려 일하는 보건의료 종사자들 덕분이 아니라 탄저균 상자를 터뜨리지 않고 온전하게 날라준 페덱스 사의 오롯한 공덕일 것이며, 앞으로도 언제, 어느 만큼 들어올지 모를 독성 물질을 옮기게 될 운송 업체들의 안전 배송을 우리는 국가 기도회를 열어서 빌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국가 주권의 영역을 넘나드는 주한 미군의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작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의 초월적 지위와 우리 당국의 자발적인 엎드리기는 나라의 뿌리깊은 관행이라 할 만하다. 1950년의 부산에서 주리고 헐벗은 피난민들에게 초콜릿 박스와 밀가루 포대를 던져 주고 나눠 주던 구원자로서의 높은 콧대는 세기가 바뀐 현재까지도 꺾일 줄을 모른다. 부당하게 권력을 잡았거나 연장했기에 미국의 도움이 절실했던 우리의 집권 세력들도 휴전 이후 주한 미군의 존재가 가장 큰 전쟁 억지력이며 이들이 없으면 곧바로 적화 통일이 될 것이라는 불패의 논리를 완성시켜서 언제나 그들을 감싸 왔다. 양국의 이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주한 미군의 초법적인 지위는 지난 반세기간 지극한 존엄성을 지켜온 것이다.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찰머스 존슨이라는 미국의 정치학자가 쓴 <The Sorrows of Empire>라는 책으로, 번역된 제목은 <제국의 슬픔>이다. 그는 젊어서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버클리 대학과 샌디에이고 대학에서 수십 년 간 정치학을 강의했으며 노년에는 CIA 자문위원을 지낸, 미국인 중에서도 특히 미국적인 인물이다. 그의 일생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미국 3부작’ 중에서 이 책은 가운데 작품에 해당하는데, 미국의 해외 군사 기지를 중심으로 그들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어떻게 확대되고 있는지를 분석하여 비판하였다. 저자의 약력을 소개한 바와 같이, 이 책은 반(反) 미국적인 책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영광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낸 충고의 성격에 가깝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끌어다 인용하는 까닭은 바로 이 책에 우리가 목말라하는 주한 미군에 대한 상식적인 접근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미 주둔군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내용 중에서 우리의 사정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몇몇 대목을 추려 보았다.
오늘날의 경우 고위 군 지휘관이 주둔국 정부에 치외법권적인 ‘주둔군 지위 협정(SOFA)’을 강요하는데, 이는 미국 군대가 현지 주민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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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나는 오키나와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전형적인 경우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미군 기지용으로 노른자위 토지 몰수, 지역 주민을 상대로 한 범죄 행각에 대해 미군이 누리고 있는 치외법권적 지위, 기지 주변에 널려 있는 술집이나 홍등가, 끝없이 일어나는 사고, 소음, 성폭력, 음주 사고, 마약 등등은 미군 기지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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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상원 외교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미국의 해외 기지는 한번 세워지면, 이후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갖게 된다. 당초의 임무가 시효를 다하면, 새로운 임무가 개발된다. 그러면서 기존 시설을 계속 유지하려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확대하려 한다. 국무부나 국방부 소관의 부처에서 우리는 해외 기지를 폐쇄하거나 감축하려는 노력을 찾아보지 못했다.” 펜타곤은 미국의 장기 주둔 기지에 대해 현지 주민이 반환 요구를 하거나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언제나 부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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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미군 기지 네트워크는 제3장에서 자세하게 언급했듯 한국전 때 구축된 것이다. 남한 전역에 주둔하고 있는 대규모 미군 병력은 1953년 정전 이후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병사들은 낮에는 탱크에서 꾸벅꾸벅 졸고, 밤에는 매춘부 품에 안겨서 보낸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이 CIA 고위 관리 출신을 두 번이나 대사로 보낸 유일한 국가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 중에는 부러움이 있었다. 저자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을 공허하게 외치는 변두리의 노인이 아니고, 현재 동아시아 경제 연구의 주요 설명 이론으로 쓰이는 ‘발전 국가’ 모델을 창안해냈을 정도로 정치학의 주류 학자이다. 그런 그가 아무런 고민이나 방해 없이 정부의 의지에 뻔히 반하는 소신을 써낸 책이 백만 부 단위로 팔리고, 수많은 독자들이 그것을 읽고 자유로이 토론할 수 있었다는 점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그리고 장차 통일을 바라보며 몇몇 사람들이 주한 미군에 대한 문제 제기를 종종 해왔던 것은 사실이나 그럴 때마다 국가 권력은 그들에게 국가보안법상 이적 동조의 죄를 물어 처벌함으로써 미군 주둔의 신성을 보호하였다. 그러기를 어느새 반 세기를 훌쩍 넘겼고, 그 동안 주한 미군의 전략적 당위성은 단단하게 굳어져서 구름 위로 올라가 불가침의 성역이 되었다. 감히 말했다가는 바로 ‘사상이 의심스러운’ 자가 되어버리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나는 2년 전까지 군인이었는데, ‘정신전력 강화교육’ 시간에 주로 배웠던 내용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세력은 북한 고정간첩의 배후 조종을 받는 반국가 세력이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군사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미군 주둔의 당위성과 효용성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그는 주한 미군의 전면 철수를 자신 있게 주장하는데, 저자 또한 정치학자이지 군사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그의 주장대로 미군이 썰물처럼 다 빠져나가고 나면 한반도에 정말로 평화가 깃들지, 아니면 반대로 적화 통일의 전쟁이 일어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제아무리 최고의 전문가가 완벽한 논리로 호언장담한다고 해도, 전쟁이 나고 안 나고의 일은 애초에 개인의 장담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이 일은 사회적 협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어떤 의제보다도 중요한 안보의 문제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토론의 탁자에 이것을 올리고 자유로운 논의를 거쳐 우리의 입장을 도출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상술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주한 미군에 대한 합리적인 수준의 문제 제기조차 불경(不敬)과 반국가의 프레임으로 꽉 막혀 있기 때문에 그러한 논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연히 그들의 범죄 행위에 대한 제재도 필요 이상으로 너그러워 왔고, 이번 탄저균 사건이 난 후에 우리 당국자의 입에서 ‘아무 문제 없다’는 요지의 말이 되풀이되는 것 또한 이러한 역사적 경험 축적의 소산이다. 이것을 깨야 한다. 분명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이 주한 미군의 문제를 다같이 생각해 보고, 이에 대한 상식적인 비판을 헌법에 명기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범주 안에 넣어서 보장해야 한다. 여기에 이적 행위의 잣대를 또다시 들이미는 것은 이문열의 전후 소설에서나 볼 법한 시대착오적인 코미디이다. 최소한 이 <제국의 슬픔>에 나오는 정도의 수준까지는 논의가 열려야 한다. 미국의 대학 교수가 출판해 낸 책의 내용을 한국의 사회에서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기준으로 보아도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활성화된 탄저균이 페덱스 차량에 실려 오산까지 와서 한 달 동안 살아 있다가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실험 종료 이후에 자진 신고를 받고 알게 되었다. 미군 측에서는 절대로 아니라고 할 테지만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고위험성 물질 실험이 있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실험들이 있게 될지를 현재 한미간의 관계 상에서 우리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까지 들어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들어오게 될 그 위험물질들이 사고 없이 운반되고 무탈하게 실험이 마쳐진 후 안전하게 폐기되기를 그저 마음 속으로 비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번 일로 드러난 현행 SOFA의 단면이다. 여러 국민의 생명을 포함하는 국가의 명운을 외국인 택배 기사의 무사고에 걸어야 한다면, 그것은 국가라고 보기 어렵다. 힘없는 나라의 어쩔 수 없는 무기력이 아니라, 이번 세월호 사건에 등장한 ‘유기치사’에 준하는 중한 직무 유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는 찾아올 나의 죽음이 종잡을 수 없는 외래 병균 감염이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방식에 의한 것이기를 희망한다. 나의 이 소박한 바람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보장되는 것이기에, 아마도 미군 비밀 실험의 고결성만큼이나 초법적인 무게를 지닐 것이다. 이제, 주한 미군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때가 되었다. 인명 살상 목적의 병균 덩어리가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에 우리가 전혀 간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국민들은 경악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독성 세균에 대한 군사적 실험을 수천 킬로미터 밖의 한국에서 굳이 해야만 하는 그 절박한 당위는 대체 어디에 있으며, 설사 있다 해도 그것을 설명하는 수고를 건너뛴 채 몰래 진행해도 될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해버린 그들의 가없는 오만의 근본은 무엇인가. 국민의 안전을 현저하게 위협하는 바로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함이, 헌법이 외교부나 대사관을 둔 가장 본질적인 목적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국가가 국가의 본모습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