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 황금갑옷을 입다
최 화 웅
해마다 이맘때면 전어가 지천에 깔린다. 갯마을 포구마다 싱그러운 전어잔치가 열리면 가을은 한껏 무르익는다. 전어는 더위에 지친 입맛을 되살리고 기운을 북돋운다. 소식이 뜸하고 서먹서먹했던 사이라도 전어회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놓고 마주 앉으면 모든 감정이 스스럼없이 풀린다. 전어회를 한입 가득 넣고 씹어보라! 씹을수록 바다의 깊은 맛을 느낄 것이다. 무더위 끝에 한차례 태풍이 지나자 물 만난 전어가 어판장에 올랐다. 세상은 그렇게 반전을 꾀하나 보다. “가을 전어 대가리 참깨가 서 말”이라는 말과 “전어 굽는 냄새 맡고 집나간 며느리 돌아온다.”는 말은 이제 진부하다. 그러나 전어회를 입에 넣는 순간 “그래, 너로구나!”하고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그만큼 전어맛은 혀를 감친다. 전어는 회로 구이로 무침으로 스시로 젓갈로 무엇이든 그만이다. 비린내 나지 않는 전어회 무침으로 이름난 온천장 인근의 한 횟집은 금정산성을 오르는 길목에 자리 잡아 산꾼들에게는 느냥 지나기 어려운 참새방앗간이 된다. 감칠맛 나는 회무침을 버무리려면 물기가 묻어나지 않게 다듬는 일이 첫째란다. 그것이 맛을 지켜내는 비결이다. 전어는 그 이름도 箭魚, 錢魚, 全魚, 典魚 등 지역과 크기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이다.
지난 1801년 집권세력의 권력다툼으로 빚어진 신유박해 때 정약전 형제가 전라도로 유배되었다. 당시 다산 정약용은 당진에 그의 형 손암 정약전(1758~1816)을 흑산도에 떼어놓았다. 정약전은 귀양살이 중에도 흑산도 주변 물속을 샅샅이 뒤져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생태연구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했다. 그 때 화살 箭자와 고기 魚자로 전어(箭魚)를 소개하면서 쏜살같이 빠른 몸짓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큰 것은 1척 가량이고 몸이 높고 좁다. 빛깔은 황금빛 비늘에 배 부분은 희다. 기름이 많고 맛이 좋고 짙다. 흑산도에 간혹 있는데 육지 가까운 곳에서 나는 것만 못하다.”고 썼다. 동시대인 실학자 서유구(1764~1815)는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생선의 종류와 특징을 기록한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돈 錢 자를 써서 전어(錢魚)라고 이름 지었다. 그는 전어를 두고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 좋아하므로 사먹는 사람들이 돈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예부터 전어는 그 맛 때문에 값을 생각하지 않고 누구나 사 먹는다. 값싼 전어는 서민의 먹거리로 족하다. 요즘에 와서 전어는 칼로리가 낮고 필수적인 단백질 성분이 풍부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받게 되었다. 가을이라 제철을 맞은 전어는 황금갑옷을 온몸에 두른 개선장군 같다. 물을 떠나는 순간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던져 버리는 기개로 횟집 수조와 석쇠, 도마 위에서도 마냥 두고 온 푸른 바다를 그리워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전어를 보고 자랐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숙제를 마무리하면 전어낚시를 하곤 했었다. 초보 낚시꾼에게 전어낚시는 가장 손쉬운 낚시입문 훈련과정이었다. 전어는 급한 성질만큼이나 입질이 분명해 낚시를 통 채로 삼켜 물었다하면 놓칠 위험이 전혀 없다. 낚시를 문 뒤 버둥대다 끌려올 때까지의 당김과 버팀 또한 낚시꾼에게는 짜릿한 쾌감을 즐기게 한다. 때로는 동네 형들이 투망질을 하는 날이면 귀찮은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고 졸졸 따라다녔다. 뒤풀이 때 말석에서 얻어먹는 그 꿀맛 같은 전어회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친구들과 통영 소매물도에 갔을 때 어느 해보다 일찍 전어맛을 볼 수 있었다. 강구안을 껴안은 어느 자연산 횟집의 후덕한 주모가 “시장에 나가보이 벌씨러 전어가 올라왔디이라. 맛이 들었는강 한문 잡사 보소.”하며 술상에 올려준 전어회를 맛볼 수 있었다.
가을하늘에 도심과 해변을 아우르는 소묘(素描)가 한 점 박혔다. 우리나라의 마천루라는 해운대 수영만 매립지 빌딩숲을 배경으로 명물이 등장한 것이다. 지난 늦여름 ‘민락어민활어직판장’ 주차타워 벽면에 그려진 ‘늙은 어부’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피티 벽화의 모델은 올해 76살 난 현지어민 박남세 옹. 독일의 젊은 그래피티 작가 헨드릭 바이키르히는 늙은 어부의 초상 아래 “역경이 없으면 삶의 의지도 없다”는 메시지로 작품을 마무리 해 놓았다. 평생 험한 바다를 누비며 살아온 늙은 어부는 오늘도 먹고 마시며 떠들어대는 우리를 말없이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초저녁부터 백열전구를 내다 건 민락동 어시장 주변은 시간이 흐를수록 전어에 취한 사람들의 콧노래가 넘친다. 전어회는 번지르르한 고급 횟집에 앉아 먹는 것보다 개숫물이 길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왁자지껄한 난장(亂場)에서 목을 빼고 차례를 기다렸다 얻어먹는 회가 훨씬 맛있다. 요즘 어시장에 즐비한 ‘괴기다라이’에는 1Kg에 2만원 하는 씨알 좋은 전어가 펄떡인다.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가을은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서가 보다. 밤이 깊어 전어 굽는 연기 낮게 잦아들고 술꾼들 하나 둘 떠나 자리가 빈다. 밤하늘에는 아스라이 먼 별빛 다가와 비움과 채움의 시를 남긴다.
첫댓글 선생님 글만 읽어도 군침이 돕니다...^^*
저는 도시사람이라서요 사실 신앙때문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나마 느끼려 하는 마음과 힘이 조금 생겼지요 진정한 자연인은 아닙니다.
하지만요 TV에서 방송하는 그곳에 가고 싶다 또는 걸어서 세계여행? 이러한 프로를 보면요 마음이 확트이고 많은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기쁨이 옵니다.
모니터가 그래도 예전보다 좀 더 큰 23인치라서요 컴퓨터 용입니다 물론 이보다 더 큰 것은 얼마든지 있읍니다.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체험을 합니다.
예전에 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풀벌래 소리 싱그러움 계절의 변화등을 그 심오하고 살아 숨쉬는 그 현장의 경험이 점차로 부족해 져가거나
설령 자연과 가까이 사셔도 그러한
곳에는 마음이 많이 안가는 것 같읍니다.
실제로 가 보는 것과 생각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데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모든 것과의 호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그러한 곳에 가고 산다는 것 보다는요 정말 어느순간에 "아~ 이러한 것이었군" 하고 많은 마음을 비울때 깨닿게 되는 경의로움이라고 하니까요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도 저도 많은 곳을 여행하며 조금이나마 책의 머리말 만큼이라도, 도입부분만큼이라도 저도 폭이 넓어지고요
계절과 세월을 실제 현장으로 체험 많이 했읍니다.
올려 주신 글 감사합니다.
영 육 마음간에 건강하세요.
별과달을 언제 봤던가 아득 합니다. 어릴때 고향에선 매일 보고 살았는데 지금은 앞건물 간판만 보입니다. 전어 보다 선생님 글이 더 고소 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 저는 멸치회무침 생각에 군침이 듭니다..글을 읽어가면서요...^.^
마음의 여유가 없어 며칠전 선생님글 올리신글 읽지않고 오늘 아침 천천히 읽고는 전어보다는 별에 눈물이.............
30년전 대학교 1학년때 산악회에 미쳐 지내던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버린 영남알프스 와 파래소 폭포(저의표현입니다.)
그곳에 텐트을 치고 누우면 별이 내 머리위에세 손만 뻣으면 잡힐듯한 무수한 별들, 저별은 나의 별의 노래를 부러며
소주한잔하던 시절로 돌아 가고 싶어졌습니다.
멋진 금정산에서의 야경, 힘들게 암벽등반고 내려와서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
지금은 가끔씩보는 산악회의 후배들과 그저 아주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이라도 테트을 메고 올라 가고 싶습니다
그때의 선배중 한분 바오로(내 내남편)와 같이...........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리며 주제 넘게 이런글 올려서 죄송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 하루 되십시요
그리움님의 멋진 글과 내 좋아하는 윤동주님의 시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