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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쓴다는 것은
- 수필 '인간화 人間花' 에서
열명 미만의 지기를 가지고 평생을 사는 것처럼 나의
시는 내가 할줄 아는 서투른 외국어와 같은 것입니다.
언어와 문화와 생활이 다른 이방인들에게 아주 쉬운
단어들만으로 최소한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듯이,
지금 내가 체험하고 사용할 수 있는 말들로 시를
씁니다
그런데 스스로도 이따금 놀라는 일은 20년, 30년전
젊은 날의 내 생각과 말들이 거의 바뀌지 않았으며
그 시절의 언어와 사색의 토양에 나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라, 지나간 날은 비록 쏜살같은
세월이었지만 뒤 돌아보면 이젠 먼길을 온 것 같습니다.
마침내 인생은 갖가지 삶의 의미를 체험하기에 충분한
기간인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 사모하고,
닮고싶은 소원, 사랑했던 열정만으로도 우리는 그 문 안에
들어서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완성을 향한 그리움으로
생명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시를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정제되거나 잉여된
감정이 아니라,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말을 가지고 내가
만든 <密敎>로 가는 길 입니다
2000년 1월 동산
시인은
시인은
의학사전에도 없는 병을
앓다가 죽는다
간혹, 어떤 지방에서는
같은 병을 앓던 사람들이 모여서
미완의 집을 만든다
바 람
때도 없이
사소한 것에 바람이 인다
희한한 눈물바람.
가능하면
혼자서 이별을 했다
나도 쓸쓸하지 않았으면
文盲이였으리
나는 퇴행을 하여
과거로 갔다
환생의 꿈을 꾸면
숲으로 갔다
시쓰는 일
인스탄트 칼국수 한 봉지를
끓이다가,
시쓰는 일이 얼마나 중노동인데
잠시 먹는 수준에 대하여
생각해보다
이 아저씨 내가 생각해도 웃긴다
아마 나는 그때
다시는 시 같은 거 쓰지말자고
작정하는 날,
이력서처럼 그 시인의
病歷이 보인다
달팽이는 제 집이 세상 짐이다.
너처럼 가출하지 못하는 내가
그를 사랑하다보면
아마
나는 그때 지구촌 변두리에서
소용없는 시 같은 것이나
쓰고 있을 것이다
그를 사랑하는 내 안에 그의
菌이 있다
그때는 내가 먼저
번번이 결심을 무너뜨리고 겨우 할 말을
찾아내기라도 한 날은
그 이유를 가지고 하루를 버팁니다.
용렬한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한번도 당신을 원망해본 적은 없습니다.
무시라니요, 세상에는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데요,
언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무시하는 거
보았습니까, 혹 주머니라도 좀 차면
그때는 내가 먼저 변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누가 압니까,
내가 먼저 이런 것 다 잊어버릴지
시쓰는 일보다
시쓰는 일보다 읽어주는 일이
더 힘든 것을 안다
누구에게 바란다는 것이
애당초 쉽지 않다
시인은 독재자, 그의
심중을 헤아릴 길이 없다
그가 평생을 빈둥거리다가 좋은
시 하나 남길 수 있으면
존재할 이유가 있다
여전히 시쓰는 일보다
읽어주는 일은
내 자유에 속한다
깜짝 놀라다
우주 어느 센터에서
내가 하는 말이 녹음되고 있는지
모른다
우주 어느 기획사에서
내가 저지른 일들을 동영상으로
제작하고 있을지 모른다
기억하는 나 때문에
깜짝 놀라다
12월 29일. 날씨 흐림
지엄마가 말하기 전에 둘째에게
내가 먼저 말했다
'시쓰는 사람에게 시집가지 마라'
제 발이 저려, 천대받는 담배를
죄스럽게 피웠다
아내가 시인이다
내가 시를 쓰는 일은 계속될른지
낮아지지 않으면 써지지 않는
내 삶의 부스러기들.
때로는 그 건방진 행위.
한때는 과분하였고 또 과분한 대접을 받으며
삶의 모퉁이에서 내 문자는 슬픈 표정이거나
깨달음의 발광을 하였을 터, 오늘 나는
경전처럼 난해한 시를 읽다가 쓸쓸해진다
폐끼치지 말고 살아가자는
몸으로 쓰는 시, 삶의 전방에 배치된
아내가 시인이다
내 房
동남 아시아, 필리핀의 케손 시티
타임스 스트리트 12번지 타운하우스 2층에
내 방이 있다
손바닥만한 정원에 책임없는
나무 하나 있다
가파른 계단 올라와 우측에 있는
내 방에서 지난 밤엔 마농님이 보내주신
푸쉬킨*의 시를 몇번 읽었다
지금들은 모두 가리고 살기 때문에 나는
그 분이 누구인지 모른다
마농님, 나는 '향기나는 차를 우려내지'
못 했습니다. 대신에
보내주신 시를 내 방에 꽉
붙여 놓았습니다
* 시인에게 / 푸쉬킨
시인이여! 사람들의 사랑에 연연해하지 말라
열광의 칭찬은 잠시 지나가는 소음일 뿐
어리석은 비평과 냉담한 비웃음을 들어도
그대는 강하고 평정하고 진지하게 남으라
그대는 황제, 홀로 살으라.
자유의 길을 가라,
자유로운 지혜가 그대를 이끄는 곳으로
사랑스런 사색의 열매들을 완성시켜 가면서
고귀한 그대 행위의 보상을 요구하지 마라
보상은 그대 속에, 그대는 자신의 가장 높은 판관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그대 노고를 평가할 수 있는.
그대는 자신의 작업에 만족했느냐, 준엄한 예술가여?
만족했다고? 그러면 대중이 그것을 힐난하며
그대의 불꽃이 타오르는 제단에 침 뱉고
어린애처럼 소란하게 그대의 제단을 흔들지라도
그냥 그렇게 두라.
어떤 맹세
사촌 兄에 의하면, 러시아의 설원에서
포수와 농부들이 밤마다
시를 낭송하며
인생과 보드카에 취한다고 한다
시인이 쑥스러운 사회,
우리는 언제 이런 밤이 오려나
꼭 부자가 되려고 사는 것이 아니다
꽃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자족하며, 시험하듯 살아보는 것
내가 성공하면
시인을 특채하는 기업을 세우기로
맹세하다
편법
말을 아껴서 손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은 이기주의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할 말이 많았을 때 내가 글을 썼던
것은 편법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고있지 않은 섬에도 모순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다
술도 못 먹지, 숫기도 없는 나에게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내가 육지에서
낚시한다고 말할 수 없다. 틈만 나면
까페 들락거리는 쏠쏠한 재미를
그 아저씨는 모른다
한편, 믿음같이 허술한 것은 없다
시를 믿는 내가 허술하고
나를 믿는 그대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죽은 시인을 天才的이라고 하는 것은
농담이다
진지하게, 文字때문에 고통받은 사람
이라고 하자
어떤 고마움
마침표 하나 찍는 것 때문에 얼마나
고심했는지 모른다
하물며 줄을 바꾸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었다
또 다른 고통,
스쳐가는 생각은 다시 오지 않는다
증발한 다음에 형체가 없다
그런 내가 아무 때나 불쑥 들어가면
점잖은 Shilla 식당 웨이터와
나는 통한다
평균적으로 그의 볼펜의 반은 나를
위해 존재의 이유가 있다
실종 위기의 내 글을 찾아준
筆記具의 고마움이여,
올망졸망한 내 글들이여
12월에 시를 쓰는 이유
- 내 말에 귀기우려 주는 당신 때문에
시를 씁니다
때를 안 묻히고 살아갈 수는 없다
구름도 심술이 있지 않더냐
바람은 더 하지 않았더냐
맑은 습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때로는 내 안의 구름,
내 안의 바람으로 하여
나도 비교할 줄 알며
서운을 타며
언제나 너에게서 최고로 남아있고 싶다
지금이야 나와 닮은 사람이 외워줄
시 하나 남기는 것이 소원이지만 너에게
이것이 인생이다,
말할 수 없다
오랫만의 해후보다 화해가
반가운 계절,
다시 길을 내며 가야하는 12월
글쓰는 일
내 방은 침입자 없는
작은 섬일 뿐,
난 무엇으로 이름지어지기 보다는
어떤 사람으로 불려지기 보다는
그냥 세상 모른 채 살아가고 싶었는데,
설마 그 분이
시 안의 세상에도 文法보다 복잡한
일이 있을지 모른다고
가르쳐주지는 않을테지.
나는 訃音 란에 관심이 많으며, 유독
생몰연대를 살펴보고 있으며
지금보다 어려운 것이 또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싶은 데
글쓰기를 마치면 늘 단추 하나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
세상 밖으로 발가벗겨진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글쓰기에
심한 망설임 있다
시를 읽고 부터 내 생각은
비뚤어졌다
바벨탑을 세우다
아주 옛날에, 섭리에 지친
분노한 하느님은
언어의 불통을 시도하셨다
불경하게도 나는
이 장벽을 즐겼다
바벨탑을 세운 징벌이 끝나지 않은
오늘도 동문서답하는 지구촌 내 사무실에서
한글은 한가하다
언어의 통일은 아득하고
이방에서 다시 태어나는 문자들
내가 세운 바벨탑.
아내와 시 1
아내는 지금 갱년기 우울증에
시달린다 더하여
돈에도 여유가 없다
그런 아내에게 오늘 시를 보냈다
기분이 그랬는지
시가 뭐 밥 먹여주나
라며 퉁박을 준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이래저래 구박받는 시,
나도 부자였으면 좋겠다
좋은 일 하려다가 갱년기의 불똥을
맞고 내 우울도 배가 된다
아내와 시 2
장마 끝, 열대
열대야에
기형도 시집을 읽다가
나 요새 힘들다
고 말했다
아내는
그래야 시가 나올거라고
단정했다
그 시인의 20代에 쓴 시를
20년 후에 내가
읽은 것인데
生이 시인지, 시가 生인지
혼란했다
막내 은진이와 큰딸 효진이 어렸을 때
딸과 시
스쳐가는 생각 하나. 만일에
언젠가 시집을 만든다면
참 서러울거다
딸 아이가 아르바이트 나가던 날
몹시 추웠던 겨울 밤
식당 일을 하고 오던 날
어이, 아가씨라고
아무렇게나 불려졌을 네 이름처럼
내 시도 서러워질거다
이웃의 딸도
이웃집의 시도 서러울거라
그 해 겨울 밤처럼 딸은
당당하여라
내 시도 당당하여라
아침의 시론
시가 무엇인지 모를 때, 문자에 대한
친근감으로 그 문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취했다
거기 미로가 있었는데
나는 생각한다
사람을 믿듯이 생을 일별하는 일,
다 알고 있는 말들과 오랫동안 쓰여진 말들
에서 내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에 대하여
비극과 희극의 적절한 긴장이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 나는 여지없이
탈이 났다
오늘 아침 눈에 번쩍 띤 뉴스는
아래와 같다
'- 구상성단은 태양과 같은 별 약 백 만개 정도가
모여 형성하는 별의 덩어리를 말한다. 또 이런
구상성단 약 만개가 모이면 이른바 타원형의
거대한 은하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타원형 은하
를 형성하는 구상성단은 우주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해 '천문학의 화석'으로 불린다.'
은하계. 구상성단. 타원형 은하. 천문학의 화석.
무엇보다 태양과 같은 별 약 백만개...
이 생각때문에 또 쓸데없이 담배를 피웠다
태양신을 섬기던 후손들을 찾아갈 계획이라면
이 시는 또 다시 횡설수설이 될까, 오늘 밤
북두칠성을 찾으러 함께 가자면
당신의 생각은?
(글 제목을 우선 바꾸라고요?)
老시인*의 시론
준수한 청년이 타골의 시를 사랑하다 마침내
백발이 되었을 때 수염까지 닮아 있었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언어의 사원에서 그들은
만났다. 인간의 영적 진화를 믿고 있다는 시인
의 첫돌사진을 보다가 나는 오수에 빠졌고
마취된 듯 꿈을 꾸었다. 나는 두려움없이 어떤
영혼과의 접속이라도 끊임없이 원하였음으로
이 꿈은 예사롭지 않다. 노시인의 메시지와
연결해 보는 것이다
* 지나간 문예지에서 박희진 시인님의 대담기사와
빛바랜 시인의 첫돌사진을 보다가 이 글을 쓰다
노년의 시론
시론을 읽다가 나는
길을 잃었다
산만한 내 삶의 부스러기들
오늘도 길 위에서
시를 찾는다
시가 익으면 내 종교가 될까, 시인을
사제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시는 어떤 건축일까, 미술일까
노년엔 언어의 유희를 하자. 그때
구름 한 송이 흘러라
시론을 읽다가 다시
길을 찾는다
초정리에서 12 - 절망하는 시
절망하는 시
酒邪같은 시를 쓰는 나, 허깨비같은 시의
나라에서 절망하는 시어들. 더 쓸쓸하라면
쓸쓸하겠다. 시는 습성이었다. 果肉처럼
탱탱한 시는 어디 있는가. 거짓말 같이
가을은 익어가는데
아내와 시
시는 써서 뭐 할거냐고 골부리다가도 슬쩍
내가 쓰는 시를 읽어주는 고마운 사람.
내 말을 잘 믿지않게 된 것은 내 책임이지만
흰소리는 쳐둘 필요가 있다. 당신. 시인이
써놓은 글은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는 것
을 알고 있겠지. 나는 말대신 글을 남긴다.
아직 내 안에 신혼의 바람 있다
( 내일은 아내가 오는 날이다 )
다시 글쓰는 일
인간적인 글을 쓰자
나같이 생긴 글을 쓰자
10년만 내가 젊었다면, 이 假定法은
우리의 버릇이었다
지금을 쓰자
길 위에서 길을 묻는 내 이야기
동행하는 사람과 벌이는 이야기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꼭 하고 싶은 이야기
말로는 하기 곤란한 것들을 글로 쓰자
희망이 없이 다시 그리울 10년 후,
그때 몹시 그리울 지금
사이버에 집을 짓자
누가 읽어준다면
우리는 친구
나같이 생긴 글을 열심히 쓰자
버리고 싶은 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나
먼지같은 말,
말을 버려야 한다
말을 줄여가던 당신의
세월처럼 찾아온
실어의 증세.
언제나 보이지 않은 말의
무게가 컸다
바라보기만 할 것.
내 생각을 만들지 말 것.
좋은 시를 쓴다고 벼르지 말 것.
시
(詩를 破字해 보라)
시는 사원에서 하는 말이다
시는 언어의 사원이다
나는 오늘도 사원을 빙빙
돌다온다
오늘도 시를 쓰는 이유
집 떠나는 일이 섭섭하여 시를 남기기로
하였다. 작은 분량의 기억을 위하여.
지금이야 네가 외워줄 시 하나 남기는
것이 소원이지만
자작시 1
혼자 취해 쓰는 시
독자가 없음으로
신경쓰이지 않는 시
아침에 받아보도록 딸들에게
전송하는 아빠가 쓴 시
나 혼자 읽는 시
자작시 2
하늘은 추상이다
거미줄은 생활이다 그 포충망에
걸린 내 文字들
시인과 일
서울행 고속버스 내 앞자리 그 옆에 앉았던
젊은 애기엄마가 시집을 펴들었을 때
나는 거의 눈물이 나올 뻔했다
시를 읽는 사람을 나는 보았던 것이다
전업시인이 살 수 없는 이 나라에서
시인은 직업이 따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고 자신있게
시인이 되어야 한다
풍문에 의하면 시인들의 연봉은
30만원이라고 했다
직업은 청소부인 시인,
학교 선생님 시인,
치과의사인 시인,
농사짓는 시인,
장사하는 시인,
외교관인 시인,
노동자 시인,
정치하는 시인,
전업주부 시인,
고상하지 않으면 어떤가
일하지 않는 시인을 나는 믿지 못한다
평생을 바람만 일으킨 사람도
시인의 자격이 있다
시인의 기도
기도라는 제목의 시는 얼마나
진부할 수 있는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기도라는 시
그러나 그 시가 나 때문에
순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을 때
기도는 내 별이 된다
다시 도진 불면과 우울이 공존하는 밤
서늘한 그 밤의 바다에서
헷세의 <향수>를 읽었다
'시간과 영원에 대한 개인적인 관계를
밝히려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는
이 말에서 나는 책을 덮었다
우정과 사랑과 진리. 지금은
거의 폐기되어버린 방랑이라는 말까지
그의 시대에는 가능했을까,
지금도 피혁공과 대장장이가 있는가
시인이 되라고 한다
인구 수만큼 지상의 간격은 좁아지고
그 벽은 견고해지고
외로운 사람끼리 모여산다
아, 지금 기도의 응답이 왔습니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집니다
후기
지난 밤 카페를 들랑거리다 단 두줄의 쪽지를 보낸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 분이 기도라는 제목의 시를, 나를 위한
기도의 시를 아침에 보내셨습니다.
감사한 우정에 화답하는 글을 나도 (김시인처럼)
퇴고없이 올립니다
* 기도 / 김민홍
그의 외로움이 서서히 몸을 바꾸어
내게로 온다
그가 만나는 적막한 시간의 갈피 마다에
처연함으로 내릴 비 굿고
텅 빈 그의 오후에 가득 햇살이 비추이길
나는 묵상하였다
정결하지 못한 나의 기도가
그 분에게 닿을 진 모르겠지만
진정 저를 보지 마시고
제 기도만 경청해 주시길
세상에서 가장 큰 귀와 가슴을 지니신 분
용서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을
오늘 새삼 생각는 것은
그의 온몸을 휘감을 먹갈색 고독 때문만은 아니다
갈수록 초췌해가는 나의 늙음과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음도
함께 승리하게 하길
텅 빈 객석을 향해 노래 부르는
무명 가수와 무명 배우들의 쓸쓸한
귀가길에 공평하게 비추이는 달빛처럼
분명 그에게도 그런 공평함이 닿을 수 있길
난 묵상했다 나의 삿됨과
오만과
역겨운 이기심도 함께 태워 주시길
허나, 하실 수 있다면
그의 상처를 먼저 어루만져 주시길...
사랑과 시와 삶
섹스를 기다리는 일과 그것이 지나간
다음, 前 後 다 진지했다면 그대는
사랑을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요절한 시인의 집에 갔다
종일 떠도는 그 시인의 言語들, 약간의
견해차가 있을 뿐 삶들은 닮아 있다
모든 사랑이야기는 닮아 있었다*
지상의 학교를 떠나면 個人史는
자리를 잡는다
* <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 에
나오는 말
反詩
내가 써놓은 글을 정리하다가
傳單을 찍어 살포할까 몽상하다가
아니, 그냥 확 불싸지를까 하다가
피붙이 같아서 참는다.
시 때문에 나아진 게 없다
건강을 위하여, 웰빙을 위하여
시보다 더 좋은 건 없을까
(전에 나는 이렇게 과격하지 않았다)
내가 싫어진 것이지만.
시에게
시에 무슨 위로가 있을까,
구원이 있을까
나는 매달린다
한때 나는 시에 기대어 살고
시처럼 살고 싶었다
시인은 절망하며 시를 쓰고
나는 그 부스러기를
주워 담는다
귀신같은 시,
스멀스멀 찾아든
노년, 떠도는 시어들
집처럼
따듯한 시가 그립다
김 시인의 근작시
고백합니다. 솔직히
근작시를 읽으면
꼭 나를 두고 쓰신 글같아
뜨금합니다
프로구단 같았으면 벌써
방출되었을 나, 그런
나를 두고
아직도 아마的인 아내는
경고를 발합니다만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나에게
왜 관계는 遠近에
반비례하는지, 한국에서
만나기가 더 어려워졌는지
이해해 주실런지요
미워할 수 없는 당신이라고
써주십시요
내 시가 안 읽힌 이유
내 시가 안 읽히는 이유를 알겠다.
나는 참 글을 못 쓴다 나는 친구가
없으며 내 시도 늘 혼자였다
밤새 황시인의 까페에서 시를 퍼나르다
나도 참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났다 청량리가 이젠 제 2의 고향일
시인의 꿈은 향리에 문학관을 세우는 것이다
자연 까페에 시들이 쌓여있다 그 창고를
뒤지다 열심히 시를 읽어야 겠다는
결심을 한다
창고를 털다가 찔리는 구석이 있어
'청량리店'으로 전화를 걸었다
막 퍼갑니다, 퍼가세요, 같이 보자고
한 일이란다
시에도 권력이 있는가, 나는
들꽃같은 시를 사랑하기로 했다
소중한 그 목소리들
허공의 집으로 통하는 내 노트북,
지상의 집보다 우아한 이곳에
시 집을 짓는 중이다
미완의 시
시를 쓰는 한
가난하게 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니면 가난하게 사는 동안
시를 쓰게 될 것이다
아직 미완의 내 시가
살고 있는 집.
그래도 말보다는 자리가 잡힌
내 문자를 사랑하는 일,
떠도는 삶의 기록에 대하여
가난한 내가 가난하게 사는 동안
가난한 시를 쓴다
초정리에서 나는 시 숲에 빠졌다
이건 조금도 과장하지 않은 현재의 내 얘기인
데, 시를 읽는 일이 밥먹는 일보다 우선했다
말하자면 식음을 전폐하고(연기하고) 시를
먹어치웠다
어제 오늘 1박 2일 동안 나는 시 숲을 헤맸다
서점에서 구할 길 없는 시들이 까페마다
지천으로 떠있고 내가 도저히 쓸 수 없는 시
들을 끌어오는 동안 무량히 행복했다
왜 거기 놔두고 보지 않느냐고? 이것도
일종의 소유욕이겠지. 내 블로그에 모아 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또 언제 그 까페 문 닫을지
알어, 이 일이 좋아서, 이 일을 위하여
오늘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사실 내 나이에 한편의 시를 읽으며 가슴이
떨린다든가 울다가 웃다가 했다면 믿겠는가,
독거의 즐거움, 내 노년이 외롭지 않을 거라는
경험을 했다 보이지도 않는 슬픔을 시인들은
어찌 그리 뽑아내는지
아, 시집의 제목만 모아 놓으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편의 시가 될까?
해질녁 시 숲을 벗어나 산책을 하겠다
문자는 살아있다 들길에, 나무들에게
떠도는 문자들을 풀어놓겠다
내일부터 다시 생활이다
소용없는 시
나는 심심해서 시를 쓴다
할 일이 없어서 시를 쓴다
후회하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
혈기왕성했을 때 나는 전문가가
되지 말자고 했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자유로 살고 싶었다
음악가는 음악밖에 모르고 새 박사는
새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
지금 나는 그 말을 취소한다
전문가가 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나는 생물학자도 되고 싶고 외교관도
되고 싶고 또 그 일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시간이 남아
소용없는 시를 쓴다
말 속에 시가 있다
허공에 시가 있는 줄 알았다.
말 속에 시가 있다
말로 생활을 하고 말로
시를 쓰고 말을 놓으면
죽는다
머리맡에 부는 바람
헌책방에 나가서 도발적인 제목과 은은한
것을 기준으로 시집을 골랐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잡년이오>,
<내게 아편같은 평화>, <접시꽃 당신>,
어느 修士의 <길> 등.
초저녁부터 쌓아놓고 읽어나가다.
머리맡에서 부는 바람. 최소한
10년 이상 잠들어 있던 바람이 깬다.
狂馬 시집은 후렌드 같았다.
우리(시인과 나)는 나이도 한살 차이.
표현의 자유없던 시절, 뭇매를 맞은 그 시인
을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누가 그만큼 용기가 있을까,
선구자는 당대에 대접받지 못한다
<나는 잡년이오>. 법명은 혜선
달마와 사는 출가한 비구니인지 환속을
결행한 비구니인지 끝까지 혼란했다.
별안간 루시아* 생각이 났다.
禪처럼 살려는 것이 또 우리(혜선과 나)를
절망케 한다.
그렇구나. 시는 몸부림이었구나
덩달아 나를 끌어들여 文字 위에 놓인 길을
보여주고.
(새벽까지 오늘은 두권 읽었다)
좋은 시를 읽으면
좋은 시를 읽으면 시인을 부러워하다가
그 시인을 질투하다가 내가 절망하다가
이 밤에 그 시인을 찾아 가려다가
혼자서 사랑하다가
오늘도 시를 읽는 일이거나 내가 쓰는 행위가
고통인지 고마운 일인지 혼란해하다가
나에게 문자는 生必品인 것을 알아내다
速讀 혹은 誤讀
원래 속독인 나는 시도 한눈에 읽는다.
이것은 못된 내 버릇으로 나는 生도
속독을 했다 詩題만 보아도 내가 빠져
드는 그 시인은 이 생이라는 말을
사랑한다고 했다
시는 절망을 쉽게 쓰지 않는다 사실
절망하는 날은 시를 읽지 않는다
나는 공격적인 詩語들을 싫어했는데
가령 피를 흘린다거나 심장, 칼, 이런
말을 기피한다. 그러나 영혼이라는 말이
남발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바꾸어
말하면 있기는 있는데 실증할 수 없는
것이니까 누구나 자기 式으로 말하는
것이다 시는 자기 목소리라고 하지 않던가,
속독하지 못하는 시를 만난 날은 즐겁다
오독하지 않을 짧은 시를 기다린다
동행
언어를 가지고 不立文字를
꿈 꾸었을 맑은 영혼,
이성선 시인의 시를
읽다
바라나시 강가에서 미리
火葬을 경험한 시인의
성선說을 믿는다
길을 걸으면서도
이 맑은 시집*을
끼고 다녔다
시를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동행한다
* 이성선 시집 <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
詩들은 집으로 가라
별러서 헌책방을 나간 날,
점포 임대문의 296-807x, 나같아도
문닫는 편이 현명했다
책방주인 일요일마다 버섯따러
산에 가더니, 결심이 섰나보다
나는 허전하지 않다
실명을 밝히지 못하지만 시인의
서명이 담긴 증정본을 포함하여
천대받은 시집들을 구해오다
未堂도 1000원, 천상병시인도 1000원,
역시 실명을 밝힐 수 없는 시집들이
1000원꼴이다
나는 시인과의 상견례로 먼지를 턴다
그 두께만큼 고요히 잠자고 있던 시어들,
2007년 12월 첫주, 대선주자들의 空約이
묻히도록 함박눈이나 내려라
나는 등따슨 구들장이 그립다
시들은 집으로 가라
오늘 나는
오늘 나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서정윤의 홀로
서기, 한용운 외 50인의 한국대표 시선, 그리고
김용범시집 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를 2000원
에 샀다. 4권에 2000원.
내가 중학교 때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청주의 그
헌책방에 가면 한국의 대표시인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시인은 평균적으로 500원이면 거래가
이루어진다
겨울과 詩
원래 겨울은 따듯한 계절이었다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에 나는
따듯함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더운 나라에선 시가 유행하지 않는다
몸으로 시를 쓴다
아직 가보지 못한 北半球의 설원에서
포수와 농부들은 시인이 되고
밤마다 시를 낭송한다
'이 세상 가장 청정한 언어를 빌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날을'*
노래한다
온전한 사랑으로 미움을 키우고 미움은
사랑의 또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용서한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우리는 밀착되고 겨울은 추울수록
따듯해지는 계절이다
한차례 순환을 마치면 詩들은
활동을 시작한다
겨울엔 시를 읽고 잠시
나도 시인이 되는 계절이다
* 이기철 시인의 '地上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1'
에서 인용
황시인 때문에
나는 황시인 때문에 행복할 때가 있다
눈이 오기 때문에 文字를 날리고
순전히 비가 오기 때문에 전화를 준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작다 아니
고요하다
언제나 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는
사실을 유념한다
빚을 진 나는 시인의 近作詩를 떠올린다
그가 山에 가더니 인디언처럼 나무를
'서있는 키큰 형제'라 부르더니
우리는 누워서 잠을 자는 족속이란다
그의 <산山> 詩는 절창이다
나에게, 건필을 기원하는 文友가 있다
이 즐거운 네 탓, 황시인 때문에
행복할 때가 있다
壇 아래 숨다
글쓰기 10년만에 등단을 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시인이 된 것인데
그 호칭이 익명의 자유를 빼앗아 갔다
솔직히 처음 글을 써내려 갔을 땐
첫아이의 탄생처럼 내 것에 빠졌다
언젤가 등단을 하면 가장 멋진
인삿말을 쓰려고도 했다
등단의 소식을 듣고 나는 壇 아래로
숨고 말았다
대단히 죄송하고 송구한 일이지만
괴로운 핑계를 대며 式場에도
가지 않았다
지금 나는 詩語를 잃어버렸다
그 일이 있고나서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아주 막막한 시인의 길,
아직 내 길에 들어서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내 안에 들끓던 그 말들이
어디로 갔다
길 위에서 16 - 무명시인에게
이 땅의 시를 채록하면서
이름없는 시인의 혼이
더 고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도 권력이 있는가,
현란한 언어의 유희에
나는 식상했다
이름없는 시인을 사랑한다
야생화를 사랑하였듯이 꽃에
삼류가 있었던가
허공에 매달린 거미줄같은
당신의 시 한편을 찾아 나선다
K에게
시는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나는 끙끙거리며 시를 쓰지 않는다
자기를 위해! 이 고백을
남녘의 K에게 보냈다
며칠 전 K는 봄이 가득한 사진을
보내주었고 나는 이웃한
'송아지 할아버지'의 연작시를
써보시라고 권했다
일기처럼 쓰는 시,
겨울들판에서 시를 쓰고
봄밤에 시를 쓰고
시를 읽으며 시를 쓴다
문자 안에 거울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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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놀랐습니다, 동산 시인님!
많은 공부를 하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 건필을 빕니다.
선생님 말씀에 또 한번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시로 숨 쉬며 시를 먹고 마시며 시를 향기롭게 배설하는, 시가 온전한 삶인 시인, 동산 님의 글들을 정신을 잃고 읽어 내려갔습니다. 즐거웠습니다. - 여기에서의 배설은 전혀 다른 의미로 썼습니다. 나의 일부를 아름답게 세상에 내 보내는 것.
호월선생님의 글쓰기 강의를 들으며 그간 10여년 혼자 고민하던 글들을 모아본 것입니다.감사합니다
끝없는 성찰의 시편들과 함께 불면의 이 밤, 저는 무한 행복 합니다. 글 쓰기의 자세를 깊이 깊이 각인 합니다. 동산 시인님, 감사 드립니다.
깊은 밤에 오셨네요. 자연님, 좋은 글 많이 쓰세요
차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너무 놀라서. 감동 많이 먹었습니다.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글쓰는 사람들이면 한번쯤 고민해보는 이야기가 아닐런지요, 감사합니다
나는 늘 내 시에게 미안해 합니다. 눈치를 보기 때문이지요. 새촘한 나를 시가 옆구리를 툭 치면 모른척 바람 쐬러 나가지요.
그런 날들의 시인을 스쳐간 시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요.... 건필을 기원합니다
저의 접어 둔 꿈이 막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늘 자신을 성찰하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좋은 글 감동받고 감니다.
시 앞에 한없이 절망하던 날들의 기록입니다. 부끄럽구요
국문학 공부한 동기들의 모임카페에 모셔갑니다.
부족한 글,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