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왜 '희년'과 '토지 정의'에 대해 침묵할까요?
권요셉 / 희년함께 지도위원
"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21)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 하느니라"(마 6:24b)
"토지 소유와 교회의 소명 간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교회사를 통틀어 교회는 계속 해서 대지주의 지배를 받아 왔으며 교회 자체가 대지주인 경우도 많았다. 그런 탓에 교회는 토지 소유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조심스럽게 회피해 왔다...... 대부분의 나라는 많은 종류의 교회가 있지만 거의 모든 교회가 사회 정의에 대해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으며 오로지 내세(Next World)에 대해서만 가르칠 뿐이다 교회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헌금을 거두어 사명을 감당할 비용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이때 교회의 사명이란 단순히 사람들을 설득하여 '예수 믿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거의 언제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천당행 여권을 주신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우리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혹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대 천덕신부가 말하는-토지와 경제 정의: 17장 '토지와 교회의 소명' 중에서)
작년 1월에 저희 가족은 디아스포라 한인들을 섬기라는 주님의 소명에 순종하여 (시애틀 외곽에 위치한) 먼로의 "안디옥 선교 훈련원"(YWAM-AIIM)으로 왔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 경험한 미국 사회에 대한 저의 첫 인상은 상당히 부유하고 여유 있는 안정된 사회란 느낌이었지요. 고속도로에도, (조그만 소도시인)먼로 거리에도 엄청난 수량의 고급차들이 질주하는데 대부분 한 사람만이 탑승한 차들이란 사실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몰(Mall)과 월마트, 세이프웨이....등의 진열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산더미 처럼 쌓여 있고 늘 고객들로 북적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체 인구가 2만 명이 채 안 되는 먼로의 학교와 도서관, YMCA도 기본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주택과 도로, 자연 조경이 참으로 잘 정돈되고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역시 미국이 저력 있는 선진국이란 사실을 실감했지요.
그런데 1년 정도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미국 사회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불안정한 사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경기 침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실업자 문제가 심각하고 무엇 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빚(loan)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빚(loan)이 생활화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택구입, 차량구입, 학자금, 사업자금...등 대부분이 대출을 받아 빚을 안고 살아가는 문화라고 들었습니다(미국의 국가 부채 또한 잘 알려진 것처럼 천문학적인 규모지요!). "빚으로 쌓은 '거품 성장 10년'-세계가 취했다"(부채 경제의 저주)란 부제가 붙은 한겨레 신문의 기사는 최근 구제 금융을 신청한 스페인과 이전의 아일랜드, 그리고 미국 모두 부동산 거품이 가계 부채를 키웠고 '서브 프라임(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이란 괴물을 잉태했으며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던 부채가 결국 폭발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집 담보 빚... 이자내려고 빚... 아들 학비도 빚... '빚의 퇴로'가 없다"는 매일 경제의 머리기사는 다중 채무자가 200만명을 육박하고 고금리 제2금융권 대출이 가파르게 증가하여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에 진입했다는 암울한 소식을 싣고 있습니다. 빚을 내어 소비하는 패러다임과 부채 의존 성장이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경고하며 그동안 '보통 사람들도 부자가 된 것처럼 착각에 빠졌다'고 실토합니다. 엄청난 가계부채, 늘어나는 실업자, 금융권의 부실과 부패....에 대한 기사가 연일 보도되고 "OWS(Occupy Wall Street!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가 제기한 소득 불평등, 미 대선 최대 이슈 됐다"는 중앙일보의 기사 또한 최근 있었지요. 거품 경기에 편승하려는 가계가 너도 나도 은행에서 돈을 꾸어 집을 샀으나 빚 상환 능력이 떨어지면서 은행의 부실을 눈덩이 처럼 키웠고 ,빚을 내어서라도 고급차와 명품, 고급 사양의 IT 기기를 구입하려는 소비 패턴이 한국과 미국...등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민 사회에서 미국의 한인들은 대부분 식당, 세탁소, 주유소, 식품가게, 모텔...등 소규모 자영업을 하고 있는데 2008년 금융 위기로 초래된 경기 침체의 타격을 가장 심각하게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서민들의 삶은 계속 어려워지고 사회 양극화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 '경제 이슈'를 주제로 한 설교나 강의, 세미나를 지난 1년 동안 거의 들어 보지 못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고도 기이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5세 한인 목사님이 설교 중에 "월 마트 앞 넓은 주차장에 매일 밤마다 차 안에서 온 가족이 잠을 자야 하는 노숙인 차량이 평균 20대 이상인데 경비원이 쫓아내면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와서 (차 안에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지역 교회들이 연합해서 이들에게 따뜻한 담요와 식사를 제공한다."면서 한인들도 함께 이 귀한 일에 동참하자고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긴 합니다.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푸드 뱅크'(food bank)를 운영하면서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때로는 저임금 서민들을 위한 임대 아파트를 제공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의 주일 설교는 개인 영적 성장과 제자도, 전도 및 선교에 대한 주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지교회의 확장과 교회 건축 및 리모델링에 교회 재정과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일부 교회에서 선교와 구제가 강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형화된 교회의 유지와 성장의 장식품 내지는 곁가지처럼 보이는 것은 지나친 표현일까요?!
두란노에서 작년에 출간한 "래디컬"(Radical)이란 책에서 저자인 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어느 미국 교단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총 공사비 2천 3백만 달러(276억원)을 지출하여 교회 신축 예배당을 봉헌한 제일 교회"에 대한 기사와 함께 "교단 차원에서 모금한 5천 달러(6백만원) 전액을 서부 수단의 난민에게 보내기로 했다"는 두 기사가 나란히 1면을 장식했다고 인용하면서 "2천3백만 달러 v 5천 달러"란 소제목으로 미국 교회의 현실을 꼬집었습니다. 미국에는 "국가 기도의 날"(National Prayer Day)라고 해서 전 교회가 함께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 있습니다. 저희 베이스에서도 이 날 하와이 코나에서 온 전도 여행팀(팀 리더가 신실한 1.5세 형제와 우즈베키탄 고려인 자매였습니다.)이 이 기도 행사를 주관하게 되어 몇 개의 주제로 분류해서 기도실을 꾸미고 미국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지요. "정부와 교회 지도자를 위하여", "교육계를 위하여", "무너지는 가정과 낙태, 동성애 이슈를 위하여", "인신매매로 인해 성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등을 주제로 기도한다고 해서 "미국의 심각한 경기 침체와 사회와 양극화 현상의 심화와 관련해서 '토지와 경제 정의'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을 때 "경제 이슈는 각 자 개인적으로 기도하면 좋겠다."는 대답과 함께 이 주제를 가볍게 여기는 듯한 반응을 보여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낙태와 동성애 이슈에 대해 비교적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교회와 신자들이 "토지와 경제 정의" 이슈에는 왜 침묵하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까요? 교회와 신자들도 경제 정의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요? 혹시 주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거듭난 신자들은 정치, 경제 이슈에는 거리를 두는 것이 안전하다고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이 친히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공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셨고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나 우리네 인생의 삶에서 경제 영역은 피할 수 없는 본질적인 이슈임이 분명할 텐데. 사실 우리 교회와 신자들 안에 개인 구원이나 영적 성장, 선교와 구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이러한 주제들은 물론 중요하지요!) 사회 정의나 성경적 경제 윤리, 특히 희년과 토지 정의에 대해 언급하면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이 흐르거나 경계하는 표정과 함께 긴장감이 생기는 것을 여러 번 경험 했습니다. 예수전도단 출판사에서 "나라를 제자 삼는 하나님의 8가지 영역"(란다 콥)이란 책에서는 '경제' 영역을 다루기는 하는데 모세 5경에서 가르치는 부채, 이자, 빚 탕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만 희년과 토지 정의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저희 베이스에서 "New Korea 세미나"가 한 주간 동안 진행되었지요. 북한과 통일 한국에 대한 좋은 강의들이 있었고 탈북 새터민의 간증도 듣고 그들과 함께 교제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세미나가 끝난 후 시애틀지역에서 오래 생활한 1.5세 청년이 저에게 메일을 보내와 "북한과 통일 한국"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공동체'와 '희년'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반가웠는지요! 영적 리더들마저 이 주제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특히 '희년'과 '토지 정의'는 교회든 선교 단체든 피하는 주제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통일 한국의 Key Word는 '희년'과 '공동체'(코이노니아)의 실현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하면서 주님의 때가 되기까지 함께 기도하며 기다리자고 답신 메일 보냈는데 그 형제는 함께 교제하는 평신도 사역자들과 함께 전 강수교수님의 "토지 경제학"이란 책을 읽고 소그룹 모임을 갖겠다고 했지요! 우리 교회와 신자들이 이 주제에 대해 반응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참으로 놀랍고도 기이한 현상인 것 같지만 이렇게 숨겨진 동역자들이 이곳에도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더 기쁘더군요! 한국의 '희년함께'가 이 주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치열하게 연구하며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래서 한국 교회는 소망이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