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서 “성당에 청년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청년 선교를 아무리 고민해 봐도 ‘선교의 황금어장’인 군대만큼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없다. 한국교회가 청년층 복음화를 위해 군사목에 조금이라도 더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본지는 군사목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전국 육해공군 부대에서 군종교구 사제들과 구성원들이 펼치는 군사목 현장을 탐방하는 기획을 마련한다.
경기도 가평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신병교육대 훈련병들에 대한 선교가 최근 몰라보게 활성화됐다. 채지웅 신부가 지난해 7월 군종교구 맹호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부터다.
수기사 신교대 담당 군선교단 선교사로 2년 동안 봉사하고 있는 조정순(아숨타·57)씨는 채지웅 신부가 수기사에 처음 부임했을 때 외모와 달리 여성 같은 가녀린 목소리를 듣고 군인들에게 ‘제대로’ 사목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신교대는 훈련병들의 입소와 퇴소가 반복되는 특성상 인원변동 폭이 커 매주 오후 1시30분~4시까지 신교대 교육관에서 시행되는 종교활동 참여인원도 일정하지 않다. 조정순 선교사는 흥분된 목소리로 “채 신부님이 부임하고 처음으로 개신교회를 이겼다”고 말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가 청년 장병들 선교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신교대에서 예외 없이 개신교를 찾는 병사들이 많았지만 채 신부가 장병들에게 친화력을 보이면서 300명이 넘는 훈련병들이 교육관 자리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통로까지 들어차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수기사 신교대의 선교 활성화는 사실 예견됐던 일이다. 2007년 수원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은 채 신부는 자원해 2011년 군종신부가 됐다. 막연한 성소를 느끼던 예비신학생 시절 사제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가 바로 군인주일 특집 군종교구 기사를 읽고 감동을 받은 것이었다.
채 신부와 호흡을 맞춰 수기사 신교대 선교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는 조정순 선교사 역시 군선교에 자신의 삶을 통째로 바치고 있다. 조 선교사는 군종교구 군선교단이 전 군종교구장 이기헌 주교로부터 2005년 공식 인준되기 전인 2004년부터 군 선교사로 활동해 군선교단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초창기에는 승용차도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방 부대를 찾아다니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지금은 ‘전설’ 같은 추억이 돼 동료 선교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천주교를 처음 접하는 병사들은 작은 친절과 봉사에도 마음을 열고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에 소홀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5일 수기사 신교대에는 지난해 성탄전야에 입대한 훈련병 1개 중대만 남아 있어 최근 들어 가장 적은 인원이 주일 천주교 종교행사를 찾았다. 40명 남짓이었다. 이중 세례 신자는 7명, 견진성사를 받은 신자는 2명뿐으로 2명의 병사들이 교리교육 수료식에서 치러지는 세례성사에서 동료 병사들의 대부가 된다.
채 신부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한 주 한 주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오후 1시30분~3시까지 조 선교사가 교리교육을 먼저 하고 이어 3시부터 채 신부가 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주일 훈련병들의 종교행사가 끝난다.
교리 5주차에 훈련병들은 세례를 받기 때문에 1주의 교리교육은 일반 본당의 1달 교리교육에 맞먹는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조 선교사는 교리 교안을 몽땅 외울 정도로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은 물론 1분, 1초 흘러가는 시간을 야속해하며 성호경의 의미와 십자성호 긋는 방법부터 천주교 4대 교리,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 등 핵심 교리를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한다.
교리 시작 전과 중간 간식 시간에는 조 선교사가 ‘아가씨’ 때 배운 피아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 군인들에게 최고 인기곡인 ‘실로암’과 ‘사랑으로’를 흥겹게 합창하는 시간도 빼놓지 않는다. 즉석에서 훈련병들이 앞다퉈 ‘수기사 1중대 성가대’를 조직해 동료들 앞에서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청년들만의 특권일 것이다. 즉석 성가대원들에게는 선물로 초코파이 1개씩이 주어지고 용기를 내지 못한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는 모습도 흥미롭다.
교리교육이 끝나고 미사 시간이 다가오자 채 신부는 훈련병들과 화생방 훈련과 자대배치를 주제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눈다. 같은 ‘군인’ 입장에서 훈련병들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다.
채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갓 입대한 훈련병들에게 “별을 따라 예수님을 찾아갔던 동방박사들의 여정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 여정과 같다”며 “군생활이 힘들더라도 주저앉지 말고 이기적이고 허황된 욕심을 버린다면 군대에서 보물을 얻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종교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채 신부가 진행하는 ‘성경 퀴즈’다. 그날 독서와 복음의 내용을 묻는 퀴즈를 맞히는 훈련병에게는 과자와 빵 등 ‘엄청난’ 선물이 주어진다. 퀴즈를 맞히려 미사 중 수첩에 필기를 하는 훈련병도 여럿 눈에 띈다.
훈련병들은 미사에 집중해서 맛있는 선물도 받고 생활관에 돌아가 동료들을 천주교 종교행사에 데려온다. 수기사 채 신부의 훈련병 선교는 ‘1석3조’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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