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江陵 鶴山 金光坪) 이야기
9. 과수원집 경옥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뒤 낮으막한 언덕 아래쪽에 읍엣집 영감님네 과수원이 있었다.
강릉에서 일정 때부터 양조장을 했다는 읍엣집 영감님은 6.25사변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에 과수원을 사서 우리 마을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삼천 평 쯤 된다는 과수원은 사과나무와 배나무, 복숭아와 자두나무 등이 있었는데 과목들은 이미 수령이 20년도 훨씬 넘었을 뿐더러 손질을 제대로 하지 않아 과수원 꼴이 말이 아니라고들 하였지만 일본사람이 살았다는 집만은 덩그러니 크고 위엄이 있었다. 골짜기 안쪽 과수원에 들어앉은 일본식의 시커먼 저택은 커다란 과수원 울타리 문을 지나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울타리 문 안쪽에는 개집이 있어서 항상 서너 마리의 엄청나게 크고 사나운 셰퍼드가 사람 그림자라도 얼씬만 하면 사납게 짖으며 날뛰어서 동네 사람들은 그 부근을 지나다니는 것도 께름칙하였다.
오래된 적산가옥(敵産家屋)인 읍엣집은 2층이었는데 문을 들어서면 맨 봉당의 넓다란 거실이 있고 천정이 무척 높고 항상 어두컴컴하였다. 옻칠을 하였는지 새까맣고 반짝거리는 커다란 여러 개의 찬장 안에는 괴상하게 생긴 유성기와 차곡차곡 세워져 있는 유성기판도 있었고, 예쁜 그림이 새겨진 도자기며 오래된 책들도 꽂혀 있었다. 그 거실 한쪽 구석으로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기다란 낭하(廊下/複道)가 나오고 그 복도를 따라 다다미를 깐 방이 여러 개 있었다.
가족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아들 아래로 딸이 셋이 있어 부인과 곱게 늙으신 할머니와 4남매까지 모두 일곱 식구였는데 이따금 부인을 닮은 젊은 고모들이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양장 차림에 멋진 스카프를 펄럭이며 들락거려서 읍엣집은 우리 마을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어찌 보면 상당히 상류계급의 사람들로 치부되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여고를 다녔다는 부인이 언젠가 부뚜막에 앉아 신문을 보더라고 동네 여자들은 별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성격이 원체 소탈한 편이어서 이따금 마을 아낙네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기도 하였다.
할머니는 살기 어려운 마을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이따금 불러다 일을 시키고 품삯을 후하게 쳐주고는 했다.
2년 터울인 세 딸 중 큰딸인 경옥이는 몸매도 날씬하고 얼굴도 예뻤지만, 공부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는데 세 딸이 모두 비슷했다. 그렇지만 뽀얀 피부에 항상 공주처럼 차려입고 다녔고, 동네 또래들과는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 마을에서 여고를 다니는 사람은 경옥이가 유일하였는데 대부분의 또래 처녀들은 집안일을 돕거나 읍내에 다니면서 양복점이나 양장점에서 심부름을 하며 기술을 배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름이면 빳빳하게 풀을 먹인 흰 블라우스에 곤색 치마를 받쳐 입고 청색 운동화에 책가방을 든 경옥이의 모습은 동네 처녀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던 동생과 책가방을 흔들며 아침에 나란히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공부도 신통치 않다면서....’ 하며 입을 비쭉거리기도 했다.
경옥이 집에 들어오지 않고 고모와 삼촌들이 찾으러 다니며 법석이 난 것은 경옥이 여고 3학년이 되던 해 봄이었다. 애당초의 사단(事端)은 경옥이 정구부(庭球部)에 들어가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말랑말랑한 고무공을 네트 너머로 쳐서 넘기는 정구는 당시로는 아주 귀족 스포츠로 여겼는데 공부가 신통치 않자 경옥이는 부모를 졸라서 정구부로 들어갔는데 연습을 한답시고 오후 늦게까지 남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잘못되었을 것이라고들 하였다.
처음에는 정구부 코치와 붙어 다닌다 어쩐다 하여 삼촌들이 학교를 찾아가 난리법석을 피웠다는데 어찌어찌 해결하고 집에 데리고 와서 며칠 쉰 다음 다시 학교에 다니면서 정구를 계속하였는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또 집을 나가서 학교도 나오지 않고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경찰까지 동원해서 수소문하여 찾아 나섰는데 보름쯤 후 시내 건달패들 대여섯 명과 주문진에서 여인숙에 동거하며 숨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머리를 깎아 버리고 다리몽댕이를 분질러 버리겠다고 펄펄 뛰는 아버지를 삼촌들이 나서서 달래는 한편 건달 녀석들에게는 돈푼깨나 찔러주고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오던 날 쥐죽은 듯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경옥이에게 저녁을 먹으라고 방문을 두들겼다. 인기척이 없어 안에서 걸어 잠근 문을 뜯고 들어가 보니 어디다 숨겨왔는지 약을 먹어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삼촌들이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 위세척을 하여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삼촌들은 물론이고 고모들도 모두 모여와서 꾸짖는 한편, 얼르고 구슬리며 사람 목숨은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타일렀다.
링게르를 꽂은 경옥이 수척한 얼굴로 빤히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더라고 했다. 삼촌과 고모들은 일단 목숨을 건진 것에 안심하여 돌아가고 어머니만 병실에 남아있었는데 어머니가 새벽녘에 피곤하여 잠깐 눈을 붙인 사이 경옥이 다시 약을 먹고는 영원히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경옥(가명)은 내가 고1 때 중2로 내가 가정교사를 했다.:하프실화/많이 각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