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4] 편견 가득한 거짓말쟁이,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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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2.10.29. 23:30
업데이트 2013.03.05. 11:52
그림 '가'에서 A와 B의 사각형 중 어느 쪽이 더 어둡게 보일까? 시각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겐 당연히 A가 B보다 더 어둡게 보인다. 하지만 그림 '나'에서 볼 수 있듯이 A와 B의 밝기는 사실 같다. 1995년 미국 MIT의 테드 애델슨 교수가 제시한 이 시각적 착시는 충격적이다. 물리적으론 분명히 동일한 두 사각형이 어떤 이유에선지 그림 '가'에선 전혀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유는 세상은 눈으로 단순히 보는 게 아니고, 뇌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망막에 꽂힌 두 사각형의 밝기는 물리적으론 동일하다. 하지만 그 정보가 시각 뇌에 도착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뇌는 세상에 대한 진화적·선천적·후천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림자 안에 있는 물체들은 보통 더 어둡게 보인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결국 우리의 뇌는 "그림자 안에 있어서 더 어둡게 보여야 할 B가 그림자 바깥에 있는 A랑 동일하게 보인다는 건, 사실은 B가 A보다 훨씬 더 밝기 때문이다"라는 '착한' 가설을 만들어, 우리에게 B가 A보다 더 밝다는 착시를 보게 한다.
물론 망막은 여전히 A와 B의 밝기가 동일하다는 정보를 보냈지만, 뇌는 크게 뜬 두 눈에 보이는 것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더 신뢰한다.
뇌는 머리 안에 있다. 다시 말해 뇌는 마치 두개골이라는 어두운 감옥에 갇혀 바깥세상을 직접적으로 볼 수 없는 죄인 같다. 세상에 대한 모든 정보는 눈·코·귀·혀 같은 감각 센서들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고, 뇌는 그런 정보들을 기반으로 세상에 대한 답들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정답을 제시해줄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뇌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은 예전부터 알고, 믿고, 경험했던 편견들뿐일 수도 있다.
시각적 착시는 단지 빙산의 일각이다. 현대 뇌과학에선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믿음·사상·의견·신념·생각·감각들이 어쩌면 세상에 대한 뇌의 착시적 해석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기계가 절대 아니다.
뇌는 단지 감지되는 감각 센서들의 정보들을 기반으로 최대한 자신의 경험과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해석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된 결과를 우리에게 인식되도록 한다. 세상을 본다는 것은 결국 우리 뇌의 '착한' 거짓말에 속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뇌의 거짓말에 대해 배웠고, A와 B가 물리적으론 동일하다는 걸 이제 이해했다. 하지만 눈을 그림 '가'로 돌리는 순간, 여전히 B는 A보다 밝게 보인다. 그렇다. 뇌가 거짓말을 하면, 아무리 알아도 소용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우리 자신의 뇌를 믿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