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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예화 60편 모음
1.그냥 다만 한 걸음씩
어떤 분이 '한국교회개혁 95개조' 라는 글을 보내주셔서 읽어보았습니다.
교황 레오10세는 베드로성당 공사비 때문에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그 면죄부를 파는 일행이 비텐베르크(Wittenberg)에 왔을 때 이를 본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로마카톨릭의 잘못을 95개 조항으로 작성하여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크 성당 벽에 붙인 것을 종교개혁의 시작으로 보는데, 아마도 그것을 흉내내어 '한국교회개혁 95개조'를 작성한 것 같았습니다.
읽어보내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요, 지당하신 말씀이며, 정말 그 주장대로만 한다면 한국 교회가 개과천선(改過遷善)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젊었을 때 의 제 혈기라면 한국교회를 개혁할 '전사'가 되자고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나섰을 것 같은데 아, 저도 이제 나이를 먹어 가는 것인지, 사람이 비겁해져 가는 것인지, 아니면 철이 들어가는 것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별로 관심도 없고 흥도 안 나네요.
그래서, 교회 개혁의 과업은 그분들에게 맡겨드리고, 저는 다만 제 자신을 개혁시키고자 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한 꾸석탱이 한 뼘 작은 공간만이라도 변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갈 수 있는 곳까지 한 걸음씩 천천히 노닥거리며 길을 걸어볼까 합니다. 주님 얼굴 바라보며 그분을 조금이라도 닮아 보는 것!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개혁'인 것 같아요. ⓒ최용우
2.뭐가 문제인가?
요즘 교회신문을 보면 '개혁, 변화, 갱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뭔가 새로운, 혁신적인' 이런 단어들이 많이 보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저런 단어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대답은 하나같이 궁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위기의식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을 돌파할 만한 의지는 없는 셈입니다.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힘'이나 '능'은 인간적인 방법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학설(이즘)이나, 무슨 세미나, 무슨 운동, 무슨 목회 방법, 설계도, 무슨 단체, 지식, 기술, 테크닉 요령 등등 이것이 21세기 교회의 대안이라고 야심차게 주장하는 것들이 많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인간적 수단과 방법들을 비웃으시며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어디 한번 해 보라고...
하나님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하나님은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유능한 사람을 쓰시는 게 아니라, 나는 못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는 사람 억지로 끌어내어 쓰시기를 좋아합니다. ⓒ최용우
3.영원한 종교 개혁
카톨릭의 부패와 무능에 반기를 들고 루터와 쯔빙글리, 칼빈에 의해 종교 개혁을 해서 떨어져 나온 프로테스탄트(Protestant)교회가 채 5백년도 안 되어 제2의 종교 개혁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입니다.
교회사를 연구해 보면, 이 '개혁'의 아우성은 벌써 오래 전부터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혁교회의 개혁은 완성이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진행형이면서 미완성인 셈입니다.
좀 더 들여다보면, 개혁교회의 열망인 그 개혁이란 한마디로 '부조리한 세상에서 떠나 성경으로 돌아가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개혁이 끊임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실의 부조리를 단호하게 중단하고 성경으로 돌아가게 하는 아무런 개혁 프로그램도 없다는 것입니다.
개혁교회가 아무리 개혁을 말해도, 모든 것이 '개교회성장'에 맞추어져 있는 현재의 모습으로는 개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개혁'의 아주 작은 단초가 될 수 있을 프로그램이 수도원 영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부조리한 현실에서 떠나 성경으로 돌아가 평생 말씀대로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바로 수도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용우
4.개혁기념 행사가 개혁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종교개혁 기념 행사가 개혁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념 행사를 함으로써 개혁에 힘쓰지 못하는 우리의 모자라는 모습을 덮고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개혁의 대상이 될 사람들이 앞장서서 개혁을 소리높이 부르짖음으로써 자신은 개혁에서 빠져나가는 수가 적지 않습니다.
해마다 시월 하순이면 흔히 오백년 전 독일에서 루터를 중심으로 일어난 개혁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개혁을 다짐하는 강연회가 열립니다. 이 시대의 문제를 두고서 심포지움도 하고 토론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어그러지거나 느슨해진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더 나은 앞날을 일구기 위해 애쓸 것을 다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우리가 개혁을 많이 부르짖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스스로 개혁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됩니다.
실제로 개혁하는 사람은 개혁에 대해서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무슨 개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말없이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제로 개혁해 나갈 따름입니다.
<박동현 교수/장신대학교 구약학>
5. 개혁, 영적 몸부림의 결과
오스 기니스의 명저 「소명」에 마르틴 루터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중세 성당의 캄캄한 종루 계단을 고통스레 오르던 그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뻗어 계단 줄을 잡았다. 그러고는 머리 위로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놀랐다. 자기도 모르게 종의 줄을 잡아당겨 온 동네를 깨웠던 것이다. 루터는 개혁을 위한 종합적 비전을 품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받고자 괴롭게 몸부림치다, 지금 우리가 종교개혁이라 부르는 16세기 격변의 순간이 시작되자 깜짝 놀란 사람이다.
루터가 구원받고자 몸부림친 것은 그의 모든 경건, 모든 선행, 모든 고행, 모든 의식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는 갈망을 채워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갈증 때문에 그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우리가 얻어 내거나 우리가 가진 자격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행위를 쌓으며 선해져도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설계하시고 우리에게 목적을 주신 하나님만이 죄 문제를 해결하시어 그 둘 사이의 긴장을 없애실 수 있다. 이런 몸부림이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예수, 가장 위대한 생애」/ 찰스 스윈돌
6.삶을 개혁하라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성도 한 사람이 시장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 성도의 친구가 먼저 말을 건넸다.
자네 꽤 오랫동안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지?
물론이야. 25년째 듣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자네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해!
그리고 그 대목에서 내가 그 성도에게 물었다.
그 친구가 당신을 가리켜 자네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야!라고 말하지 않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해!라고 말했다는 거죠?
그 성도가 대답했다.
네. 그 친구는 제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 당신이 복음의 메시지를 25년 동안이나 들었다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함이 마땅하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껏 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 결국 하나님이 과수원지기에게 꺾어 버려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라고 명하신다. 아! 수십 년 동안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허다하니 내 마음이 심히 슬프다!
「네 주께 굴복하라」/ 찰스 스펄전
서재일 목사(원주영강교회)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11. 참된 행복 참된 개혁
사람들은 행복이 편안, 성장, 일에
있는 줄 압니다만 오해입니다. 참된 행복은
내면의 평안, 과정의 성숙, 사랑과
사명의 성취에 있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겠다고요?
어불성설입니다. 개혁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먼저 나 자신이 변화되면
점차 내 가정, 공동체, 민족과 역사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 김석년의《지혜자의 노래》중에서 -
* 참된 행복, 참된 개혁,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깥 조건을 탓하지 마십시오.
자기 내면(內面)의 문제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남과 싸워 이기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와 싸워 이기면 위대한 인격이 될 수 있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12. 개혁의 불길 기도의 불길
칼럼니스트 짐 프랭클(Jim Frankel)은 현대 문명이 붕괴된다면 미래의 역사가들은 현대인들은 향락하다가 죽었다라고 비웃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그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이해하겠는가?
그의 말을 기독교적으로 바꿔서 정곡을 찌른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A. W. 토저다. 그는 현대인은 배꼽을 쥐고 낄낄거리며 지옥으로 가고 있다라고 꾸짖었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 나는 지금이야말로 로마 가톨릭의 빛바랜 담장 안에서 제2의 사보나롤라(Savonarola, 1452~1498. 이탈리아 가톨릭 종교개혁의 선구자)가 출현해야 할 때라고 믿게 된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는 바알의 신(神)들에게 둘러싸인 섬과 같다. 세상은 악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당신이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범죄한 개인, 범죄한 국가가 갈 곳은 오직 자비로운 하나님의 보좌 앞이다라고 대답하겠다. 성경을 날마다 읽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우리 주변의 불신자들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이면 너무 늦을지 모른다. 우리가 지금 당장 회개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기도의 제단에 불을 붙이지 않는다면, 심판 때에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 「무릎 부흥」/ 레오나드 레이븐힐
13. 개혁할 때가 있고 수성할 때가 있나니
조참은 한나라 2대 惠帝의 재상이었습니다. 조참은 소하의 부하로서 한 고조를 섬겨 한 고조가 천하 통일하는 데 큰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제위에 오른 한 고조는 제왕학 실습으로 장남 肥(훗날의 혜제)를 齊王에 봉하고, 그를 보필할 인물로 조참을 제나라 승상으로 파견하였습니다.
그 후 한 고조가 죽고, 장남 비가 제위에 올라 혜제가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제나라 승상으로 외지에 있던 조참은 혜제 2년 저 유명한 명재상 중의 명재상 소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황제의 명을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내 이제 한나라 재상이 되었으니 어서 낙양으로 가야겠다!> 하고 짐을 싸들고 떠났습니다.
혜제 2년, 소하의 뒤를 이어 한나라 재상이 된 조참은 허구 한날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노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만 노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부하들도 모두 노세 노세 젊어 노세 판으로 만들었습니다. 혹 뜻 있는 선비나 친구들이 조참의 이런 모양을 보고 충고라도 할라치면 조참은 그 낌새를 미리 알아채고, 더욱 질펀한 잔치 자리를 마련하고 먹고 마시고 취토록 만들어 입도 벙긋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혹자가 혜제에게 알렸습니다.
이제 천하의 황제가 된 젊은 혜제는 무엇인가 새롭고 위대한 개혁 정치를 하고 싶은 판인데 명색이 재상이란 사람이 마냥 퍼질러앉아 놀자 판이니 심사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여 혜제는 조참을 불렀습니다. "이보시오. 재상, 내가 이제 황제의 위에 올라 무엇인가 새로운 개혁 정치를 베풀려고 하는 참인데 재상이란 사람이 마냥 노세 노세 하고 앉았으면 어찌 하오?". 책망을 받은 조참이 아뢰기를 "폐하, 전쟁과 군사력 통솔 면에서 폐하와 천하를 통일하신 고조 황제와 비하면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혜제는 "내 어찌 감히 고조와 비할 수 있겠소!". 그러자 조참은 "하오면 폐하, 선대의 저 유명한 재상 소하와 저를 비하여 볼 때 누가 더 훌륭하다고 보십니까?". 혜제 왈 "君似不及也!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그대는 소하와는 아예 비교조차 안 되는 인물이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참 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처럼 위대한 고조께서 그처럼 위대한 소하와 더불어 천하를 평정하고 법률을 제정하고 질서를 세우시어 만 백성이 안정을 얻게 하신 이 나라이옵니다. 오늘 폐하께서는 바로 그런 나라를 물려받은 것이옵고, 臣은 그런 나라를 지킬 소임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개혁, 새것, 혁신 같은 소리는 접으시고 받은 유산을 잘 보존하심이 최상인 줄 아옵니다!". 혜제 曰 '善. 君休矣! 옳도다, 그대의 말이 정말 맞는 소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마천, 사기, 경인문화사, 509쪽>
14. 한 사람의 영향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던 비텐베르크 시는 마르틴 루터 시로 개명된 지 오래다. 오늘날 독일 전 국민의 98%가 루터교인이다. 하나님이 함께한 종교개혁자 한 사람의 영향은 시대를 초월한다. 독일 학교의 방학은 모두 기독교와 연관되어 있다. 매년 10월1일부터 두 주간은 추수감사절 방학이고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부활절에도 각각 두 주간 방학을 한다. 모든 국민은 교회를 위해 종교세를 낸다. 목사는 정부 공무원이며 모든 아이는 유아세례를 받고 13세가 되면 1년간 매주 두 시간씩 100시간 이상 성경을 배워서 14세가 되면 입교식을 한다. 이 날은 부모님과 일가친척이 다 모여 축하잔치를 연다. 독일은 결국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중간에 막힌 담을 헐고 하나 되는 것이 십자가 정신이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손에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자.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새 역사를 만든다. /최낙중 목사(관악교회)
15.웨슬레의 개혁 운동
웨슬레가 살던 시대에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해감에 따라 새로운 도시 빈민층이 탄생하였다. 석탄에 의해 불이 붙은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웨슬레는 킹스우드의 광부들에게 설교하면서 산업혁명에 의해 가장 잔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접촉하고 있었다. 웨슬레는 석탄을 캐는 광부들에게 깊은 깊은 관심을 보였고 그들의 영적이고 물질적인 복리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무료 의료원을 세우고 신용조합을 만들었으며 학교와 고아원을 설립했다. 그의 목회는 더 나아가 납을 캐는 광부들, 철공, 구리공, 석공, 하역부, 농장 일꾼, 죄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까지 포용하였다. 이 모든 사람들- 사회의 희생제물이 된 사람들- 에게 웨슬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의 노력은 복리의 차원을 넘어서서 창조적인 경제적 대안을 제시할 정도였다. 예리한 안목이 담긴 많은 글들을 통해 그는 개혁을 외쳤다. "땅에 홍수처럼 만연하고 있는 온갖 부정과 불의에 대담하게 항거하는 것이 원수의 목전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가장 숭고한 방법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확신하였다.
16. 종교개혁자 녹스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자 녹스는 스코틀랜드를 기독교국으로 만든 성도인데, 그는 나라를 지극히 사랑하고, 부정에 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사람이기도 하다. 여왕 메어리 스튜어트가 구교 세력을 회복시키고, 개신교를 압박하려 할 때에 녹스는 용기 있게 일어나, 그것을 나라 지도자들에게 공개하고, 또 메어리 여왕이 구교도인 사촌동생 단리와 혼인한 일에 대하여 그 부당함을 지적했다. 그때 여왕은 스파이의 말을 듣고, 녹스를 불러다 놓고 울면서 말하기를 "네가 내 혼인 건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했다. 그러자 녹스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나라 백성의 일원(一員)으로 지었으니, 나도 이 나라에 해로운 일에 대하여는 미리 경고할 책임이 있다"
1562년에 메어리 여왕은 녹스를 반역죄인으로 죽이려 했으나, 녹스는 의회에서 진리대로 분명히 말함으로써 의회는 그에게 무죄선고를 하였고, 또한 그의 용기 있는 행동 때문에 스코틀랜드는 드디어 기독교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나라에 해될 일이 있을 때, 국민은 경고해야될 책임을 가지고 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매 일반이다.(삼하12:7)
17. 종교개혁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23: 5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개혁의 기치를 들었을때 당시에 교황청의 세력은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아주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교황은 한낱 수도사에 불과한 루터 같은 사람은 수천 명도 더 파멸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름스 의회 앞에서 루터가 심문당할 때 그는 으르렁거리는 이리떼 속에 서있는 어린 양과 같았습니다. 아무도 그가 거기서 살아나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전까지는 교황청은 그에게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리를 깨우치고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 항의문을 내건 다음부터 교황청은 무서운 원수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의 용기 있는 결단을 통해 우리는 참다운 진리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수의 부릅뜬 눈 앞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만큼 삶을 활기 있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의 가치를 더욱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기도: 하나님의 축복의 상에 참여케 하소서
18. 종교개혁
프린스톤 신학교의 유명한 성서 신학자인 오토 파이퍼라고 하는 분이 계셨는데 이 교수가 강의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하는 말씀이 "자네들 그 종교 개혁을 마틴 루터가 일으킨 줄로 생각을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일세" 라고 점잖게 말씀하십니다. 학생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게 아니면 누가 한 거냐? 도대체 그럼 누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노교수께서는 다시 천천히,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종교개혁은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읽을 때, 루터가 그 갈라디아서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그 말씀이 그 안에서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진리가 그 사람을 폭발시켜서 루터는 그 진리를 전파하지 않고는 다른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네." 종교개혁은 루터가 한 것이 아니고 갈라디아서의 진리가 한 것이라고 아주 신중한,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교롭게 제가 프린스톤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 바로 마틴 루터의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때에 루터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께서는 다른 것은 전부 참고하게 하고 오로지 루터의 갈라디아 주석을 한 학기 내내 Page by page, 읽고 토론하고 연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루터는 갈라디아 주석을 두 번 썼습니다. 처음에 쓴 것은 좀 작고 뒤에 쓴 것은 아주 큰데 신구약 성경보다도 큽니다. 이 갈라디아 주석을 읽어 나가노라면 루터가 얼마나 갈라디아서에서 불같은 은혜를 받았는지 엄청난 생명력을 경험했는지를 우리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주는 진리, 이 생명력이 그를 포로해서, 그를 사로잡아서 마침내 종교개혁을 이룬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가 나를 잡아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용히 순종할 따름입니다.
19.개혁을 외치는 소리
에스더는 이방 나라의 왕비가 되었지만 자신의 민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가기 전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결국 에스더의 결단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임했더니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역설의 진리입니다.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신앙의 선배들인 루터, 칼뱅, 츠빙글리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로마 카톨릭을 향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했던 그 결과로 오늘의 개신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개신교도 세월이 흐르면서 비성경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비성경적인 전통과 기득권을 버리고 손해를 보더라도, 생명을 잃을지라도 진리를 위해 개혁을 외치는 소리가 많아져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자들을 통해서 개혁되는 것입니다.
카톨릭 300년, 개신교 100년의 역사가 지난 오늘날 그리스도 복음의 씨앗은 실로 기적적이라 할만큼 성장되어 왔습니다. 우리 나라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기독교인의 수적 증가는 앞으로 10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90%이상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태를 기대할 만큼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가 25%에서 90%가 된다고 해서 우리 나라가 자유와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교회가 개혁되지 않고, 크리스천이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한국사회는 결코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 성경: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20. 창조적인 선각자
1904년 영국 웨일스에 한 젊은 광부가 있었다. 머리카락은 탄진으로 범벅이었고 손톱에는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다. 휴식 시간, 탄광의 광부들은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었으나 청년은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었다.청년은 달변가가 아니었다. 학문에 밝은 사람도 아니었다.청년의 꿈은 영국을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었다.그는 한 목사를 찾아가 강연을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자네 같은 탄광노동자의 강연에 과연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단지 30분만 강단을 빌려 주겠네."
청년은 강단위에 올랐다. 목사를 포함한 17명은 그의 강의를 듣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다.5개월 만에 웨일스 시민 10만 명이 회개했다.2년 만에 2백만 명의 영국인이 회개운동에 참여했다.학생, 법조인, 주부, 교사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통렬한 회개운동을 펼쳤다. 재판관들은 법정에서 재판을 중단하고 피고를 위해 기도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이반 로버츠]이다. 한 사람의 <창조적인 선각자>가 영국을 타락의 늪으로부터 구출해냈다. 새로운 역사는 항상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쓰여 진다.
21. 딕시의 개혁
도로시 딕스라는 한 미국 여성이 일으킨 개혁 운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학교 선생으로 29살에 폐병에 걸려 각혈을 했습니다. 의사는 요양을 잘 한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충격적인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요양을 위해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신약 성경을 되풀이해서 읽다가 예수님께서 내게 무엇을 하길 원하실까?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목사님이 찾아와 그녀에게 캠브리지에 있는 교도소의 여자 죄수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그녀는 교도소, 보호소, 병원 등을 방문하면서 정신병자들에게 행하는 잔학 행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새장, 벽장, 지하실, 마구간 등에서 사슬에 묶이고 벌거벗겨져 몽둥이로 매를 맞아 가며 복종을 강요당하는 정신병자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여러 주를 다니면서 정신병자를 위한 병원을 세우고 법을 개정하도록 촉구했습니다. 또한 캐나다, 스코틀랜드, 영국 그리고 이태리에서 이를 위해 가두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병들어 죽었을 때 그 병원의 원장은 미국에서 가장 현명한 여인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22.휘장을 걷어라
1917년경 김길창 목사는 함안 기동교회의 조사로 부임하였다. 26세의 젊은 그의 안목으로 볼 때 교회 안에 혁신해야 할 문제들이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첫 번째가 교회 당 안의 남녀석을 구별하는 휘장 제거였다. 그래서 그는 어느 토요일 밤 기동교회의 청년들을 교회당에 모아 놓고서 일대 계몽 강연을 했다.
"여러분, 장터에 가 보시오. 남자들만 모이는 시장이 있고, 여자들만 거래하는 시장이 따로 있습니까? 아니 한 집안에서 남자들끼리 살고 여자들끼리 따로 삽니까? 주 안에서 한피받아 한몸 이룬형제자매를 이 때묻은 휘장으로 갈라 놓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열변에 청년들은 크게 지지하였고 이튿날 주일예배를 마친후 김길창 조사는 교인들에게 휘장무용설에 대한 열변을 되풀이 한후 휘장을 없앨 것을 제의하였다. 이 때 연로한 안 영수를 제외하고 모두 찬동하여 함안 기동교회는 한국 교회 사상 휘장 제거운동의 첫 장을 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경남노회가 마산 문창교회에서 열렸는데, 당시 임사부(지금 정치부)에다 안 영수가 김길창 파면 신청서를 냈다. 그 내용은 "동방예의지국에 남녀가 유별하거늘 교회를 지도하는 조사가 본 기동교회당의 휘장을 제거하였기로 김길창으 조사직을 파면해 주시길 청원합니다"라는 것이었다. 보수적 성향이 짙었던 경남 노회는 안 영수의 청원을 받아들였고 김길창은 교회 조사일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길창이 파면당한 1주일 만에 문창교회 한석진 목사가 그를 불렀다. 그리하여 그는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가 문창교회에 부임한 지 1주일째 되던 날, 한석진 목사가 예배후에 온 교인들을 남게 하고는 "여러분, 김길창 조사께서 기동교회의 휘장을 걷은 일은 장한 일입니다. 우리는 김조사의 의견을 들어봅시다"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고, 그 자리에서 문창교회의 누루직한 때묻은 휘장도 제거되었다.
23.신앙의 절개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에 일생을 바쳤던 존 낙스는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신앙인이었다. 그는 프랑스군에 체포되어 19개월 동안 죽을 고생을 하기도 했으며 영국여왕 메리 1세의 극심한 박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절개를 한번도 굽힌 일이 없었다. 오히려 핍박과 고난을 받을수록 기도와 신앙의 열기를 더해 갔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추모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도가 이곳에 잠들다."
24. 사회개혁의 능력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라이맨 애보트는 부룩클린 플리머드 교회 목사직을 사임한다는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오래 전부터 꿈꾸어왔던 사회개혁과 자선이라는 것을 통해 나의 교구민들을 위한 사역을 할 수 있으리란 것이 결코 그런 식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의 십자가 외에는 개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25.절대적 신념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1513~72)는 「박해의 상징」인 메리 여왕의 불의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는 책을 출간,왕의 비위를 건드리는 바람 에 왕정파에 의해 체포된 적이 있었다.
『그대의 신앙과 그대가 말한 것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 가?』 지휘관이 매섭게 쏘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낙스는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마음이 그것을 생각했습니다.입이 말했고 손이 그것을 썼습니다.만일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피로 써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26.배를 멈추게 한 희생
대형 여객선이 서인도제도를 항해하고 있었다. 한 소년이 갑판에서 애완용 개와 즐겁게 놀고 있었다. 개는 소년이 공을 던지면 쏜살같이 달려가 공을 물어오곤 했다. 그런데 소년이 던진 공이 크게 튀면서 바다로 빠졌다. 개는 주인이 던진 공을 물어오기 위해 파도가 높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소년은 선장에게 달려가 배를 멈추어줄 것을 당부했다.
"개 한 마리 때문에 배를 멈출 수는 없다"
선장의 대답은 냉정했다. 그러자 소년이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선장은 할 수 없이 배를 멈추었다. 소년의 생명을 포기하고 항해를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소년과 강아지는 모두 무사히 구출됐다. 거대한 여객선은 개 한 마리로 항로를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항해를 멈추었다. 국가의 개혁도 이와 같은 것이다. 모든 개혁에는 반드시 그만한 희생이 따른다. 희생의 크기에 따라 개혁의 폭도 달라진다.
27.매력의 비결
17세기 영국에서 경건운동인 「퀘이커敎」운동이 일어났다. 그들은 전통적인 형식을 부정하고 「내면의 빛」을 따르며 영적인 체험과 선행을 강조했다.
영국에서 이 운동이 한창 일어날 때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이는 퀘이커 교의 귀부인이 『어떻게 자신을 가꿔 그런 매력을 지니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입술을 위해 진리를, 음성을 위해 기도를, 눈을 위해 긍휼을, 손을 위해 자선을, 몸가짐을 위해 정직을, 마음을 위해 사랑을 사용했습니다』
28.사회개혁운동가의 아내
웰델 필립스는 노예제도에 항거하는 시민들의 봉기에 참된 용기가 필요하던 시기에 활동했던, 참으로 위대한 개혁운동가였다. 그는 그 자신의 대범한 성품으로 칭송 받았다. 그러나 그의 힘은 그 자신만의 것은 아니었다. 병약한 그의 아내는 필립스의 강연 여행에 동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필립스에게 굿바이 키스를 해주면서 다음과 같이 조언해 주었다.
"여보, 지금이에요. 망설일 것 없어요!"
29.도전하는 삶
친정어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다: 세 마리의 쥐가 있었단다. 한 마리는 하수구로 떠내려 오는 밥알이랑 음식물 찌꺼기를 건져 먹으며 살았지. 추운 겨울에 그것들을 더러운 물에서 건져 먹으려니 쥐의 털은 물에 젖어 꽁꽁 얼어붙었지. 그래도 그 쥐는 매일 달달달 떨면서 그곳에서만 살다가 죽었지. 다른 한 쥐는 온몸에 똥을 뒤집어쓰고는 냄새나는 똥통에서 똥 냄새를 풍기며 살았지. 또 다른 한 쥐는 쌀 곳간에 살았어. 사시사철 넘쳐나는 하얀 쌀을 마음껏 먹고 졸음이 오면 따뜻하고 깨끗한 쌀가마니 위에서 쿨쿨 늘어지게 잠을 잤단다. 얘야, 쥐가 다니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니? 내가 말했다. 아니요.
그래. 하수구에 살던 쥐가 곳간에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하수구에 사는 쥐는 일평생 그 하수구를 떠나지 못한단다. 더러운 물에 떠내려 오는 밥 알갱이를 주워 먹지 못하면 배고파 죽을까 봐 그곳을 못 떠나고 달달달 떨면서 살다가 죽는 거야. 똥통에 있는 쥐도 마찬가지야.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견딜 수 없으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지. 왜 못 떠나니?
그 쥐도 그곳을 떠나면 죽을까 봐 겁나서요.
그래. 언제라도 네가 있는 곳이 하수구 같거나 똥통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거든 다른 곳으로 가거라. 사람에게도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떠나면 금방 죽을 것 같아도 떠나라. 깨끗한 길을 계속 찾아 살거라. 깨끗한 길에서도 절대로 죽지 않는단다.
-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유정옥
30.도전하는 삶
「폐쇄공간에서의 한계」를 여성이 도전한다. 96년 12월부터 1년간 남극의 세종과학기지에 사상 처음으로 미혼의 여의사 이명주씨(26)가 파견근무를 한다. 지난 88년 준공, 지금까지 남자대원만 파견해 온 세종과학기지 월동대가 처음으로 여성대원을 파견하는 것. 이씨는 앞으로 고무 보트훈련, 스키훈련 등 폐쇄공간을 극복하기 위한 특수훈련을 받는다.
"의지의 新 여성시대"가 본격화되는가. 소외를 당하거나 밀폐공간에 들어섰다고 금방 의지를 포기하고 좌절하는 남성들이 부끄럽다.
31.교회의 책임
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한 독일은 치욕적인 조약을 맺어야 했다. 그 사건 이후 독일에서는 민족적 자각과 사회적 각성운동이 시작되었다. 농민해방 행정개혁 군제개혁 등이 진행되는가 하면 민족주체성 확립을 위한 자성운동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 베를린대학 교수였던 피히테는 나폴레옹 점령 하의 베를린 학사원에서 1807년 12월부터 매주 한 차례씩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강연을 했다. 피히테가 강조한 것은 독일재건의 길은 무엇보다 국민정신의 개혁에 있다는 것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당면한 현실의 개혁과 발전은 국민정신의 거듭남으로 시작된다. 우리 나라 교육이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교사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어우러져 엮어낸 실패작이다. 교회의 책임은 국민 정신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일이다. 전인적 구원사건이 우리 속에서 구현될 때 개혁과 갱신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박종순
33.어떤 탄압에서도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독일전란 때 자유를 애호하는 자였다. 나는 이것을 보수하기 위하여 대학교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독재자의 탄압 아래서 모든 대학교들도 침묵을 당하였다. 나는 다시 신문 편집자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침묵을 당하였다. 나는 독일의 자유를 위하여 글을 쓰던 유명한 저술가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교회만은 히틀러의 탄압 아래서도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전에 교회에 대하여 흥미가 없었던 사람이었으나, 이제 나는 교회에 대하여 애정과 탄복을 느끼는 바이다."
35.교회를 재건하자
요한복음 2장 1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성전으로 들어가서 채찍으로 장사꾼들을 내몰았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로 만들지 말라고 야단을 치시면서 채찍으로 내리치셨습니다. 당대의 성전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채찍을 높이 드신 것입니다. 이 썩어 냄새나는 부패의 상징, 유대교의 상징인 성전을 완전히 개혁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자들은 바로 이 성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성전을 독차지하고 있는 저들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일반 백성들 속으로 전파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해야 하는 성전이 오히려 하나님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 성전을 타고 앉아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몰아내고 성전을 다시 재건하시려고 예수님은 성전에 오신 것입니다.
37. 중화 기독교
십억 인구를 가지고 최고의 정신 문화를 가진 중공에서 일어나는 일에 성령의 세계 선교사적 현장성을 찾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기독교의 최대 이단이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가 문화 혁명의 광란을 전기로 결정적 퇴조를 보이기 시작한 곳도 바로 중공이다. 중국은 중화하는 마력을 가졌다. 몽고가 와서 이 중화의 대해에 빠져 죽었다. 불교도 빠져 죽었다. 러시아와 서구가 와서 빠져 죽은 곳이다. 일본도 왔다가 빠져 죽고 달아났다. 공산주의도 빠져 죽었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중화 대해에는 모든 것이 남아 있다. 이 대해에서 일단 서구식 기독교는 적어도 중화 중국의 지하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가정 교회에 몰려나고 만 셈이다. 돈을 주면 오염된다고 기겁을 하며 거절하고, 월급받는 목사도, 싸움할 교권도 감투도 없이 모두가 믿음 때문에 매맞고 감옥에 가고 쫓겨다니는 죽다 남은 산 순교자들 형제 자매들, 그리고 누구나 전도자들인 5천만 중국 교회는 비서구적 미래 교회의 한 묵시적 모델일지 모른다. /김준곤 목사 <예수칼럼>
38. 고정관념 깨뜨리기
유명한 농구선수였던 행크 루이세티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 모든 농구 코치들은 두 손으로 하는 슛을 가르쳤다. 그러나 루이세티는 주의 반대를 무릎쓰고 한 손으로 하는 슛 동작을 개발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인간은 지식의 세계를 통하여 사물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주시는 비젼을 품는 신앙이 곧 개혁하는 신앙이다
39.앞장선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어떤 것을 바꾸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른다. 손가락질을 당할 수도 있고, 실망을 느낄 수도 있으며, 상실의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 앞장선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가가 아니다.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다.
- 레이첼 나오미 레멘의《할아버지의 기도》중에서 -
* 아무리 외로워도 누군가 앞장서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함께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야 세상이 조금씩 바뀔 수 있습니다. 좋은 방향, 아름다운 쪽으로...
40.시급한 자신의 개혁
"영국 종교 개혁사"의 저자로 유명한 버네트에게는 툼슨이라는 방탕한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버네트는 몹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상하게 생각되어 물었다.
"얘야! 무슨 일이 있니?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민하니?"
그러자 아들은 얼굴을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저는 지금 아버지의 종교개혁사보다 더 중대하고 간절한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니?"
"제 자신의 개혁이에요."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참으로 의외구나. 어쨌든 네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기쁘구나."
"아버지도 저를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또 웃음거리가 되어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또한 남에게 의지하지도 않겠어요. 어차피 자신의 개혁은 자신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과연 톰슨은 자신을 개혁시켜 훌륭한 민사재판 소장이 되어 세인의 존경을 받았다.
41.모짜르트와 화장실
몇 년 전에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전셋집에 살았을 때 문간방에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 몇이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함께 살았는데 그 중에 리더격인 한 사람은 자신은 모차르트를 좋아한다고 말하였는데 그의 숙소에서는 기타소리와 음악이 가끔 흘러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지하방이나 단간방들은 화장실을 대문 옆에 한곳을 이용해야 했는데 그들이 일터로 나간 다음에 보면 가관이 아니다 휴지며 소변기이며 엉망인 것이다 청소를 해주면서 나는 이렇게 독백을 했다.
"모차르트를 좋아하면 뭐하나 화장실 하나 잘 쓰지 못 하는데..."
요즈음 교회 개혁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열심인 한 형제가 생각난다. 그는 그런 일에 사명감을 느껴서 행사에 참여도 하고 글도 올리는 모양인데 도무지 그 얼굴을 교회에서 볼 수가 없다 수요일은 아예 없고 주일도 안 보인다. 아마 서울서 교회 개혁을 위한 연대 모임에 참석을 하고 때로는 문제 있다고 여겨지는 교회 앞에서 시위도 하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모차르트 음악을 백날 듣고 읍 조리면 뭐하나? 똥 오줌도 제대로 못 누는 인간이.... 교회 개혁을 백날 외치면 뭐하나 주일이 뭔지 교인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말이다"
42. 순응주의자가 더 위험
우리가 안고 있는 위험은 난폭한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순응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초래된다. 번뜩이는 섬광과도 같은 욕지거리를 매우 잘하는 사람들이나, 갑작스런 행동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가 지닌 도덕적 정중함이 뒤엎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마치 시장에서 몇 가지로 한정된 유형 속에서 자신들의 옷이나 가구를 고르듯이, 자신들의 미덕이나 기호를 조심스럽게 선택하는 대다수의 대중들에 의해 우리가 오늘날 안고 있는 위험이 발생한다.
43.전통의 종말
265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의 피아노 브랜드 브로드우드(John Broad wood and sons)의 명맥이 끊겼습니다. 브로드우드는 1738년 존 브로드우드가 수제(手製) 피아노를 만들어온 이래 그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영국 왕실에 피아노를 고정적으로 공급해왔고 베토벤 쇼팽 리스트 등도 이 회사 피아노를 사용했습니다.
19세기 후반 피아노가 상류사회의 필수품이 되면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때 영국에는 피아노 제작업체가 360개나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20세기 초반 독일과 미국의 양대 회사 독주체제에서도 재래식 생산방법을 고집하다 사양길을 걷게 되고 최근에는 전자 피아노까지 널리 보급되면서 더욱 재정적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결국 브로드우드는 3세기에 가까운 전통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시대의 요청에 민활하게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장자옥 목사(간석제일교회)
44.미국 구세군의 시작
미국 구세군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1880년에 레일턴 부장이 여직공 출신의 7명의 독신 여사관을 인솔하여 개척하였는데 그들의 나이는 18세에서 20세 사이였다. 이 운동은 어떤 교회와도 관계없는 근로계급을 구원하는 운동이었는데 미국에서 제일 가는 악의 소굴에서 시작되었다. 첫 해에 1,500명의 결신자를 얻었으며, 그들은 흑인전도에도 힘썼다. 이것을 기원으로 하여 오늘날 네 개의 군국(軍國, territory)으로 성장하였다.
45.남들이 가지 않은 길
사람들은 보통 상식을 벗어난 일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에 새로운 일이나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고 쉽게 포기합니다. 전화, 비행기, 잠수함 등 모두 지금은 당연한 상식으로 통하고 이용하고 있지만 처음 그 일을 생각하고 그것을 시험할 때는 정신병자로 취급당하여 정신병원에 실려간 일도 있다 하니 상식을 뛰어넘는 꿈을 갖고 그 일을 실제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문화나 인류의 발전은 그런 꿈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남도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해..., 많은 사람들이 꿈조차 꾸지 않는 일을 내가 어떻게 해..." 하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라도 걸어가는 용기를 내십시오. 첫 걸음을 내딛고 나면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46.바꾸어라
달구지의 바퀴는 맨 처음 나무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너무 쉽게 닳았습니다. 그래서 쇠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쿠션이 없어서 엉덩이가 너무 아펐습니다. 그래서 쇠바퀴가 굴러가는 길바닥에 고무를 깔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편하고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 넓고 긴 길바닥에 고무를 까는 일이 문제였습니다. 너무 많은 비용과 노동력이 소모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길바닥하고 바퀴를 서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에이, 그건 말도 안돼. 단단한 쇠 바퀴도 차의 무게를 견디기 힘든데, 고무는 무거운 것을 올려놓기에는 너무 물렁물렁해서 적합하지 않아.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나 이 사람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고무속에 바람을 넣은 타이어를 개발해냈습니다. 순식간에 고무 길바닥과 쇠바퀴가 바뀐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바라보는 저 딱딱한 길바닥과 고무타이어는 그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생각을 돌이 커 한번 바꿔 봅시다. 한번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48. 개척의 의지
"세상이라는 싸움터에서, 인생의 야영지에서 말 못하고 좇기는 마소가 되지 말고 싸움하는 영웅이 되라. 그럼 우리 박차고 일어나서 일하자꾸나 그 어떤 운명과도 맞부딪칠 심장 지니고 자꾸 이룩하고 자꾸 추구하면서 노력하며 기다리길 배우자꾸나"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의 인생 예찬이라는 시 가운데 수록된 몇 구절이다. 인생이란 부단한 도전이요 끊임없는 개척이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비록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무미건조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긴장의 연속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전이 없는 삶, 개척을 포기한 생활은 흘려서 떠내려가는 것이지 결코 사는 게 아니다. 성도의 신앙도, 교회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개척해야 한다. 이 세계에는 개척하고 개척해야 할 분야들이 무궁무진하다. 목표가 있고 의지만 있다면 지금 곧 시작하는 게 가능하며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안일한 생각은 개척의 최대 장애물이다.
49.개척자 정신
1927년 시속 160㎞도 채 안되는 단발기를 타고 대서양을 횡 단한 사람은 30대의 찰스 린드버그였다. 당시 사람들은 "젊은이,그러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이런 일이 목숨을 걸 만큼 가치있는 일은 아닐세" 라고 하면서 비행을 극구 만류했다.
그러나 린드버그는
"세상엔 쓸데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의미없는 돈을 모으는 수전노들이 있습니다. 사고로 죽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가치있는 일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72세까지 살았다.
50.한 손 점프 슛
행크 루이세티는 수십년 전 미국에서 활약한 농구선수. 그의 절묘한 슛동작은 관중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 루이세티가 등장할 무렵, 거의 모든 농구코치가 두 손으로 하는 슛동작만을 고집하고 선수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루이세티는 그럴 때 한 손으로 하는 점프슛을 고안해 시도했다. 다른 코치들이 그것을 비능률적이라고 반대했지만 루이세티의 코치만은 한손 슛 사용을 허락하고 개발하라고 했다. 그결과 농구의 새로운 장이 열렸고 지금은 많은 선수들이 한 손 슛으로 승부를 가늠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에는 비난과 조소가 뒤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와 사고의 판도를 바꾼다.
5.1.기독교 인구가 늘어간다고 살기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카톨릭 300년, 개신교 100년의 역사가 지난 오늘날 그리스도 복음의 씨앗은 실로 기적적이라 할만큼 성장되어 왔다. 우리 나라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기독교인의 수적 증가는 앞으로 10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90%이상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태를 기대할 만큼 놀라운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가 25%에서 90%가 된다고 해서 우리 나라가 자유와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교회가 개혁되지 않고, 크리스천이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한국사회는 결코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52. 윈 윈(win―win) 개혁
개혁은 고치는 것이다. 잘못된 뿔을 고치고 썩은 고름을 짜내는 것이다. 못 되기 위해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잘 되기 위해서 고치는 것이다. 요즈음 개혁이란 말이 유행한다. 개혁이란 본래 참신한 느낌을 주고 일단 희망을 준다. 고치면 좋아지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개혁이란 말이 듣기 싫어지는 것 같다. 개혁이 잘 되기 위한 진통이라면 싫어질리 없지만 개혁이라지만 뭔가 잘못된 것이 개입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뿔을 고친다고 하는데 소가 죽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고름을 짠다고 하면서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뿔을 고쳐서 소를 살리고 고름을 짜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바른 개혁이다. 소도 좋고 사람도 좋고 고름을 짜는 사람도 좋고 고름을 짜내는 사람도 좋은 개혁, 이것이 윈-윈(win-win)개혁이다. 성경은 개혁을 촉구한다. 구약에도 개혁이 있고 신약에도 개혁이 있다. 구약의 야곱은 우상숭배와 약속 위반한 자신과 가정을 개혁했다(창 35장). 요시야는 당시 부패한 종교계와 정치계를 개혁했다(역대하 34~35장). 신약시대에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하셨다(마 9:17). 바울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다(롬 12:2).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 부도덕과 부패와 나태와 우상숭배 등으로 계속 비뚤어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참된 개혁은 개혁 주체와 객체가 순간마다 개혁되는 것이다. 개혁 주체로서 개혁 객체만 개혁하겠다고 하면 개혁의 주체가 개혁의 대상이 된다. 더군다나 개혁 대상이면서도 개혁 주체로 가장하여 개혁버스에 무임승차하겠다는 사람은 개혁을 가장 혐오스럽게 하는 최우선 개혁 대상이다. 개혁의 주체와 개혁의 객체가 자기개혁과 타인개혁을 동시에 진행하면 양자가 유익을 본다. 개혁의 주체와 객체가 서로 이기게 되는 것이다. 양자가 안정과 안보와 경제와 단결과 평화를 잃는 개혁은 이기는 개혁이 아니라 지는 개혁이다. 서로 이기는 개혁을 할 때 개혁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희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지금은 뿔도 고치고 소도 살리는 윈-윈 개혁의 지혜를 모을 때다. /권성수 <대구동신교회 목사>
53. 성공의 지름길
성공의 지름길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개혁을 말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개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은 아셔야 합니다. 진정한 개혁이란? 단순히 옳은 것을 말하는 것을 말하기 보다는 필요한 것을 말하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어둠을 어둡다고 하는 것! 썩어서 냄새난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개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둠에 빛을 비추는 것, 썩는 곳에는 소금을 쳐서 썩지 않게 하는 일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정한 개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좀더 개선하기 위한 충고도 있어야 하지만 그 보다 더 필요한 것은 내가 그 부족을 채우는 필요자가 되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삶의 패턴 사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성공하는 사람은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있는 장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사용하고 발전시키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는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실패하는 사람은 자신의 약점과 안 되는 것들을 붙잡고 씨름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다는 것입니다.
54. 루터의 생각
교회 개혁의 대명사 마틴 루터가 남긴 명언이 있다.
"새들이 우리 머리 위로 지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새들이 우리 머리 위에 둥지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에 악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는 것은 차단할 수 있다. 세상이 악하다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악에 스스로 귀속되거나, 악행을 범하지 않으면 된다. 호랑이 등에 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악에게 당하면 악으로 되갚아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것이 악순환의 고리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귀중한 해답을 제시한다.
"원수 갚는 것은 주님께서 하신다. 악에게 지지 말라.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4~21) 루터의 생각과 바울의 생각이 동일하다. 우리의 생각도 동일해지기를 소망한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55. 정치개혁보다 교회개혁이 더 급하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활을 감당해야할 한국교회가 요즘 몇몇 교회 지도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신교 초기는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종요한 역활을 했는데, 어이된일인지 인구의 20%가 넘는 기독교가 예전 같이 못함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한국 교회가 침체에 빠졌는 가를 요사이 극명하게 알 수 있었다.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된 생각과 사회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어리석음, 그리고 교권,교만에 빠져 자기들이 예수님 이상 되는양 행세하는 모습들이 결국은 한국교회를 잘못 인도하여 결국은 이런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것 같다. 강단에서 무조건 함부로 자기식으로 성격을 해석하여 그것이 전부인양, 상대의 입장은 전혀 개의치 안는, 정말 이기주의적인 발상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으니 한국교회가 세상을 향해 제 역활을 할수 없고ㅡ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교회 지도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실하게 깨닫고 주님앞에 회개하고, 정녕 자질이 없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기 자리를 보존하기에 급급한 일부 교회 지도자들을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제 세상도 정치 개혁, 깨끗한 정치를 이야기하는데, 늦었지만 교회도 개혁이 되어야하고, 그 중심에 교회 지도자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님의 교회는 날마다 개혁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개인 소유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번 일로 한국교회가 새로워지는 귀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국민일보 독자란에서
56. 참된 교회의 모습
나는 비통해하는 미망인과 두 자녀를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성도들이 돌보아 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무리의 자원 봉사자들이 음식을 준비하여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대접했다. 몇몇 성도는 그 미망인을 조용히 찾아가서 현재와 장래에 필요한 재정적인 문제에 관해 도움을 주었다. 남자들은 이 미망인의 어린 아들을 감싸안으며 슬픔을 위로하고 이것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에 관해 따뜻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나이를 막론하고 모든 여자 성도들은 네 살짜리 딸아이를 품에 안고 성도들이 얼마나 그들 가족을 사랑하는 지 또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는 지 말해 주셨다. 왜 모두가 이같이 했을까? 그 여인은 교회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으로 여길 때, 교회의 가족처럼 우리를 세워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회 안의 하나님의 백성보다 우리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인내심과 동정심을 갖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려움에 처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함께 코이노니아를 나누는 사람들처럼 우리를 도와 줄 수 있는 단체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 44- 47)
57. 천국의 비전
종교개혁자 칼빈은 죽음 후의 영원에 대한 희망이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부끄럽게도 야수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세의 삶은 우리를 꾈 많은 유혹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비판했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하는 많은 사람이 죽음을 열망하기보다 죽음에 대한 큰 공포에 싸여 있어서 죽음을 언급하기조차 두려워하는 것은 기괴한 일이다. 만일 우리가 죽음을 통해 고국에 유하기 위해 망명지에서 다시 부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사실에서 위로를 얻지 않을 것인가? 그래서 칼빈은 죽음의 날과 마지막 부활을 기쁘게 기다리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진급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려고 하거나 권력을 가지려고 하거나 많은 명예를 가지려고 하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천상의 비전을 가지고 이런 것들을 뜬구름처럼 여기고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을 때, 그는 참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서 올바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참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은 천상의 비전을 가진 사람, 그래서 권력이든 명예든 재물이든 움켜잡으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리고 섬기고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 「영혼의 눈을 뜰 때」/ 이양호
58.말씀으로 돌아가자
얼마 전 신문에 재미있는 글이 실렸습니다. 부동산 투자에 관한 글이었는데 제목이 '망하는 길 10가지'였습니다. 그 첫째가 "전문가나 컨설팅업체의 말을 100% 믿는다. " 그러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이런 사례가 실려 있었습니다. "투자론을 강의하는 유명대학 K교수, 그의 강의는 늘 인기가 있다. 사람을 몰고 다닐 정도다. 그런 그가 한 초청 강연장에서 그 잘하던 강의를 망친 적이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세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이 청중 속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그의 책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얄팍한 술수나 꾀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아는 지혜입니다. 초대 교회가 타락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사막으로 나아갔던 사막의 교부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깨닫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런 운동을 통해서 당시의 교회들이 새로워졌습니다. 중세 교회가 교권주의에 매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 종교개혁자들은 말씀을 새롭게 연구하기 시작했고, 성경에서 개혁의 불길을 찾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그 말씀을 따라 살기를 결단하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서정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