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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론
무의지적 기억의 환기, 비 오는 날이면 손칼국수 집으로
- 김종해론
오태호(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교수)
1. 시력(詩歷) 60년을 넘는 서정의 온기
김종해 시인은 등단 60년이 넘은 부산 출신의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1941년 부산에서 태어난 시인은 부산 남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점원과 철공소 노동을 하다 500톤급 여객선의 선원 생활을 경험하기도 한다. 1960년 부산 해동고를 졸업하면서 흐름이라는 육필시집을 내기도 하지만, 1963년 자유문학에 필명 ‘남궁해’로 시 「저녁」이 당선되어 정식으로 등단한다. 잡지가 폐간된 이후 다시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내란」으로 재당선되어 박목월과 조지훈의 재평가를 받게 된다. 이후 1966년 첫 시집 인간의 악기를 간행하고 <현대시> 동인에 가입한 이래로 2023년 출간한 13번째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에 이르기까지 60년의 시력을 보유한 그야말로 왕성하게 현역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원로 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1979년 도서출판 문학세계사를 창립하여 현재까지 발행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2002년 계간 시전문지 시인세계를 창간하여 12년 동안 운영을 했으며, 2004~2006년에는 제34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는 한국시인협회 평의원으로 현역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시협상, 구상문학상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20대 초반인 1963년에 등단했으니 김종해 시인은 시력만으로도 환갑을 넘은 셈이다. 세는 나이로 팔순이 넘었을 뿐만 아니라 등단 이후의 시 창작 활동만으로도 60년이 넘었으니, 시인으로 천직의 길을 걷고 있는 흔치 않은 장인(匠人+長人)인 셈이다. 그렇게 시인이 걸어온 60여 성상(星霜)의 시적 편력(遍歷)은 대한민국 서정시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고 파악된다. 이제 신작시 1편과 자선시 10편을 중심으로 시인이 뚜벅뚜벅 걸어온 시력 60년의 도정을 차분하게 되짚어보자.
2. 무의지적 기억의 맛을 찾아서
시인의 신작시 「손칼국수 그집」은 60년의 시력을 내장한 김종해의 시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비 오는 날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칼국수 집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끄집어내면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과 홍차’처럼 무의지적 기억의 흔적을 찰나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진경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은 칼국수 / 점심을 먹으려고 우산을 편다 / 우산 위에서 튀는 빗방울 / 광흥창역 네거리 / 칼국수집으로 가는 동안 / 밀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치대는, / 펄펄 물이 끓어오르는 / 광흥창역 네거리 칼국수 그집 / 바지락조개 다싯물을 마실 때마다 / 칼로 썬 굵은 국수가락이 / 어머니의 손맛을 흔든다 / 비오는 날 손칼국수 그집엔 / 특별한 것이 있다 / 징소리마저 귀에 덩덩 울린다
- 「손칼국수 그집」 전문
시인은 “비 오는 날”이면 칼국수로 점심을 때우기 위해 우산을 펴든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시인이 가는 광흥창역 네거리의 칼국수집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밀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치대는” 맛집이다. “펄펄 물이 끓어오르는” 그 집에서 “바지락조개 다싯물을 마실 때”면 시인은 “칼로 썬 굵은 국수가락”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환기해낸다. 그리고 그 손칼국수 집에서는 “특별한 것”이 있어 “징소리마저 귀에 덩덩 울리”는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단순한 이명 현상이 아니라 내면의 귀에 울려오는 징소리는 그 집이 시인의 무의식에 담겨 있는 ‘어떤 기억의 맛’을 호출하기 때문에 들려오는 것이다. 시인은 고향의 맛이자 가정의 맛이자 유년의 맛을 제공하는 “어머니의 손맛”을 담아낸 손칼국수 집에서 비 오는 날의 특별한 정서를 만끽하며 따뜻한 점심을 온몸의 감각으로 흡입하고 있는 것이다.
3. 도심을 항해하는 시인
시인의 자선시 중 2편인 「항해일지·1」과 「항해일지·18」은 1984년에 간행한 5번째 연작시집 항해일지에 수록된 작품이다. 시인은 연작시를 통해 삭막한 도심을 활보하는 ‘성찰적 항해사’로서의 내면을 보여준다. 「항해일지·1-무인도를 위하여」에서 시인은 “을지로에서 노를 젓”는 항해 이야기를 쓴다. 그곳에서 “사라져 가는 것, 떨어져 가는 것, 시들어 가는 것들의 흘러내림”이 ‘부음(訃音)’으로 들리는 가운데 시인은 지속적으로 “노질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사라져 가는 존재들의 부음에 대한 정상적 애도의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시인은 자신의 생계와 생존을 위한 일상적 노질 속에서 “날것을 익혀 먹는 일”의 부질없음을 체감한다. 그리고 을지로에서 노를 젓다가 잠시 청계천 쪽에 정박하기도 하는 등 시인은 서울 중심부 한복판을 오가면서 무인도 같은 느낌에 “헛되고 헛되도다”를 연발한다. 적자생존의 도시 수도 서울은 따뜻한 온기 없이 각종 쇠락하는 것들 속에서 ‘부질없음’과 ‘헛됨’을 연발하게 하는 무인도 같은 삭막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시인의 ‘상상 속 배’는 “눈을 감고서도 선명히 떠오르는 저 별빛을 향하여” 가고 있고, 시인은 생존으로서의 노질을 계속 수행한다. 이것은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서두에 나오는 구절인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떠올리게 하는 시인의 시적 태도를 보여준다. 즉 평범한 일상인으로서의 생활을 위해 시인은 창공에 빛나는 별을 항해 지도로 인식하면서 도시에서의 노질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항해일지·18-아구탕 집에서」에서 시인은 “바다의 날강도”인 ‘아구라는 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삭막한 서울 도시의 현실을 풍자한다.
아구란놈에대해이야기하고자한다. 아구란놈이해저海底에서입을벌리고물길을가고있을때는오징어·전광어·갈치·고등어·가오리·게따위가통째로들어와뱃속에쌓인다힘없고왜소한것들이눈을뜬채삶의본전까지아구의뱃속에상납해버린다. 철벽위장을가진바다의날강도아구란놈이빠르게물길을가고있을때, 불쌍한것들아무력한것들아가급적밑바닥에더욱머릴처박고소리내지말라. / 나는확신한다. 바다의날강도아구란놈이반드시이도시의어느곳에몇백마리, 몇천마리가눈빛날카롭게빛내며서식하고있는것을, 이도시의가장기름진물목에서음흉하게덫을놓아두고있는 것을. // 허전한 저녁나절, / 종로에서 입을 벌리고 앞으로 앞으로 물길을 나아가면 / 아아, 내 뱃속에 와 쌓이는 것들. / 몇 잔의 소주와 몇 잔의 비애 / 그리고 또 몇 잔의 적개심. / 종삼鐘三 아구탕집의 아구찜을 어금니로 물어뜯고 뜯으며 / 씹고 또 씹을 뿐이다.
- 「항해일지·18-아구탕 집에서」 전문
띄어쓰기를 무시한 1연에 따르면 아구가 해저에서 입을 벌리면 ‘오징어, 전광어, 갈치, 고등어, 가오리, 게’ 등이 통째로 들어와 뱃속에 쌓이는데, 대체로 “힘없고 왜소한 것들”이 “삶의 본전까지” 상납해 버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시인에게 아구는 “철벽 위장을 가진 바다의 날강도”로 인식되기에, “불쌍한 것들”과 “무력한 것들”이 날강도 같은 아구 앞에서 소리를 내지 말 것을 주문한다. 그래야 가까스로 생존을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시인에게 “바다의 날강도 아구”가 해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도 “가장 기름진 물목”에 음흉한 덫을 놓고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날강도 아구’가 도시의 현실을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삭막한 정글로 바꾸고 있기에 유의를 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2연에서 정작 시인은 “허전한 저녁나절”에 종로에서 물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자신이 또 다른 아구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자신 역시 날강도 같은 생을 종로 바닥에서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아구일지도 모를 시인’의 뱃속에는 “힘없고 왜소한” 다른 물고기들이 상납되는 것이 아니라 종로 인근에서 손쉽게 마주하는 ‘소주와 비애와 적개심’ 등이 쌓이는 것으로 그려진다. 결국 시인은 종로 3가의 아구탕집에서 아구찜을 물어뜯고 씹으면서 도시 생활에 대한 ‘비애와 적개심’을 소주 몇 잔에 함께 털어내면서 일상의 항해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4. 자연으로부터 배우다
2001년 8번째 시집 풀에서 시인은 속악한 인간이 아니라 자연을 잉태하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풀<1>」에서 시인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 하지 않”기 위해 “풀이 되어 엎드렸다”고 진술한다. 그렇게 풀이 된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햇살’ 등이 시인의 “몸속으로 들어와 / 풀이 되”는 진기한 경험을 한다. 뿐만 아니라 어젯밤에는 스스로 “또 풀을 낳”는 일종의 ‘식물성 포유류’가 되기도 한다. 풀이 되어 풀을 낳는 ‘초식 인간’이란 ‘사람의 일’로부터 해방되어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은 시인의 욕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천지만물 중에서」에서 시인은 “야생의 숲이며 나무등걸들”이 “겨울 동안 죽은 듯 엎드려 있다가 / 봄이면 부스스 몸을 일으켜” 가지와 줄기에 잎과 꽃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참 우습지”라고 도치법으로 이야기한다. 우습지 않은 자연의 생기로운 변화를 우습다고 비아냥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사계절의 자연스런 변화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봄이 되면 야생이 되풀이하는 “그 짓거리”의 의미를 이 봄에 알아보고 싶어한다. 시인 역시 자연의 조화처럼 겨울을 지난 야생에서 봄을 소생케 하는 신비로움을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시인의 자연관은 ‘잡초 뽑는 행위’를 통해 잡초 같은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잡초 뽑기」에서 절반의 제초 작업 이후 자신 역시 잡초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인식을 통해 시인은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호미로 흙을 파면서 / 잡초를 뽑는다 / 잡초들은 내 손으로 어김없이 뽑히고 / 뽑힌 잡초들은 장외場外로 사라진다 / 옥석玉石 구분하는 나의 손도 떨린다 / 하늘은 이 잡초를 길러내셨으나 / 오늘은 내가 뽑아내고 있다 / 밭을 절반쯤 매면서 / 문득 나는 깨달았다 / 이 밭에서 잡초로 뽑혀 나갈 명단 속에 / 아, 어느새 내 이름도 들어가 있구나!
- 「잡초 뽑기」 전문
「잡초 뽑기」에서 시인은 “호미로 흙을 파”고 “잡초를 뽑”아 장외로 사라지게 한다. 잡초를 뽑을 때 옥석을 구분하는 시인의 손이 떨려오는데, 노동의 힘겨움도 있지만 ‘하늘이 길러낸 잡초’를 ‘별 볼일 없는 인간’이 뽑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절반쯤 밭을 매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시인은 풀의 옥석을 구분하면서 잡초를 제거할 만한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지를 자문하면서 ‘잡초 뽑기’에 대한 자성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시인의 깨달음은 밭에서 잡초를 뽑아내는 자신 역시 “잡초로 뽑혀 나갈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는 궁극의 인식으로 이어져 ‘잡초 같은 인생’에 대한 반성을 낳게 된다.
이렇게 시인은 자연 현상 앞에서 인간이 겸손해야 함을 피력한다. 「새는 자기 길을 안다」에서도 시인은 “하늘에 길이 있다”는 사실을 “새들이 먼저” 알고 있으며, 그 길을 내며 날던 새가 ‘하늘의 길’ 또한 지운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새들이 겸손하게 “하늘 높이 길을 내지 않는” 까닭이 새들이 가는 길 위로 “별들이 가는 길이 있기 때문”임을 짐작한다. 시인은 새와 별과 하늘과 인간의 길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새의 행로로부터 깨닫고 있는 것이다.
5. 깨달음의 힘
시인은 시를 통해 자신의 일상과 자연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지속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사람으로 살아보니까」에서 시인은 인생에서 깨닫게 된 사실이 “대자연 속의 또 다른 생명을 / 날마다 뜯어먹고 삼켜야 / 사람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육식 동물의 본능이라고 진술한다. 우리가 날마다 먹는 “야채나 우유와 밥과 고기” 등이 “누구의 삶을 허물어뜨려야 / 비로소 사람의 식탁에 오르”기 때문이다. “먹고 삼키며 살생한 죄”는 “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채소와 생선을 먹으면서도 “마음 아파한 적이 없”지만, 시인은 다른 생명의 목숨으로 유지되는 “사람의 식탁”을 보며 죽비로 스스로의 마음을 내리치면서 육욕에의 인간적 욕망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2016년 11번째 시집 모두 허공이야의 표제작인 「모두 허공이야」에서 시인은 봄날의 어느 하루 벚꽃이 “하르르 하르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허공 속의 문자”가 비로소 보인다. 시인의 “가슴에서 떠나”는 “귀가 먹먹하도록 / 눈송이처럼 떨어져 내리는 벚꽃을 보면”서 시인 역시 “꽃잎 따라 낙하하고 싶”다는 생각에 젖어드는 것이다. 시인에게 벚꽃잎들의 흩날리는 모습은 마치 “무슨 절규”이자 “무슨 묵언”처럼 보이면서 “소리치는 마지막 안부”로 시인의 귀에 들려온다. 결국 시인은 벚꽃잎이 낙화하는 어느 봄날에 그들이 전하는 절규와 묵언 사이에서 찰나적 생의 진실을 마주하는 ‘허공의 문자’를 독해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식탁’과 ‘벚꽃의 낙화’에서의 깨달음은 늦은 저녁에 시인의 ‘몸속 악기’를 마주하는 인식으로도 이어진다. 그리하여 2019년 12번째 시집 늦저녁의 버스킹의 표제작인 「늦저녁의 버스킹」에서는 자신의 “몸속의 악기”를 꺼내어 ‘비애와 아픔과 절망의 시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싱어 송 라이터’의 욕망에 젖어들기도 한다.
나뭇잎 떨어지는 저녁이 와서 / 내 몸속에 악기樂器가 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 그간 소리내지 않았던 몇 개의 악기 / 현악기의 줄을 고르는 동안 / 길은 더 저물고 등불은 깊어진다 / 나 오랫동안 먼 길 걸어왔음으로 / 길은 등 뒤에서 고단한 몸을 눕힌다 / 삶의 길이 서로 저마다 달라서 / 네거리는 저 혼자 신호등 불빛을 바꾼다 / 오늘밤 이곳이면 적당하다 / 이 거리에 자리를 펴리라 / 나뭇잎 떨어지고 해지는 저녁 / 내 몸속의 악기를 모두 꺼내어 연주하리라 / 어둠 속의 비애여 / 아픔과 절망의 한 시절이여 / 나를 위해 내가 부르고 싶은 나의 노래 / 바람처럼 멀리 띄워 보내리라 / 사랑과 안식과 희망의 한때 / 나그네의 한철 시름도 담아보리라 / 저녁이 와서 길은 빨리 저물어 가는데 / 그 동안 이생에서 뛰놀았던 생의 환희 / 내 마음속에 내린 낙엽 한 장도 / 오늘밤 악기 위에 얹어서 노래하리라
- 「늦저녁의 버스킹」 전문
「늦저녁의 버스킹」에서 시인은 “나뭇잎 떨어지는 저녁”에 “몸속에 악기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때 “현악기의 줄을 고르는 동안 / 길은 더 저물고 등불은 깊어”지는 것으로 여겨지고, 먼 길 걸어온 시인은 길이 “등 뒤에서 고단한 몸을 눕히”는 모습을 바라본다. 시인은 해 지는 저녁이 오면 이 거리에 자리를 펴고 “몸속의 악기를 모두 꺼내어 연주”하고 싶어진다. “어둠 속의 비애”와 “아픔과 절망의 한 시절”을 끄집어 내어 “나의 노래”를 부르며 “바람처럼 멀리 띄워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노래 속에는 “사랑과 안식과 희망의 한때”와 더불어 “나그네의 한철 시름도 담아”보고 싶어진다. 결국 ‘희로애락 애오욕’을 지닌 인간이 마주하는 생의 다면체적 장면들을 노래하는 가수를 욕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길은 빨리 저물”어갈 뿐이다. 저무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이생에서 뛰놀았던 생의 환희”와 “마음속에 내린 낙엽 한 장”까지 함께 “악기 위에 얹어서 노래”하고 싶어한다.
「가족」에서 시인은 자신의 출생지 근처 부산 서구에 자리한 ‘천마산’을 가족으로 호명한다. 천마산의 눈썹 아래에 ‘초장동 산비탈’이 있고 우리집이 있으며 ‘충무동 푸른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우리집만이 아니라 이모집과 외삼촌집도 있을 뿐만 아니라, “해장술에 취한 천마산”이 “어머니에게 술국을 더 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하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물론 실제 가족인 아버지와 형은 절구에 떡을 치고, 누나와 시인은 맷돌을 돌리며, 아우는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고 있었던 화목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진짜 가족 모두가 “손을 놓을 때쯤 / 누더기 같은 우리의 희망이 / 빨랫줄에 펄럭일 때쯤”이 되면 “천마산은 바람과 안개를 거느리고 / 넌지시 산을 오른다”. 그렇게 실제 가족의 하루를 온종일 함께하면서 천마산은 매일같이 유사 가족이 되어 또 다른 가족으로서의 배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6. 독자와의 거리 좁히기
시인은 산문 「시는 혼자 쓰지만, 읽는 이는 여럿이다」에서 날마다 시를 읽고 생각하면서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시인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좋은 시는 독자들이 먼저 가려낸다”면서 “따뜻한 온기와 감동, 위안과 치유”를 독자의 기대 수준에 부응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로부터 소외받는 “난해한 시, 가벼운 시, 하찮은 시”는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 전제가 된다. 시인은 ‘우이독경(牛耳讀經)’이라는 한자성어를 활용하면서 독자의 ‘열린 귀’를 향해 “좋은 시를 써야 한다는 이 시대의 소명 의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인은 세계 각지의 자유로운 여행을 통해 확인한 이방인의 경험 속에서 세계의 넓이와 깊이를 자각하면서 시적 상상의 여백을 확장할 수 있었음을 피력한다. 대표적으로 영국, 프랑스, 인도, 베트남 등지를 여행하면서 대한민국의 저력과 민족 자긍심을 경험할 수 있었고, 북한과 이란을 여행하면서는 자유가 속박되는 불편한 체험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그 고장에 들어가면 그 고장 풍속을 따라야 한다는 공자의 말씀, 입향종향(入鄕從鄕)이 옳다는 생각”을 강조한다. 이방인적 타자로서 타지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여행이 시인의 상상력을 개방시키는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서정의 온기와 자연의 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상과 자연으로부터 깨달은 시적 진실이 독자와의 교감 속에 더욱 큰 울림을 지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쉬운 시가 좋은 시가 아니라 독자와의 공감과 연대를 통해 더 큰 사유를 제공하는 것이 좋은 시의 조건으로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갈수록 독자와 시인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불식시키기 위해 동료 시인들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오태호
200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문학평론집으로 오래된 서사, 여백의 시학, 환상통을 앓다, 허공의 지도, 공명하는 마음들 등이 있음. 연구서로 문학으로 읽는 북한, 한반도의 평화문학을 상상하다 등이 있음.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부교수로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