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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흔들림(trouble de la conscience) 정신의학에서
D. Widlöcher, Les Notions philosophique, Dictionnaire, PUF, 1992, p.433-434.(P.3299)
- 위드뢰혀(Daniel Widlöcher, 1929-2021) 프랑스 정신과 의사, 교수.
집필자는 반성적 또는 회고적 측면에서 의식의 흔들림, 혼란, 혼돈을 다루는 데, 프로이트의 무의식(inconscient, 내재의식)도 다룬다. 내가 보기에 내재-의식(in-conscience)은 추억들이 아니라, 기억의 활동(역동)이며, 작동하는 권능이다. 고르기아스와 소크라테스이래로 내재의식은 아페이론의 깊이에 내재하며, 원래 방황하고 우글거리고 흔들리고 변화무쌍한 것이다. 아페이론처럼 이렇게 다루지 않고 영혼 분석적으로 다룬 필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또는 영혼해석학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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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법률적 차원에서 의식의 흔들림 또는 혼란을 먼저 다룬다. 이런 경우에 어떤 방식으로 법률적으로 등급을 나누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리라. 성적-법률적 경우에 성희롱, 성추행, 성억압, 성폭행 등의 구별은 정도의 차이와 강도의 차이를 통한 구별을 한다. 흔들림과 혼란에도 이런 구별이 필요하지 않을까? 흔들림, 혼란, 혼돈 등으로.
정신분석학에서는 전의식과 무의식을 나누어 설명한다. 정신분석학은 의식적 파악과 심성적 활동성 구별하는 장점이 있다고 하나, 억압된 표상들을 어떻게 다루고, 기억으로 축적되는 방식에는 문제거리로 남는 것으로 집필자는 보는 것 같다.
집필자는 현상학과 전체론을 구별하였으나, 설명은 현상학적으로 다루고 있는 듯하다. 현상학에서 주체가 살아온 체험을 다룬다고 필자는 본다. 그리고 전체론적 관점을 다루었는데, 이 전체론적 관점은 내가 알기로 형태심리학과 대립되는 관점인데, 병리학적 차원에서 지향성과 목표에 관한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
도덕의식을 괴짜(일탈자)의 행실에 연관하여 설명하는 것이 새롭다. 괴짜는 정상인과 다른 행실을 한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초자아 개념을 가족관계에서 생겨났다고 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초자아와 도덕의식의 연관이라기보다, 초자아는 종교 또는 국가 같은 상위 작용 기제를 의미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정신병리학에서 다루는 것을 프로이트가 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여기나, 그래도 어떤 규정된 상황에서 다룰 수 있을 뿐이다. 병리학에서는 의식에 내재하는 의식총체를 다룰 수 없을 것 같다고 필자는 본다. 내가 보기에 의식총체는 생명의 지속에서 다루어야 하고, 생명의 지속을 기억과 유전을 통해서, 각 생명 종들과 연관해서 점진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생명계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아직 할일이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56N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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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흔들림이 법률적으로 다루지는 경우에는 그 대상인이 정상이 아니라는(술 취함), 것이지만,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런데 흔들림이 심하여 혼란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사태들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병리학적으로 다루어야 어야 할 것이다. 말하지만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 환자의 행동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정체성이 유지되지 않은 경우로서 전염병의 발병, 독극 약물 중독, 신경증적 트라우마의 타격이든지 간에 유기체적 내부의 두뇌의 손상 또는 단절의 경우에 어떻게 대응[처방]할 것인가를 정신의학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우선 흔들림, 뒤섞인 혼란, 무질서한 혼돈 등을 정도의 차이로서 구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항목에서는 이들의 발생과 과정에서 본성상 차이로서 가지치기를 다루지 않는 것 같다. (56N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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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흔들림(trouble de la conscience) 정신의학에서 [의식 혼란]
[개요]
의식의 변질(l‘altération)은, 과도한 다의성 때문에, 의식의 항목이 외연적으로 지시하는(dénoter) 다수의 기능들에 관계있다.
[본문]
* 매우 일반적 의미에서 이 항목의 법적-의학적 수용만을 유지한다는 면에서, 이 항목은 심정적 활동성의, 그리고 무책임함의 법률적인 결단을 정당화하는 행실의, 혼돈[동요]들의 일체를 지칭한다. 만일 이 개념의 극히 부정확함은 판단[판결]을 결심해야 할 책임있는 자들에게 사례들에 대해 법률해석[판례]에서와 개인적인 평가에서 판단[판결]의 광범위한 자유를 부여하게 허용한다면, 이 항목은 어떠한 정확한 정의에도 응답하지 못하고 또한 환자(술 취함)의 의지적 결단에 2차적인 병리학적 상태들의 문제로 남는다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람들은, 그 환자에 대해 정체성를 유지함이 없이, 그 환자의 병적인 상태의 의식(conscience de l’état morbide)을 의미에 접근할 것이다. 그때에 자기 자신에게 진솔함과 권한 부여[자기 책임감]에 관해 병리학적 실험들로부터 갖는 판단이 문제거리이다.
이런 전망에서 사람들은 망상적(délirante)에 관념을 믿는 절대적인 신앙과 개인적 기원에서 오는, 또는 완전히 비의지적이라 할지라도, 강박관념에서 오는 예민한 의식 사이를 구별해야 할 것이다. 틀림없이 이 판단의 여러 변이들 관찰하는 것은 더욱 흥미롭다: [그래서] 망상적 확신에 대한 점진적 비판 또는 반대로 강박관념으로 잘 토대 지워진 점증하는 확신 [등을 구별해야 한다.] 반면에, 상식 위에 근거하며 매우 정확한 의미에서, 의식의 개념은 각성([la] vigilance, 깨어있음)의 개념과 동일시된다. 각성한(vigile) 의식의 완전한 상실은 정상적으로 잠든 자에, 그리고 병리학적으로는 혼수상태(coma)인 자에 상응한다. 이러한 수용에서 의식 혼란의 용어는 각성한(vigile)상태로부터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하게 상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용어는 유기체적 두뇌의 고통의 표현이기도 하다.
의식 혼란의 용어는 병리학에서는 훨씬 근본적인데, 이 개념은 심정적 활동성의 비유기체적인 예리한 상태들에, 다시 말하면 심정적 혼란(confusion mentale)의 상태에 적용된다. 가끔은 경계[각성]의 흔들림과 동맹을 맺는 이런 상태들은, 정보 취급으로부터, 기억으로 정보의 규약화로부터, 기억 속에서 축적된 인식들의 도움으로부터, 일반적으로 비유기체화에 의해[조직화를 못하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리고 이런 상태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방향을 못 잡는 것으로 표현되고, 추론의 전략을 조직화하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런 상태들은 마찬가지로 전염병적인, 독극물적인, 과다신진대사(dysmétabolique)의, 트라우마적인 발병에 연결되어 확산된 두뇌 고통에서 유래한다.
중심적 흔들림은 주의하는 과정들의 변질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정들은 정보들에 대한 선책을 하게 해주며, 체득된 인식들에게 상응하는 형식을 부여하고, 또한 기억으로 작용하게 한다. 이런 흔들림은 깨어있음으로부터 부분적인 변질과 동맹을 맺어, 몽환증(l‘onirisme)의 상태에 도덕적 책임이 될(responsable) 수 있다. 몽환증 상태에서 혼란(confusion)은 상황으로부터 오는 현실적 정보들과 추억들로부터 생기는 통제되지 않고 혼돈된(cahotique) 출현들 사이에 성립된다. 그런데 이 통제되지 않고 혼돈된 출현들은, 환각의 전형에 이웃하는 것들에 의해 특징 지워져, 꿈과 이웃하는 상태로 이끌고 또한 망상적 사고의 양태로 이끈다.
* 정신분석학적 탐구에 의해 밝혀진 매우 다른 기록에서, 이 용어는 심성적 표상을 고려할 수 있는 능력에(la capacité de pouvoir rendre compte d’une représemtation mentale) 적용된다. 사람들은 이 용어를 이중적 대립으로부터, 즉 전(前)의식 체계와 무[내재]의식 체계와 동일시 할 것이다. 전의식 체계는, 만일 현재 상황이 표상들을 활동하게 힘이 있다면, 생성을 허용하는 의식적 심정적 표상들의 총체를 정의한다. 인지심리학의 관점으로에서는, 유기체화의 양상들에 따라서 기억으로 축적되어 있는, 명제적이거나 진술적인 전형의 표상들이 중요하다. 유기체화된 양태들은, 이미 프로이트(Freud 1856-1939)에 의해 다루어졌는데, 수많은 표본(모델)들을 현실적으로 소재로 제공했다. 이 표본들은 모두 의미론적이고 일화적(에피소드)인 기억을 문제 삼고 있다.
반대로 무의식적 체계는, 기억으로 보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우회적인 길들(꿈들, 일상적 삶의 징후적 작동들[실언 실수행위], 신경증 징후)로 표현될 수 있기를 허용하는, 표상들이라 정의했는데, 이 표상들은 의식에 접근할 수 없으며, 다시 말하면 의식적 형식 하에서 언어에 의해 표현될 수 없고, 그리고 의식적이 될 수 없다.과거의 경험들로부터 나온 표상들은 알맞은 방어기제로부터 검열 받았고 억압 받았다. 이 경험들의 의식에 접근 가능성은 해석의 작업에 의해서만 보장받을 수 있다. 이 해석 작업은 표상들의 의미를 의식에 접근 가능하게 하는데, 전의식적 지향들의 체계에 연관해서 이 표상들의 일치가[정합성이] 동일하게 확립된다는 조건에서, 또한 표상들의 동기화할 수 능력과 표상들의 특별한 감동적 내포(connotation)가 동일하게 확립된다는 조건에서 이다.
정신분석적 관점의 중요한 기여는 의식의 파악, 주의의 “초과투여[집중]”, 심정적 활동성을 분명하게 구별했다는 것이다. [의식의 파악은 주의의 “초과투여[집중]”와 동격으로 읽을 수 있고], 심정적 활동성은 다시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심정적 활동성이란 [한편으로] 의식에게 무매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고정된 의미론적 연쇄들에 따라 이차적 양태위에서 작용하는, 또는 [다른 한편] 명제적 [논의]취급에게 ‘접근할 수 없으면서 움직이는 고정작업들’에 따라 일차적 양태위에서 작용하는, 표상들의 연합 놀이[재현화]와 같다.
정의(定義, définition)에 의하여, 무의식적 표상들의 지위는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억제의 기제[메카니즘]들 중 단 하나의 능력에 의해 억압된 명제적 표상들이 중요할까?“ 또는 그 표상들이, 표상들을 자연적으로 의식의 파악에게 불순하게[알맞지 않게]하는 형태 하에서 기억으로 축적되었는가?
* 현상학적 관점으로부터, 의식은 마치 주체의 살아온 경험들(les expériences vécues)의 표상 양태처럼 묘사될 수 있다. 이때 심리병리학은 표상들의 내용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종합론자(globaliste, 전체론자)의 관점에서, 심리병리학은 각각의 병리학적 상태들에 알맞은 의식의 형식을(말하자면 실제적으로 의식의 총체를) 묘사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이 때 의식은 마치 기능처럼 생각되지 않고, 오히려 마치 지향성처럼, 말하자면, 세계에 대한 이해 양태 또는 목표물처럼 생각된다. 성생하는 진행들에 대한 설명할 수 있고 또한 해석할 수 있는 이해 양태들 대신에, 사람들은 이때에 내포적 태도로 대체한다. 그 내포적 환원은 현상학적 환원의 규칙들에 복종되어 있고, 또한 외적 실재성을 괄호 속에 놓는 작업에 복종되어 있어서, 주체에 대한 표상들의 세계를 고려하는데 숙명지어지고 그리고 주체라는 세계로 있기에 고유한 방식에 숙명지어진다.
* 또한 도덕의식(conscience morale)의 기능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은 반사회적 또는 괴짜적(pervers, 도착자) 행실들의 사례들에서, 타인의 이익들을 고려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표시되는, 도덕의식의 변질을 고려할 것이다. 사실상 병리학은 여기서 정상을 전혀 밝히지 못한다. 죄의식[혐의] 감정의 부재가 흔들림 또는 이차적 정당화의 표시인가? 괴짜는 정상인들과는 다른 운동성에 복종하는가? 또는 괴짜의 “도덕의식”의 부재가 잠재적 상태에서 있는 모든 개인들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충동들로부터 자유로운가? 반대로 혐의의 과도한 병리학은 의심의 용어로 또는 신경증적 세심함으로 묘사되었고, 즉 행실의 좌절로 묘사되었다. “과오로 병든 우주”를 부분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조자아의 개념이 프로이트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리고 프로이트(Freud 1856-1939)는 도덕판단의 심급이 어린애에 의해 부모이미지의 내자화에 그 기원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암시했다.
20여년 이래로, 인지 심리학의 직접적인 영향아래서 의식에게 접근 가능성과 접근 불가능성의 개념들은 보다 넓은 의미로 다루어진다. 이제부터는 정보 취급을 보장하는 과정들이 그 자체로 의식에 접근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을 다시 보면, 사람들은 사유의 과정들이 무의식 그 자체였다는 것을, 그리고 의식은 초과 부여된 메카니즘의 결과였다는 것을 [글로] 쓸 수 있었다.
그럼에도 프로이트(Freud 1856-1939)는 과정들과 표상들 사이에 구별을 했던 것 같지 않다: 과정들은 본성상 의식에 접근가능하지 못하고, 표상들은 억제된 사고 체계 속에 기입되어 있다. 이 둘째 경우에서 의식의 접근이 가능한 체 남아있다. 심정적 조작들의 내밀한 과정들의 경우[사례]에서, 과정들을 이런 접근에 불편하게 하는 것은 심정적 조작들의 본성 자이다. 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이때에 조작들이 명제적 표상들로 이끌 수 있는 정도에서, 이런 조작들의 결과이다.
데네뜨(Dennett, 1942-)와 더불어, 사람들은 심지어 의식1(awareness 1)과 의식2(awareness 1)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1은 반성적 의식에 접근하는 것이고, 의식2는 상황의 조절에 보증함에도 불구하고 기억 속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이런 고찰들은 정신병리학적으로 무매개적인 함의들을 갖는다. 인지 정신병리학은 점진적으로 구축되었는데, 다양한 질병들에서(주의의 메카니즘들, 규약[코드]화 또는 말투에 대해) 정보의 취급과정에서 흔들림을 연구한다. 이 과정들은 징후를 구성하는 조잡한 결과들에 의해 임상에서 표현되었다. 환자의 의식에 접근할 수 없는, 이런 과정들은 통제된 상황들에서만 밝혀질 수 있을 뿐이다. 이로부터 병리학에서 의식의 기능은 병적인 경험의 현상학적 차원만을 반영하기 때문에 더욱더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56NKF)
* 참고 문헌에 두 학자를 소개한다. .
1900 에이(Henri Marie Jean Louis Ey, 1900-1977), 프랑스 정신과 의사, 정신의학 연구 3: 심한 정신병의 구조와 의식의 파괴(Etudes psychiatriques. 3, Structure des psychoses aigües et destructuration de la conscience), 1954
1924 라파사드(Georges Lapassade, 1924-1928), 심리사회학자, 파리 8대학 교수. 의식의 달라진 상태들(Les États modifiés de la conscience, 1987)
* 본문의 인명.
1856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유대계 오스트리아 의사, 정신분석 창시자. 종교의 기원,
1929 위드뢰혀(Daniel Widlöcher, 1929-2021) 프랑스 정신과 의사, 교수. 2001년 국제 정신분석연합회(International Psychoanalytical Association) 회장. 프로이트와 변화의 문제(Freud et le problème du changement, 1970)
1942 데네뜨(Daniel Clement Dennett, 1942-) 미국 철학자 매서추세츠 투프스대(Tufts, Medford, Massachusetts) 교수.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 인지 연구자. 인지과학들에서 정신의 철학과 과학들의 철학 전문가.
Content and Consciousness, 1969. Brainstorms: Philosophical Essays on Mind and Psychology (MIT Press 1981)
(5:24, 56NKG, NL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