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가 바뀌면 잘 모르지만 가수가 바뀌면 밴드는 팀의 얼굴이 바뀌는 것이라 그 충격이 컷고 팀이 해체되었고 연주자들 중 실력있는 사람들은 가수들 노래를 연주 해주거나 마음 맞는 이들을 만나 다시 팀을 조직 하지만 판 하나를 내기도 전에 그만 둘 수 밖에 없다.
다른 가수의 노래를 연주해주는 것은 악보도 보고 모르는 사람끼리도 협의하여 연주하면 뭐가 되겠지만 밴드의 경우는 노래도 중요하지만 연주와 화음이 중요하고 공연시 악보 없이 짜여진 뭔가를 보여줘야 하기에 연습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콘서트에 오는 사람들 중 잘 모르는 사람은 내막을 모르고 더군다나 TV에서는 과거 실제 연주보다는 반주테입에 의존하기에 흉내만 잘내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밴드의 얼굴이 가수지만 공연을 하면서 20곡 넘게 노래를 한다는 건 쉬운일이 아니고 나이가 들면 고음을 뽐내던 가수도 힘들어 지며 특히 락음악의 경우는 수명이 더 짧은데다 좋아하는 팬들도 많지 않아 팀을 유지하긴 더 어렵다.
얼굴마담이었던 구창모가 그만둔 우리나라 최고의 밴드 송골매는 80년대 중반 '하늘나라 우리님'으로 어느 정도 충격을 줄이지만 연주자들 중 베이스와 드럼이 그만두고 이들은 '신'이라는 밴드에서 가수 김현준과 기타의 최희선과 활동을 한다.
그리고 송골매의 베이스엔 20대 중반의 젊은 '이태윤'이 들어온다.
당시 40에 가까운 나이의 아재들은 베테랑이었고 연주실력 또한 뛰어났는데 프로경력이 짧은 이태윤을 알아보고 영입했던 건 그만큼 이태윤의 열정과 실력이 대단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당시 젊은 밴드들이 실력이 떨어진다는 게 아니고 세대를 뛰어 넘어 팀의 균형을 잡아주는 베이스에 들어갔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이태윤! 그는 그 후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가요음반 녹음 연주에서 그를 뺀다는 건 정수기에서 필터를 빼는 것과 마찮가지라고 보면 된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부터 베이스를 연주했고 20살이 넘어 또래의 기타연주자 김태원과 The end를 결성 강북지역에서 활동을 했고 대학교 축제에서 연주를 했었다.
그리고 노래와 베이스를 함께 했을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메니아 위주의 정통 락음악이나 메탈을 연주하는 것 보다는 대중 음악을 하고 노래에 대한 욕심이 있어 부활로 개명된 시기 팀을 떠나 연주를 하다 당시 최고 밴드인 송골매에서 연주 뿐 아니라 노래를 해서 TV에도 나오는데 그 노래가 바로 송골매 8집의 '외로운 들꽃'이다.
베이스란 악기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내세웠지만 겸손하고 서민적이며 소탈한 그는 가끔 젊은 시절 같이 활동했던 연주자들과 같이 무대를 만들기도 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가수나 기타위주가 아닌 다른 악기를 연주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고 가요사의 한 획을 그은 베이시스트 이태윤은 분명 대단한 예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