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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37구간(화방재-두문동재)
1.산 이름 : 수리봉, 함백산, 은대봉
2.소재지 : 강원도 태백시 혈동
3.산행코스 : 화방재 ←(1.4km)→ 수리봉 ←(2.1km)→ 만항재 ←(2.9km)→ 함백산 ←(1.1km)→ 중함백 ←(1.2km)→ 자작샘터 ←(1.9km)→ 은대봉 ←(1.0km)→ 두문동재(싸리재)
4.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 약 11 km, 산행시간 : 6시간 00분
5. 산행 안내 : 신태백산식당 숙박-화방재까지 도보, 두문동재 도착-동재까지 도보 -택시-
태백터미널-서울고속터미널 도착
화방재-두문동재(싸리재)
하늘숲 공원
만항재에는 작고 아름다운 야생화뿐만 아니라 울창한 낙엽송 숲도 있다. 낙엽송은 겨울에도 품위를 잃지 않고 멋스러움을 뽐낸다. 초가을까지는 휴게소를 중심으로 사방이 향기로운 꽃 천지다.
특히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아침이나 비가 내리는 날에 분위기가 더욱 몽환적이고 신비롭다. 걸음을 뗄 때마다 도원경에 다가가는 듯한 몽상에 사로잡힌다.
만항재의 꽃밭은 '하늘숲 공원'과 '산상의 화원', '바람길 정원', '야생화 공원', '만항 숲길' 등으로 나뉜다.
어느 곳이든 야생화가 피어 있지만, 일단은 하늘숲 공원으로 향해야 한다. 만항재에서 볼 수 있는 야생화를 촬영한 사진이 설명과 함께 진열돼 있기 때문이다. 꽃의 이름과 유래, 개화 시기, 꽃말이 흥미를 자아낸다.
가을에는 패랭이꽃, 큰까치수염, 금강초롱, 놋젓가락나물, 둥근바위솔이 개화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만항재(晩項)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과 태백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고개이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 줄기가 태백산(해발1,567m)으로 흘러내려가다가 잠시 숨을 죽인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갯길로 알려져 있다.
해발 1,330m로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선인 운두령(1,089m)보다도 높다. 태백과 정선을 잇는 두문동재에 터널이 뚫려 시간이 단축되면서 길고 험한 만항재에는 인적과 차량이 드물다. 만항재 아래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탄광 개발이 시작된 만항(晩項) 마을이 있다. 고개 중턱에는 만항소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함백산 기원단
태백산 천제단은 국가의 부용과 평안을 위해 왕이 천제를 지내던 민족의 성지인 반면 이곳 함백산 기원단은 옛날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민간신앙의 성지였다고 전해온다.
과거 함백산 일대에 석탄이 많아 광부 가족들이 이곳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광부들이 지하막장에서 석탄을 생산하던 중 잦은 지반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자 가족들이 이곳을 찾아와 무사안전을 위해 정성을 다한 곳이라고 한다.
함백산咸白山강원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는 산.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과 정선군 고한읍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1,573m). 황지의 진산(鎭山)이다. 『척주지』에 "대박산 서쪽은 정암(淨岩) 육천인데, 육천의 물은 영월에 이르러 큰 강에 흘러들어 간다.
대박산은 태백산 동쪽에 있는데, 아래 위로 본적(本寂) • 심적(深寂) • 묘적(妙寂) • 은적(隱寂) 등의 암자가 있다. 대박산에는 만생백(蔓生栢)과 오엽송(五葉松)이 많이 자란다.
대박산 동쪽은 황지이고, 황지 동쪽에는 연화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에서 대박산의 위치는 물론 그것이 지금의 함백산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 척주부에 "근대봉 남쪽에 상함백산(지금의 은대봉) • 중함백산(본적산) • 하함백산(지금의 함백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함백산은 세 산을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 "자장법사는 처음 오대산에 이르러 진신을 보려고 산기슭에 모옥을 짓고 살았으나 7일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묘범산(妙梵山)으로 가서 정암사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의 묘범산은 함백산을 지칭한다.
이러한 고문헌을 통해서 산 이름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태백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묘범산은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대산(大山)이자 신산(神山)이며 세계의 중심이 되는 산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대박산이 '크게 밝은 산'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도 대박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조선지형도』에는 함백산이라고 적혀 있다
주목은 천년의 세월 동안 늙어 생을 다할 때까지 자애로움과 넉넉함을 간직하며 수백 년을 지나면서 자연의 수많은 변화를 느끼 면서도 흘러가는 세월을 탓하지 않는다.
비록 천둥과 번개 속에서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자기를 과시하지도 않는다. 단지 지나가는 길 손을 위해 그늘 너른 나무로 우리를 한없이 품어 주기만 한다.
어쩌면 내 아들의 아들 녀석이 이 곳을 지나갈 때까지 이 산이 영원하길 빌어 본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주목은 온화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품어 주니 그 편안한 모습에서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주기에 진정 그는 천년기념물인가 보다. 그리고 생을 다하면 또 다른 천년의 세월을 위해 저렇게 홀로 외롭게 서 있다.
은대봉(銀臺峰) /강원도 정선군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1,442m이다. 함백산의 봉우리인 상함백산, 중함백산(1,505m), 하함백산(1,527.9m), 창옥봉(1,380m) 중 상함백산을 가리킨다. 정암사를 세울 때 조성된 금탑, 은탑에서 금대봉(金臺峰)과 은대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웃에 있는 금대봉과 이어주는 두문동재(이전 이름은 싸리재:1,268m)에서 은대봉 정상까지는 1㎞ 거리이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북쪽으로 금대봉·비단봉·천의봉, 동쪽으로 태백시와 백병산·면산·묘봉으로 이어진 낙동정맥, 남쪽으로 중함백산, 서쪽으로 백운산·두위봉 등이 보인다.
백두대간 종주코스의 한 구간을 이룬다. 산행은 두문동재에서 남쪽으로 대간길을 따라 올라가 정상에 이른 뒤 화전버스종점으로 하산하는 데까지 4시간이 걸리며, 두문동재 터널 입구에서 시작하는 경우에는 1시간이 더 걸린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아래로는 죽령터널에 이어 한국에서 두번째로 긴 정암터널(4,505m)이 지나간다.
낙동강의 원류 발생지는 이곳에서 가까운 천의봉의 동쪽계곡에 자리한 너덜계곡으로 공식 인정되었지만, 은대봉의 은대샘에서 태백시 화전동쪽으로 흘러내리는 황지천(黃池川)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산자락에는 태백광업소와 한국 기차역 중 제일 높은 곳(855m)에 위치한 추전역이 있다. 부근에 정암사, 용연동굴이 있다.
두문동재(싸리재)
태백시로 들어가는 길 중 으뜸은 두문동재다. 1,400m급 금대봉과 은대봉 사이 가장 낮은 곳으로 길을 낸 게 두문동재인데 그 높이가 1,268m다.
금대봉에서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하루 출입 인원을 제한하며, 자연보호 구역으로 야생화 천국이다. 은대봉에서 시작된 산길은 함백산을 지나 천상의 화원이라고 알려진 만항재로 이어진다.
한 도시의 경계이자 관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드나드는 맛이 나지 않겠는가? 태백으로 가시려거든 두문동재터널로 들어가지 말고 옛 산굽이길, 두문동재로 구불구불 올랐다 내려가며 주저리주저리 펼쳐지는 태백의 옛이야기를 맛보시라.
두문동재의 다른 이름은 싸리재다. 싸리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엄청난 비에 산이 무너지고 싸리나무가 뿌리째 뽑혀 떠내려가다가 구문소 바위 절벽에 부딪혀 절벽을 뚫었다는 전설에 나오는 싸리나무가 바로 이곳, 싸리재에 있었다.
금대봉과 은대봉을 잇는 두문동재(싸리재)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나라를 조선에 넘기고 삼척에 유배를 왔다가 지금의 삼척 근덕면 궁촌에서 살해를 당하자 왕을 따르던 남은 신하들은 지금의 건의령에 두건과 옷을 걸어두고 함백산 아래에 터를 잡고 세상을 멀리했다고 한다.
이때 고려 신하들이 은거했던 곳은 두문동이 되었고, 두문동에서 바라보이는 금대봉에서 함백산 사이의 재를 두문동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유래는 지금은 북한지역 개경의 두문동과 고려 말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그 맥을 같이 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는 뜻의 두문불출(杜門不出)의 어원이라고도 한다.
신태백산식당 민박집에서 오늘 서울로 가야 하는 날이라서 일찍 아침을 먹고 두문동재로 가기위해 국도를 따라 화방재까지 걸어서 이른 아침의 여정은 가볍다.
아침 햇살의 영접을 받으며 어평으로 넘어가는 31번국도 상에 있는 해발 936m의 화방재(花房嶺)에 닿았다.
단종이 영월 서강에서 사약을 받고 그 혼이 이 고개를 넘어서 태백산으로 갔다고 하여 ‘왕이 넘은 길이라는 의미’로 어평재라고도 불리 우는 곳에서 산행을 준비하고 함백산으로 향한다.
함백산(咸白山)은 오대산(五臺山, 1563m), 설악산(雪嶽山, 1708m), 태백산(太白山, 1567m) 등과 함께 태백산령에 속하는 고봉이다. '함백'(咸白)은 '태백'(太白)과 마찬가지로 '크게 밝다'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함백산도 태백산과 같이 신령한 산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천상의 화원이라는 함백산을 오르기 위해 양철지붕 민가 사잇길을 지나 낙엽송 우거진 숲길을 헤치고 들어가면서 산행은 시작되었다.
시원스러운 낙엽송들의 군락지에서 돌아 본 화방재는 단종의 혼령이 보살핌으로 인한 것인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오늘은 대간을 하며 처음으로 화방재~두문동재까지 가는 약 10.5km를 약 6시간에 완주를 해야 한다.
하늘 높은 가을을 친구와 함께 즐기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이고 잠시 후에 편안한 길로 이어졌다. 야생화 천국이라고 하지만 저마다 제 삶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는지 이젠 가을의 문턱에서 그들의 존재감만 있을 뿐 가슴 설렘은 없다.
비에 젖은 황금빛 낙엽들이 숲을 채우고 이미 벌거숭이가 되어가는 낙엽송들을 뒤로하고 수리봉에 올랐다. 잡목들 사이로 어제 산행의 주인이었던 웅장한 태백산의 모습을 바라보며 함백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1238m 삼각점봉을 지나자 나아가야 할 길이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껴진다. 단지 물기 품은 조릿대의 군락지를 지나가노라니 길은 고향의 뒷산을 걷는 것과 같이 그지없이 편하게 한다. 낙엽송들이 더욱 깊은 가을을 느끼게 하는가 싶더니 등로는 공군부대 옆으로 빠져나가 도로로 연결된다.
가을!
그 깊어가는 시간의 흐름 앞에 파리하게 떨고 있는 낙엽들을 보라. 언젠가 나도 그와 같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겠지만 겨울 앞에만 서면 그는 떨고 있다. 백설이 된 세상과 나목으로 맞설 날이 멀지 않음이다.
하늘숲 공원을 지나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 줄기가 태백산(해발1,567m)으로 흘러내려가다가 잠시 숨을 죽인 곳인 만항재(1,330m)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갯길로 정선, 태백, 영월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불과 이삼십년 전만 해도 석탄을 나르던 고개이다.
날아갈 듯 날씬하게 만들어진 만항재 표지석이 시대의 변천을 말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만향재휴게소에서 직진하여 비포장 도로를 따라 약간의 알바를 했으나 바로 뒤돌아 와서 야생화단지 길을 따라 100m 정도 내려서면 함백산으로 들어가는 지도와 함께 산으로 길은 안내하고 있다.
함백산 기원단 앞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함백산의 기상을 다시 한 번 더 느껴본다. 태백산 천제단은 국가의 부용과 평안을 위해 왕이 천제를 지내던 민족의 성지인 반면 이곳 함백산 기원단은 옛날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민간신앙의 성지였다고 전해온다.
민초들의 삶의 애환을 새삼 느끼며 내려서면 태백선수촌으로 가는 도로와 다시 만나고 그제 서야 함백산만 오롯이 처다 보며 끊임없이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함백산(咸白山, 1572.9m)에 올랐다.
함백산 정상까지 관리공단에서 무더운 날에 계단공사를 하고 있는데 우린 산행을 하니 조금은 미안감이 들었다.
자연 그대로 두어도 산행에 큰 무리는 없는데 많은 예산을 들여 힘들게 공사하는 모습도 문제는 있으나 자연보호면에서는 좋은 일이다. 힘들게 오르니 외롭게 서 있는 함백산 표지석 뒤로는 이곳을 지나는 이들이 쌓아 올린 돌탑들의 정성스러움에 경외감을 느끼며 양지바른 곳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긴 휴식을 취한다.
지난구간의 주인이었던 태백산의 마루금이 높고 높은 푸른 하늘과 함께 그 기상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함백산 정상에 올라서면 시원한 한들거리는 가을 야생화의 진한 향을 품은 바람과 함께 멋진 풍광들이 펼쳐진다.
태백산을 지나 남쪽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능선과 은대봉, 금대봉을 지나 매봉산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북쪽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백운산과 피재에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능선이 굽이치고 태백 시내가 지척에 펼쳐진다. 눈을 돌리면 카지노의 도시가 되어버린 정선의 고한읍이 계곡을 채우고 있다.
언제나 정상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법이 아닌가? 헬기장을 지나 중함백으로 내려서다보면 함백산의 맑은 기운을 받고 있는 주목의 군락지다.
천연보호림으로 지정된 함백산에는 수백 그루의 주목이 자생하고 있지만 박제되어 가는 모습에 애잔함이 묻어난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은 예부터 귀신을 쫒는 신비의 나무로 최상의 목재로 쓰였다. "살아 천년은 의연한 기상으로, 죽어 천년은 최상의 목재로" ......
주목을 뒤로하고 중함백으로 향하는 길목에 뒤 돌아보면 함백산의 모습은 포근한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만큼 편안해 보인다.
중함백에서 숨 한 번 돌리고 아기자기한 쉼터가 손짓하는 숲길을 지나면 적조암 갈림길인 자작나무샘터를 만난다. 군데군데 일정한 규칙 없이 돌 몇 개로 만들어진 쉼터가 여러 곳에 설치해 두고 산객들의 다리쉼을 돕고 있었다. 잠깐쉬고 은대봉을 올랐다.
은대봉은 함백산의 봉우리인 상함백산, 중함백산(1505m), 하함백산(1527.9m), 창옥봉(1380m) 중 상함백산을 말함이다.
서기 636년 신라 선덕여왕 5년 지장율사가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 정암사를 세울 때 조성된 금탑, 은탑으로부터 금대봉, 은대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두문봉(싸리재)을 통해 금대봉과 이어진다.
이곳에서 낙동강은 시작되었다. 낙동강의 첫 물방울은 은대봉의 너덜샘이다.
이전에는 은대봉의 은대샘에서 태백시 화전동 쪽으로 흘러내리는 황지천(黃池川)으로 알려졌었으나 조사 결과 황지보다 상류에 있는 너덜샘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전문가들이나 향토사학자들은 너덜샘은 낙동강의 발원샘,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구분해서 부르고 있다고 한다. 황지의 옛 이름은 '하늘 못'인 '천황'(天潢)이었다. 하늘의 연못으로부터 낙동강이 흐른 것이다.
고사목들 사이에 구절양장처럼 얽힌 도로를 보니 터널을 안 뚫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쓰러진 고려의 아픔이 묻어있는 두문동!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넋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슬픈 역사가 서려있는 땅인 두문동재에 닿았다.
예전 33번 국도였으나 이젠 도로의 기능은 없어지고 이 땅에 추억이 서린 사람들만이 여길 찾는 곳이 되어 버렸다. 두문동재에 도착하니 가랑비가 내린다.
급히 도로를 따라 버스가 다니는 삼거리까지 30분 가량 걸어서 가야하는데 빗줄기가 꿁어져서 비옷을 입고 산길과 도로를 번갈아 급경사를 내려와서 버스가 다니는 삼거리에 도착하여 마침 택시를 타고 태백으로 가서 서울 고속버스를 타고 편히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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