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松堂 박성환
자유당 시절 어느 국무총리의 딸에 얽힌 사연이 사람들 입에 우스개 이야기로 오르 내린 적이 있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그야말로 우스개로 심심파적의 이야기였다. 내용인 즉 슨, 아직 처녀인 J 국무총리의 딸을 처음 보는 사람은 3번을 놀란다고 한다. 거리를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사람은 그 뒷모습의 자태(뒷맵시)가 어찌나 우아하고 아름다운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라고 한다. 하이힐에 담긴 육감적으로 쪽 곧은 종아리하며 적당히 부푼 둔부가 그 시절 보기 드문 양장 투피스 의상(衣裳)에 잘 어우러져 걸음걸이도 사뿐사뿐하게 놓이는 그 리드미컬한 페이스는 지나가는 남정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호기심 많은 남정네는 그런 여인을 뒷모습 보는 것만으로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것. [요즘 젊은 여인들은 입기 위하여 입은 옷이 아니라 벗기 위하여 입은 것처럼 하도 많이 노출하고 다니니 그 뒷모습이 눈길을 별로 끌지 못하고 보통으로 여겨지는 것과는 사뭇 다른 시절이었다.] 아무일 없는 것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남자의 마음, 단박에 앞모습의 얼굴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릿다운 뒷모습에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얼굴 모습을 상상하며 보폭을 빨리하여 기어이 그녀의 앞모습을 보고야 만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그녀의 얼굴은 당장 눈길을 거두고 싶을 정도로 이목구비가 모두 제멋대로 생긴 박색(그 시절의 말로는 호박꽃)이 아닌가. 그 얼굴 모습이 그렇게 아릿다운 뒷모습과 잘 매치되는 고운 얼굴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와는 크게 어긋나는 것에 놀람과 실망을 안고 얼굴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옆에 지나가던 사람—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어떤 호사가(好事家)가 그 처녀가 J 국무총리의 딸이라고 귀띔해 주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경악할 정도로 놀람은 극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아름다운 뒷모습에 놀라는 것이 첫 번째요, 정면의 얼굴 모습이 뒷모습과 대조적으로 너무 박색인 것에 또 놀라는 것이 두 번째요, 그녀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 일컬어지는 현직 국무총리의 딸이라는 사실에 세 번째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뒷모습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면 세 번씩이나 놀라는 일의 빌미는 제공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뒷모습은 눈길을 끌기보다는 치지도외(置之度外)되어 지나치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두거나 중요시하는 것은 ‘뒤’보다 ‘앞’, ‘이면(裏面)’ 보다 ‘정면(正面)’이다.
뒤에서 일어나는 일 치고 아름다운 것 드문 법이다. 악취가 진동하는 대변(똥)은 뒤에서 나온다. 대변보는 것을 “뒤를 본다” 하고 그것은 “뒷간”에서 이루어지고 모이면 “뒷거름”이 되고, 변 보기가 끝나면 “뒷물”을 한다. 입학시험에 떨어져 돈 내고 보결 입학하는 학생은 “뒷문”으로 들어왔다 한다. 떳떳하지 못한 뇌물 등은 “뒷손”으로 받는다고 한다. 호박씨는 뒤로 깐다. 비밀리에 정당하지 못한 “뒷거래”를 하여 “뒤가 구려서, 뒤가 꿀리고” 이렇게 숨겨 둔 속내로 떳떳하지 못해 잘못될까 봐 조마조마 겁이 나서, “뒤가 저리거나, 뒤가 켕기는데” 남의 약점을 캐내기 위하여 기회를 엿보는 놈이 “뒤를 노리며, 뒤를 밟고”, 은밀히 뒤를 캐는 “뒷조사”에서 “뒤가 드러날까” 봐 “뒤를 사리다”가 몸을 피하여 “뒤를 빼거나”, 몸을 숨기느라 “뒤로 돈다”. 그리고 “뒷걸음질(퇴보)”, “뒷공론(뒤에서 쑥덕거리는 짓)”, “뒷구멍(숨겨서 넌지시 행동하는 짓)”, “뒷골목(불량배들의 활동무대)”, “뒷북치다(뒤늦게 쓸데없이 수선을 피우다)”, “뒷전(푸대접으로 뒤로 미루게 된 순서)” 등, “뒤”나 “뒷”자가 들어가는 말은 아름답지 못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나타낸다.
우리는 천리를 가도 자기 뒤통수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누구나 존재했던 곳에는 흔적(痕迹)을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 흔적을 통하여 뒷모습을 짐작할 수는 있는 것이다. 눈밭이 아니더라도 뒷자리에 남기는 자국은 흔적을 남긴다. 화가는 그림을, 음악가는 음악을, 시인은 시를, 소설가는 소설을 남긴다. 하다못해 보통사람도 흔적으로 자신의 DNA가 유전되는 자손을 남긴다. 가죽을 남기는 호랑이와 달리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지 않는가. 소설가는 흔적이 있을 때 이야기 만들기가 쉽다고 한다. 누군가의 와이셔츠에 묻은 입술연지 흔적--그걸 보면 당연히 이 사람이 어디서 뭘 하고 왔는지 그 뒷모습을 스토리로 상상하게 된다. 누군가가 앉았던 풀밭은 엉덩이나 몸체에 눌려 납작하게 뭉개진 뒷자리만으로도 사랑의 흔적을 알아볼 수 있다. 두 사람이 풀밭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얼마나 오래 앉아 밀어를 속삭였는지, 뭉개진 풀밭의 뒷자리, 그것만으로도 거기 있었던 사랑의 내력을 짐작 내지 상상할 수 있다.
세상은 많은 ‘뛰어난 사람(호모 수퍼리얼: Homo Superial)’들에 의하여 새로운 길이 열리어왔고 그렇게 세상이 바뀌면서 발전해왔다. 앞서 걸었던 이들 호모 수퍼리얼들의 뒷모습을 보고 뒷사람들은 그 흔적을 눈여겨보았다가 새로운 것을 모색해오면서 세상과 역사는 발전해왔다. 훌륭한 뒷모습을 보여준 이들 호모 슈퍼리얼들도 그들보다 앞선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와 자신의 것으로 새롭게 재탄생시킨 위대한 ‘모방꾼’이기도 하다. 빌게이츠가 애플 매킨토시의 운영체계를 모방해 윈도즈를 탄생시킨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다윈의 진화론도 온전히 독창적인 idea가 아니고 찰스 아이엘의 지질학적 진화 개념을 결합했다. 온전히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새롭게 발견되는 위대한 idea는 없다. 위대한 천재가 아니라도 앞선 사람의 뒷모습에서 얻은 새로운 idea를 통해 혁신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아이자크 뉴턴은 자신의 미적분법이 다른 과학자들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을 때, “더 멀리 바라보기 위해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야 했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천재들과 위대한 혁신가들도 이렇게 앞선 사람의 뒷모습에서 아이디어를 “빌리고 모방했다”는 말은 혁신과 새로움이 생존의 전제조건이 된 이 시대에 복음과도 같은 말이다. 호모 수퍼리얼들의 뒷모습은 한없이 아름답다!
언젠가 정년 퇴임한 어느 대법관이 동네 편의점을 운영한다는 이야기가 상쾌한 뉴스였던 적이 있었다. 대법관 출신이라면서 전관예우에 의지하여 떼돈을 벌 수 있는 변호사 개업을 마다하고 소박한 서민의 삶으로 돌아간 모습에서 사람들은 모처럼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얼마 안 있다 그도 역시 제 길을 가고 말았으니, 아름다운 뒷모습 보기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온 나라가 엉망인 우리 사회는 앞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뒷모습을 생각하고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 것 아닌가. 그 대법관이 초지일관, 편의점을 계속했더라면 그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을 것인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가는 후배들, 뒤에 오는 판검사들이 그 거인 대법관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더 큰 것을 보고 자신의 경력으로 약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면 훌륭한 모범적인 퇴임 법관의 길을 이어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우리 사회는 좀 더 아름답게 바뀌지 않을까? 앞서 ‘뒤’나 ‘뒷’자가 들어가는 행위는 아름답지 못하기 쉽다 하였으니, ‘뒷모습’ 또한 자칫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쉽지는 않지만 본인의 처신에 따라서 얼마든지 아름다운 ‘뒷모습’을 연출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유명한 영화배우가 앞모습으로 연기하기보다 뒷모습을 연기하기가 참 어렵다고 고백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어려운 뒷모습 연기를 잘 해내면 그가 맡은 역할은 관객에게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인상 지워질 것이다. 남들 앞에서 품위를 내세우기는 쉬운 일이지만 뒷모습이 아름답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바람을 알기 위하여, 바람이 어디서 오는 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풍향계(風向計)라는 것이 있다. 풍향계는 언제나 바람과 감연히 앞머리로 마주한다. 그래서 풍향계의 앞쪽, 머리 부분만 보기 쉽다. 풍향계는 꼬리 부분--뒷모습을 보아야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알 수 있다. 풍향계처럼 그 사람의 뒷모습에서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고,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축복받을 사람이다. 앞의 국무총리의 딸도 앞모습은 못생겼지만 뒷모습이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짙은 인상으로 남은 것 아닌가.
자동차는 앞으로 안전하게 내닫기 위하여 뒤를 살펴야 하고 뒤를 살피는데 필요한 장치--백미러가 설치되어 있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처럼 올라갈 때는 앞만 보고 가니까 보지 못한 꽃을 내려올 때서야 뒤가 보이듯 자기 뒷모습 같은 그 꽃을 볼 수 있었다. 내려올 때에야 인식하게 되지 말고 올라갈 때부터 뒤에 남을 뒷모습을 생각하면서 행보(行步)할 일이다.
2015.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