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에세이
개 팔아 두 냥 반
구름도 쉬어간다는 도시의 한 모퉁이 양지바른 곳에 있는 한적한 병원엔 오늘도 아픈 몸을 이끌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6번 할머니 어디 가셨어요?“
“ 눈만 뜨면 병원 잔디밭에 앉아 계신다우“
“알겠습니다 7번 할머니….“
“저 간호사가 우리 비밀을 다 알았네, 알았어“
웃음 반 슬픔 반으로 웃고 있는 환자들의 속사정을 알고 있는 간호사는 환자들을 이름 대신 숫자로 부르고 있었는데요
"할머니는 왜 5번이세요?"
"우리 집 개가 서열 1위고 2번이 며느리, 3번이 손자, 그리고 울 아들이 4번이고 내가 5번이야"
식구 중에 서열이 맨 꼴찌인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고 말해놓고 다른 하루를 재촉하고 있던 할머니들은
자식들은 부모에게 키워줄 의무가 있지 않냐고 따지기라도 하지만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돌봐줄 권리를 말하지 못하는 슬픈 속내를 비 갠 다음 날 아침까지 토해내고 있었는데요
"할머니...."
4호 할머니 아들 내외와 손녀가 병문안 와서 잠시 머물더니 간다고 호들갑입니다
“왜 벌써 가게?“
“할머니…. 밍키가 아파서 동물병원 입원시켰는데 가보려고“
그렇게 술 먹은 개소리만 하다 돌아간 자식들이 남긴 흔적이라도 만져보려는지 죄다 떠나간 빈집 마당을 서성이듯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며
“애완견 입원시킨 건 마음이 아프고 부모를 입원시킨 건 골치가 아픈 세상 탓해야지“
“울 아들도 지엄마 입원해 들어간 돈은 한 푼 두 푼 따져보고 키우는 개에게 들어간 입원비는 아까운 줄 모르지 뭐유“
1호 할머니와 3호 할머니의 말에 할 말이 생각났다는 듯 4호 할머니가 거듭니다
“두 달 전에 아들 내외가 여행을 떠나면서 개 잘 봐달라는 부탁을 하고 갑디다“
“ 애터지게 손자손녀까지 키워놨더구먼 이젠 개까지 키워야 하는 건지 말세야 말세,“
“키우던 개가 죽으면 통곡하는 것들이 제 부모 죽은 장례식장이 잔칫날 같더구먼“
부모 인생이 개만도 못한 노비 인생이 된 현실에 숨기지 못하는 속내들을 털어놓던 병실 안 사람들은 유산이나 자기들 필요할 땐 고개 숙이는 개만도 못한 것들이라며 하나둘 숨어드는 달빛에 내일이 오늘 같지 않기를 기도하며 잠이 들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오후
가을비 촉촉이 스며든 병실 문을 열고 5호 할머니 가족들이 찾아와서는
“할머니 내일 퇴원하면 엄마,아빠랑 5박6일로 여행 다녀올 거야“
퇴원하면 아들 내외에게 회복 간이나 받을 욕심에 들떠 있던 속내를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듯 바라봅니다
“ 할머니…. 이건 머리 감기는 샴푸고 이건 몸 씻기는 바디 삼푸야“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요리조리 보여주며 개를 돌보는 교육을 하고 있었는데요
“할머니…. 목욕 후 드라이할 땐 찬바람으로 맞춰서….“
이어지는 손녀의 설명에 눈살이 찌푸려진 다른 할머니들은 돌아누워 애먼 이불만 만지작거립니다
늙은 부모는 냄새난다고 눈살만 찌푸리지 목욕 한 번 데려가지 않더니 개는 보름마다 애견 숍으로 데려가 비싼 돈 들여 미용시키고 거품 목욕까지 시키는 현실을 한탄하며 병원 앞 잔디밭에 나와 앉은 할머니들 눈에
“제 놈들 이만큼 살게 만든 공은 어디 가고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니…. 원“
“저기 저것 좀 봐요?”
부모는 데리고 다니고 개는 유모차가 아닌 개모차에 태워 모시고 다니는 풍경을 보며
개 대접받는 사람과 사람 대접받는 개 신세 사이에서 함께 사는 가족의 의미를 잃어버린 현실에 더 이상 할 말은 눈물이라 말을 이어가질 못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말도 있데요 부모님 알기를 개만치 알라는…."
녹슨 뼈만 남은 팔로 휠체어를 움직여 화장실 가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다는 할머니들은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유모차에 태워 가는 개를 보며
"너거들 팔자가 늙은 내보다 낫다"
설익은 인사를 건넵니다
혼자 남겨질 부모 걱정보다 남겨질 개 걱정에 보험까지 들고 간다는 개풀 뜯어먹는 소리만하다 돌아간 아들 내외를 생각하며 개보다 못한 부모 팔자가 된 현실에 5호 방 할머니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 말문을 닫고 할아버지와 행복하고 단란했던 기억을 멈춰 세우고는 눈물로 그때를 더듬어가고 있었는데요
태양이 비추는 젊음보다
밤이 비추는 나이 듦이 주는 이 시간이라도 행복이라며….
잃어버린 노란 가을이 주는 슬픔에 옥상 공원에 앉아 햇살 가득했던 지난날들을 회상하다 공중전화기 앞에선 7호 할머니는
“애미냐...?”
라는 한마디 뱉어놓은 죄로 바쁘다며 퇴원 때 가겠다는 단 두 마디 대답으로 끊어진 수화기를 귀에 대고 서서는
병원에 혼자 떨어져 보니 창공의 섬이 된 것 같은 절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병실에 돌아와 누워 있던 그때
“카톡.“
그나마 신식 할머니라 불리는 6호 할머니는 손녀가 핸드폰으로 보내준 강아지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할머니…. 코코 생일파티 중이야…. 할머니도 코코 생일 축하한다고 한마디 해줘“
자기 부모 생일은 바쁘다며 미역국 하나 딸랑 끓여놓고 용돈 몇만원 쥐어주고 나가는 자식들이 개 생일날엔 다들 시간이 남아도는지 카페까지 빌려 부산을 떠는 모습에
“너희 엄마,아빠는 병문안 안 온 데냐?“
라며 한마디 툭 쏘아붙인 말에
“할머니…. 요즘 코코가 아파서 가축병원에서 엄마,아빠랑 돌아가면서 밤새우고 있어 코코 다 나으면 같이 갈게…."
지극 정성 부모한테 못한 효도를 개한테 하려는 건지
수십 년 공들여 키워준 부모보다 단 몇 년 같이한 개가 더 대접받는 현실에 흩어지는 눈물을 애써 주워 담고 있던 할머니는
개 지키느라 문병 한 번 오지 않는 자식들을 보며 주워 담았던 눈물을 마저 흘리며 입원 하기 전 일상 하나를 떠올려 보고 있었는데요
“우리 새끼 잘 지냈어요..쥬주쥬”
퇴근하고 온 아이들과 아들 며느리는 제집에서 나오지도 않는 개에게 먼저 다가가 부모에게 웃음 한 번 짓지 않는 환한 웃음까지 지어 보이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한참을 머물다
체면치례로 노모 방 문틈으로 반쪽 얼굴만 보여주던 그날까지 함께 떠올리며 눈물 적시는 모습에 위로라도 건네고 싶었던 다른 할머니들은
“우리 손자는 납골당에 할아버지 보러는 귀신 붙는다고 안 가면서 작년에 죽은 개 유골함은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다오“
“우리 옆집에 같이 살던 개가 죽었는데 비석까지 세워 줬다지 아마…
할머니들은 개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나은 세상을 한탄하듯 늘어놓고 계셨는데요
"얼마 전엔 죽은 옆집 할아버지는 살아생전 오지도 않는 자식한테는 유산을 안 남기고 키우던 개한테 남기고 죽었다지 아마…."
개는 기쁨과 웃음을 주고 늙은 부모는 자식들에게 걱정을 주기에
개보다 못한 처지가 되어 사람 같은 개를 질투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보니
자식 놓고 행복의 날개라도 단 것처럼 기뻐하던 그날을 지워버리고 싶은 아픔은 다들 속눈썹에 걸린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행운인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슬픔을 닮은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푸념하던 할머니들은
노년에 흘리는 눈물은 모두 내 탓이라며 한 계절이 머물다 간 새로운 계절을 찾아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지만
속절없이 남겨진 허탈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던 6호 할머니는
저리도록 돌아오지 않는 가을을 따라 다시 되돌아 올수 없는 먼 곳으로 멀어져간 자리에
"개보다 못한 자식은 되지 말라며…."로
시작된 일기장 맨 끝에는 이런 말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다음 생엔 자식들에게 예쁨 받는 개로 태어나고 싶다고….
Attn/ 개 팔아 두 냥 반은 받았으니 한 냥 반만 받은 양반을 비꼬는 속담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