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구 펀치볼&도솔산 지구 전투 전적비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펀치볼)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능선 인근에 세워져 있다. 전투의 경과와 해병대원들의 용맹스러운 활약상이 기록되어 있으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6.25전쟁중 가장 치열했던 고지전 중 하나인 '도솔산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 그 과정에서 산화한 해병대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현충 시설이다.
1951년 6월, 우리 해병대 제1연대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도솔산의 24개 고지를 북한군으로 부터 탈환한 전투이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해병대의 용맹함을 치하하며 '무적해병'이라는 친필 휘호를 하사한 계기가 되기도 한 전투이다.
이 전투의 승리로 아군은 펀치볼 지역을 장악하고 전선을 북쪽으로 크게 끌어올리는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 할 수 있었다.
매년 6월경이면 이곳과 양구 일대에서 도솔산지구 전투 전승 기념행사가 열린다. 해병대 전우회와 지역 주민들이 모여 당시의 승리를 기념하고 전사자들을 추모한다. 전적비 주변에서는 펀치볼 특유의 분지 지형을 한눈에 조망 할 수 있어, 당시 해병대원들이 얼마나 험난한 지형에서 고지 탈환전을 벌였는지 몸소 느낄수 있다.
●양구 펀치볼 지구 전투
1951년 8월 31일부터 9월 21일까지 미 제1해병사단과 예속된 국군 해병 1연대가 강원도 양구군 해안분지 북쪽 능선의 924 고지(김일성 고지)와 1026 고지(모택동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치른 전투로, 9월 4일부터 10월 14일 사이 벌어진 가칠봉 전투와는 별개의 전투지만 해안분지 북쪽 능선 장악이라는 공통 목표가 있었다.
8월 30일, 미 해병대 제1해병사단은 602, 702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미 해병대 7연대와 대한민국 국군 해병대 1연대를 전방 배치하고 나머지 2개 연대를 예비로 배치한다.
8월 31일, 대한민국 국군 해병대 1연대 3대대가 월산령에 선점 배치된 전초 독립중대와 합류한 뒤 김일성 고지를 공격한다.
9월 1일, 오전 9시 미 해병 7연대 3대대가 702 고지로 돌격해 10시 55분경 점령에 성공한 뒤 2일에는 그 북쪽의 602고지도 점령해 사단 공격목표를 모두 달성한다. 그리고 국군 해병 1연대 2대대를 가세시켜 9월 2일 김일성 고지를, 9월 3일 모택동 고지를 점령한다.
1단계 작전이 끝난 후 한미 해병대는 다음 목표로 간무봉에서 해안분지로 뻗은 능선상의 749고지와 해안분지 북쪽 5km에 위치한 812고지를 지정, 9월 11일부터 공격을 개시하여 9월 20일에 749고지와 812고지까지 점령, 해안분지 완전 확보에 성공하면서 전투가 종료되었다.
이 전투와 가칠봉 전투로 해안분지(해안면)를 완전히 차지함으로써 제21보병사단 가칠봉 GOP 산자락 밑으로 해안분지 민가와 비닐하우스가 있는 진풍경이 펼쳐지게 되었다.
양측의 병력은 한미연합군 3만, 북한군 4만에 이르렀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연합군측은 약 1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북한군은 사상자가 최소 7천여명 이상, 유엔 추산 1만여명에 달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극도로 치열한 전투였다.
● 양구 도솔산 지구 전투
1951년 6월 4일부터 20일까지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가 강원도 양구군 해안리 도솔산 일대를 점령중인 조선인민군 육군 제5군단 예하 12사단, 32사단 2개 사단을 격파하고 대암산-도솔산 고지군을 차례대로 확보한 전투로 兜率山의 兜를 두로 읽어 과거에는 '두솔산 전투'로 부르기도 했다.
전투기간은 1951년 6월 4일부터 19일까지이다. 이 전투지구는 38선 이북의 강원도 양구와 인제 사이에 있는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악지역이며, 특히 도솔산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높이 1,000m를 오르내리는 높은 봉우리가 연이어 있으며, 기암절벽과 험하고 깊은 골짜기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좌우로 양구와 인제에서 북상하는 도로를 끼고 있으므로 만약 이 지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좌우편에서 북상중인 한국군의 전선부대가 한 걸음도 진격하지 못하게 되므로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북한 공산군은 이러한 전술적인 이점과 천연적인 지세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도솔산지구전투는 처음에 미 해병대 제1사단의 제5연대가 맡았으나 많은 손실만 입고 탈환하지 못하자, 1951년 6월 3일 한국 해병대 제1연대(연대장 대령 김대식)가 공격 임무를 인수하여 6월 4일 첫 공격을 시작하였다.
북한 공산군은 약 4,200명의 병력으로 무수히 많은 지뢰를 매설하고 수류탄과 자동화기를 퍼부으며 완강히 저항했으므로 한국 해병대는 한 걸음도 진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 해병대는 치열한 육박전과 강력한 야간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24개 고지를 하나하나 점령하면서 전진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면 적의 공격을 받아 다시 빼앗기고, 또 빼앗는 가운데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던 24개 목표 고지를 6월 19일 완전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전투에서 2,263명의 북한 공산군을 사살하고 44명을 생포했으며, 개인 및 공용화기 등 198점을 빼앗는 큰 전과를 올린 반면, 아군 또한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산악전 사상 유례없는 대공방전으로서 해병대 5대 작전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 전투로 한국 해병대 제1연대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았다. 그 뒤 해병대에서는 「도솔산의 노래」라는 군가를 제정하여 그날의 용전의 기백을 후배 해병들에게 알리고 있다.
♧DMZ평화의길 28코스 종료후 도착 지점에 있는 양구 펀치볼&도솔산지구 전투 전적비를 둘러보면서 역사의 아픈 현장을 담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