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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고향 인심인가 보다. 손님을 맞이한다는 소식을 듣고 6kg이 족히 넘는 커다란 문어를 친구가 보냈고, 또 다른 친구는 얼음을 깔은 통에 각종 회를 5박스나 보냈다. 거기다 사촌누이는 고래 고기 찌개를 준비했고, 해녀인 누나는 전복을 잔뜩 보냈다. 경매가 이루어지는 어판장에서는 커다란 광어를 산 친구가 그 자리에서 넘겨주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바다에서 막 미역을 따왔다며 미역을 보내주기도 했고, 가족들이 외출한 친구의 빈집에 들어가서 밭에 있는 엄나무 순을 따오기도 했다. 포항에 사는 김흥식씨 이야기이다.
고향의 인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그처럼 히말라야 여행 동호회 2017년 1월 ABC 트레킹에 참가했던 분들의 모습도 지난 1월, 히말라야에서 보여준 그대로 변함없이 따뜻했고 아름다웠다.
4월 21일 다른 분들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다. 미국에서 19일 밤에 공항으로 가서 20일 1:0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로 가서 다시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말썽 많은 중국 동방항공(China Eastern Airline)-지난 1월 카트만두까지 가는 길에 짐이 도착하지 않았고, 전화기도 잃어버렸던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은 이번에도 2시간 연착하며 말썽을 피웠다. 공항에 마중 나온 장춘식씨는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2시간을 운전하고 김해공항으로 와서 2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또 다시 운전하고 2시간을 와야 했다. 게다가 오는 길에 부산에서 한 군데 들려 사업상의 일을 해야 했으니 미안한 마음은 더해만 갔다.
포항에 도착하니 김흥식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우리는 고래 고기 찌개가 준비되어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앉자마자 고래 고기 찌개에 소주와 맥주를 마시며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쫄깃한 밍크 고래의 고기 맛을 즐기며 히말라야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음에 감사했다.
고래 고기 찌개를 끓이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고래 고기 찌개
대낮부터 마신 술에 따듯한 정이 더해져 얼굴도 마음도 불콰해졌다. 대리운전자를 불러 터미널 근처로 나가 김흥식씨와 나를 내려주고, 장춘식씨는 토요일 아침에 할 일이 있어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떠났다.
둘은 제일 큰 호텔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 보니 커다란 침대 하나가 있었다. 어떻게 사내 둘이 한 침대에서 잔단 말인가. 이만 닦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칫솔 대금만 지불하고 나가겠다고 하니 칫솔 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도 훈훈한 인심이 살아 있었다. 온돌방이 있는 호텔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바로 앞집으로 가라고 했다. 앞집에는 온돌방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자리를 펴고 누웠다.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한잠 자고 일어나니 토요일 오전 1시 30분, 김흥식씨는 요를 깔지도 않고, 이불도 덮지 않고 맨바닥에서 옷도 다 벗은 채 자고 있었다.
회사와 연결해 직원들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와이파이가 되냐고 물으니 안 된다고 했다. 히말라야 롯지에서도 되는 와이파이가 안 된다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에 들어가 가까이 있는 피씨방이 어디인가 물어 찾아 나섰다. 피씨방은 담배연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젊은 남녀들이 열심히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소리도 지르고 박수도 치면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모두 자기들의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3시간 만에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호텔에 돌아오니 김흥식씨는 나갈 때와 똑같은 포즈로 자고 있었다.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대로 꿈속으로.
2017년 4월 22일(토)
오늘은 히말라야 여행동호회 2017년 1월 ABC 트레킹 팀 재회행사가 있는 날이다.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을 위해 산나물을 사기 위해서 김흥식따라 새벽시장에 갔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자신이 따온 나물을 팔기 위해 즐비하게 판을 벌려 놓고 있었다. 한 바퀴 돌면서 각종 나물을 사기 시작했다. 너무 많지 않을까 싶었지만 참가한 분들이 나눠서 갖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김흥식씨는 제법 많은 양을 준비했다.
그리고 아침으로 시장 한 복판에 문을 연 식당에서 도루묵찌개를 먹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김흥식씨 댁으로 가서 그 밖의 준비한 여러 가지를 차에 실었다. 그리고 김흥식씨 친구집에 들려 엄나무 순을 따고 다시 김흥식씨 별장에 들려 두릅나무 순을 땄다. 새벽시장에서 산 것까지 합치면 상당한 양이다.
양포항으로 갔다. 바닷바람을 쐬며 방파제 위를 걸었다. 김흥식씨 친구가 전화했다. 문어를 주겠다는 바람에 바로 주차장으로 다시 갔다. 친구가 커다란 문어를 한 마리 주었다. 살아있는 문어를 산채로 보관하기 위해 김흥식씨는 자기 친형의 배로 가서 배의 한 가운데 있는 고기들 보관을 위한 곳에 문어를 넣고 해삼과 소라 등을 꺼내왔다. 앞의 가게에서 막걸리와 소주를 사서 아침 해장술을 시작했다.
양포항 전경
양포항에 천막을 칠 수 있는 야영장이 있었다.
봄바다의 향이 듬뿍 담긴 꼬득꼬득한 해삼에 막걸리, 소주, 몇잔 마시고 있는데 장춘식가 왔다. 셋이 다시 한 잔, 두 잔 나눠 마시다가 오늘 모임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사기 위해 양포 마트로 갔다. 이것저것 물건을 잔뜩 사서 차에 싣고 오늘 모임 장소이자 숙소인 신창2리 어촌 체험 마을로.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두 분은 나물을 삼기도 하고,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참이인데 염치불구하고 자리 펴고 누웠다. 잠이 와서 어쩔 수 없었다.
해삼과 소라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두 분이 맞춰 놓은 회를 픽업하러 가야한다고 길을 나섰다. 준비한 상추와 깻잎, 쑥갓을 씻기 시작했다. 대단한 양이었다. 잠시 후에 김흥식씨의 부인이 각종 기타 등등의 물품을 들고 왔다. 대학에서 무역경영학을 전공하는 만학도가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부군의 오늘 모임을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해 왔다.
숙소인 신창2리 어촌체험마을 앞의 바다
신창2리 어촌 체험마을 전경
회 다섯 박스 가운데 한 박스
상추와 쑥갓, 깻잎을 올려 놓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다 지쳐서 한 잔씩 나누며
상에 씻은 상추와 깻잎 쑥갓 등을 펼쳐 놓고, 방금 갖고온 회에 소주와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는데 울산에서 만나서 온 독수리 4형제의 3형제가 도착했다. 이어서 서울에서 떠난 분들이 익산으로 가서 서천에서 떠난 분과 만나 한차로 왔다며 도착했다. 판이 시작되었다. 마시고 또 마시고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드디어 서울서 떠난 또 한 팀이 도착했다.
포항 2명, 미국에서 온 1명, 독수리 4형제중 3분, 서울1팀 4분+서천 1분, 서울 2팀 4분 등 모두 15명에 포항 김흥식씨의 부인 등 16사람이모였다. 재회행사의 밤은 깊어갔다.
서천의 맑은 샘님은 이날, 소곡주 한 박스를 준비해 오셨습니다. 상위에 초록색 큰 병이 소곡주입니다.
문어를 손질하는 두 식씨들
문어가 이렇게 클 수도 있네요.
서울 2팀이 막 도착했습니다.
오영철 대장이 이날을 위해 다섯 병의 술을 준비해왔습니다. 백주 2병, 네팔술 2병, 또 다른 백주 1병 등. 네팔 술입니다.
아름다운 밤입니다
먼저 시작한 팀은 꿈나라로 가고 늦게 시작한 팀은 계속.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며 흘린 땀으로 맺어진 끈끈한 우정이 바로 거기 있었다.
2017년 4월 23일(일)
아침에 일출을 보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숙소 앞이 바로 바다다. 일출을 히말라야에서 보고 왔지만 바다의 일출은 언제 봤는지 기억에 없어 기대가 컸다.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김흥식씨와 장춘식씨가 어판장에 함께 가겠냐고 물었다. 따라 나섰다. 양포항 어판장에서는 방금 잡아온 물고기들을 놓고 경매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물고기를 바닥에 쏟아 놓으면 사람들이 자기가 사고 싶은 가격을 손가락으로 표시한다. 경매사가 그 가격을 읽은 후에 소리치면 사고 싶은 사람들이 사인을 계속 보낸다. 더 이상 가격이 올라가지 않으면 그것이 가격이 된다. 커다란 통의 아구, 커다란 광어, 문어, 기타 등등.... 우리는 커다란 광어 한 마리를 경매로 산 사람으로부터 그 자리에서 샀다. 물론 아는 사람이라 거의 이득을 남기지 않고 넘겼다고 한다. 거기다 커다란 대구 한 마리를 덤으로 얻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어판장에서 방금 딴 미역이 왔으니 와서 갖고 가라는 연락이 왔다. 부지런히 달려가서 미역을 얻어와 깨끗이 씻어 아침 식탁에 올렸다.
경매사가 팔 생선을 바닥에 쏟아 부으면 경매가 시작된다
입찰에 참가한 사람들이 빨간 모자를 쓰고 경매에 임하고 있다.
그 사이에 해는 솟아 올라 있었다.
대구탕을 끓이고 광어는 바로 회를 떠서 아침부터 새로 시작한다. 싱싱한 광어회, 소주,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어젯밤에 먹다 남긴, 따지도 않은 네팔 술, 돗수가 자그마치 43도다. 그러나 싱싱한 광어가 있으니 술술 잘도 넘어간다.
대구탕도 알맞게 끓여졌고, 맛도 일품이다. 그릇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땅한 탕을 담을 그릇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아침식사는 일찍 일어난 사람들부터 늦게 일어난 사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판장에서 사온 광어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모르지만 앞뒤로 나누어 찍었다.
우리의 호프 김흥식씨가 대구탕을 끓이기 위해 대구를 다듬고 있다.
방금 손질한 광어를 도마에 올려 놓은 채 상으로 갖고 왔다. 한 점, 한 점 바르는대로 먹었다.
방금 채취해온 미역을 배에서 내려 옮기고 있다.
흥식씨가 광어회를 뜨고 있다.
아침부터 소주를 마시고 있다.
숙소 신창 2리 어촌체험마을 앞에서 미역을 말리기 위해 미역판을 짜는 아주머니
한쪽에서는 선생님들의 담화가 이어지고 있다.
설거지가 바쁘다.
독수리 4형제는 선생님들이다. 독수리 한 마리가 상을 닦고 있다.
또 한 마리의 독수리는 설거지
한 쪽에서는 여전히 소주를 마시며
실컷 먹고 부지런히 남은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뜯지도 않고 남은 뱀장어 한 박스와 먹다 남은 회들을 그대로 챙겼고 남은 각종 나물과 기타 등등도 자동차로 옮겼다. 버리고 가면 그대로 버려질 것 아닌가.
그때 우리의 해결사, 꼼꼼한 회계, 맥가이버가 두 식씨 두 분이 1박 2일 동안 식비 및 숙박비 등을 부담하기 힘들 거라며 한 사람당 3만 원 정도를 각출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금요일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서둘러 나와 환전을 못한 상태라 달러 밖에 없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100달러를 냈다. 두 분이 해준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성의를 보태니 다소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점심식사는 양포 삼거리 식당에서 아구탕으로 하기로 했다. 모비도님이 점심값을 지불했다. 아구탕을 맛나게 먹었다. 물론 소주를 곁들여.
양포 삼거리 식당의 아구탕
이별이 아쉽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마는 헤어지지 않으면 다시 만날 수 없기에 우리는 헤어진다. 작별인사를 하면서 다음에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언제 만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호미곶에 들렸다 가기로 한 분들-모두 여성분들이다- 차에 동승했다. 마침 내가 용무가 있는 세종시를 지나간다기에 타기로 했지만 네 분이 뒤에 엉켜서 앉아 가는 걸 보면서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네 분이 모두 다 날씬하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호미곶에서 바다에서 올라온 손바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커피 값이나마 내기를 원했지만 이마저도 차례가 오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뒷자리의 네 분이 서울행 KTX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만 했다.
네 분을 내려주고 서천으로 가는 운전자 맑은샘님 곁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세종시로 향했다. 몇 번인가 미안함을 표시했으나 가는 길이라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았다. 대전역에서 일단 내일 행선지이자 비행기를 타야할 김해공항으로 가기위해 표를 미리 사기로 했다. 구포역까지 2만 5천원, 참 싸다. 미국에 비해 교통비가 싸다.
세종시에 도착했으나 마땅히 내릴 곳을 찾지 못해 적당한 곳에 내려 달라고 했다. 갈 길이 먼 분을 끝까지 괴롭혀드려 죄송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재회행사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첫댓글 아구탕이 먹고 싶습니다~~그날 제가 제일 많이 먹은것 같아요...ㅎㅎ
저도 만만치 않았을 걸요. 2박 3일 동안 먹었던 각종 회, 흥식씨가 아침에 해장국으로 끓인 대구탕, 점심으로 먹은 아구탕은 두고 두고 기억날 것입니다. 벌써 먼 옛날 일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ㅎㅎㅎ.
참 정겨워 보입니다 ...^^
예. 제가 참 운이 좋은가 봅니다. 이렇게 멋진 분들 만나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니 말입니다. 언제 봐도 정겨운 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