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렛, 공존을 모색하지 않으면 공멸이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중에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 있다. 11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연작 소설인데, 그 중에 아홉 번째 ‘일용할 양식’이라는 작품은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이천점의 개장에 맞춰 한번쯤 진지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 지역에서 쌀상회를 운영하던 사람이 취급품목을 확장하자,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사람이 똑같은 방법으로 대응을 하면서 둘 사이에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가격인하 경쟁을 시작한다. 주민들은 그 덕분에 싼 가격에 물건을 구할 수 있어 좋아하지만 그 상황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천에 아울렛이 들어서면서 30년 전 소설 속에 펼쳐졌던 상황이 우리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아울렛 개장 후 수많은 사람이 줄을 이었다. 주말에는 아직 제대로 개통되지 않은 주변도로 상황을 질책하듯이 수없이 몰려든 차량으로 인근 도로가 마비될 정도였다.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아울렛은 첫발을 디디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역 상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활성화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이천시의 예측이 옳았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분명한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중앙통의 상인들은 변화를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시민들도 당장은 아울렛을 찾는 것이 잇속을 챙기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자칫 중앙통이 붕괴하면 그 여파가 어떻게 밀어닥칠지 몰라 예의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이제 아울렛이 지역경제의 보탬을 주는 동반자로 가느냐, 아니면 각종 혜택을 받으며 자신의 배만 채우는 거대재벌 그룹의 괴물로 성장하느냐의 길이 놓여 있다. 동반자로 서면 공존의 길이 열리는 것이고, 괴물의 길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곧 공멸의 길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모든 것이 그리 밝은 전망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시작부터 시비가 벌어지고 있는 아울렛의 정체성 논란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롯데는 아울렛의 장기적인 비전을 분명하게 점검하고 지금이라도 당장 거기에 맞게 운영해 나가야 한다. 아시아 최대 프리미엄 아울렛을 내세우면서 글로벌 브랜드는 33%에 불과한 것은 무슨 연유인가? 자칫 아울렛이 롯데백화점 등에서 재고 처리가 어려운 국내 브랜드를 헐값에 처분하는 ‘땡처리용’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또한 해외명품을 취급함으로써 관광객 유치에도 일조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고는 정작 국내 브랜드까지 저가로 판매하면서 유통구조를 깨뜨리며 지역상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현상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이것은 롯데와 지역상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천시와 시민들 모두의 문제다. 그 중에서도 제일 큰 역할과 책임을 져야 할 곳은 이천시와 관계자들이다. 현재 상황으로 봐서 아울렛을 찾는 방문객들이 시내로 유입될 확률은 거의 없다. 서울근교일 뿐만 아니라 이천시에 대한 특별한 매력을 찾을 것이 없어서 당일치기로 아울렛만 들렀다 떠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울렛에서 거둬 들이는 세수는 늘어날지 모르지만, 중앙통 시장의 붕괴로 자칫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세심한 검토와 정책입안을 통해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또한 중앙통 상인들도 이제는 글로벌 시대에 맞게 새로운 트랜드를 갖춰 나가기 위해 심기일전해야 한다. 지금은 변화의 주기가 훨씬 빨라졌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책을 강구하면 살아 남을 수 있지만, 기득권만 내세우며 현실의 변화를 직시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롯데도 이천지역에 뿌리를 내린 이상 공존의 길을 제시하고 함께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앙통 상인들을 공존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공존의 길을 찾으면 번창할 수 있지만, 자칫 경쟁의 상대로만 여겨 가격경쟁력만 고집한다면 저항을 받아 공멸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