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 뒤로는 편전(便殿)인 "사정전"(思政殿)으로 들어가는 문(門)인 사정문(思政門)이 있다.
사정(思政)은 "시경"(詩經)의 구절에서 인용한 "생각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우면 성인(聖人)이 된다"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사정전(思政殿)은 경복궁(景福宮)의 편전(便殿)으로, 왕의 일상적인 "집무실"(執務室)이다.
왕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편전(便殿)이며,
많은 "어전회의"(御前會議)가 이루어지고 신하들과 토론을 하고, 경연(經筵)이 이루어 지는 장소다.
사정전(思政殿)의 명칭은 처음 경복궁(景福宮)을 지을 때 "정도전"(鄭道傳)이 이름지었고,
현판(懸板)은 경복궁(景福宮) 중건때인 1867년에 이조판서(吏曹判書) "조석우"(曺錫雨)가 썼다고 한다.
사정전(思政殿)은 벽이 없고 문위에도 격자형(格子刑) 창호(窓戶)를 붙여 내부를 밝게 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추울 때는 사용을 하지 못하고 좌우의 "만춘전"(萬春殿)이나 "천추전"(千秋殿)을 이용했다고 한다.
사정전(思政殿) 내부는 마루바닥으로 되어 있으며 왕이 앉는 어좌(御座)뒤로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가 있으며, 위로는 "운룡도"(雲龍圖)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경복궁 내의 유일한 벽화라고 한다.
발톰이 네개인 "운룡도"(雲龍圖)
만춘전(萬春殿)은 사정전(思政殿)의 동쪽에 있는 보조 전각으로 바닥이 온돌로 되어있다.
사정전(思政殿)이 온돌이 아닌 마루로 되어 있어서 추울 때에 이곳을 편전(便殿)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만춘"(萬春)은 만 년의 봄으로 "길고 오랜 세월"을 뜻하며 오랫 동안 바른 정치를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만춘전(萬春殿)의 좌측 기단부에 두 개의 아궁이가 보인다.
만춘전(萬春殿)은 동쪽을 뜻하므로 동쪽 건물이고 계단도 동쪽인 우측에 설치되어 있다.
만춘전(萬春殿)은 6.25때 완전 파괴되어 터만 남아있다가 근래에 새로 만들었다.
천추전(千秋殿)은 사정전(思政殿)의 서쪽에 있는 보조 전각으로 가을과 겨울에 편전(便殿)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오행에서 서쪽은 가을이므로 "秋"를 사용하였고 계단도 서쪽인 왼쪽으로 놓여 있는데 건물의 규모는 만춘전 보다 작다.
천추전(千秋殿)은 세종(世宗)이 집현전 학자들과 많이 만났던 곳이라고 한다.
천추전(千秋殿) 우측 기단부에 두 개의 아궁이가 있다.
사정전(思政殿)앞 사정문(思政門)좌우는 "근정전"(勤政殿)의 북측 행각(行閣)으로
왕실의 개인 재물을 보관하던 "내탕고"(內帑庫)다.
천자고(天字庫), 지자고(地字庫), 현자고(玄字庫), 황자고(黃字庫), 우자고(宇字庫), 주자고(宙字庫),
홍자고(弘字庫), 황자고(黃字庫), 일자고(日字庫), 월자고(月字庫)등 모두 10개의 창고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기둥위의 익공(翼工)이다.
익공(翼工)위쪽에는 다지창(多枝槍)을 만들어 박아놓아 새들이 앉지 못하게 한것이다.
근래에 만든것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새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