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병재~안양산~백마능선~장불재~입석대~서석대~중봉~증심사~주차장
차창빡의 경치
입장료를 아끼기위하여 10시30분 화순군 안양산 휴향림 옆으로 산행을 시작하다
백마능선:안양산에서 장불째까지 이어지는 능선으로 부더럽고 경관이 매우 아름다우며 봄이면 진다래와 철죽이 가을이면 억새가(가을이면 고산초원으로 사람 키보다 큰 얼새밭이 백마의 잔등처럼 각선미를 자랑하며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데, 억새곷 바람에 흔들리면 마치 백마가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백마능선이라 부른다)겨울에는 설화가 피어나는데 해발 800m이상의 높이에 습도가 높은 바람이 적당히 불어야 최고로 아름답게 상고대(눈꽃)가 형성된다
광주와 화순의경계가 되는 지점으로 해발900m, 엿날에 동북과 이서 사람들이 광주를 오고갈때 지나던 고개이나 평상시에는 넘나들기 어렵고 필요한 물건을 꼭 사야하는 장날이나 이 고개를 넘나들며 장을 보았다하여 장불재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원래 장불재는 장골재라고 불렀는데 장골 즉 긴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 위 부분에 있는 긴골재를 장골재라고 불던 거이 이곳에 장불사가 생기면서 장불치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후 자연스럽게 장불재라고 부르게 되었다
무등산(無等山)은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및 전라남도 화순군과 담양군에 걸쳐 있는 높이 1,187m의 산이다. 주봉우리는 천왕봉이며 1972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과 경상남도 남해에 있는 거제도가 보인다.
이름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주에 있는 산이라 하여 무진악 또는 무악이라 불렀고, 대개 큰 산이 그렇듯 무속과 연관하여 무덤산, 무당산이라고도 했다. 무등산은 대체로 바위가 아니라 흙으로 이루어진 산이지만, 정상 부근 서석대, 입석대, 규봉의 바위가 웅장하며 아름답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는 서석산이라고 불렀다. 불교 전래 후 부처가 세상 모든 중생과 견줄 수 없이 우뚝하다는 존칭으로 옛 이름과도 유사한 무등산(無等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다만, 이는 같은 우리말 이름에 대한 한자표기를 바꾸어 해석을 달리했을 뿐으로, 원지명은 광주의 고유지명인 무들 또는 무돌에서 비롯한다. 무진(武珍)에서 珍은 오늘날에는 한자음으로 진으로 읽으나, 과거에는 새김으로 읽어 들,돌로 발음하였고, 무등(無等)또한 비슷한 음차표기이다. 이두표기로 水入伊란 지명도 있어서 방증된다.
경관
산의 정상에서 서쪽으로 돌아가면 수십길이 되는 북모양의 석조 수십 개가 울을 둘러막은 듯 서 있는데 이것은 서석대(瑞石臺)이다. 산허리 남쪽에는 입석대가 있고 동쪽으로 가면 수백 척 되는 세 개의 거석이 서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삼존석(三尊石)이다.그 부근에는 송하, 광석, 풍혈, 장추, 청학, 송광, 능암, 법화, 설법, 은신 등 10개의 석대가 있는데, 그 중 광석, 풍혈은 강봉의 입석과 함께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산의 동서 두편 사이에는 바위돌을 깎아 세워놓은 듯 솟아 있는 석벽이 있고, 그 석벽 가운데는 지공(指空) 너널이라는 천작의 석실이 있는데 옛날 지공과 뇌공(懶空)이라는 두 선사의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원효, 증심, 규봉의 세 절이 있는데 모두 신라의 고찰이며, 규봉암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의 명장이었고 또 정충(精忠)으로 알려진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여기서 무예를 닦았고, 산중도처에 유적이 많다. 특히 장군의 여러 가지 기적을 남긴 주검바위가 가장 유명하다.
등산로인 옛길 1구간은 산수오거리-청풍쉼터-충장사-원효사 구간이고, 옛길 2구간은 원효사-공원관리사무소-서석대에 이르는 구간이다. 2구간 코스는 길이가 4.12㎞로, 오르는 데만 2시간 정도 걸린다. 공원관리사무소 뒷길로 들어서 주검동(쇠로 무기를 만들던 곳)과 충장공 유적지 옆을 지나 원효계곡 상류를 따라 군사작전도로와 만난다. [2]
무등산 도립공원
1972년 5월 22일에 도립공원(전남고시 제85호)으로 지정되었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화순군 및 담양군에 위치하고 총 면적은 30.23㎢이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화순군 이서면과의 경계에 있는 무등산은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산세가 부드럽고 웅장해 성산으로 불리운다.
백제때는 무진악. 신라때는 무악. 고려때는 서석산. 그밖에 무정산. 무당산. 무덕산등으로 도 불렸으며 능선을 따라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이 기묘한 형상의 봉우리로 난공불락의 요새인양 위압적이고 산 정상부의 능선은 백마능선으로 불리며 억새밭이 펼쳐지고 봄 철쭉. 여름 계곡. 가을 단풍. 겨울 설경등이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이어서 무등산 3대절경으로 불리는 입석대. 서석대. 광석대가 있는데 이 세 명승을 묶어서 무등산3대석경이라 부른다.
입석대는 높이10m∼15m의 석주 수십개가 신전같은 분위기로 남쪽을 향하여 반원형태로 서있다.
서석대는 서쪽으로 늘어선 장승같은 석주들이 저녁노을에 반사되어 수정같이 빛난다 하여 무등산을 일명 서석산이라 한것도 여기에 기인 한다.
무등산은 무돌뫼(무진악), 무당산, 무덤산, 무정산, 서석산 등의 별칭을
갖고 있다. 무진악이란 무돌의 이두음으로 신라 때부터 쓰인 명칭이다
무돌의 뜻은 무지개를 뿜는 돌이란 뜻이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불려진 이름으로 비할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뜻이다.
무등산에는 수많은 볼거리가 많이 있는데 어떤 것은 멀리서도 바라볼 수있도록 우뚝 솟아 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가까이 가서야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무등산은 오르기에 가파르지 않다.
그래서 휴일이면 무등산의 경승을 즐기려는 인파가 끊이지 않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간편한 옷차림으로 산을 찾는다. 볼만한 풍경이 있는 구경거리는 서석대, 입석대, 세인봉, 규봉, 원효계곡, 용추계곡, 지공너덜, 덕산너덜 등이 있다. 전망을 즐기려면 중머리재, 장불재, 동화사터, 장원봉 등이 있다. 이 중 화순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입석대, 규봉, 지공너덜, 장불재, 백마능선, 규봉암에서의 동복호 조망 등이 있다.
☆무등산☆
무등산은 해발 1,186m 산으로서 나주평야를 내려다보는 산중에는 많은 명승고적이 있습니다. 무등산 일대에서는 김덕령 장군을 비롯한 많은 선열·지사(志士)·문인·예술가·정치인 등이 배출되었으며, 또 무등산의 정기는 광주학생운동을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무등산에서만 출하되는 무등산 수박은 여름별미중에 별미입니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瑞石山)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부른 이름으로 '무돌', '무진'이라 했던 것이 무등산으로 바뀐 것이다.
무등산의 어원에 대해서 몇가지 설이 있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등산의 '무등'은 앞서 적은 바와 같이 '무돌'의 이두음인데, 이 '무돌'에는 옛 농경사회의 보편적 지명인 '물둑(水堤)'이라는 뜻과 순수 우리 옛말의 조어인 '무지개를 뿜는 돌'이라는 뜻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고,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뜻도 있겠으나 이미 '무당산' 대목에서 말한 대로 '당산'과 비슷한 음을 따서 한자로 나타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노산은 이 산이 불교적 영장(靈場)이 된 뒤에 불교적인 가치를 설명한 이름일 것이라고주장하기도 했다. 불교사전(동국역경원 간)에 으하면 '無有等等'은 부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있어서 견줄이가 없다는 뜻이라 하니 결국 무등산은 불교의 이 말을 빌려다 이름으로 삼아 불교적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이라고 하겠다. 과연 이 주자에 걸맞게 부등산은 불교와 인연이 적지 않다. 곳곳에 수많은 사찰과 고승들의 전설이 서려 있고, 산의 경관이 좋은 곳마다 불교적 명칭들이 남아 있다. 지왕봉을 비로봉, 인왕봉을반야봉이라 부르기도 하며, 삼존석(彌勒, 觀音, 如來)이나 의상봉, 윤필봉, 규봉의 법화, 설법, 능엄 등 여거 대(臺)의 이름에서도 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광주를 대표하는 무등산은 해발 1,187m로, 광주의 동쪽과 담양군 남면, 화순군 이서면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는 명산이다.
무등산의 자랑은 여러곳의 웅장한 기암괴석을 들 수 있는데, 규봉암, 입석대, 서석대 등이 그대표적인 곳이다.무등산은 봄의 진달래와 철쭉, 가을의 억새, 그리고 겨울의 설화가 유명하다.
백제 이전에는 무돌, 또는 무당산이라고 불리었으며, 신라때에는 무진악, 무악이라 했다. 고려에 와서 한때는 서석산이라고 불리다가 그뒤 무등산이라 했다.
현재 무등산에는 약 1백 53과 8백 97종의 한국온대남부식물이 고루 분포하고 있으며, 여러 사찰과 각종 문화재 및 많은 전설을 지니고 있다.
남도의 진산인 무등산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지키기위해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있다. ☆
당산나무
증심사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있는 절로, 기록에 따르면 철감선사 도윤(798∼868)이 신라 헌안왕 4년(860)에 지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려 1970년 대웅전을 시작으로 각종 부속 건물들을 차례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오백전, 지장전, 비로전을 비롯하여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있다. 이 중 오백전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백전은 대웅전 뒤에 있는 건물로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다. 안쪽에는 오백 나한상을 모시고 있는데 조선 세종 25년(1443)년 절을 고쳐 세울 때 지은 것이라 전하고 있다. 대웅전은 절의 중심 건물로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비로전에는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증심사에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131호)을 비롯하여 삼층석탑(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과 석조보살입상(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이 있다
9세기 중엽 신라의 철감선사(澈鑑禪師)가 창건했고, 고려시대인 1094년(선종 11)에 혜조국사(慧照國師)가 중수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 1443년(세종 25)에 전라도 관찰사 김오(金傲)가 다시 중창했다. 그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1609년(광해군 1) 석경(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 등 3명의 선사가 다시 세웠으나 6·25전쟁 때 오백전(五百殿)과 노전(爐殿:四聖殿)만 남고 대부분 불타버렸다. 1970년 크게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재 당우로는 대웅전·오백전·명부전(冥府殿)·회심당(繪心堂)·학산장서각(鶴山藏書閣)·요사채 등이 있다. 오백전은 대웅전 뒤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전내에는 1443년 중창 때 김오가 조성한 것이라 전하는 오백나한상이 있다. 오백전 옆에는 보살입상이 1구 있는데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