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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시는 심령으로 주님 성전을 찾으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말씀의 깨닫음과 바른 이해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성령의 감동하심이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함께 교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내게 있는 향유 옥합은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시몬의 집에서 열린 잔치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성경이 4복음서이죠?
하나님의 보좌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네 생물이 받치고 있는 것처럼 4복음서는 각각 예수님의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어떤 모습이라고 했습니까? 지상동물의 왕 사자로 그래서 왕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기록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가는 종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고요.
그래서 족보가 없습니다. 종에게 무슨 족보가 필요합니까?
그리고 우리가 안식일에 한번씩 들으시는 세 번 째 복음서인 누가 복음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하늘의 왕 독수리로 그리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사람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작을 요한은 태초부터 계셨던 그리스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고는 다 같은 사람이죠? 마태와 마가 누가는 왕이시고 종이시고 사람이신 예수그리스도 다른 말로는 다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글은 비슷한 곳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 세권의 성경을 공관 복음이라고 합니다.
공관이라는 말의 의미는 공통관 관점이라는 뜻입니다.
공통된 관점에서 기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4권의 성경 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이죠? 그래서 복음서라는 의미에서는 비슷한 책이고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다른 복음서와 좀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된 내용들도 다른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그리스도를 볼 때 그분을 하나님으로 보고 하나님이심을 증거한 책이 요한 복음입니다.
그래서 공관복음에 기록된 내용들이 요한 복음에 없는 내용들이 많고요.
요한복음에 기록된 내용들이 공관 복음에 없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옥합과 관련된 내용은 공관복음과 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이 전한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럼 중요하다는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에게 정말 유익한 내용일까요?
오늘 제가 옥합과 관련된 내용을 다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도 옥합과 관련된 내용을 많이 설교 하였지만 할 때마다 다르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말씀의 의미들이 너무 귀한 내용들이 많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 개인적으로 말씀을 보실 때마다 성령으로 말씀을 깨닫고 교회에서 받은 은혜보다 더 넘치고 풍성한 감동을 많이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외에 주요 인물이 두 사람 나옵니다.
옥합을 깨트린 여인을 비판한 가룟 유다까지 세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초대한 한 바리새인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누가 복음에는 그의 이름이 시몬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바리새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다른 복음서를 통해 그와 관련된 정보를 좀 더 접할 수가 있습니다.
막14: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라는 말씀을 주고 있어서 아 예수님을 초대한 사람이 나병환자 였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유태인들은 나병환자와 같이 식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왜요?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같이 앉아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의 병이 어떻게 되었기 때문입니까?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나병이 회복될 수 있는 병입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병이 되었습니다만 그 당시는 아니죠 얼마 전 까지만 하여도 나병은 불치의 병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그의 병이 어떻게 회복되었을까요?
증언의 말씀은 이런 답을 주고 있습니다.
시소 557 “시몬은 문둥병에서 고침 받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께 이끌려갔다. 그는 감사를 표하고자 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베다니를 방문하셨을 때에 그는 구주와 그 제자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시몬이 어떤 사람이었다고 합니까? 나병환자였다.
다른 말로는 절망적인 사람이었다는 말씀이죠?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고침을 받고 건강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이제 다른 한 사람을 보겠습니다.
누가는 그 여인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눅 7: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누가가 소개하는 옥합을 가지고 온 이 여인은 어떤 여자라고 합니까?
그 동네에라는 말씀은 시몬이 살고 있었던 베다니라는 마을에 함께 살았던 여인이고요.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몰라도 죄를 지은 여자라고 누가는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특별하게 다른 점을 말하고 있지 않고요.
사도 요한의 기록을 보면 그 여자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향유를 가지고 온 이 여자가 누구라고 합니까? 마리아
이 마리아는 마르다와 죽어 삼일을 무덤에 있다가 살아난 나사로의 동생입니다,
그런데 그가 죄인이었다고 하죠?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 죄를 용서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향유를 깨트렸을까요?
마리아가 들고 온 향유도 어떤 것인지도 알아야 하겠죠?
누가는 그냥 향유라고 기록하고 있고요,
마태는 “매우 귀한 향유” 라고 언급하고요,
마가는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이라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말에 의하면 그 나드 한 옥합은 다시 팔아도 300데나리온에 팔 수 있는 향유라는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라고 합니다.
제가 수년 전 인력 사무실에 일을 하여서 그 당시 노동자 일당이 얼마인지 압니다.
삼년 전에 노동자 일당이 12만원이었습니다. 지금은 얼마정도인지 잘 모릅니다.
쉽게 계산하기 위하여 10만원씩 잡으면 300데나리온이면 얼마가 됩니까?
3000만원 입니까?
노동자들이 일년을 모아야 모을 수가 있는 돈입니다. 그렇습니까?
아마도 큰 수익을 보는 직업을 가지지 못한 여인들은 평생 모아야 되는 그런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평생을 일을 하여도 3천만원이 아닌 천만원도 없습니다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있어서도 아마도 지금까지 모은 그런 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가 이해하는 정보로는 이스라엘 처녀들은 나드향 옥합을 다 구입하여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첫날 밤에 그 향을 사용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리아에 대한 정보 또 하나가 있습니다.
눅 7: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어떤 여자라고 합니까?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죄를 지은 여자라고 합니다.
39절은 이러한 기록이 있습니다.
눅 7: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은 중요 인물 두 사람 중 한 사람임 그 집주인 시몬이죠?
시몬이 속으로 하는 말이 성령으로 알게 해 주시어서 누가는 시몬이 속으로 말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속으로 말을 많이 합니까?
미워 죽겠어 이런 생각들 많이 합니까? 저 사람은 왜 죽지 않고 살아서 속썩이지 이런 생각들도 하십니까?
간다고 하면서 왜 빨리 가지 않지 라는 생각들은 하지 않으십니까?
너무 미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늘에 이르게 되면 천년기 후에 어린양의 대관식때 우리 모든 성도들의 죄들도 영화 필름처럼 모든 우주 거민들 앞에 다 들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회개하고 구원받았는지 보여 줄 것입니다.
비록 용서 받고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바르지 못한 생각들 감추어있는 죄들이 들어나면 좀 부끄러울까요?
그날 좀 덜 부끄러움을 가지시려면 오늘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생각들도 성령에게 굴복시켜 성령께서 하기를 원하는 생각들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우리의 생각과 마음들이 성령께서 지배하는 마음들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였다는 것은 마리아의 죄가 남을 속이고 훔치고 하는 죄 이상의 죄를 지었다고 볼 수 있습니까?
도대체 마리아는 어떤 죄를 지었을까요?
시몬과 마리아의 관계를 증언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소 566 “시몬은 그가 지금 멸시하는 여인을 죄 가운데로 유인하였었다. 그 여자는 그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했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마리아가 죄를 짓게 된 것이 누구 때문이었다는 말씀입니까?
시몬이 죄를 짓도록 유도하였기 때문에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시몬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했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몬이 그 여자를 무엇 때문에 죄를 짓도록 이끌었을까요?
요한복음 8장에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하여 계획된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 8:3,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무슨 말씀인지 다 잘 아시죠?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왔다, 무슨 이유에서 였습니까?
6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 8: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를 시험하여 함정에 빠트려 예수를 죽이려고 만들어진 함정입니다.
성경과 증언의 말씀은 여기까지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근데 저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을 종합하여 살펴볼 때 바로 이 여인이 마리아였다 라고 이해를 합니다.
간음 중에 잡힌 사람을 끌고 오려면 몇 사람이 끌려 와야 합니까?
두 사람이 와야 하죠? 그런데 연약한 여자만 끌려 왔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사람들과 연합하여서 예수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하여 한 여인을 희생시키는 일에 앞장을 섰고 그 여인이 마리아였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니 누구의 죄보다 누구의 죄가 더 큽니까?
끌려 나온 여인의 죄 보다 예수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한 목적으로 한 여인을 간음의 함정으로 빠트린 사람의 죄가 더 큽니까?
그래서 예수께서는 시몬의 마음 속에 꽁꽁 숨겨져 있는 죄를 들어내어 회개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런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 7: 41,42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쉬운 예기로 한 사람은 6000만원 빛을 졌고, 다른 한 사람은 600만원 빛을 졌다, 그런데 빛을 준 사람이 둘 다 탕감해 주었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에서 시몬은 6000만원 빛진 사람이고 마리아는 600만원 빛진 사람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입고도 네가 한 것은 너의 이름을 내기 위한 잔치를 배설하고 우리가 들어 올 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태인들의 관례를 하나 말씀드리면 이 말씀의 의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유태인들의 신은 대부분 샌달이었습니다.
오늘날 구두와 운동화와 같은 발을 다 가리는 신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샌달을 신고 포장길이 아닌 비 포장길을 다니면 발이 어떻게 됩니까? 더러워 집니다.
그러면 초대 받아서 그 집으로 들어가면 그 집에서 손님을 위하여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예의가 손님들의 발 씻을 물을 떠가지고 와서 종들을 시켜 발을 씻으주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이 잔치를 열어 놓고 손님 대접을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근데 누구는 무엇으로 발을 씻어 주었다고 합니까?
300데나리온이나 나가는 그 나드 향유와 자기의 눈물로 나의 발을 씻어 주었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입마추지도 않았는데 이 여인은 향유와 눈물로 나의 발을 씻고 발에 입을 맞추고 있다.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선 진정한 회개와 용서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죠?
회개와 용서는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말씀처럼 보입니까?
진정한 회개는 용서를 받은 다음에 그가 보이는 행동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은 그 교만한 바리새인은 회개하였을까요? 겸손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증언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소 568 “회개함으로 그의 교만은 겸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바리새인은 겸손하고 자아를 희생하는 제자가 되었다. 마리아는 큰 죄인처럼 주목을 받았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생애를 꼴 지워왔던 환경들을 아셨다. 그는 마리아의 영혼 속에 있는 모든 희망의 불꽃을 끄실 수도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절망과 파멸에서 마리아를 건져 주신 분은 그리스도셨다. 마리아는 그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사귀들을 일곱번이나 책망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 그를 위하여 아버지께 힘써 탄원하시는 예수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예수의 흠없는 순결에 비하여 죄가 얼마나 더러운 것임을 알고 예수의 능력을 통하여 승리해 왔었다”
예수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으로 완고하고 교만하고 잔꽤만 많이 피웠던 거만한 바리새인은 회개를 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악을 좋아하고 악을 따라 살았던 마리아는 일생 주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살았고요.
부활 후 가장 먼저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되었고요, 부활의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가장 귀중한 옥합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버리기 아까운 것, 버리기 힘든 것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저의 집사람은 자기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하더군요?
자기 사랑 버리기 힘든 것 맞습니까? 아깝다는 말의 표현 보다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버리기 힘든 것 자기 사랑 맞는 것 같습니까?
사도 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게 될 것인데 그 고통의 이유와 말세의 징조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딤후 3: 2-5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사도는 말세의 징조를 열 아홉가지를 언급합니다, 이거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를 무엇으로 두었습니까? 자기를 사랑하며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그 다음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자기를 사랑함으로 오는 결과들입니다.
무슨 결과로 오는 것이라고요? 자기 사랑의 결과들로 오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런 것들이 다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자기 사랑으로 인하여 오는 것들이다.
자기 사랑 때문에 돈을 사랑하게 되고요. 자기 사랑 때문에 교만이 오고요.
자기 사랑 때문에 남을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는 일을 하게 되고요.
자기 사랑 때문에 감사하지 않고요 그렇기 때문에 거룩하지 않고요.
자기 사랑 때문에 무정하고 원통함을 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 때문에 절제 못하고요. 절제 못하니까 사나워지고요.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게 되고요. 배신하고 조급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보다 더 하고요.
경건의 능력이 없는 이유가 다 무엇때문이라는 것입니까?
자기를 사랑하는 것 때문이다.
그러니 이러한 것을 고치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거 하나 하나 우리의 모습에서 고쳐 나가려고 하지 마시고 무엇을 버리라고요.
자기 사랑을 버리라.
우리 성도님들 여러분들에게도 가장 귀중한 옥합 버리기 싫은 것이 자기 사랑입니까?
그거 주님께 드릴 마음이 없습니까?
일생 모은 것을 주님 발에 부어 드린 마리아처럼 일생 살아 오면서 누적되고 축적된 우리의 옛 사람 자기 사랑을 과감하게 깨트려 주님 발 앞에 올려드리게 되길 축복합니다.
옥합은 깨트리면 향기가 나고요. 담겨져 있으면 아무런 냄세도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린내만 날 수가 있습니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가지고 깨트리기 전에는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깨트리는 순간 그 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금새 나드 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기심 많은 가룟 유다가 그런 말을 하죠,
왜 그 아까운 것을 허비하느냐고요.
마리아의 헌신을 유다의 눈에는 허비로 보였습니다.
성도들의 깨뜨려진 옥합을 유다와 같은 사람들 눈에는 허비로 보일 것입니다.
쓰잘데 없는 낭비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깨트린 옥합의 결과는 놀랍습니다.
그날 그곳에 그 잔치 자리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을 것입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당신의 몸에서 아주 귀한 향내가 나네요 라는 질문을요.
그럼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 오늘 잔치 자리에 한 여인이 나드 옥합을 깨트렸다오.
그리고 그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었는데 그 매혹적인 향기가 온 홀에 가득하여서 우리모두가 그 향취에 깊이 빠져 있었드랍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아 그 향이 옷에 베여서 이곳에서도 그 향내를 맡게 하네요 라고 했을 것입니다.
자기 사랑을 깨트려 버렸을 때 이어지는 향내음이 그렇게 전달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드향보다 더 값진 향유가 하늘에서 깨트려 졌습니다.
인류가 타락으로 깊은 지옥으로 떨어 졌을 때 삼위 하나님 중 한 분이 서시어 향유 옥합을 깨트리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비우고 피조물처럼 사람되어 사람을 대신하여 죽고 사람을 구원하겠다고요.
그렇게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간이 되었을 때 죄로 인하여 4000년이나 타락되어 죄의 냄세가 하늘을 찌르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갈바리 언덕에서 당신의 옥합을 깨뜨리시어 십자가 위에 부으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은 그 십자가에서 풍기는 향 내음 때문에 구원의 소망이 생겼고요.
그리고 예수님처럼 마리아처럼 향유 옥합을 깨트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을 자들을 찾아서 하늘의 보석들로 삼으로 하십니다.
오늘 부름을 받아 성전에 오르신 우리 성도님들 또는 채널을 통해 함께하시는 귀하신 성도님들 버리기 싫지만 우리 속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자기 사랑이라고 하는 옥합을 깨트려 십자가에 부어 드리게 되길 소망합니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험한 산길 오르신 그 발 걸음마다 크신 사랑 새겨놓았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그 발 흘린 피로 나의 죄를 대속하셨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주님 다시 이 땅 위에 임하실 그때 주의 크신 사랑으로 날 받아주소서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깨어진 향유 옥합으로 살다가 우리가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 예수의 사람된 사라마들과 함께 다시 오시는 옥합의 원형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주셨는데 우리는 어찌 내사랑 자기 사랑 버리기가 그렇게 힘이 드는지요. 아버지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시어서 자기 사랑 버리고 주님처럼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눅 7:36-38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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