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客閑談] 동지(同志)와 적(敵)
말복(末伏)이 지나면 한여름의 무더위도 한풀 꺾일 것이라는 풍설을 증거라도 하려는지 꿀잠을 방해하던 열대야도 사라지고, 아침 저녁 기온도 사뭇 선선한 기색입니다.나흘 전은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였지요.처서는 1년 24절기 가운데 열네 번째 절기로,이 무렵이 되면 여름이 지나 무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그리고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구러져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하는 시기이기도 하지요.오늘은 그동안 지루하게 이어지던 장마도 그치고 햇살은 마냥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니 기분마저 상쾌합니다.
그리고 모처럼 하늘도 쪽빛으로 물들어 있군요.처서무렵에는 오늘처럼 날씨가 맑고 따사로운 햇살이 그지없이 부서져 내려야 오곡백과가 아금받게 영글지요.반면에 비라도 냅다 쏟아지면 뜻하지 않은 재앙이 들어서 흉년이 든다고 하여 농부들은 불안하기만 하지요.그래서 이 무렵부터 내리는 비는 농부의 피눈물이라고 하여 지청구의 대상이었습니다.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무탈하기를 소망합니다.그리고 안타깝고 불안한 코로나 시국이 언제쯤 정상적으로 회복이 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러한 즈음의 여의도 정가의 행색은 상대적으로 목불인견(目不人見)입니다.정권교체를 힘겹게 달성하여 이제 어엿한 집권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을 한지 석달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집권여당의 그럴 듯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당내 권력투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37세의 젊은 당 대표 이준석은 안하무인 독불장군식의 처신과 개인의 성상납 의혹,그리고 무마의혹으로 당 윤리위에서 6개월 당원권 정지 결정으로 대표직에서 밀려났지요.그런데 장외에서 대통령과 당내의 집권세력들을 상대로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거지요.이전투구(泥田鬪狗), 승자나 패한 자나 몰골은 더 나을 게 없는 지경의 진흙탕 싸움입니다.
당 대표 이준석은 윤석열 대통령 측근 관계자(윤핵관)들이 조직적으로 자신을 당 윤리위에 넘겨 6개월 당원권 정지 결정에 이르도록 부추겼으며, 이쯤에서 아예 국민의힘에서 축출까지를 도모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주호영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진 가운데 이러구러 비대위체제에 대한 정당성을 법원에 묻는 이준석의 가처분 신청이 인용이 되었습니다.국민의힘은 비상상황이 아닌데 비상대책위원회가 가당찮다는 법원의 결정이지요.법원은 이준석의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6개월의 당원권 정지 기간이 다하면 당 대표의 잔여임기를 채울 수 있는 명분이 법원으로부터 주어진 겁니다.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당원권 정지기간이 지나면 이준석의 의지대로 국민의힘은 굴러갈까요? 정치의 문외한인 입장에서도 그러한 상황은 예상이 되지 않는 군요.현재의 국민의힘 대표격인 비대위체제를 상대로 벌인 법원에서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국민의힘은 화가 부글부글 치밀겠지만 이준석도 승리의 기쁨을 누릴 처지는 아니지요.입법부인 정당의 당내 사정을 사법부에 묻는 행위도 좀 어색합니다.어쨌든 사법부의 판단은 이준석의 의지대로 결정이 되었습니다.그러나 이준석의 국민의힘에서의 존재감은 그만큼 더 협소해지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탈당을 해서 창당을 하던지 무소속으로 정치재개를 도모하는 편이 손쉬운 정치의 길은 아닐런지.
삼김(三金; 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의 삼김처럼 수틀리면 헤쳐모여식으로 창당을 하여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정치력과 세력이 있으면 걱정할 게 없겠지만, 0선(選)의 이준석에게는 그럴 만한 정치력은 고사하고 세력도 전무하니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합니다.이쯤에서 한풀 꺾고 국민들과 당원동지들에게 그동안의 당내 분란을 사과하고 고개를 숙이면 그의 정치 생명이 밝아질 수 있는 여지가 있겠지만 고집을 끝내 꺾지 못하고 연신 투쟁 일변도를 구사한다면 그의 앞으로의 정치 생명은 위기를 맞을 게 틀림 없을 겁니다.
정치는 세력을 넓히는 작업이라 하고, 동지를 불리는 행위라고도 하지요.세력을 늘리고 동지를 구하려면 허리를 낮추고 손과 팔을 넓게 벌려야 한다고 합니다.그러나 비판과 증오와 저주는 상대를 승복시키고 굴복을 강요하는 거지요.국회의원 선거가 아직도 20개월쯤이 남아 있어 다들 여유가 있는 모양입니다.국민의힘과 이준석은 이쯤에서 서로 전선을 거두고 그동안 갈라졌던 상처를 봉합하여 화합을 이루어야 합니다.정치인은 교육으로 길러져서 선거로 비로소 성숙이 된다고 하지요.그런데 국민의힘과 이준석 간의 갈등의 골이 수술로 봉합을 하기에는 너무 깊고 간극이 넓어진 건 분명합니다.그러나 정치란 생물이라고 하지요.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가능한 것이 정치 세계라고들 합니다. (2022,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