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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번역어는 비불교적 개념
마인드풀니스 & 사띠 논쟁-10 법보신문 | 2010-02-04 | 안양규 교수(동국대 불교학부)
사티는 주의, 관찰, 기억 기능 등 포괄
이어 자비선 명상센터 지도법사 지운 스님과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가 이번 논쟁과 관련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가운데 이번에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안양규<사진> 교수가 사띠와 마인드풀니스에 대한 기고문을 보내왔다.
안양규 교수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초기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편집자
영국의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마인드 더 갭(Mind the gap)”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게 된다. 지하철 객차와 발을 딛는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니 조심하라는 경고성 안내이다. 내딛는 걸음이 간격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
만약 방송을 무시하고 ‘마음에 담아두지(have in mind)’ 않으면, 즉 기억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사티(sati)나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하는 자동조정의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외적 경험을 있는 그대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수행이 마인드풀니스라고 정의한다면, 마인드풀니스의 한국어 번역으로 “마음챙김”이라는 역어가 아니면, “알아차림”이라는 역어가 더 적합한 것일까? 아니면 더 나은 제3의 역어가 있을까?
필자는 논의의 편의와 정확성을 위해 초기불교 경전에 보이는 사티와 명상치유프로그램에 활용되고 있는 마인드풀니스를 구분하고자 한다. 이러한 구분이 둘의 모순 관계나 양립불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초기경전의 사티의 의미, 기능, 효과 등이 치유프로그램의 마인드풀니스에 100%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요컨대 초기불교경전의 사티와 치유프로그램의 마인드풀니스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사티(sati)가 가장 뛰어난 붓다의 제자로 아난다가 예시되고 있다. 아난다는 붓다의 말씀을 한 자도 놓치지 아니하고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제자로 칭송되고 있다.
『밀린다팡하』에서도 사티를 기억으로 설명하고 있다. 왕의 보배 창고를 지키는 신하가 조석으로 왕에게 보배창고에 어떠한 보배가 얼마만큼 있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일을 두고 사티의 예로 들고 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즉 기억하도록 반복해서 알리는 일을 사티의 기능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사티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염불(念佛)이라는 수행도 이해할 수 있다. 붓다를 잊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기억한다는 의미이다. 사티의 기억이라는 기능은 사념처 수행 중 신념처, 그 중에서도 시신의 부패에 관한 수행에 들어 있다. 시신 부패의 경과에 관한 수행은 기억이라는 요소를 배제하면 성립될 수 없다.
어떤 대상에 대한 관찰이 정확하면 할수록 기억도 더 지속적이다. 기억이 잘되기 위해선 대상에 대한 관찰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이루어져야 한다. 관찰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주의(attention)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주의, 관찰, 기억 이 세 가지 정신적인 기능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 사티인 것이다. 서구의 명상치유프로그램에선 사티의 기능 중 주의, 관찰이라는 요소를 마인드풀니스로 중점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MBSR은 단지 미국 의료계에서 활용되는데 한정되지 않고 심리학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존 카밧진의 MBSR은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 Therapy)의 제3물결의 형성을 가져왔다. MBSR의 직간접 영향 아래에서 MBCT(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DAT(Dialectical Acceptance Therapy, 변증법적 수용치유), ACT(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수용과 전념치료) 등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비숍(Bishop)은 서구의 심리치료학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마인드풀니스를 “공들이지 않은(non-elaborative), 비심판적(non-judgmental)이며, 현재 중심의 지각(知覺)으로 주의(注意)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생각, 감정, 또는 감각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이상의 공통적인 일치에도 불구하고 마인드풀니스와 마인드풀니스에 부가된 속성을 어떻게 분리해 낼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하여 이견이 있다.
존 카밧진은 ‘비심판’이외에 여섯 가지 다른 특성을 주목하고 있다: 인내, 초심(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보려는 의지), (자신에 대한)신뢰, 고투(苦鬪)하지 않기, 수용, 보내기. 이러한 자질들은 상호 고무적이며 성공적인 치료에 토대가 된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비숍은 마인드풀니스를 일차적으로 호기심(curiosity), 개방성(opneness), 수용(acceptance)의 특징을 지닌다고 보고 있다.
사티와 삼파잔나가 함께 짝으로 사용될 때 사티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주의하고 관찰하는 것이고, 이러한 주의 관찰된 내용을 지적으로 깊게 통찰하는 것이 삼파잔나이다. 삼파잔나는 지혜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열반의 증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삼학에 준거하여 본다면 사티는 정학에 삼파잔나는 혜학에 속한다. 한역 경전에선 사티는 정념(正念)으로, 삼파잔나는 정지(正知)로 번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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