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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골목미술관,
오늘도 꿈을 꾸는 그림마을 사람들
- 성남 태평동 사례 -
황정주 민예총 재건위 사무처장
1. 들어가며
1) 성남시 태평4동
성남시는 1968년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특수한 목적을 위해 개발된 신도시이다. 개발이 되기 전까지 성남시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부와 대왕면 돌마면 낙생면으로 이루어진 산간벽지였다. 그중 현재의 수정구 태평4동은 중부면 탄리(숯골)에 속해 있었다. ‘숯골마을’은 옛날부터 이곳에서 사람들이 숯을 구워 생활을 영위해왔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상대원리 ‘사기막골’이 사기를 많이 만들던 동네였는데 탄리(숯골) 사람들이 사기를 굽는 숯을 생산, 사기막골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그 후 1968년 서울시가 ‘광주대단지’사업을 발표하면서 성남은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공업화 정책으로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주택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고,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사람들로 무허가 건물들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울의 무허가 건물을 정비하고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철거민 이주대책의 일환으로서 성남이 선정된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쫓겨난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서 몰려든 이주민들의 도시로 성남은 시작되었다.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 판잣집에 가족을 남겨두고 서울로 일떠나는 아버지들, 500명이 하나의 공동우물과 공동변소를 사용해야 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한 성남은 이제 인구 100만 명의 수도권 거대도시로 성장했다.
그중 성남민예총의 골목미술관이 진행된 공간은 태평4동이다. 이곳은 성남에서도 인구밀집도가 가장 높고, 노후하고 낙후된 주거환경과, 열악한 문화 환경 속에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객관 환경이 거의 전무한 지역이다. 게다가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투기지역으로 각광(?)받으며 정주민이 집을 팔고 이사하거나 다시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 입장에 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힘들었던 시절부터 형성된 오랜 공동체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2) 골목미술관의 배경
참 말이 많았다.
“누가 공공미술을 하는데 소위 명화를 그려놔요?”
“남의 그림 뺏기는데 그게 작갑니까?”
“도대체 작가적 자존심이 있기는 한 겁니까?”
예술가가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작가로서의 자존심 하나로 여태까지 그림 그리고 있는데 작가적 자존심마저도 무시를 당하는 것 같아 우리 작가들이 사실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긴 2006년에 처음 골목미술관을 시작했을 때 우리 작가들 내부에서도 열띤 토론과 논쟁이 있었으니깐……. 결국 그 논쟁 끝에 도저히 할 수 없겠다는 작가도 있었다. 물론 반대한 작가의 의견도 소중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우리 동네를 포함해서 성남시 전체로 전용미술관이 한군데도 없다. 그나마 성남아트센터(복합문화공간)에 있는 전시실이 유일하다. 경기도에서도 제일 부자라는 동네에 미술관을 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작가들도 전시 한번 하려면 하늘에 별 따기처럼 전시실 구하기가 쉽지 않다. 지역문화 활성화의 주요 핵심에는 지역 주민들의 문화향수권이 증대되고 더불어 문화 창조자로서 다양한 문화 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물리적 환경의 조성과 그에 기반을 둔 풍성한 프로그램들과 교류 소통을 통한 지역공동체의 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태평동은 성남 지역 안에서도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최소한의 문화기반 시설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곳이다. 그래서 기획된 것이 ‘골목에 미술관을 만들자’였다. ‘있어야 할 미술관이 없다면 미술관을 동네로 들여오면 되는 것 아닌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특별한 사람들이나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미술관을 우리 가까이 두자. 골목에서 김홍도도, 신윤복도, 피카소도, 램블란트도 만나자’였다. 우리는 아주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공공미술계에서는 엄청난 논쟁거리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지역 현실에 맞는 작업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또한 성남문화재단이 2006년부터 시작한 ‘우리 동네 문화공동체’ 만들기의 첫 사업 지역이 태평동이었기 때문에 재단과의 소통을 통해 활동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는 많은 힘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의 물리적 환경은 열악했지만 동네에 오랫동안 형성된 주민들의 서로 돕고 협력하는 공동체성이 아주 높았으며 자원봉사 활동 등으로 이웃과 더불어 함께 하는 마음들이 강했던 주민들이 많이 있었고, 주민자치센터의 행정 공무원들과 주민 자치 위원들의 적극성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인들의 헌신성이 큰 바탕이 되었다.
2. 예술을 매개로 한 지역커뮤니티 형성
2006년부터 시작된 우리 동네 골목미술관은 올해로 4년차를 맞이하였다. 사업 첫해부너 지난해까지는 한국토지공사 초록사회만들기위원회의 사회공헌사업으로 예산지원을 받았으나 올해 2009년 들어 토지공사의 사회공헌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바람에 우리 사업 역시 예산지원이 끊겨 버렸다. 그래도 올해는 태평4동 공무원들과 주민자치위원들의 아이디어로 희망근로 자들과 함께 하는 미술관 작업과 성남의제의 예산지원으로 소박하게나마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1) 다 같이 돌자 골목미술관
지금 우리 동네 골목에는 100개가 넘는 작품들이 액자로 걸려 있거나, 벽화로 그려져 있거나, 설치작품으로 전시돼 있다. 여기에는 지역작가가 직접 그린 작품들도 있고 어린이들과 주민들이 함께 작업한 작품 등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미술관지도를 만들어 놓아 미술관투어를 할 수 있다.
작품이 100개가 넘는 전시실을 생각하면 꽤 큰 전시라 상상하겠지만 아무리 좁은 골목길이라도 훤히 열려있는 공간에서의 전시는 구경꾼이 숨바꼭질 놀이하듯이 동내 골목골목을 찾아다녀야 겨우 하나 볼 수 있을 만큼 다리품을 필요로 한다. 미술관 투어를 하다보면 작품을 보는 것인지 동네를 구경하는 것인지 착각할 정도로…….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동네의 대한 애정과 관심이 늘어나고 독특한 문화적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눈에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내재적인 것이지만 그 동네만의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일 년 4계절 야외 설치이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지만 아직까지 작품 분실이나 의도적인 훼손은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그 주변은 보다 더 깨끗해지고 주민들이 서로 알아서 잘 지켜주고 있다. 자연조건과 흐르는 시간 속에 낡고 훼손되는 것은 지원을 통해 극복해보고자 노력중이다.
2) 영장 노인문화학교
영장 노인문화학교는 우리 동네 태평동 뒷산인 영장산을 부쳐 지은 이름이다. 지난해 미술관 투어를 위한 자원봉사 인큐베이팅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미술관 작업을 통해 이사업을 주되게 했던 지역 작가 그룹인 성남민미협 사무실을 동네 노인정에 마련하게 되었고 이 사무실을 활용해서 미술에 관심 있는 노인 분들과 함께 인문학과 결합된 미술 강좌를 통해 미술관 투어 자원봉사자를 만들어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노인 분들에게 참가할 동기부여를 주는데 부족한 것이 많아 우여곡절이 많았다. 올해로 두 번째 진행한 노인문화학교는 지난해보다 참여율도 높아졌고 강좌도 풍물교육이 추가되었으며 동사무소의 적극적인 후원(장소, 모집, 광고 등)을 통해 노인문화학교가 정착될 수 있는 토대가 된 한해였다.
갈수록 노령화되는 사회에서 생활 속 노인문화 프로그램을 창조적으로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은 앞으로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특히 그럴싸한 노인복지관 하나 없이 그저 그 어떤 프로그램도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대부분의 낡은 노인정만 있는 태평동에서는 지역 예술인들이 문화매개자로서 노인들의 일상 생활 속에 파고드는 예술 활동의 가치가 계속 높아질 것이다. 이에 영장노인문화학교는 더디지만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3) 한울신문 어린이기자단
한울신문은 2007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어린이들이 함께 만드는 태평4동 월간신문’이다.
‘우리 동네 문화 공동체 만들기’ 지속사업으로서 성남문화재단 후원을 받아 시작되었고 지금은 학부모와 주민들이 후원회를 만들어 그 후원기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 기자들은 우리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우리 동네 사람’ ‘동아리 탐방’ ‘맛집 멋집’ 등을 소개한다. 또한 그들의 발은 태평4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성남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숨은 명소들을 찾아 ‘명소 탐방’으로 묶어내기도 하고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이 하는 문화행사에도 발 빠르게 쫓아다니며 취재를 한다. 학교소식은 말할 것 없고 그들이 직접 창작한 시와 수필 등도 싣고 환경, 생태, 공동체 등 우리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더불어 함께 하는’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한울신문에 처음 참가했던 어린이들은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고 그 후배들이 한울신문을 이어오고 있다. 이 작업은 어린이기자들이 다닌 초등학교를 수십 년 전에 졸업한 작가를 꿈꾸는 선배님이 지도를 해주셨다. 가파른 언덕길과 비좁은 골목길, 언제나 낙후지역으로 소외받으면서 내가 사는 동네에 자긍심을 느낄 수 없었던 어린이들이 끌끌한 애정을 가지고 대해주는 대선배님과,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만났던 소중한 사람들과, 동네 풍경을 통해 자신들의 아름다운 존재성을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울신문은 마을의 꿈나무를 키우는 그릇이 되어 가고 있고 여기에 어른들이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4) 마을에 있는 아마추어 예술가들과의 만남
골목미술관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을의 다양한 주민들과 소중한 인연들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예술을 사랑하고 아끼며 스스로 예술가라 생각하는 일상 생활 속 아마추어 예술인들과의 만남은 향후 예술을 매개로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데 훌륭한 매개가 될 것이다.
퇴임 후 실버댄스 강사를 꿈꾸며 댄스를 배우고 있는 태평4동 동장님, 한울신문의 다정한 선생님이자 작가를 꿈꾸며 여전히 소설을 쓰는 아주머니, 사자탈춤을 누구보다 잘 추고 싶은 젊은 아저씨, 동네 온갖 행사에는 모두 초대되는 우리 동네 가수왕, 미래의 기자 아나운서를 꿈꾸며 오늘도 골목을 누비는 어린이들, 영장노인문화학교를 흔쾌히 동의해주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주시는 팔순의 할아버지, 우리의 작업을 자기 일처럼 함께 해준 사람들…….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동네 어딘가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지역 전문 예술가들이 마을 속에 들어가 숨어있는 아마추어 예술가들과 만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공동의 창작활동을 하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시대는 갈수록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허물어지면 모두가 창작자이자 향유자로서 자유롭게 소통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지역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보다 더 적극적인 실천과 창작으로 지역 속 문화공동체를 일구기 위한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3. 맺으며
태평4동의 사례는 의미 있는 성과도 남겼지만 한편으론 극복해야할 과제와 앞으로의 숙제 또한 산적하다.
무엇보다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기반으로 한 주민 문예활동 활성화에서 그것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전개할 주체를 튼튼히 세우는 것이다. 주체는 민예총과 같은 문화예술단체가 지역에 기반을 둔 창작활동,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예술 활동에 대한 목적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며 지역공동체의 핵심 주체는 마을 주민들이기에 주민주체, 주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낼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는 지역 아마추어 예술 활동가들의 역할도 중요하며 그들의 자발성을 최대로 높일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또한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중요하다. 아무리 뜻이 좋고 프로그램이 창의적이어도 재정이 없으면 실현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행정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나서는 것이다. 올해 태평4동의 경우 동장을 비롯한 공무원들과 주민자치위원회, 통장협의회 등의 주민조직이 나서주지 않았다면 지속적으로 골목미술관을 진행하는데 많은 곡절을 겪었을 것이다. 예산 지원 금액이 얼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액이라도 마을의 행정 단위들이 일 상속 주민 문예 활동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 전문가, 행정, 주민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협력하는 작풍을 만들어야 하며 태평4동의 경우도 앞으로 좀 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협력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이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주민 문예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을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마을의 공유 공간들을 최대한 활용해 나가야 한다. 단지 기초단위 마을에서는 주민자치센터만을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찾아보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공간들도 존재한다. 노인정이나, 어린이 도서관, 지역 공부방, 시민단체 공간들, 학교, 종교시설, 공원, 놀이터 등 다양하게 존재하는 공간들을 유기적으로 엮고 열린 마인드로 서로 네트워크만 한다면 그것이 지역공동체를 일구는 기초가 될 것이고 그 속에서 생활 속 주민 문화예술 활동이 다양한 계층과 방식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