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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4일 월
어제가 Eid (holiest of holy muslim festivals at end of Ramadan) 축제였다. 이슬람이 크리스마스. 오전 3~4시까지 음악소리가 난리블루스더니 새벽엔 조용하다. 다들 늦잠중인가 보다.
나도 새벽까지 스리랑카 관광 비자를 ETA (전자비자) 작성하고 바로 승인 받았다. 모든 서류를 에이전트에게 보냈다. 혹시 몰라 에이전트 개인, 회사 두 군데로 보내고 전화번호도 2개를 확인했다. 오만에서 한 번 당하고 나니, 이젠 뭐든 더블 체크다.
Gac Sandeep Galle Sri Lanka +94 76 467 545
Senal Wanigasekara Junior Executive GAC Shipping Ltd - Shipping Division No. 284 (P.O.Box 1116), Vauxhall Street, Colombo 02, Sri Lanka General : +94-11-4797900 -Ext (843)Mobile: +94 773150523 www.gac.com
어제 비싼 립아이 먹고 똥을 참아서 양분을 200% 흡수 할랬더니 새벽에 설사했다. 꽝이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 인가 보다. 역시 고기도 먹어본...
오전 7시 된장국과 밥 햄 프라이로 식사를 한다. 그걸로 충분하다.
더워지기 전에 레이더 플로터를 다시 손본다. 몇 번을 분해 청소 조립해도, 스위치 두 개가 안 눌린다. 바로 가드 존 설정 스위치다. 방법은 써치 범위를 24마일 이상으로 해 놓고 자주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미리 장애물을 찾아, 여유 있게 추적하는 거다. 일단 임대균 선장을 통해 e-bay에서 중고 레이마린 C80를 주문한다. 한국 돈 55만원이란다. 임선장이 5월말 말레이시아 랑카위로 올 때, 가지고 오면 된다. 싱가포르 해협이 붐비니, 그 출발점인 랑카위에서 받아 설치하는 것은 절묘하다.
여긴 낮에 엄청 덥다. 그늘에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수도가 연결돼 있으니 샤워를 하고 기본 빨래를 다 해치운다. 이젠 짠 내 나는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 항해 중 입은 옷을 빨래해 말려도 짠 냄새 안날 거다.
미국선장 라일리가 보내 준 월드 크루징 루트 중, N 35A 루트를 기본으로 해서 항로를 잡는다. 오만에서 인도양 중간까지 빔리치 횡풍, 중간에 잠시 무풍, 다시 스리랑카까지 횡풍 또는 뒷바람이다. 14일 이내 기름 떨어지지 않고 잘 왔으면 좋겠다. 총 1,050 리터를 실었으니 시간당 3리터(RPM 1,400~1,600) 사용한다고 하면 350시간, 14.58 일 사용 가능하다. 일단 맞바람 구간이 없고, 이중 바람 좋은 구간은 엔진을 끄고 범주하면, 디젤유 떨어질 일 없이 잘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전 10시 마리나 책임자 아하무드가 왔다. 나는 무어링에 별 문제없다고 하고, 내일 오전 7~8시 출항하도록 오늘 저녁에 출국 서류를 달라고 한다. 아하무드는 알겠다고 서류 받으면 전화 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네시스 정박한 곳 바로 곁에 해수욕장이 있다고 한다. 그래 너무 더우니 잠시 가볼까?
아하무드가 알려 준대로 폰툰 뒤로 200 미터 걸어가니 해수욕장이다. 바다에 들어가 몸을 식히고 개방식 간이 시설에서 샤워 한 후, 썬베드에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마치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주인공이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가족들과 해수욕을 즐긴다. 리나가 생각난다. 8일만 견뎠으면 여기 같이 있는 건데... 부모와 함께 물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을 보니 20개월 내 딸이 너무 그립다. 그래도 아덴만 탈출에 리나를 동행하지 않은 건 신의 한 수였다. 나는 내 딸을 강하게 키울 아빠는 아닌 것 같다.
지난 2달간 헤쳐 온 바다를, 이렇게 관광객 모드로 곁에 두니 안락하고 행복하다. 내일부터 14일간도 바다가 나를 벗으로 대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나저나 다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걸까? 나처럼 항해 중 피항처로 아무 것도 모르고 온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 Hawana 마리나에 세일 요트를 타고 온 사람도 오직 나 혼자다. 참 볼 것 많고 누릴 것 많은 세상이다. 어제 죽은 이들만 억울하다. 한국에서 여기 오는 관광 상품이 만들어 지면 좋겠다. 배 몰고는 다시 올 생각 없다. 추억삼아 비행기 타고 오면 몰라도.
오후 1시. 현지 라면에 오이 한 개, 된장, 이탈리아 오이지, 찬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한국라면도 아직 15개가량 있다. 현지 라면도 입맛에 별 거부감 없다. 스리랑카 Galle 까지 식수와 식량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오만의 더위는 예상 밖이다. 그늘에 앉아 있어도 온몸에 구멍 뚫린 것처럼 땀이 흐른다. 아무래도 해수욕장에 다시 가야 하나? 리조트 내의 마트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기 관광객들은 낮에 하루 종일 해수욕하고, 저녁에 슬슬 산책하는 분위기다. 잠시 망설이는데 포트 클리어런스 서류가 왔다. 이젠 언제든 출국 가능하다. 오늘 떠나도 된다. 하루 저녁만 더 머물고 아침 일찍 떠나자. 내일 새벽 윈디 예보를 챙기고 가야 한다. 하지만 이러다 오늘 배에서 삶아 질 것 같다. 어디 시원한 카페를 한번 찾아 봐야겠다.
오후 2시, 슬슬 걸어 300미터 거리의 부티크 호텔로 왔다. 러닝셔츠에 선글라스. 참 예의 없지만, 다른 옷이 필요 없다. 사막에선 너무 더워 다른 옷을 걸칠 수가 없다. 이 이상한 차림의 동양 아저씨가 대낮부터 호텔 라운지로 들어오니 쉬던 직원들이 벌떡 일어난다. 에어컨 바람이 피부에 닿자, 나는 사막의 무더위에서 재빨리 구제된다. 나는 커피 마실 수 있냐고 묻는다. 노 프라블럼 이란다. 멋진 호텔 라운지에 앉았다. 어둡다. 선글라스 때문이다. 가방을 뒤지니 안경을 놓고 왔다. 마우스도 놓고 왔다. 더워서 서두른 탓이다. 요샌 서둘면 꼭 실수한다. 에스프레소 더블을 주문했다. 아덴만에선 지부티 쉐라톤 호텔에서 한잔 마신 게 전부다.
에스프레소 더블이 나왔다. 아껴 마신다. 원래는 한 잔 쭉 마셔야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대낮이고 밖은 너무 덥다. 여기서 두어 시간 버티고, 조금 선선해지면 마트 가서 런천미트 같은 햄 통조림을 몇 개 사자. 옛날 입맛이라, 그런 거에 간장 밥, 비빔밥, 계란 프라이와 라면 종류만 만 있어도 2주는 잘 버티지 싶다. 생각하면 지난 세기 선원들의 고생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무런 통신 장비도 없이 나침반과 육분의 크로노미터 시계만 가지고 세계를 쏘다니다가, 괴혈병을 앓다가 죽거나 하지 않았던가. 비록 레이더가 일부 고장이지만, 최신 요트에 정확한 해도 전자 장비를 가지고 항해를 못한 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터키에서 한국을 향해 항해 준비를 하시던 선장님께 전화가 왔다. 아내분이 나의 아덴만 탈출기를 보고 항해가 실제론 너무 고생스럽다는 것을 아셨다. 문제는 8월에는 지부티에 너무 더워 아무도 없고. 모래 바람이 덮치는 무서운 계절이라, 8월 중순 수에즈 도착, 9월초 지부티에 온다고 해도 수단은 전쟁 통이고, 지부티에서 출항해도 올해는 동남아시아 까지 밖에 못 간다. 동지나해에 겨울이 오는 것이다. 그럴 바엔 지브롤터로 나가 대서양을 횡단하고 파나마를 건넌 후 태평양으로 가는 것이, 바람 방향도 맞고 고생도 덜 할 거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태풍의 계절이 다가온다. 그분 가족의 항해에 평화가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고, 나는 얼결에 무모하게 홍해와 아덴만을 지나왔다. 이젠 인도양을 건너면 된다. 다행이 아직 사이클론 소식은 없다.
오후 4시. 글로서리 마켓에 가서 캔 미트와 오이, 사과, 살균우유, 오이지 등을 산다. 워낙 비싸서 금새 한국 돈 35,000원이 넘는다. 일단 이것만 사고 배로 돌아간다. 바다에서는 분명히 아! 그걸 살 걸하고 후회하겠지만 대략 20일 이상의 식량은 있다. 특히 감자 등 야채는 얼마 못가 싹이 나고 상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산다. 여동생이 비타민 C를 사라고 하는데 그런 건 없다, 아마 말레이시아 랑카위 쯤 가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스리랑카에서도 노력해 보자.
제네시스에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레이더 플로터를 분해 청소 조립해 본다. 결국 스위치 두 개는 먹통이다. 여기까지 해 봤으니 뭐. 최선을 다했다. 밤에 견시를 좀 더 자주하면 된다. 그만 애태우자. 스트레스다. 랑카위에서 임대균 선장이 E-bay에서 산 중고 C80을 가져 올 테니 5월까지만 고생하자.
오후 5시 30분. 배를 전체적으로 물청소 한다. 펜더를 정리하고 기름통을 다시 잘 엮는다. 이번 항해에 아덴만 같은 맞바람 강풍 항해는 없다. 중간에 무풍지대를 잘 빠져 나와야 한다. 디젤유 상황을 면밀히 살펴 기름 모자라 표류 하는 일은 없어야지. 열심히 땀 흘리며 항해 준비를 한다. 2주간의 고독을 준비한다.
시간이 총알 같이 흐른다. 벌써 7시다. 저녁은 어떻게 할까? 맛난 것 먹고 설사 한 번 더할까? 폰툰 바로 곁의 레스토랑에 가니 전부 해산물 요리다. 고기류는 앆 점심 때 커피 마신 곳으로 가란다. 이런 어떻게 내가 부티크 호텔에서 커피 마신 것 까지 다 알지?
저녁으로 텐더 미트 200그램을 시켰다. 식전 빵과 버터, 양송이 스프와 사이드메뉴는 야채샐러드, 디저트는 아이스크림. 모두 다 맛있었다. 그러나 고기는 조금 남겼다. 위장이 많이 줄었나 보다. 이상하게 식사하며 졸렸다. 어제 잠을 못자서 그런가 보다. 식사를 마치고 곧장 배로 돌아와 수도 호스를 정리해 배에 싣는다. 내일 아침 육전 전선만 정리하면 바로 출항이다. 떠나기 직전에 10일치 윈디를 다운 받아 두자. 나머지 4일은 임대균 선장이나 다른 분들이 위성전화로 알려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내일 아침 4월 25일 오전 7시 출항 예정. 14일간 인도양을 건너 스리랑카 Galle 로 간다.
# 공지 : 안녕하세요? 제가 위성전화기 충전을 못해서 사용 못합니다. 스리랑카나 랑카위에서 해결해 보려 합니다. 혹시 기상 정보를 알려 주시거나 생존 확인 하실 분이 계시면, 제 입장에서 오전 9시~11시 사이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제 위성전화기 번호 제네시스호 위성전화 00188-216-2343-0635 로 하다가 안 되면,
청해부대 +82 70 4948 4905 나
해수부 +82 44 200 5896 로 전화해서, 제 전화 번호 주고 연락이 안 된다고 찾아 달라고 하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늘 너무나 감사합니다.
2023년 4월 24일 월
어제가 Eid (holiest of holy muslim festivals at end of Ramadan) 축제였다. 이슬람이 크리스마스. 오전 3~4시까지 음악소리가 난리블루스더니 새벽엔 조용하다. 다들 늦잠중인가 보다.
나도 새벽까지 스리랑카 관광 비자를 ETA (전자비자) 작성하고 바로 승인 받았다. 모든 서류를 에이전트에게 보냈다. 혹시 몰라 에이전트 개인, 회사 두 군데로 보내고 전화번호도 2개를 확인했다. 오만에서 한 번 당하고 나니, 이젠 뭐든 더블 체크다.
Gac Sandeep Galle Sri Lanka +94 76 467 545
Senal Wanigasekara Junior Executive GAC Shipping Ltd - Shipping Division No. 284 (P.O.Box 1116), Vauxhall Street, Colombo 02, Sri Lanka General : +94-11-4797900 -Ext (843)Mobile: +94 773150523 www.gac.com
어제 비싼 립아이 먹고 똥을 참아서 양분을 200% 흡수 할랬더니 새벽에 설사했다. 꽝이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 인가 보다. 역시 고기도 먹어본...
오전 7시 된장국과 밥 햄 프라이로 식사를 한다. 그걸로 충분하다.
더워지기 전에 레이더 플로터를 다시 손본다. 몇 번을 분해 청소 조립해도, 스위치 두 개가 안 눌린다. 바로 가드 존 설정 스위치다. 방법은 써치 범위를 24마일 이상으로 해 놓고 자주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미리 장애물을 찾아, 여유 있게 추적하는 거다. 일단 임대균 선장을 통해 e-bay에서 중고 레이마린 C80를 주문한다. 한국 돈 55만원이란다. 임선장이 5월말 말레이시아 랑카위로 올 때, 가지고 오면 된다. 싱가포르 해협이 붐비니, 그 출발점인 랑카위에서 받아 설치하는 것은 절묘하다.
여긴 낮에 엄청 덥다. 그늘에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수도가 연결돼 있으니 샤워를 하고 기본 빨래를 다 해치운다. 이젠 짠 내 나는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 항해 중 입은 옷을 빨래해 말려도 짠 냄새 안날 거다.
미국선장 라일리가 보내 준 월드 크루징 루트 중, N 35A 루트를 기본으로 해서 항로를 잡는다. 오만에서 인도양 중간까지 빔리치 횡풍, 중간에 잠시 무풍, 다시 스리랑카까지 횡풍 또는 뒷바람이다. 14일 이내 기름 떨어지지 않고 잘 왔으면 좋겠다. 총 1,050 리터를 실었으니 시간당 3리터(RPM 1,400~1,600) 사용한다고 하면 350시간, 14.58 일 사용 가능하다. 일단 맞바람 구간이 없고, 이중 바람 좋은 구간은 엔진을 끄고 범주하면, 디젤유 떨어질 일 없이 잘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전 10시 마리나 책임자 아하무드가 왔다. 나는 무어링에 별 문제없다고 하고, 내일 오전 7~8시 출항하도록 오늘 저녁에 출국 서류를 달라고 한다. 아하무드는 알겠다고 서류 받으면 전화 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네시스 정박한 곳 바로 곁에 해수욕장이 있다고 한다. 그래 너무 더우니 잠시 가볼까?
아하무드가 알려 준대로 폰툰 뒤로 200 미터 걸어가니 해수욕장이다. 바다에 들어가 몸을 식히고 개방식 간이 시설에서 샤워 한 후, 썬베드에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마치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주인공이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가족들과 해수욕을 즐긴다. 리나가 생각난다. 8일만 견뎠으면 여기 같이 있는 건데... 부모와 함께 물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을 보니 20개월 내 딸이 너무 그립다. 그래도 아덴만 탈출에 리나를 동행하지 않은 건 신의 한 수였다. 나는 내 딸을 강하게 키울 아빠는 아닌 것 같다.
지난 2달간 헤쳐 온 바다를, 이렇게 관광객 모드로 곁에 두니 안락하고 행복하다. 내일부터 14일간도 바다가 나를 벗으로 대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나저나 다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걸까? 나처럼 항해 중 피항처로 아무 것도 모르고 온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 Hawana 마리나에 세일 요트를 타고 온 사람도 오직 나 혼자다. 참 볼 것 많고 누릴 것 많은 세상이다. 어제 죽은 이들만 억울하다. 한국에서 여기 오는 관광 상품이 만들어 지면 좋겠다. 배 몰고는 다시 올 생각 없다. 추억삼아 비행기 타고 오면 몰라도.
오후 1시. 현지 라면에 오이 한 개, 된장, 이탈리아 오이지, 찬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한국라면도 아직 15개가량 있다. 현지 라면도 입맛에 별 거부감 없다. 스리랑카 Galle 까지 식수와 식량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오만의 더위는 예상 밖이다. 그늘에 앉아 있어도 온몸에 구멍 뚫린 것처럼 땀이 흐른다. 아무래도 해수욕장에 다시 가야 하나? 리조트 내의 마트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기 관광객들은 낮에 하루 종일 해수욕하고, 저녁에 슬슬 산책하는 분위기다. 잠시 망설이는데 포트 클리어런스 서류가 왔다. 이젠 언제든 출국 가능하다. 오늘 떠나도 된다. 하루 저녁만 더 머물고 아침 일찍 떠나자. 내일 새벽 윈디 예보를 챙기고 가야 한다. 하지만 이러다 오늘 배에서 삶아 질 것 같다. 어디 시원한 카페를 한번 찾아 봐야겠다.
오후 2시, 슬슬 걸어 300미터 거리의 부티크 호텔로 왔다. 러닝셔츠에 선글라스. 참 예의 없지만, 다른 옷이 필요 없다. 사막에선 너무 더워 다른 옷을 걸칠 수가 없다. 이 이상한 차림의 동양 아저씨가 대낮부터 호텔 라운지로 들어오니 쉬던 직원들이 벌떡 일어난다. 에어컨 바람이 피부에 닿자, 나는 사막의 무더위에서 재빨리 구제된다. 나는 커피 마실 수 있냐고 묻는다. 노 프라블럼 이란다. 멋진 호텔 라운지에 앉았다. 어둡다. 선글라스 때문이다. 가방을 뒤지니 안경을 놓고 왔다. 마우스도 놓고 왔다. 더워서 서두른 탓이다. 요샌 서둘면 꼭 실수한다. 에스프레소 더블을 주문했다. 아덴만에선 지부티 쉐라톤 호텔에서 한잔 마신 게 전부다.
에스프레소 더블이 나왔다. 아껴 마신다. 원래는 한 잔 쭉 마셔야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대낮이고 밖은 너무 덥다. 여기서 두어 시간 버티고, 조금 선선해지면 마트 가서 런천미트 같은 햄 통조림을 몇 개 사자. 옛날 입맛이라, 그런 거에 간장 밥, 비빔밥, 계란 프라이와 라면 종류만 만 있어도 2주는 잘 버티지 싶다. 생각하면 지난 세기 선원들의 고생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무런 통신 장비도 없이 나침반과 육분의 크로노미터 시계만 가지고 세계를 쏘다니다가, 괴혈병을 앓다가 죽거나 하지 않았던가. 비록 레이더가 일부 고장이지만, 최신 요트에 정확한 해도 전자 장비를 가지고 항해를 못한 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터키에서 한국을 향해 항해 준비를 하시던 선장님께 전화가 왔다. 아내분이 나의 아덴만 탈출기를 보고 항해가 실제론 너무 고생스럽다는 것을 아셨다. 문제는 8월에는 지부티에 너무 더워 아무도 없고. 모래 바람이 덮치는 무서운 계절이라, 8월 중순 수에즈 도착, 9월초 지부티에 온다고 해도 수단은 전쟁 통이고, 지부티에서 출항해도 올해는 동남아시아 까지 밖에 못 간다. 동지나해에 겨울이 오는 것이다. 그럴 바엔 지브롤터로 나가 대서양을 횡단하고 파나마를 건넌 후 태평양으로 가는 것이, 바람 방향도 맞고 고생도 덜 할 거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태풍의 계절이 다가온다. 그분 가족의 항해에 평화가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고, 나는 얼결에 무모하게 홍해와 아덴만을 지나왔다. 이젠 인도양을 건너면 된다. 다행이 아직 사이클론 소식은 없다.
오후 4시. 글로서리 마켓에 가서 캔 미트와 오이, 사과, 살균우유, 오이지 등을 산다. 워낙 비싸서 금새 한국 돈 35,000원이 넘는다. 일단 이것만 사고 배로 돌아간다. 바다에서는 분명히 아! 그걸 살 걸하고 후회하겠지만 대략 20일 이상의 식량은 있다. 특히 감자 등 야채는 얼마 못가 싹이 나고 상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산다. 여동생이 비타민 C를 사라고 하는데 그런 건 없다, 아마 말레이시아 랑카위 쯤 가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스리랑카에서도 노력해 보자.
제네시스에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레이더 플로터를 분해 청소 조립해 본다. 결국 스위치 두 개는 먹통이다. 여기까지 해 봤으니 뭐. 최선을 다했다. 밤에 견시를 좀 더 자주하면 된다. 그만 애태우자. 스트레스다. 랑카위에서 임대균 선장이 E-bay에서 산 중고 C80을 가져 올 테니 5월까지만 고생하자.
오후 5시 30분. 배를 전체적으로 물청소 한다. 펜더를 정리하고 기름통을 다시 잘 엮는다. 이번 항해에 아덴만 같은 맞바람 강풍 항해는 없다. 중간에 무풍지대를 잘 빠져 나와야 한다. 디젤유 상황을 면밀히 살펴 기름 모자라 표류 하는 일은 없어야지. 열심히 땀 흘리며 항해 준비를 한다. 2주간의 고독을 준비한다.
시간이 총알 같이 흐른다. 벌써 7시다. 저녁은 어떻게 할까? 맛난 것 먹고 설사 한 번 더할까? 폰툰 바로 곁의 레스토랑에 가니 전부 해산물 요리다. 고기류는 앆 점심 때 커피 마신 곳으로 가란다. 이런 어떻게 내가 부티크 호텔에서 커피 마신 것 까지 다 알지?
저녁으로 텐더 미트 200그램을 시켰다. 식전 빵과 버터, 양송이 스프와 사이드메뉴는 야채샐러드, 디저트는 아이스크림. 모두 다 맛있었다. 그러나 고기는 조금 남겼다. 위장이 많이 줄었나 보다. 이상하게 식사하며 졸렸다. 어제 잠을 못자서 그런가 보다. 식사를 마치고 곧장 배로 돌아와 수도 호스를 정리해 배에 싣는다. 내일 아침 육전 전선만 정리하면 바로 출항이다. 떠나기 직전에 10일치 윈디를 다운 받아 두자. 나모지 4일은 임대균 선장이나 다른 분들이 위성전화로 알려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내일 아침 4월 25일 오전 7시 출항 예정. 14일간 인도양을 건너 스리랑카 Galle 로 간다.
# 공지 : 안녕하세요? 제가 위성전화기 충전을 못해서 사용 못합니다. 스리랑카나 랑카위에서 해결해 보려 합니다. 혹시 기상 정보를 알려 주시거나 생존 확인 하실 분이 계시면, 제 입장에서 오전 9시~11시 사이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제 위성전화기 번호 제네시스호 위성전화 00188-216-2343-0635 로 하다가 안 되면,
청해부대 +82 70 4948 4905 나
해수부 +82 44 200 5896 로 전화해서, 제 전화 번호 주고 연락이 안 된다고 찾아 달라고 하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늘 너무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