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黃昏) -- 박 완 서
민근홍 언어마을
1. 작가 소개
박완서(朴婉緖 1931- ) : 여류소설가. 경기도 개풍 출생. 서울대 국어교육과 중퇴. 1970년 <여성동아>에 "나목(裸木)"을 발표하여 등단. 안이한 소시민적 인생관과 삶의 방식에 대해 강렬한 반발을 나타내면서, 우리의 사회가 보통 사람들을 어떻게 소리도 없이 몰락시켜 버리는가를 날카롭게 파헤쳐 보인다. 대표작으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휘청거리는 오후",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이 있다.
2. 핵심 정리
1) 갈래 : 단편 소설
2) 배경 : 시간(현대). 공간(서울의 강남 아파트 단지)
3) 경향 : 심리주의적 사실주의 경향
4) 시점 : 작가 전지적 시점
5) 구성 :
발단 - 고부간의 소원(疏遠)한 관계
전개 - 명치 부분을 문질러 달라는 시어머니와 이를 거절하는 며느리
절정 - 며느리와 친구 전화를 엿들은 후 어머니는 모욕감으로 분개함
결말 - 시어머니의 소외감
6) 주제 : 고부(姑婦) 간의 심리적 갈등에서 오는 시어머니의 허탈감과 소외감
7) 출전 : <뿌리 깊은 나무>(1979)
3. 등장 인물
1) 젊은 여자(며느리) : 주관이 뚜렷하고 완벽하며 냉정하다.
2) 늙은 여자(시어머니) : 과부. 감정적인 인물
3) 젊은 여자의 남편 : 수동적인 인물
4) 의사 : 이지적이고 사무적이다.
4. 줄거리
아파트에서 늙은 여자(시어머니)와 젊은 여자(며느리), 젊은 여자의 남편과 아이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어머니란 칭호를 쓰지 않고 노인이니 할머니라는 말을 쓰고 있다. 시어머니는 가슴앓이 병이 있다고 하면서 며느리와 아들에게 명치 부분을 문질러 달라고 청하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이를 거절한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도 뚜렷한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 날, 며느리 친구한테 전화가 걸려 왔는데 친구는 홀시어머니가 지금 성적인 욕구 불만이 있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이 전화 내용을 우연히 엿듣게 된 시어머니는 심한 모욕감을 느껴 분개한다. 시어머니는 기쁨과 슬픔을 나눌 대상이 그리워 명치 부분을 문질러 달라고 한 것인데 이를 오해하는 며느리와 아들이 미웠다. 늙은 여자는, 자기가 비록 혼자 살지는 않지만 자기 뜻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5. 이해와 감상
1979년 <뿌리 깊은 나무>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서, 중산층의 허위에 찬 생활 윤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감정 대립을 통해 강남 아파트 단지로 상징되는 대도시 중산충의 물질적 풍요의 공허함과 윤리 의식의 붕괴 상태를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다.
박완서의 소설은 개인이 겪는 슬픔과 기쁨, 성공과 실패가 사회 현실의 전체적인 문맥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 준다. 구체적인 생활 체험에 뿌리를 둔 직관력(直觀力)과 섬세한 언어 감각을 통해서, 개인과 사회라는 추상 형태를 생생한 리얼리티로 빚어내는 데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작가의 전반적인 주제 의식은, 어떻게 해서 개인과 사회가 도덕적으로 마비되고 정신적으로 붕괴되는가의 원인을 파헤치는 데 놓여 있으며, '황혼'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고부(姑婦) 간의 심리적 갈등과 함께 젊은 세대의 윤리적 마비와 늙은 세대의 소외감을 포착하고 있다. 또한, 성적 관점에서 모든 현상을 해석하려는 타락한 상상력도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 '늙은 여자'가 명치 부분을 문질러 달라는 것은 오랫동안 과부로 살아 왔기에 정이 그립고, 쓸쓸함을 위로 받고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였다. 그런데 이것이 '성적 욕구와 불만에서 오는 증세'라고 오해받을 때 '늙은 여자'는 분노 와 함께 소외감을 느낀다.
현대 사회는 핵가족화로 세대간의 단절이 심화되고 있다. 사고 방식과 감정의 교류 방식이 다르다. 이러한 단절감이 전통적으로 정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던 가족 사이에서 역설적으로 더 심화되고 있다는 데 치유의 어려움이 있다.
자식까지 내 품안을 벗어나고, 며느리에게까지 오해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노인 세대 의 심리적 부담감, 그리하여 이제 내 인생의 정처는 존재하지 않으며 가족 구성원의 짐에 불과하다는 소외감, 곧 '황혼 의식' 작가는 매섭고 앙칼진 목소리로서가 아니라 비애에 찬 노인의 내면 풍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너그러움과 사랑'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