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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가 병들어 죽다 (요한복음 11장 1~16절)
죽어가는 백성을 사랑하사 생명을 살리려고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을 씌워 돌로 치려 하자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여 요단 저편으로 피하시게 됩니다.
신성모독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배척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들이
신성모독 하는 자들로
성경은 이들을 돌로 치라 하신 것입니다.
시편 82편의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신처럼 여기고 있지만 진리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여
생명을 죽이고 있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고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요한복음의 마지막 표적인
일곱 번째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고 있는데 ....
본문의 말씀은 요한복음 10장 26~28절의 말씀과
이어지는 문맥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6~28절을 잠시 살펴보면 ....
요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유대인들에게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양이 아니라는 것으로
택함을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택함을 받은 백성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는 것이며 이러한 자들에게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영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영생을 어떻게 주시는지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죽은 자들이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시고
요한복음 5장 24~25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죽은 나사로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살아나오는 것처럼 무덤에 있는 자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살아 나온다는 것으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시는 모습과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모습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갈 수 없는
38년 된 중풍 병자를 죽은 자로 표현하고 있듯이
죽은 자가 예수님의 음성인
복음의 말씀을 듣고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이미 죽은 나사로처럼 무덤에 있는 자들로
지옥불에 던져질 자들인데
그들 중에 예수님의 음성을(복음의 말씀) 듣고
살아나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인데
생명을 살리는 권한을 예수님께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도 이러한 의미의 말씀임을 기억하시고
본문 1~2절을 봅니다.
요11:1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다>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요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본문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예수님을 제외하고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입니다.
마리아는 본문 2절에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라는 것으로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자신도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믿음을 가진 자라는 뜻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가 나사로처럼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마리아는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누가복음 10장 38~42절을 보면 ....
눅10:38 <마르다와 마리아>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눅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눅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눅10: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눅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가시게 되고
그때 마르다는 손님 접대를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동생 마리아는 언니 마르다의 일을 도와주지 않고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의 말씀만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도와달라 청하자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여
생명을 빼앗기지 않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헌신과 봉사보다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먼저라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자신도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믿고 자신이 가야 하는 심판의 길을 대신 가시는
주님께 자신을 위하여 준비한 향유를 부어드리는
믿음의 용사가 된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3~4절을 보면 ....
요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요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시는
표적을 행하실 때에도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표적도
예수님이 표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교회에게 영광을 받으시는 것으로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5절을 보면 ....
요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예수님은 본래 마르다와 나사로를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에게 보호를 받은 자,
구원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부르심을 받아 구원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8장 28~29절의 말씀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자들로 만들어 주셔서
구원해 주시려고 미리 정하신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뜻인데
예수님이 마르다와 나사로를 사랑했다는 의미도
이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본래부터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분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본문 6~7절을 보면 ....
요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예수님은 이틀을 유하신 후에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하여 유대로 가십니다.
이틀을 더 유하시고 셋째 날에 유대로 가시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죽은 나사로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널 때에도
사흘 후에 건너가게 됩니다.
수3:1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다>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수3: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수3: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수3: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사흘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 뒤를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따라가라는 것으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만
요단강을 건널 수 있다는 뜻으로
사흘 후에 언약궤를 따라 요단을 건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인
복음의 말씀으로만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구원) 뜻으로
예수님은 셋째 날에 유대로 가시는데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께 돌아오라며
호세아 6장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호6:1 <백성들의 불성실한 회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나님은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는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을 징계하셨는데 언제든지
여호와께 돌아오면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 돌아오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어지는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호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이틀을 더 유하신 후에
유대로 가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복음으로 살리신다는 뜻으로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면
복음이 밝히 드러나게 되고 성령님이 오셔서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하여 믿음의 백성이 되므로
셋째 날이라 말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라는 뜻으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을 알기 위하여
마리아와 같이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도 모르고 제자들은
본문 8~1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요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요1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요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예수님이 낮과 밤을 말씀하시는데
해가 뜨고 지는 낮과 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 하는 것은 낮이요(복음을 믿는 것)
함께 하지 않는 것이(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밤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함께 하심으로(믿음으로)
실족하지 않게 되어 생명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2~14절을 보면 ....
요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11: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요11: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요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참고로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있는 모습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기에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말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었다고 말하는데 ....
고린도전서 15장 16~20절을 보면
잠들었다는 의미를 알게 됩니다.
고전15: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예수님을 믿어도 죄 가운데 있어
지옥불의 고통을 우리가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불의 고통을 받지 않고 부활케 하려고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고전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믿고 메시아 오심을 소망하다가
육신이 죽은 사람도(잠자는 자) 부활하지 못하고
그 소망을 가진 교회도 부활하지 못하여
지옥불의 고통을 받아야 하는 불쌍한 자라는 것입니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는
아브라함 같은 사람을 말하는데
밭이 딸린 막벨라 굴에 장사 된 아브라함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
자신도 부활할 것을 소망하는 자를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자들을 부활케 하려고
처음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생명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잠자는 자는 예수님처럼 생명으로 부활한다는
믿음을 가진 믿음의 용사가 육신이 죽은 것을 말합니다.
이어지는 본문 15~16절을 보면 ....
요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요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죽은 나사로를 살려 제자들도 부활의 소망을
갖도록 할 수 있어서 내가 거기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도마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인데 도마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예수님이 복음의 말씀을 듣는 귀를 열어주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 무엇인지 모르고
이 땅의 삶을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며
다른복음을 따르다가 지옥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나사로처럼 죽어 무덤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진리의 길을 걷게 하여
구원해 주시고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바라며
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더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