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밤 풍경....
숙소였던 간파티게스트하우스...
<2025.08.01. 금요일>
간파티 게스트하우스 숙소 체크아웃하고
택시타고
바라니시국제공항 - 첸나이공항 환승 - 스리랑카 콜롬보공항 - 콜롬보 시내호텔 숙박
큰 배낭은 호텔의 포터들이 운반해 준다
바라나시 공항직원이 티켓팅 후 같이 사진한장 찍자고 요청 해서 찍었는데 누구폰으로 찍었는지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스리랑카로 들어가니 모든게 달라졌다
거리풍경이며
사람들 질서있는 모습
둥등....
환전소로 4500달러 가운데에서 비지피 제외 한 3950달러 스리랑카 루피로 환전햇다
인도루피는 고액권이 500루피인데 비해
스리랑카는 5,000루피고 고액권이네...
<2025.08.02. 토요일>
스리랑카 콜롬보 호텔 - 버스대절 - 담블라이동 - 담블라 호텔 숙박
담블라로 가는 도중 야자수 나무 가득한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
제법 격식있는
식당에 들어가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고
또 한참을 달려 시기리아 가까운 담블라시내 호텔을 예약하고 여장을 푼다
호텔식당에서 저녁으로 소고기스테이크 시켰는데
고기는 질기고 양은 적고...
오늘도 왼 종일 이동만 햇다
<2025.08.03. 일요일>
새벽05시
어제 타고 왓던 버스로 시기리아(사자의 발톱) 유적방문...
455년부터 스리랑카를 지배했던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모리야 왕조 시조인 다투세나 왕(429~473)에게는 장남 카샤파(449~495)와 차남 목갈라나(450~515)라는 아들이 두 명 있었다. 그런데 장남인 카샤파의 어머니는 평민 출신이었지만 차남 목갈라나의 어머니는 왕가의 출신이었다. 카샤파가 장남이긴 하지만 왕위를 상속받기에 불리한 조건이었다.
결국 473년에 카샤파는 다투세나의 조카이자, 군대의 지휘관인 미가라의 도움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인 다투세나를 투옥시킨 후 스스로 왕위에 올라 카샤파 1세가 되었다. 왕이 된 카샤파 1세에게 미가라는 다투세나가 숨겨둔 보물에 관한 얘기를 하였고 카샤파 1세는 투옥한 다투세나에게 그 보물이 있는 곳의 위치를 알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다투세나가 보여준 보물이라는 것은 카샤파 1세의 기대와 달리 그가 재임 중일 때 만들었던 관개 시설용 저수지였다. 이에 화가 난 카샤파 1세는 아버지를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일 때문에 카샤파 1세의 평판은 스리랑카 전역에서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5]
한편, 동생 목갈라나는 이 쿠데타를 피해 인도로 도망쳤다. 왕권의 정통성을 가진 동생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두려워 한 카샤파 1세는 477년,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를 떠나 시기리야로 천도하게 된다. 시기리야 일대는 기원전 3세기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던 곳으로 특히 불교 승려들의 거주지였다. 카샤파 1세가 천도한 이후 시기리야 일대는 왕의 요새로 변모하게 되었다. 바위 정상에는 궁전과 부속 건물들, 바위를 파서 만든 거대한 수조가 만들어졌으며 중턱에 위치한 작은 평지에는 사자의 문이라 불리는 관문, 바위를 깎아 만든 거대한 벽에는 프레스코화와 낙서들, 그리고 지상에는 정원과 해자, 성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시기리야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약 20년 후인 495년, 인도에서 세력을 키운 목갈라나[6]가 돌아오면서 동생과의 전투에서 패한 카샤파 1세가 자결하고 만 것이다. 이후 왕이 된 목갈라나 1세는 이곳을 원래 수도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승려들에게 돌려주면서 왕도의 위상은 사라졌다.
이후 시기리야는 1831년 영국인 조나단 포브스(Jonathan Forbes)에 의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될때 까지 잊혀지게 된다.
(인터넷발췌)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에 시기리아 국립공원에 들어선다
정상에 올라 일출을 조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하든데 날씨가 흐려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보는 시기리아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 하게 느껴진다
아침에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
양쪽에 사자의 발톱을 조각 해 놓았다
바위 정상에 올라 주위를 조망 해 본다
이 높은 바위 절벽위에 왕궁을 건설하여 나라를 세우다니....
선뜻 이해 되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다
현지인을 비롯하여 수믾은 유럽인들이 모여 들었다
건너편에 시기리아 전망대가 보인다
나중에 저 곳에도 올라서 시기리아를 조망햇다
웬만한 작은 산 하나 오르는 셈이다
시기리아로 오르는 철책계단....
바위 절벽에는 그 크기를 가늠 할 수 없는 석청이 무진장으로
매달려 있었다
전망대에서 보는 시기리아...
전망대 정상에서 자라는 선인장....
시기리아 전망대에서.....
목조와불...
시기리아 유적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챙겨 3시간여 대절버스를 타고 캔디에 도착하여 하푸탈레로 가기로 한다
캔디에서 하루 머물기로 햇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다
처음에는 기차로 이동 하려고 햇으나 시간이 마땅치 않아서
로컬버스 타고 가기로 한다
오늘 목적지인 하푸탈레까지는 중간에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 한다
캔디정류장매점에서
빵,콜라사서 차에 오른다
버스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다
겨우시 자리하나 잡고 앉았는데
17살된 여고생과 그의 어머니와 3명이 나란히 앉아서 가게 된다
사이드백을 디져보니 현지에서 쓰려고 쌋던 작은 수첩드개 보이길래
여고생에게 주었더니
민망할 정도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빵과 콜라도 나누어 먹고..
여고생은 가방에서 스낵과자 한봉지 뜯어서 같이 먹자 하는데
매운맛이 나더라..
도시이름이 잘 기억이 안나는데
오는 도증에 여고생 일행과 작별하고 조금 더 진행한 후에
버스 한번 갈아타고 하푸탈레로 간다
버스차장에서 일행 8명 분 버스비 계산 하려고 5000루피 주었는데
잔돈으 나중에 주겟다더니 한참을 기다려도 안주데...
차장에게 가서 잔돈 달라고 햇더니 또 나중에 라고 하더니
십여분 후 잔돈 갖다 준다..
이놈자식 잔돈 떼 먹으려고 한거 아인지.....
밤이 이슥한 시간에 하푸탈레 도착하고 택시타고 예약해 둔 숙소로 들어가 여장을 풀고
인근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는다
이것 저것 현지식으로 시켯는데 먹을 만 햇다
몸 상태가 좋지않은 적석행님은 숙소에서 기다린다
돌아올 때 우유 한통 사다 준다
<2025.08.04. 월요일>
하푸탈레 숙소에서 보는 아침 풍경...
하푸탈레 숙소
아침 먹었던 식당
오전에 하푸탈레 시내 구경하면서 들려 본 하푸탈레 驛 풍경...
레일웨이 하푸탈레 스테이션
어제 하푸탈레로 오는 동안 지겹도록 본 것은 녹차 밭이었다
스리랑카는 홍자의 나라...
녹차를 건조해서 홍차로 만들어 세계 각구에 수출을 한다
오늘 일정은 녹차가공공장 견학과 녹차밭 구경
그리고 나인브릿지 투어이다
택시를 대절해서 타고 녹차 가공공장애서 잠시 대기하다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공장 견학을 마치고
기념품으로 완제품 홍차 2봉지씩 구입한다
가공공장 정원...
날씨가 맑았더라면
더 없이 좋은 풍경을 볼 수가 있었을텐데 안개가 자욱하여 조망을
즐길 수가 없었다
너무 아쉬웠던 순간...
녹차 밭 전망대 높이가 지리산보다 높은 해발 2200미터가 조금 넘는다
이 양반 이름을 잊어 먹었다
여하튼 녹차밭을 최초로 조성한 영국인이다
녹차밭은 국영기업에서 운영을 하고
많은 현지인들이 그 잎을 따서 가공공장에 갖다 주면 무게에 따라 품삵을 받는 시스템....
아..
립톤이라는 인물이다
립톤이 처음 앉은 의자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스낵바로 자리를 옮겨 홍차 한잔과 더 불어 간식을 먹는다
녹차밭 전경
안개가 야속해...
녹차밭 투어를 마치고
엘라라는 도시로 이동하여 나인 아치스 브릿지 투어에 나선다
1920년대 영국 식민지 시절
철근없이 순수 벽돌로만 건설 된 Nine Archie Bridge도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많은 유럽인들로 북적인다
아치가 9개....
언덕에 있는 카페로 올라 가서 아이스커피, 맥주한잔씩 마시면서
멍때리기....
엘라는 관광도시 답게
차도 많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늦은 밤 하푸탈레 숙소로 이동하여 오늘 하루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