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도 경 이었다.
집에 있는데 전화가 한통 왔다. 정신보건센터에서 왔다.
의료보험 공단에서 전화번호를
받아서 정신보건간호사 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나올 수 있겠냐고 했다.
그래서 승용차를 몰고 나갔다.
정신보건 간호사(이하 간호사)가
보건소 한 사무실로 같이 들어 갔다.
거기에 들어가니 나의 나이 또래의
환우들이 다 있었다.
그런데 다 혼자 살고 있었다.
결혼하고 자가 아파트에 자가용이
있고 처가 있고
자녀 셋이 있는 나 같은 경우가
처음 이었다.
병식과 지식도 겸비 되어 있었다.
간호사는 수기를 써서
책을 내려고 했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 봤단다.
정신보건센터에 나가니 생계가 어려워 졌다.
그래서 관할 동사무소에 찾아가서
복지카드 를 신청하고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되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2002년 부터 2007년도 까지
불안이 엄습 하여 왔다.
주치의가 항불안제를 바꿀 생각을
안했다.
그래서 2007년도 복지카드를 영구히 받자 마자
지금의 주치의 에게 병원을 옮겼다.
증상을 이야기 하니 빅손정을 넣어주셨다.
먹는 동안 몸이 이상 했으나
주치의가 2주 되면 괞찬아지니 걱정 하지 말라고 했다.
2주가 되는 날 주치의 말씀데로
불안이 없어졌다.
그리고 직장을 알아 보았으나
관리직을 했는 것과
나이가 40대 여서 취직이 안되었다.
기술직으로 가기 위해 밀링도 배우고 오토캐드도 배웠다.
그런데 다 나이가 많아서 취직이 잘 안 되었다.
집사람과 상의 끝에 처남댁 가게에서 치킨집 관리를 했다.
19세-21세 직원들을 데리고
가게를 사람관리는 내가 하고
아주머니 두분의 관리와 모든 것은
집사람이 했다.
젊은 직원들은 이틀이 멀다 하고
사고를 냈다. 매일30분씩 지각 하고 임금을 그대로 받아 갔고
나를 애를 먹었다.
경찰이 오고 보험 처리하고 오토바이 사고 수리를 하고
그랬다.
아주머니 두분도 꾀를 내고 그랬다.
치킨가게는 삼년정도 하고 처남 댁에게 세계경기가 안좋으니
가게 접는 것이 옳다고 내가 이야기 했다.
그래서 처남댁은 가게를 접었다.
자식들이 스카이대를 진학하고
계속해서 간호대학을 가고
막내가 스카이대에 진학 했다.
추기:첫째는 스카이대 공대 박사학위 취득하고 연구실 책임자로 있으며 교수가 된답니다.
둘째는 대학병원 5년차 간호사가
되었으며
막내는 스카이대 생명공학과를 다니다가 3학년1학기하고 공군 의무병으로 갔다와서 독학으로 6개월(학원안다님)공부 해서
국립대학교 약학대학 약학과 3학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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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 수기
정신보건센터에서 다닐때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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