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앞서의 글에서도 지적한바 있지만 한자의 어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도권 싸움은 문자창제의 역사과정(원리와 이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조건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억지논리이다. 갑골문을 동이족이 창제했다고 해서 지금의 한자가 모두 갑골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도 그렇고 더욱이 본토 바깥에서 한자를 제대로 쓰지도 않으면서 원조타령을 하는 모습도 꼴사납다. 전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든 언어와 문자는 수천년의 변천사가 있기에 특정 시기 특정 민족, 특정 왕조의 창제논리는 맞지 않는다. 한자 역시 황하문명권의 각 민족들이 만들고 사용하면서 변천되어 온 것이다. 즉 특정 민족이 만든 것이 아니란 뜻이다.
다만 지금까지 쓰는 한자는 漢나라때 대대적으로 정비되었다. 이를 주도한 이는 중국의 한족이다. 이렇게 되기 까지는 수천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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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는 漢나라때 易의 卦象과 음양오행 원리로 재정비된 글자
1)한자에 왜 ‘○’이 없고 ‘口’만 쓰는가?
「易」의 원리에 의하면, 하늘과 짝하는 땅과 만물은 하늘의 음양 기운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이에 하늘(天)을 本體(본체)이자 황극으로 여긴다. 본체는 근본적이고 유일무이하기 때문에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 이를 ‘體不用(체불용, 체는 쓰지 않는다.)’ 또는 ‘皇極不語數(황극불어수, 임금 자리는 셈하여 말하지 않는다.) 법칙이라고 한다.
즉 모든 것의 本體(곧 皇極)가 되는 존재는 보이는 형상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는 원리이다. 임금 자리를 당사자가 없이 빈 상태로 그린 조선시대의 進宴圖(진연도, 上)와 進饌圖(진찬도, 下). 正祖의 華城(화성) 行次圖(左, 임금이 타고 있는 御座馬에 정조임금이 없다) 등이 그런 경우이다.
또한 하늘은 둥그런 원 모습으로 땅은 네모난 사각형 모습으로 상징 표현한다. 天圓地方(천원지방) 사상이다. 주역의 괘상(卦象)으로는 하늘이 만물을 다 덮는다는 의미에서 양부호이자 하나의 숫자인 ’一‘로 상징했으며 땅은 하늘의 기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음부호인 ’--‘로 나타냈다.
하늘의 해를 나타내는 글자를 형상화할 경우, 하늘을 상징하는 ‘○(동그라미)’와 ‘ㅡ’을 조합해서 글자를 만들어야 하는데 漢字글자에는 ‘○’가 없다. 하늘은 體에 해당하고 易의 ‘體不用(체불용)’ 법칙에 따라 하늘을 형상화한 ○를 아예 못쓰게 하였기 때문이다.
대신에 口을 썼다. 圓(둥글 원)과 回(돌 회)가 대표적이다. 해(태양)는 口에 양(陽)부호이자 으뜸과 하나, 모두라는 뜻을 담은 一을 넣어 ‘日(날 일)’로 나타냈다.
이렇게 음양오행 원리와 이치로 정비된 때가 漢나라 때이고 이 글자체를 今文이라고 한다. 반면에 한자의 어원인 갑골문자를 비롯해 한나라 이전의 글자체를 통틀어 지칭하는 각종 古文書體에는 ‘○(동그라미)’형태가 들어 있다. 즉 漢나라 때부터 ‘○’를 쓰지 않고 ‘口’로 통일하였다는 뜻이다.
: 漢나라 , 秦나라 글자체 : ①康熙字典體(강희자전체)②隸書(예서)③小篆(소전),大篆④行書(행서)⑤ 草書(초서)
書體는 필기구에 따라 큰 변화를 겪는다. 紙筆墨(지필묵)이 발명되기 전인 殷(은)나라 때에는 甲骨文과 金文이 있었고, 周나라 宣王(선왕) 때는 太史인 籀(주)가 大篆(대전) 15편을 지었는데 글자체가 그림처럼 아름답기는 하지만 매우 복잡했는데 太史의 이름을 따서 籒文(주문)이라고 하거나 大篆體(대전체)라고 한다. 이후에는 竹簡이나 木簡에 쇠꼬챙이 등으로 글을 새겨 넣은 蝌蚪(과두)文字가 있었다.
중국은 春秋戰國 시대로 접어들어 백가쟁명이라는 말 그대로 지식문명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새로운 글자가 많이 만들어지고 아울러 이 글자들이 전파되는 과정에 나라마다 글자가 달라졌다. 7백여 년 만에 천하를 통일한 秦始皇帝(진시황제)는 李斯(이사)의 주청에 따라 글자의 형체를 한 가지로 정비하였다. 大篆(대전)에서 취하되 번거로운 것들은 덜어내고 고쳐서 小篆(소전)를 만들었다. 그 외 서체로 된 전적들은 모두 소각하였는데 이를 ‘焚書坑儒(분서갱유)’ 사건의 焚書이다.
'焚書' 秦王 政이 즉위 26년에 천하를 평정하고, 始皇이 되고난 8년 뒤인 즉위 34년에 咸陽宮에서 술자리를 벌였을 때 승상인 李斯가 “천하에 감히 감춰둔 詩 書와 百家의 말은 다 모이게 하여 한꺼번에 태우고, 각 지역의 郡守와 郡尉(군위)들을 만나서 감히 詩 ,書를 말하는 자들을 죽여 저잣거리에 버리도록 하고, 명을 내렸음에도 30일 내로 태우지 않으면 墨刑을 하여 城旦刑(성단형, 머리를 깎고 목에 칼을 씌워서 변방의 장성을 쌓는 곳으로 보내 낮에는 외적을 살피고, 밤늦도록 장성을 쌓게 한 형벌로, 4년형)에 처하도록 하소서.”라고 주청했더니, 시황이 “가하다.”고 했다. 이리하여 벌어진 사건이 ‘焚書’이다. |
許愼(허신)이 글자의 해설을 위해 설문해자에서 취한 글씨체가 바로 小篆이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여 각종 업무를 아우르려 하다 보니 소전체보다 좀 더 간략한 글자가 필요하여 만든 글자가 隸書(예서)이다.
①康熙字典體(강희자전체)②隸書(예서)③小篆(소전),大篆④行書(행서)⑤ 草書(초서) : 漢나라 , 秦나라 글자체
漢나라 , 秦나라 이전의 글자체인 ⑥甲骨文(갑⑨문)⑦金文(금문)⑧古文 등의 글자에서는 ' ○(동그라미)' 모양이 있다.
이로부터 秦나라에는 모두 여덟 가지 서체가 있었는데 ①大篆 ②小篆 ③刻符(각부, 대나무의 결에 따른 글씨체)
④蟲書⑤摹印(모인,굴곡지면서도 빽빽한 글씨체로 秦의 國璽국새 문자)⑥署書(서서, 관청의 현판 글씨) ⑦殳書(수서, 작대기에 쓴 것으로 여덟 모서리의 형세에 따른 글씨체) ⑧ 隸書(예서)이다.
이후 漢나라가 들어서면서 艸書(草書,초서)가 생겼고, 여러 典籍들을 정리하면서 만든 今文이 바로 오늘날까지 쓰게 되는 正體인 楷書(해서)이다.
2)주역의 음양 원리를 통해 문자 정비한 漢나라
‘하나’라는 숫자인 ‘一’이 왜 가로 모양이며 陽(양 : 一)의 의미인가?
또한 月(달 월)의 안에 있는 ‘二’가 왜 陰(음 : - -)을 뜻하는가?
하늘을 ‘天蓋(천개 : 하늘 뚜껑, 하늘 지붕)’라고 한다. 하늘을 머리 위를 덮고 있는 형상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는 하늘에 대해 ‘ㅡ’로 표현했다. 하늘은 끝없이 이어진 모습으로 전체를 아우르는 형상이다. 또한 세상 만물 중에 으뜸이며,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이러한 모든 의미를 陽부호(ㅡ)이자 숫자인 一에 담아내어 상징표기한 것이다.
땅으로 상징되는 ‘- -(陰)’부호는 하늘이 베풀어준 것을 받아들이는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겹쳐 쓴 모양은 숫자 二를 뜻한다. 즉 땅(陰)은 하늘 기운(陽)을 받아들여 만물을 싹 틔우는 하늘 다음의 존재이다. 땅이자 음을 뜻하는 ‘二(- -)’에 땅에서 싹터 나옴을 형상한 ‘丨(뚫을 곤)’을 합하여 나온 글자가 ‘土’이다. 이렇듯 日 . 月 . 一 . 二 . 土 등은 주역의 음양 이치가 직접적으로 반영된 글자이다.
3) ‘明’이란 글자에서 양(陽)을 뜻하는 日은 왼쪽(左)에 위치하고, 음(陰)을 뜻하는 月은 왜 오른쪽(右)에 위치하는가? 주역의 ‘좌양우음’과 ‘음양교합’의 법칙이다. ‘日(해 일)’과 ‘月(달 월)’이 합하여 생긴 明(밝을 명)은 양과 음의 교합으로 左陽右陰(좌양우음) 법칙이 적용되어 만들어진 대표적인 글자이다.
#한자 #한문 #한나라 #체불용 #體不用
첫댓글 서예를 배울 때, 篆~隸~楷~行~草 순으로 익힌다고 하더군요~~~^~^
우짜든지 늘 여전하게 따뜻하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