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 이신칭의: 칭의론의 끝장판 2026 Justification from Faith: The Final Chapter on Justification
샬롬! 하나님께서 주신 망극하신 은혜로 천주교와 개신교가 약 500년에 걸쳐서 논쟁한 그리고 교회를 분열시킨 이신칭의에 대한 모두가 수긍할 정확한 성경적 해결책을 제시하게 되었으니 온 세상의 신학자 그리고 천주교 개신교 목사 신부님 그리고 약 30억에 달하는 모든 성도가 다 보시고 이렇게 알고 믿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예수님께 불을 받은 한국에 사는 목사로 전도자입니다. 할렐루야!
먼저 개신교의 칭의론에 대해서 설명을 드립니다. 모든 개신교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로마서 1장 17절을 듭니다. 보시겠습니다.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갖고 매일 매일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함과 같습니다. (제가 영어로 다시 정확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루터는 이 구절을 보고서 500년 전에 천주교의 면죄부의 판매와 다른 이해하기 힘든 실상에 도전했고 개신교를 열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이 구절을 통해서 설명했고 너무나 많은 지지와 호응을 얻어내어서 지금의 개신교가 태동하고 온 세상에 약 6억 명의 사람이 믿습니다. 같은 이 구절을 보면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주장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확한 근거가 있으니 누구도 반박이 불가합니다. 로마서 4장 1-16절에 있고 창세기 15장 6절에 있습니다. 같은 사람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설명하기에 같은 내용입니다. 역시 성경 본문으로 확인합니다.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롬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너무나 정확하게 개신교의 이신칭의를 설명합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가 없이 명백합니다. 그래서 천주교의 주장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500년을 버팁니다.
이제 천주교의 주장을 살펴봅니다. 천주교는 오직 믿음이면 된다는 개신교의 주장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고 믿음 +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도 너무나 명확하게 성경에 있으니 또 천주교인은 모두가 이렇게 믿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보시겠습니다.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너무나 정확하게 천주교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행위 구원이라 하면서 반박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도 받고 의롭게도 된다는 개신교의 주장과 다른 주장이 있습니다. 과연 바울의 로마서를 따라야 하는지 야고보의 야고보서를 따라야 하는지 혼동이 올 수도 있습니다. 두 성경에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설명하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양보도 없이 500년을 논쟁하면서 때론 심하게 비판도 합니다. 이를 어찌합니까? 같은 예수님 같은 하나님과 성령님을 믿고 성경도 같은 신약 성경 구약 성경을 보면서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2026 이신칭의 끝장판 주장입니다. 한국의 목사의 주장입니다. 너무나 쉽고 재미있는 성경의 공부의 길이고 성령께서 주관하시고 이제 서로 다투지 말고 하나가 되라는 명령입니다. 먼저 본문을 다시 가져다가 보아야 합니다. 본문에 해답이 있습니다.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갖고 매일매일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함과 같습니다. (제가 영어로 다시 정확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영어를 조금 하시는 모든 분은 제가 너무나 정확하게 본문을 이해하고 번역을 했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대해서 주목하시는 분이 계심을 보았습니다. 미국인이나 영국인이나 영어를 하시는 분은 위의 번역(NIV) 번역으로 보는 분은 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번역이 된 부분도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오직 믿음이란 말도 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설명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의 믿음을 이렇게 설명을 하는지 보시면 됩니다. 같은 한 사람의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도 하고 또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누구냐 하면 하박국과 아브라함입니다. 하박국서의 내용을 그대로 바울이 인용을 했습니다. 하박국서 2장 4절에 있는데 로마서 1장 17절과 정확하게 같습니다. 하박국의 질문에 하나님의 답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역경에도 나라가 망하는 상황 속에서도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하실 일을 믿고 정의롭게 매일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불의가 판을 치고 전쟁으로 나라가 망하는 상황에서 의인은 누구냐 하면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는 이는 누구냐 하면 바로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매일매일 정의로운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정확한 의미가 이렇습니다.
이제 또 한 사람 아브라함의 예를 보시겠습니다. 같은 사람 같은 믿음을 보고서 로마서와 창세기와 야고보서가 더로 다르게 기록을 했습니다. 이미 두 주장을 통해서 본문도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교회가 조금 주목이 덜 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이 두 주장 중간에 있는 믿음입니다. 역시 성경에 있고 로마서에 있습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우리는 성경에 이렇게 자료가 있음을 누구나 인정하고 확인도 가능합니다. 이제 천주교와 개신교가 하나가 되는 이신칭의에 대한 설명이 위의 구절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신앙의 여정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한순간 즉 개신교가 본 순간과 천주교가 본 순간과 이들이 본 순간과 다른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이 있으니 100세 무렵입니다. 그렇다면 개신교의 주장은 과연 언제 아브라함의 모습입니까? 처음 하나님을 뵈옵고 명령에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이스마엘을 낳는 약 86세 전의 어떤 때입니다. 그래서 75-85세 때 아브라함의 신앙의 여정 때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고 이는 우리가 확인한 로마서의 부분과 창세기의 부분입니다. 모든 분이 읽은 개신교의 근거가 되는 내용입니다. 로마서 4장 1-16절과 로마서 3장 28절, 로마서 5장 1절 그리고 창세기 15장 6절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100세 무렵의 하나님의 의롭다 인정이 로마서 4장 16-17절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살펴본 천주교의 주장이 있는 야고보서 2장의 내용이 있습니다. 이때는 아브라함이 약 118-125세 정도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소년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해서 행동으로 바치는 아브라함을 보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십니다. 이를 같이 우리는 연결해서 보기로 합니다. 즉 아브라함 한 사람의 믿음을 이렇게 3번의 여정으로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보면 처음 믿음은 75-85세 무렵이고 끝 믿음은 118-125세 무렵입니다. 이 무렵의 신앙과 하나님의 의롭다 인정하심을 천주교와 개신교는 정확하게 보고서 각자의 논리를 펴니 성경에 근거한 두 주장은 절대로 틀리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100세가 되어서 의롭다 인정을 받은 부분을 두 교회는 인정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나 엄연하게 성경에 있으니 누가 부정을 합니까? 다시 보여 줍니다. 놀랍게도 성경을 100번을 읽어도 이 부분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냥 개신교의 교리로 믿으니 의롭게 된 것이다 하고 그냥 넘어가기에 그렇습니다. 무언가 아브라함의 75-85세 무렵의 의롭다 인정을 받은 부분과 다른 아브라함의 신앙이 있으니 믿음이 세월이 가도 견고해진 것입니다. 오직 믿음에 세월이 가도 견고해지는 믿음이 등장합니다. 이를 포함을 시켜야 합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제 이를 포함을 시켜서 보면 한 사람의 믿음이 세 순간으로 나타났고 천주교 개신교는 각각 이 세 부분의 세 순간의 믿음을 종합해서 보면서 칭의를 논해야 하나 각각 아브라함의 한 부분 즉 한순간의 믿음에 500년을 집착해서 보면서 서로 틀렸다고 한 것입니다. 이제 이를 아브라함의 일생의 믿음으로 보면즉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살펴보면 처음에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믿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개신교의 주장대로 정확하게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갑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백세가 다 된 아브라함에게 또 오셔서 그분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음이 더 견고해졌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의롭다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믿음 즉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하니 118-125세가 된 아브라함은 망설임이 없이 하나님을 믿고 즉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즉 이제는 믿음과 정말로 순종하기 어려운 아들을 잡아서 바치는 행위를 그대로 합니다. 이도 역시 너무나 천주교의 주장대로 정확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를 종합해서 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사람의 믿음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각각 다른 사람이면 종합하지 못하지만 천주교 개신교가 다 주목하고 서로 옳다고 하는 한 사람의 믿음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란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이 너무나 선명하게 존재하니 우리는 이를 종합해서 보아야 합니다. 처음 아브라함은 오직 믿습니다. 그리고 중간의 아브라함은 그 믿음이 견고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들을 바치는 행위를 수반합니다. 이제 우리는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약 100년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세월이 가도 약해지지 않으셨고 도리어 강해졌고 그리고 종국에는 아들까지 바치는 행동하는 순종하는 믿음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을 받아야 하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한 인간을 준비하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우리도 이와 같이 세월이 가도 하나님을 더욱 잘 믿고 순종도 잘 하도록 본을 삼으셨으니 하나님의 지혜와 성실히 무궁하시고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이 위대합니다. 널리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500년 동안 한 사람의 믿음을 오직 한 부분만 보고서 서로 옳다고 우긴 두 교회는 깊이 생각을 하시고 서로 하나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역시 본문 로마서 1장 17절을 보시면서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혹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번역이 된 한글의 성경과 달리 영어는 이렇게 되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의인은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사람이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역시 천주교와 개신교와 다른 부분이 있으니 천주교의 행위와 개신교의 오직 믿음과 다른 삶이 있어야 된다고 본문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서 그 믿음에 근거한 생활 즉 삶을 살아야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성도는 그 생명이 끝이 나는 순간까지 생활을 해야 하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 주관대로 살지만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을 방편으로 믿음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그 믿음에 근거한 삶을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됩니다. 그렇게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이 의롭게 된다는 것이 본문입니다.
이런 종합적인 내용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의 생활이 무엇입니까? 먼저 처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서 의롭다 인정을 받은 바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틀림없이 의롭다 인정을 하나님께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는 날까지 생명이 있으니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오늘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 얼마 후에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서 오시거나 혹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반드시 보실 것입니다. 첫 믿음 이후에 5년이 될지 10년 이 될지 15년이 될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언제나 보실 수가 있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이 아브라함과 같이 견고해져야 하는데 이제 먹고 살만하니 물질에 의지해서 하나님을 덜 믿고 이제 고난이 길어지고 응답이 늦어지니 낙담해서 덜 믿고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굳게 아브라함과 같이 어떤 어려움이 있고 믿음에 장애가 와도 굳게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고 이렇게 되어야 의롭다 하심이 연결이 되고 다시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또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아브라함의 본과같이 잘 믿는 우리가 되기를 하나님께서 바라시며 우리가 어떻게 믿는가 보십니다. 이제 50년을 믿고 물질도 태산만 하고 명성도 높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들을 바치라고 하지 않으시고 부자 청년에게 요구하신 것과 같이 재물을 가난한 이웃과 형제에게 나누라고 우리 모두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모든 한국인 성도가 이 요구를 하나님께 받고 있습니다. 이제 어떡해야 의롭게 됩니까? 당연히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이웃과 나누어야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됩니다. 내가 피를 흘려야 됨도 아니고 내가 죽는 일도 아닌 내 소유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라는 명령을 하시는데 내가 순종하지 않으면 여태까지 의롭다 하심의 연결이 이제 끊기게 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천지를 통치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딤전 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선하시며 의로우시고 신실하신 분이시며 믿는 사람의 하나님도 되시고 믿지 않는 하나님도 되십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부자가 되어서 가난한 사람이 세를 들어서 사는데 너무나 경기도 어렵고 장사가 되지 않는데 해가 갈수록 임대료를 올려서 그 사람이 살 수가 없어서 자살을 했을 경우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부자 성도에게 있습니까? 죽은 사람에게 있습니까? 죽은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께 이렇게 아뢸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잘 믿는다는 사람이 너무나 부자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우리 아버지의 사정을 들어주지 않고 너무나 힘든 우리 아버지 영업하는 사업장의 임대료를 매달 받아 가고 해가 가면 또 올립니다. 어떡합니까? 하고 하나님께 하박국이 따지듯이 따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내 자녀 부자가 무슨 문제냐 네가 못나서 그렇게 네 아버지가 못나서 그렇다 하겠습니까? 반드시 그 부자를 의롭다 하지 않고 불의한 자야 할 것입니다. 그 불의한 사람이 한국에 얼마나 있습니까?
또 다른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빠져서 도망갈 길이 없습니다.
겔 18: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25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26 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27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28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이렇게 올바로 가르쳐야 하는 목사가 오직 믿고 의롭게 되었으니 구원을 받은 것이고 천국에 오직 믿음으로 가니 행위가 없어도 가고 행위는 상급이다 주장하고 의롭게 됨을 취소가 없다라고 성도를 가르쳐서 그 성도가 위의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본을 따르지 않고 일생을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하며 순교한 바울의 예를 따르지 않고 막 살고 부자가 되어도 한국에서 40명이 매일 어려워서 자살해도 남의 일이야 하고 산다면 이렇게 교육을 시킨 목자가 갈 길이 어디이겠습니까? 재물이 우상이 된 자본주의 유럽과 미국과 한국에 중국 공산주의가 크게 대두되고 도전함은 이런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믿는 이들이 고쳐야 하는 세상을 누가 고칩니까? 이들이 못하면 누가 합니까?
2000년 대를 맞아서 이렇게 교리로 하나가 되어 온 교회가 악과 싸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 선택이 된 그분의 편지요 도구입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남해 바닷가 촌놈이 어찌 세상을 알며 흉악한 죄인이 어찌 교회와 성경을 압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며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이요, 선물로 오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다입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더 악했고 패역했던 사람이며 불효자며 가정적으로도 지극히 불량하며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이렇게 사용함은 모든 분이 다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고 모든 죄를 올바로 가시면 다 용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인 줄 믿습니다. 부디 회개하시고 선한 길로 가시길 바랍니다.
사랑의 주님! 주님의 뜻을 온 세상에 전합니다. 전하게 이해하고 깨닫게 하시고 전할 때 함께 하심으로 이렇게 전합니다. 모든 영광이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우리가 올바로 알고 올바른 길로 가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