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계절 여름이다. 하얀 모래와 파도가 눈부시게 펼쳐진 전국 해변의 백사장과 강변은 젊은이들에겐 여름철 피서지의 메카일 것이다. 70-80년대에 해변과 강변으로 휴가를 떠나 놀아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잊지 못할 노래에 대한 추억 하나 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해변가요제와 강변가요제 때문이다.
여름 대중가요를 대표하는 노래를 꼽으라 한다면 록밴드 키 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를 필두로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 혼성보컬트리오 쿨의 '해변의 여인', 남성 댄스 듀오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 포크 듀오 4월과 5월의 '바다의 여인', 록밴드 템페스트의 '파도' 등 세대에 따라 각기 다른 노래를 언급할 것 같다.
그만큼 '해변'과 '바다'를 소재로 한 여름철 가요는 시대를 초월해 풍성했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70-80년대 당시에는 전국 어느 해수욕장을 가더라도 젊은이들을 유혹했던 해변 간이고고장이 어김없이 있었다. 그곳엔 일탈에 충분한 밴드들의 신나는 고고음악이 울려댔고 휴가를 온 젊은 남녀들은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된 채 광란의 밤을 보냈다. 혈기왕성하고 피가 끓는 젊은 청춘들이 모였으니 온갖 사연이 엮어지고 사고 또한 다반사로 일어났던 것은 당연했다.
이 같은 여름 해변과 강변의 추억을 증명하는 전국규모의 대학생 가요제가 있었다. 동양방송이 개최한 제1회 연포 해변가요제는 1977년 MBC에서 개최한 대학가요제의 성공에 대응하기 위해 생겨난 당대 최고의 여름음악축제였다. 1978년 7월22일에 서해안 연포 해수욕장에서 열린 이 가요제는 당대를 대표할 불후의 명곡을 쏟아냈다.
그날 출전한 참가자들의 창작곡을 담은 실황음반이 당대 대중에게 날린 파장은 대학생 가요제 전성시대의 본격화를 알린 선언과도 같았다. 7080캠퍼스밴드 열풍은 이 무대를 통해 가공할 파괴력을 획득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본선에 올랐던 12팀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다섯 팀이 밴드였다. 또한 남성듀엣으로 참가했지만 이듬해 록밴드로 체질개선해 KBS에서 10대가수상까지 수상했던 80년대의 인기 밴드 '벗님들'도 있었다.
제1회 해변가요제 실황앨범이 낳은 불후의 7080캠퍼스밴드 명곡은 무수하다. 구창모가 리드싱어로 참가해 우수상을 수상했던 홍익대 밴드 블랙 테트라의 '구름과 나', 배철수가 리드했던 동상수상 밴드인 항공대 런웨이(활주로)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5개 대학 연합밴드 장남들의 장려상 수상 곡 '바람과 구름', 이명훈이 리드했던 휘버스(열기들)의 인기상 수상 곡 '그대로 그렇게', 장려상을 받은 중앙대 밴드 블루 드래곤의 '내 단 하나의 소원'등은 그 시절 여름 대중가요를 대표하는 명곡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밴드는 아니지만 당시 혼성보컬그룹 해바라기의 리더 이정선의 기성곡 '여름'으로 출전해 대상을 받은 한양대 혼성보컬그룹 징검다리에는 지금껏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왕영은이 있었고 수상은 못했지만 혼성듀엣으로 출전해 '속삭여 주세요'란 노래를 불렀던 개그맨 주병진도 해변가요제가 배출해낸 이색적인 인물들이다. 또한 솔로로 본선에 올라 장려상을 수상한 조인숙 또한 기억에 남을 만한 뮤지션이었다.
사실 동양방송 주최로 연포에서 개최된 대학생 가요제는 1978년 제1회 해변가요제보다 5년 앞선 1973년에도 있었다. 당시 대회의 이름은 '전국 대학생 보컬 경연대회'였다. 대단한 호응을 이끌어낸 해변가요제는 이듬해부터 해변을 떠나 '젊은이의 가요제'로 변신해 캠퍼스밴드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대신 여름철의 대표 음악축제는 MBC FM에서 창설한 강변가요제로 옮겨갔다. 트로트 가수 주현미와 장윤정과 이선희, 홍삼트리오, 사랑의 하모니, 손현희, 유미리, 이상은, 이상우을 배출한 이 대회를 비롯한 각종 대학생가요제는 '신인가수 등용문'이란 평가를 얻어냈다.
바로 그 점이 초기의 대학생 특유의 신선함을 잃게 한 주범이지만 해변가요제와 강변가요제 실황앨범은 그 시절 여름의 낭만을 되살려주는 한국 대중음악의 소중한 기록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