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km. 2만2천보. 5시간반.
오전에 산행 시작할 때 잠시 빗방울.
흐린 날씨. 후덥지근했다. 26도
중천님. 서병장님. 보름산님. 마일도님. 한소가 참석하였다.
1. 점심 전 6km : 팔달역 - 대백엔터빌 - 팔거산성 -
함지산 서봉 - 동봉 - 조야재
등산로 입구
대백엔터빌
오른쪽으로 잘못 빠지면
노곡동으로 내려가는 수도 있다.
잘 모르는 길에선
큰 길, 혹은 왕래가 잦아
길 바닥이 빤질빤질한 곳으로 따라가면
안심이다.
팔거산성은 서봉 정상 밑 편편한 곳에 있다.
남쪽을 제외하고 세 방향이 급경사지다.
태복산과 함지산 사이 4km 골짜기는
삼국시대 때부터
방어하기 좋은 곳이었다.
지금은 복원 공사중이다.
돌 무더기가 삼국시대 성곽 흔적일지도 모른다.
헬기장 주변에 군사 작전용 참호도 보인다.
함지산은 정상이 2개다.
높이는 동봉이 10m 더 높다. 288m.
함지산 서봉 정상은 헬기장이다.
서봉에서 동봉 가려면 한참 내려가야한다.
산 꼭대기와 안부
표고차는 적어도 30m.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말안장처럼 움푹패여 꺼진 곳을 '안부'라고 한다.
서병장님 고향 금호강 건너 산격동에서는
함지산 정상부가
좌우 대칭의 사다리꼴 모양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함지산으로 불렀다.
산격동에선 봉우리가 2개로 안보인다.
정남 방향인 침산동에서 보면
혹이 2개인 낙타등처럼 생겼다.
어쩌면 함지산이
낙타봉으로 명명될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렇게 생긴 산을
이런 모양의 산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자연이라는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오랜 세월 침식된 산지는
관찰자가 보는 방향과 서있는 고도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게 당연하다.
같은 산을 올랐어도
등로에 따라
사람이 체감하는 등산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수 있다.
함지박과 함지는 다르다.
국가기관에서 만든 지도에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난다.
운암지가 산꼭대기에 있는 것도
서봉이 동봉보다 높게 그려진 것도 오류다.
칠곡 동천동 사람들은 운암지에서 조야재로 함지산을 오른다.
함지산 정동 방향 무태쪽 높은 봉우리가 망일봉(270)이다.
조야동 사람들이 칠곡으로 들어가는 고개가 조야재다.
서봉 헬기장
함지산은 역암이 발달해있다.
함지산 정상. 넓은 덱크가 인상적이다.
조야재(170)로 내려가는 길.
무려 110m나 내려간다.
조야재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1시.
보름산님이 가져오신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서병장님은 술을 입 근처에도 가져가지 않았다.
마일도님은 조야재에서 하산했다.
마일도님은 5월 9일부터 오늘까지 19일 동안
무려 10 차례 도보에 나왔다.
이틀에 한번 꼴이다.
산행 열정맨으로 불러도 좋다.
2. 점심 후 4.5km : 조야재 - 국우터널 위 - 동변동.
연경마을 광해군 태가 묻혀있는 태실봉.
그리고 연경서원 터까지 못 갔다.
국우터널 지나서 동변동으로 하산했다.
조선 왕조는 왕가 번성에
온힘을 쏟아부었다.
태 주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좋은 땅을 골라 태를 묻어주었다.
태실 한 곳 조성하는데
농민 수천명을 동원하였다.
그런 바람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조선 말기에는
적자 서자 양자 가릴 것없이
남자 씨가 마르는 절손 상태가 되었다.
정조는 큰 아들을 유아기에 떠나보내고
순조 하나만 키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신의 후사를 이을
왕자 생산이 국가 대사가 되었다.
순조의 외아들 효명세자는
헌종만 낳고 요절하였다.
헌종은 자식 한 명 두지 못하고 죽었다.
헌종의 뒤를 이어
얼떨결에 왕이 된 철종은
헌종의 7촌 아재였다.
그야말로 개족보. 왕위 승계가
난장판 엉망진창이었다.
철종도 후사없이 죽었다.
몇 안 되는 자녀들은 모두 영아기에 사망하였다.
선왕 철종의 17촌 조카가 갑자기
왕으로 나타난 케이스가 고종이다.
고종의 아들 순종도
직계 자손이 없었다.
자손의 왕성과 발복을 원하는
아들에게 아버지 묘자리로
명당 찾아주는 왕릉 풍수지리,
좋다는 곳은 다 뒤져서
온갖 정성으로
시신을 묻었는데
후손 번성은 커녕 더 쪼그라들었으니
통탄하고도 남겠다.
왕비 간택과정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관상.
다산할 수 있는 얼굴과
체형이 으뜸 선발기준이 되었다.
길일 중에서 최고의 수태를 위한 합방일
고르는 관상감.
피붙이 하나 없이 쓸쓸하게 죽은 중전이
조선왕조에 수두룩하다.
적장자 왕위 계승은 희귀했다.
하기사 월경주기, 배란일, 내분비 호르몬 계통의 지식은
1950년대 이후에 밝혀졌다.
오기노식 피임법을 만든 일본의사
오기노씨는 작년에 사망했다.
이런 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풍수 관상 택일
모두 사기꾼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래도 혹자는 풍수나 관상
기타 잡학이 통계적 진실이라고 믿는다.
조선 왕조 500년 역사보다
더 좋은 반증 사례는 없다.
동변동 시골마을 촌구석 골목에 차가 빼곡했다.
미래농원이라는 카페인데 이 지역 핫플레이스다.
중천님이 서변동 편의점에서
캔맥주 4개를 구입하셨다.
중천님. 보름산님. 한소가
편의점 앞 탁자에서
나눠 마셨다.
서병장님의 단주는 5월 한달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