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엔 친구와 함께 책을 사러 교보문고에 들렀는데요,
아무리 <천의 고원>을 찾아도 없는 겁니다.
저자인 들뢰즈와 가타리를 넣어도 검색에선 ‘없음’만 나오고
직원도 모르겠다고만 하더군요.
근데 그 꼴을 지켜보던 한 남자가 천의 고원이 아닌 <천개의 고원>을 직접 찾아다 주더군요.
아, 얼마나 멋진 모습의 남자던지!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내가 십년만 젊었어도….”라고 했더니
주책이라고 놀리더군요.ㅎㅎㅎ
여러분, 주말엔 서점엘 갑시다.
가슴 설레는 일이 기다린답니다.^^
노마디즘에 관해서 읽어볼 일이 있어서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을 사왔는데요,
그 중에서 멋지게 노마드를 표현한 구절이 있어서 옮겨봅니다.
*
이때부터 인간은 공간을 걸어간 날들의 수로써 측량했다.
거리란 얼마간의 시간일 뿐이었다.
무언가를 아끼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비축해두지 않았다.
첫댓글 생각만으로도.... / 애 05-10-31 10:52
애
착한님, 서점에서 가슴 설레는군요.
그 마음 깊이 이해합니다.
저는 서점에서 서가를 쳐다볼때면 가슴 뿌듯한 부자가 된듯 하더이다.
비록 내 책은 아니고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저 책들을 언젠가
읽으리라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던데.....
'이때부터 인간은 공간을 걸어간 날들의 수로써 측량했다.
거리란 얼마간의 시간일 뿐이었다.
무언가를 아끼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비축해두지 않았다. '
읽고서 위에서 처럼 좋은 글 인용해 주시오면....
좋은 책을 읽게 된 님께 축하를 드리며....
*
빨간 모자를 쓴 사내
문신
바람이 불어 흔들릴 때마다
빨간 모자를 쓴 사내, 제 발 밑에 구름 떠 있는 줄 모르고
휘이익- 휘파람을 불었다 옆구리에 걸어놓은 물동이에서
비눗방울 몇 개 비명처럼 날아오르고
그래도 믿는 건
하늘 어디쯤 매달린 동아줄 한 가득
그는
먼지 앉은 유리창을 힘주어 닦는다
언제나 아래로만 내려가는 삶
더러는 윤기 나는 생활을 꿈꾸기도 하면서 그 사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닦는다
세상의 얼룩은 찌들어만 가는데
삶은 왜 이렇게 가벼워지기만 하는 걸까
닦고 또 닦아도 선명해지지
애
닦고 또 닦아도 선명해지지 않는 얼굴이 있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 간신히 매달려 있는 낯선 사내 울 듯 말 듯
그 사내 서둘러 마른걸레로 훔쳐낸다
누가 그에게 동아줄을 내려주었을까
가끔씩 허리를 묶은 동아줄을 확인하면서···· 제 삶을 확인하면서
그 사내
비눗방울 같은 휘파람을 분다
또 한번 줄을 풀고 내려가면
거기에도 흐린 얼굴 하나 떠 있을 거야
흔들리면서 그 사내 바람이 된다
걸레질을 멈추고
잠깐 생각의 끈을 놓았을 뿐인데
빨간 모자를 쓴 사내
어느덧 구름 위에 떠서···· 휘파람처럼 메아리 없이 떠서
그의 삶처럼 습기 많은 먹구름을 닦고 있다
수집 / 착한여자 05-10-31 15:04
착한여자
애님, 요즘 제겐 좋은 글들이 마치 예쁜 돌멩이들 같아요.
한가한 바닷가를 혼자서 거닐다가 까맣게 윤이 나는 돌들을 줍는 기분,
조금은 쓸쓸하고,
그리고 영원히 이렇게 걸었으면 하는 그런 기분.
오늘 제가 주운(?) 글들을 보여드릴게요.^^
***
한밤중에 비밀을 가지고 문경새재를 같이 넘게 되면 그렇게 돼요. 비밀이 상대편에게 스며들거든요. [...] 재를 넘으면서 사람들은 다 자신들을 드러내놓지요. 잘 알던 사람이면 더 잘 알게 되고 모르던 사람이면 산공기처럼 맑게 다 비쳐보이게 돼요. 그렇게 사람들은 문경새재를 통과하면서 인생의 공모자가 되거든요. 최윤, <문경새재>
잠깐 이 시계를 보겠니. 1분만 이 시계를 함께 보도록 하자. (1분이 지나가자 그 사내는 입을 연다.) 우리가 함께 한 1분이야. 난 이 1분을 영원히 기억할 거야. 영화 <아비정전> 중.
그리하여 이 세상이 끝나는 날, 너는 내 꿈속의 낯선 사람의 뒷모습이었을 뿐이라고. 스물네 시간 안에 이루어진 비정서적이고 의사소통이 부재한 섹스에서 멀리 보이는 배경일 뿐이었다고. 내가 너의 생에서 무엇이 될 수 있나? 단지 너의 집
착한여자
단지 너의 집 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짧고 고독하게 여점원 아니디아의 생애를 살아가는 것. 절멸." 배수아, <여점원 아니디아의 짧고 고독한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