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통신 19에서 20으로 건너오기까지
여섯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사이 계절은 봄에서 겨울이 되었고
마당에 늘어선 은행나무의 잎들은
많이도 졌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분들을 떠나보냈고
비어있는 자리를 지키느라 애를 쓰고 있는중입니다.
다같이 갈수 있을거라는 기대나 이상같은 것들은
신기루 같아서
무성할때는 가려있다가 잎이 지면 드러나는 몸통같이
확연해집니다.
때가 있는가 봅니다. 찬바람이 불어봐야
제대로 된 면목을 알게되니..
2006년 큰나무학교로 시작하여
그해 협동조합을 구성하였고, 그로부터 삼년후에 비영리민간단체로
옷을 갈아입었습다.
대안 방과후학교에서 정규대안학교, 전공과에 이르기까지 9년이 걸렸고
이제 발달장애인의 주거와 직업을 실현할 캠프힐을 바로 앞에 두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원하는 그것이 당장 주어지지 않더라도 그 너머를 향하여 나아가는 거지요.
강바닥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거지만
수십번 수백번 퍼올리게 되면 사금이라는 결정체를 얻게 됩니다.
기다리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얻게 되는건 없지요.
조금 더 버티는 것이 진정한 것에 가까이 이르는 길임을
이곳에서 터득해 가는 중입니다.
큰나무학교가 종료되었습니다.
학교 이후 캠프힐로 모든 것을 모아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전격적인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원래 그렇게 가기로 되어있었기에 물꼬가 자연스럽게 트여갑니다.
시흥에 있는 학교는 캠프힐 준비과정으로 운영이 되고
강화에는 캠프힐 건축을 시작하고
이후 진행해 나갈 일들을 하나하나 실험해가게 됩니다.
학교는 그 시절의 소임을 다하였으니 장렬히 전사한 셈입니다.
물러날 때는 뒤돌아 보지 말고
그저 가을바람에 날리는 잎처럼 황망히 내릴 일입니다.
그래야.. 다음을 모색할 수 있을거니.
이런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서야 겠구나, 다짐 또 다짐을 합니다.
가을걷이를 마쳤습니다.
봄철 고구마로 시작하여 백태와 들깨까지
이천평 텃밭이 정리되었습니다.
고구마는 많이들 주문해주셔서 고맙게도 대부분 다 나갔습니다.
일부 팔기 어려운것은 남겨서 고구마전분 만들고
말랭이 만들어 간식으로 먹고 있는 중입니다.
흰콩 농사는 강화에 몇년째 닥친 가뭄때문에 망했습니다.
정식후와 수확전 물을 많이 먹는 콩 특성상
평년에 훨씬 못미치는 강수량때문에 씨알이 맺지 못했습니다.
콩밭은 다 갈아 엎었습니다.
들깨는 그래도 살아남아서 백이십키로 수확했습니다.
생들기름, 들깨가루 만들어 전해드리려 합니다.
5월 아카시와 6월 잡꿀 밤꿀 수확한 것
작년보다 양이 많은데도 잘 팔렸습니다.
지속가능한 경제의 토대를 실험하는 중입니다.
능력의 차이가 경쟁이 아니라 상생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아무리 복지사업이니 뭐니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권은 사람을 어떻게 볼거냐, 그 이해에서 출발하는 거여서
개별적인 능력이나 정도가 앞서버리면 당사자는 무시될수 밖에 없습니다.
서로를 메꾸어 가는 철학과 태도가 구성원 안에 기본적으로 깔려있어야 하는 거지요.
농사를 짓게 되면 각자의 역량이 여러곳에 알맞게 쓰이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구는 땅을 파고 누구는 풀을 뽑고 누구는 나르고.. 여러곳에서
제 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일률적인 라인에 집어넣는 방식은 아무리 자고 먹을게 풍족해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겁니다.
저는 많은 시간 강화보다 시흥에 와 있습니다.
매일 초지대교를 건너 외곽순환도로를 달려 출근을 합니다.
쇼트트랙 계주 경기를 보면 달려온 다음주자로 넘어갈 때
밀어주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했으니 여기까지만 하자, 하고 멈추지 않고 다음을 위해 힘껏 밀어주는 것.
다음 주자가 치고 나갈 수 있는 것은 뒷사람의 밀어주는 힘이 있어서 가능합니다.
학교를 마무리 하고
캠프힐 다음 주자로 나가는 변화의 기간에
힘껏 힘을 내어 다음을 밀어주자는 마음이지요.
힘껏.
건너가는 것은 누구나 쉬운 일이 아니기에.
치고 나가는 건 힘든 일이기에.
달려온 사람이 힘껏 밀어주자고.
큰나무가 새판을 짜고 있습니다.
9년의 학교를 마감하고
캠프힐을 향하여 출발합니다.
발달장애인의 새로운 주거와 직업의 터전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제 문턱하나 넘은 듯 합니다.
육개월 이곳 비운 사이 많이들 걱정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런저런 말들은 많았지만 바람에 날리는 재와 같이 어디론가 흩어졌고
남은것은 저보다 먼저간 그 아이, 세살때 만나 언제나 아이처럼 머물러있다가
아카시꽃 흐드러지게 필무렵 훌쩍 떠나버린 친구,
그가 남긴 메시지입니다.
해 맑은 미소로
태양처럼 밝게 비추어내어야 할 숙제가
남겨져 있다는.
첫댓글 2015년 절반의 사연을 이렇게 함축적으로..... 열심히..지켜내자구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