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전반장.
맛깔나는 영화여행/2004 건방떨기
2011-06-26 15:04:08
<2004년 3월 12일 개봉작 / 12세 관람가 / 108분>
<감독 : 강석범 / 출연 : 김주혁, 엄정화, 김가연, 기주봉>
1. 그러고보면, 난 운이 비교적 좋은 편에 속한다.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마다, 늘 어딘가에서 틀림없이 나타나는 구세주가 있었다. 실업인구가 50만명에 육박하는 이 때, 고민이라고 하는 것이 늘상, 무엇을 하면 안 짤리고 제대로 먹고 살까를 걱정해야 하는 이때, 한심스럽게도 나는 무엇을 하면 재미있게 돈 벌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있었으니. 그런데, 그런 궁리와 또, 집안에서의 온갖 학대(?)와 어떠한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이기적’인 정신으로 버틴 지 어언 몇 년. 나는 드디어, 내 자신이 적어도 90%는 옳았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세상에 100% 완전하다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편성으로 친다면, 난 그런대로 잘 살고 있는 편이다. 물론,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사는 안정적인 결혼생활이라든가, 안정적인 생활하고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말이다.
2. 구차하게 서두가 길어야 할 이유가 있겠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지만, 홍반장은 바로 그런 구세주 같은 존재다. 물론, 나와 홍반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영화 속 작은 마을에서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다. 동네의 궂은 일은 도맡아서 하며, 동네의 모든 문제가 그를 통하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 불량배들조차 그가 쫓아내, 동네는 평화롭기만 하다. 그렇기에 그는 “로맨스”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 공감이 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홍반장이라는 존재는 평생 연애라고는 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 마을에 얼떨결에 이사와 버린 “윤혜진”이란 의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3. 윤혜진. 치과의사.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어떨결에 사표를 썼다가, “좋은 생각”이라는 말에 그만두어야만 했던 불쌍한 경력자. 그녀가 살던 도시에서는 병원을 할 만한 건물을 구하지 못해, 시골 변두리에다가 간신히 병원건물을 얻어 치과를 차린다. 그리고, 그녀와는 전혀 “맞지 않”는 홍반장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서서히 정이 싹튼다. 그러나, 문제는 그거다. 그들 사이의 로맨스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들의 관계는 재미있고 상큼하긴 하지만, 그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며, 그들이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도 뜬금없다. <로맨틱 코미디>의 강박관념에 사로집힌 코미디는 그 영화를 재미있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끝이 어정쩡해 허탈감을 남긴다. 홍반장과 윤혜진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했지만, 아! 이제 시작하는 그들. 과연 오래갈까? 그들은 친구가 오히려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4. 홍반장은 해결사다. 그는 작은 마을의 권력의 중심이다. 그리고, 그는 철없는 혜진을 마을에서 꼭 필요한 사람으로 키워낸다. 그들의 관계는 연인관계가 아니라, 어찌보면 종속의 관계다. 그러나, 그것은 복종과 억압의 관계가 아니라 자율적인 질서 속에서 한국의 고전적 테마인 “협동정신”을 일깨워주는 보편적인 주제를 내세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진부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 누군가 얘기했다. 홍반장은 나의 이상형! 아, 누구나 무소불이의 권력을 꿈꿀지도 모른다. 주민의 지지와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절대권력 앞에서 모두가 복종할 수 밖에 없고, 그런 사람이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요즘 같이 개인화된 시대에는 더더구나, 그런 사람을 찾기는 힘들기 때문에.
5. 내게는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주는 많은 분들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 분들을 알았던 것은 아니다. 그냥, 살다 보니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우연히 마주치다 보니, 도움을 받게 되고. 요즘 가장 신나는 일? 얼마 전 타고 다니던 “티코”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고쳤다. 전에 같지 않게 힘이 나니, 타고 다닐 맛이 난다. 작은 도움들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커다란 산을 만든다. 아! 걱정된다. 그렇게 많은 분들의 은혜를 어떻게 다 갚나? 그래서, 나는 그분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한다. 홍반장이 동네사람들의 은혜를 입고, 자라나서 그분들의 은혜에 보답하듯이, 나도 누군가의 이상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 해본다. ^^ (2004년 3월 2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