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위한 ‘그림자 노동’, 만족이 안 일어나는 소비자의 노역
이영순
소비를 위한 ‘그림자 노동’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림자 노동’이란 산업 경제에서 임금 노동에 가려진 그림자 측면으로, 시간과 노고에 대해서 아무런 대가가 주어지지 않지만 수행해야 하는 무급 활동을 말한다. 나는 50대 가정주부다. 남편의 월급으로 네 식구가 빠듯하게 살아야 하기에 가성비를 고려하며 만족할 만한 소비를 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에 대한 개념을 통해 나의 소비 행위가 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소비자가 어쩔 도리 없이 수행해야 하는 노역임을 알게 되었다. 가정의 행복과 가족의 만족을 위해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일이라고 여기며 했던 나의 노고들이 사실은 산업 사회에서 소비자에게 강요하는 노역이며, 이런 시스템에서는 만족이 안 일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내가 겪은 에피소드를 통해 소비를 위한 ‘그림자 노동’의 실체와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며칠 전 일이다. KT멤버십 5월 더블할인 혜택 문자를 읽었다. 베스킨라빈스에서 파인트를 30%할인 받아 사기 위해 매장을 찾았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매장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했지만 고급 아이스크림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면 이런 수고쯤이야. 입장하자마자 무인결제기계가 나를 딱 가로막았다. ‘여기도 생겼네!’ 무인결제기계로 계산을 하려면 나는 긴장이 된다. 스크린을 터치하니 아이스크림 메뉴만 보이고 파인트는 찾지 못했다. ‘에잇, 꼴랑 아이스크림 하나 사는데 힘들어 죽겠네!’ 결국 직원의 도움을 받아 결재를 했다. “아이스크림 세 가지 골라주세요.” 메뉴도 많고 아이스크림 이름으로는 도통 맛을 가늠할 수도 없었다. 결재도 혼자 못했는데 아이스크림 맛도 모르면서 매장에 온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 직원에게 묻지 않고 대충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많은 일자리가 자동화 기계로 대체되고, 무인 기계로 결재하는 일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자동화 기계에 쩔쩔매고, 새로운 상품을 잘 몰라서 겪게 된 이 일이 뭐 그리 대수인가?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매장을 방문했을 뿐이다. 그런데 목적과는 다른 ‘그림자 노동’을 수행하며 불편함과 초라함을 느꼈고, 만족이 아닌 주눅이 들었다. 상품을 구매하며 겪게 되는 이런 소외감을 이전엔 나의 모자람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소비자에게 상품을 구매하도록, ‘그림자 노동’을 수행하도록 사회가 부추기기에 발생되는 문제였다. ‘그림자 노동은 상품 소비자가 수행하는 노동이며, 특히 가정에서의 소비 활동이다’(이반 일리치, 『젠더』, p47) ‘그림자 노동’은 소비를 위해 병행해야 하는 노역이었다. 사실 아이스크림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문자를 확인하고, 혜택을 누리는 합리적인 쇼핑을 하기 위해 매장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외출을 위한 준비를 하고, 주차를 못해 짜증스러움을 느끼며, 매장에 가서도 만족하지 못한 쇼핑을 하는 ‘그림자 노동’을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이젠 가전제품까지도 야간을 이용하여 무인 매장으로 운영되며, 고가의 가전제품도 소비자가 혼자 척척 설치해서 쓸 수 있다는 광고가 쏟아지고 있다. 과연 이런 ‘그림자 노동’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게 누구를 위한 배려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산업 사회의 발전은 ‘그림자 노동’에 더 많이 투입될 전망이다. 그럴수록 소비자는 더 많은 시간을 소비 활동에 허비하게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 활동이 만족으로 이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소비자의 노동력이 들어간다고 가격이 저렴해지는 게 전제되는 것도 아닌데다가, 돈과 상품과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그림자 노동’을 의미 있다거나 칭찬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산업 생산품에 의존해서 살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외부에서 끊임없는 필요를 소비자에게 강요하고 주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의 개념으로 내 삶을 들여다보니, 소비를 위한 ‘그림자 노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에서 강제하는 필요에 반응하며 주눅들고 소외감을 느낀 게 억울하기도 했다. 이제 나는 일상적인 소비 활동에서 ‘그림자 노동’인지, 아닌지를 따져 보게 된다. ‘그림자 노동’이란 개념을 알게 되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는 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불필요한 ‘그림자 노동’을 분명히 줄여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