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설 ▲ 작곡 배경 프로코피에프는 1948년에 일어난 제2차 작곡가 비판사건에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로부터 ‘형식주의적 경향’에 대해 심한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과거의 작품을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연 것이 이 「제7번 교향곡」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프로코피에프의 전신(轉身)에 대해 예술가의 커다란 비애를 느끼고 있지만, 프로코피에프의 만년의 작품이 알기 쉬운 음악을 쓰려는 전환의 방향으로 바뀌어 간 것은 정치적인 커다란 움직임에 대해 예술가가 취해야만 하는 하나의 부득이한 해결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프로코피에프는 이 「제7교향곡」을 「청년 교향곡」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청년의 장래에의 희망과 기쁨의 사상에 의해 태어난 것이라고 전해진다. 전체는 간결하고 아름답고 또 청춘의 감상과 로맨틱한 기분이 가득차 있다.
▲ 작곡과 초연 1952년 10월 11일 모스크바에서 초연된 그의 마지막 교향곡 7번은 소비에트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방세계에서는 매우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이러한 상반된 반응은 음악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어서 양측의 서로 다른 환경과 입장에서 비롯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1933년 미국으로부터 귀국하여 그다지 제약 없이 작품 할동을 해 오다가, 1948년의 즈다노프 비판과 1953년 스탈린 서거 사이의 시기는 1920년대 이후의 파리와 미국에서 교향곡을 작곡하는 데에 훨씬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었고, 실제로 쇼스타코비치는 이 시기 교향곡 작곡을 중단하기도 했을 정도다. 반면 서방세계의 평론가들은 음악의 현격한 단순화를 스타일적인 퇴보로 치부하며 용서할 수 없는 죄라고 인식했다.
■ 해설 ▲ 1악장 Moderato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 7번은 전통적인 교향곡의 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으로서 고전적인 관점으로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편에 속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구조적 단순성으로 포장되어 있는 작곡가의 은밀한 의도에 대한 실마리는 아마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간직한 고통을 반영하고 있는데, 제시부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오보에와 글로켄슈필, 실로폰의 앙상블 음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텍스추어와 화성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풍자적인 오페라이자 마지막 작품인 ‘금계’에 등장하는 점성술사의 음악과 닮아 있는, 동화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재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동화적인 요소들은 떠들썩한 마지막 악장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데에 일조하기도 한다.
▲ 2악장 Allegretto-Allegro 작곡가의 발레음악 ‘신데렐라’나 오페라 ‘전쟁과 평화’에서 등장하는 비통하면서도 달콤한 왈츠처럼 보이는데, 이전에 작곡한 두 개의 소비에트 교향곡들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이 주제를 불명료하게 보이게끔 하는 기법의 완성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혼과 팀파니, 작은북 등등이 클라리넷과 플루트, 피아노, 바이올린이 만들어낸 명료한 왈츠 리듬과 대조를 이루며 어두운 분위기를 주입, 이질적인 요소들이 그로테스크하게 춤을 추는 듯한 무곡풍으로 끝을 맺는다.
▲ 3악장 Andante espressivo(느리고 표정을 풍부하게) 프로코피예프의 감성적 표현력이 잘 드러나는 대목으로서 일종의 음악적 화자의 삶에 대한 회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보에를 비롯한 다양한 목관악기들이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며 과거에 대한 동화적이면서 낭만적인 추억을 상기시키고, 혼과 바이올린의 길고 풍윤한 프레이징과 짧은 하프의 여운은 일종의 몽상적인 여행과 같은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 4악장 Vivace(빠르고 경쾌하게) 소비에트적인 흥겨운 갤럽이다. 작곡가의 만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악장에 대해 흥미로운 증언을 남긴 바 있다. 당시 몹시 가난했던 프로코피예프는 무려 10만 루블이 걸린 스탈린 상을 타기 위해 즐겁고 발랄한 22마디 이상의 갤럽을 원래 의도한 악상 대신 집어넣었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러나 종소리와 함께 여운을 남기며 조용하게 사라지듯 끝을 맺는 코다 부분은 작곡가가 의도한 극중 화자의 과거로의 소멸로서 후배 작곡가인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13번 ‘바비야르’의 마지막 악장의 종결부에서 이를 모델로 삼았다. 더불어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 15번에서 프로코피예프의 이 마지막 교향곡에서 드러나는 의도적인 단순성과 신랄한 풍자의 그로테스크한 조화를 고스란히 차용하기도 했다.
■ 감상 ● 전곡 상단에 ① 악장 0:00 ☜ 추천 ② 9:25~ ③ 17:21 ~ ④ 악장 22:32 ~ ☜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