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無門關)
중간 맹공발(重刊 孟珙跋)
역(譯)
달마가 서래(西來)하여 문자를 의지하지 않고 사람 마음을 직지(直指)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케 하였으니, 이 직지를 말했다 하면 이미 우곡(迂曲)인 것이요, 더욱이 성불을 말한다는 것은 낭당(郎當)이 적지 않다. 기왕에 문(門)도 없는데 무슨 관(關)이 있으리오만 노파심이 간절하여 몹쓸 말을 퍼트려서 무암(無庵)이 한 마디 혹을 달고 또 49칙을 만들었으니, 그 사이의 조그마한 효와(잘못) 일지라도 눈썹 치켜세우고 찾아 골라내보라. 순우(淳祐) 을사년(1245) 여름에 중간(重刊)하면서 검교소보(檢校少保) 영무군절도사(寧武軍節度使) 경호안무제치대사(京湖安撫制置大使)겸 둔전대사(屯田大使)겸 기로책응대사(蘷路策應大使)겸 강릉부(江陵府) 한동군(漢東郡)을 관장하는 개국공(開國公) 식읍(封地) 2천1백호(戶), 식실(食實) 봉(封) 6백호(戶) 맹공(孟珙)이 발(跋)하다. 達摩西來 不執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說箇直指 已是迂曲 更言成佛 郞當不少 旣是無門 因甚有關 老婆心切 惡聲流布 無庵欲贅一語 又成四十九則 其間些子誵訛 剔起眉毛 薦取 淳祐乙巳夏重刊, 檢校少保寧武軍節度使湖安撫制置大使兼屯田大使兼夔路策應大使兼知江陵府漢東郡開國公食邑二千一百戶食實封陸佰戶 孟珙跋.
무문관(無門關) 역(譯)
무문(無門) 노사(老師) 48칙을 지어 고덕(古德)의 공안을 판단했으니, 기름진 떡을 파는(賣油餅) 사람이 사는 이의 입을 벌려 밀어 넣고 다시 토해, 내지 못하게 하는 것과 크게 흡사하다. 비록 그렇다지만 안만(安晚)이 펄펄 끓는 화로 위로 나아가 다시 한 칙을 더해 대연(大衍)이란 수(數)를 채우려다가 예전으로 돌려보낸, 한데, 모르겠다. 노사(老師)들께서는 어디서부터 씹으시려오? 한입에 먹어치움과 같다면 광명을 놓고 천지를 흔들겠지만 그렇지 못하겠다면 48칙에 연이어 견(見)을 두고 모두 다 뜨거운 모래(熱沙)를 이루어가야 하리라.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해라. 無門老師 作四十八則語 判斷古德公案 大似賣油餠人 令買家開口接了 更呑吐不得 然雖如是 安晩欲就渠熱爐熬上 再打一枚 足成大衍之數 却仍前送似 未知 老師 從何處牙 如一口喫得放光動地 若猶未也 連見在四十八箇 都成熱沙去 速道速道.
사족(蛇足)
맹공발(孟珙跋), 벼슬 직함(職銜)이 꽤나 길다. 겸겸겸(兼兼兼)이 중첩(重疊)이 되니, 고관대작(高官大爵) 벼슬아치다. 서문(序文) 반대(反對)로 끝장에 중간(重刊) 발문(跋文)으로 쓴 것 같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전한 선법이 불립문자(不立文字)이고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면 무문관(無門關) 사십팔칙(四十八則)도 그렇고 거기다가 사십구칙(四十九則)까지 써서 범부(凡夫)니, 부처니, 횡설수설(橫說竪說)하는 것도 혹 위에 혹을 붙인 것, 같다는 말이다. 선어(禪語)는 반어(反語)가 많다. 문맥(文脈)이 맹렬(猛烈)하게 비난하는 듯, 하는 것은 긍정(肯定) 찬탄(讚歎)으로 보면 된다. 문도 없는데(無門) 무슨 관(關)이냐? 한다. 선어(禪語)는 역(易)으로 뒤집어 보면 된다. 말 따라가면 함정이다. 속가 벼슬아치 발문이 매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