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수평적 차원은] 인류와 다른 피조물 사이의 불화와 불평등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이나 예수의 인간해방 선언(요 8:32)은 이런 맥락에서 넓은 의미에서 구원의 선언이다. 구원의 수평적 차원은 우리에게 ‘사회적 회심’을 통해 사회를 보는 관점을 바꿀 것을 요청한다. 이 주제는 해방신학, 흑인신학, 민중신학 등 주로 정치신학이라 불리는 신학에서 주로 다룬다. 따라서 이들 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은 일차적으로 정치적 혹은 경제적 상황에서 억압된 인간의 조건을 해결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 구원의 목표가 있다. 물론 이 땅의 사회정치적 차원에서는 온전한 구원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것은 그 구원을 향한 힘찬 걸음이 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구원은 “공동체-안에-있는-개인들”과 관련된다.
정치신학과는 맥락이 다르지만, 복음주의진영에서 교회의 사회참여 문제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문건은 1974년 제1차 세계복음화국제대회(The First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에서 작성한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이다. 로잔언약은 복음전도와 함께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 둘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주장했지만, 사회참여를 구원의 문제와 동일시하지는 않는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선언문 제5조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은 천부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또는 종종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한 데 대해 뉘우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참여가 곧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 의무의 두 부분임을 인정한다. 이 두 부분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교리와, 이웃을 위한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414-15.